강식장갑 가이버 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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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2화 -다가오는 그림자-
도쿄 시내에 자리잡은 맥스 제약은 요즘 한창 잘 나가나는 제약회사다. 이 회사는 최근 2건의 신약을
발표하고 그 유효성을 입증받으므로서 의학계의 주목과 동종업계의 질시와 견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회사였다.
맥스 제약은 그 이전부터 이 바닥에선 알아주는 회사였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연구인력
과 충실한 실험환경등을 갖추고 각종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회사였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번에 발
표한 신약 이외에도 벌써 여러 건의 신약 및 기존 약품의 계량등 다른 업체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은 연구실적등을 남겨놓았다. 업계에선 도대체 그런 자금 등이 어디서 나오나 하며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은 아니란 점이었다. 최소한 세금 문제에 관해선 이제까지
세무당국이 별 말을 못할 정도로 완벽함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우수한 기술력과 탄탄한 자금, 그리고 계속되는 흑자 경영. 그야말로 호랑이에 날개를 단 듯한 회사가
바로 맥스 제약이었다. 이런 회사이니 주식시장에서도 단연 인기였고 다른 회사들의 주식이 폭락하는
순간에도 맥스제약 만큼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계속 상한가를 기록할 수 있었다. 투자자들 사이
에서 '얼마라도 사 놓으면 최소한 손해는 안보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렇듯 누가 봐도 아주 이상적인 회사였다.
최소한 겉으로는 말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맥스 제약 사장실,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맥스 제약 사장 '마키시마 겐죠'가 벽면의 대형 모니터에 대고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상당히 화가 난 듯 이마엔 굵은 힘줄이 돋아있었고 얼굴은 아주 시뻘개져있
었다.
"너희들이 본게 바로 유니트 '가이버' 란 말이다! 생체병기에 대한 노하우는 우리들밖에 없어! 그런데
우리가 처음 보는 괴물이 나왔으면 그 상황에선 당연히 유니트라고 의심을 해야 하잖아!!"
-"죄..죄송합니다!"
화면 속의 남자가 송구스러운 듯 고개를 조아렸다. 그 남자는 검은 유니폼에 하얀 핼맷을 쓰고 고글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었다. 바로 어제 스쿨드들 앞에 나타났던 그 남자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겐죠가 계속
해서 소리를 질렀다.
"아무튼 이제 유니트는 1개 남았다. 1개는 우리가 회수했고, 또 하나는 정황상 이미 활성화 된 것으로
보인다. 빨리 남은 한 개를 찾아! 그리고 그 활성화 된 유니트도 찾아서 회수해와!!"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현장에 있었다던 계집애를 잡아서 족쳐! 유니트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에 조아노이드를 봤으니 살려둘 순 없다. 증원군을 보낼 테니 이번엔 확실히 처리해!!"
-"예!!"
화면이 꺼지면서 벽면의 대형모니터가 벽속으로 밀려들어감과 동시에 대형 액자가 내려오면서 모니터를
완벽히 가렸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설이었다. 겐죠가 혈압이 오르는 듯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으으...이런 멍청이들을 믿고 일해야 하다니...."
"화가나는건 당신만이 아니오."
그때까지 창가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남자가 겐죠의 말에 토를 달았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그는
상당히 큰 키에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인지 옅은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
의 일본어 발음은 상당히 매끄러웠다. 겐죠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외국인을 쳐다보았다.
"리스카 감찰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이번만큼은 확실히 할 테니."
"그래야죠. 그래야 당신의 무능함이 조금이라도 상쇄될 테니."
리스카라 불린 남자가 비아냥거리자 겐죠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다. 그러나 겐죠는 그에게 말조심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난 이틀 전에 유니트를 가지고 여길 떠나 늦어도 오늘, 애리조나 본부에 인계했어야 한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모든 걸 망쳤단 말야."
리스카는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사장실은 금연이지만 리스카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으며 불을 붙였다. 물론 겐죠역시 그런 그에게 주의를 주지 못했다. 리스카가 담
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말했다.
"뭐, 한 개는 회수했다니 그나마 다행이오. 나머지도 다 회수할 수 있을 거라 믿소."
"물론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오. 리스카 감찰관."
"....나보단 당신 걱정이나 하시오. 마키시마 겐죠. 이번에도 실패하면 난 중앙에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
어. 그럼 당신은 이거야, 이거."
리스카가 얼굴에 잔뜩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자 겐죠의
얼굴에 잠시 두려움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리스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해 나갔다.
"잊지 마시오, Mr.마키시마. 당신이 오늘의 지위에 오를 수 있던 건 우리 '크로노스'의 덕분이란 걸...."
*************************************
"케이씨, 일어나셨어요?"
일요일 오전10시, 케이의 방밖에서 베르단디가 케이를 불렀다. 무슨 약속이 없는 한 쉬는 날은 케이는
늦잠을 잤고 베르단디는 그런 그를 깨우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게 9시 전후로는 일어나는 케이였
다. 그런데 오늘은 10시가 넘어가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케이씨? 저 들어갈께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 베르단디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자리에 누워있는 케
이의 모습이 보였다. 별로 다를 건 없어 보였다. 베르단디가 케이를 깨우기 위해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
갔다.
"케이씨?"
".....으으..."
그런데 케이의 모습이 이상했다. 뭔가 괴로운 듯 얼굴표정이 일그러져 있었고 계속해서 식은땀을 흘리
고 있었다. 베르단디가 황급히 그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곤 경악하였다. 케이의 이마가 아주 뜨거웠다.
"케이씨! 어디 아프신 거예요? 케이씨!!"
"...밤에 대체 뭐하고 잔 거야? 어제 까진 멀쩡했으면서.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선 냉수마찰이라도 했냐?
아님, 나체로 숲속을 뛰어다니기라도 했어? 아니면 어제 밤에...."
"...그쯤 하지 울드. 그게 환자 앞에서 할 소리야?"
케이 눈앞에서 울드는 공중에 거꾸로 뜬 채로 케이에게 농담을 걸고 있었다. 케이는 베르단디가 급히
법술을 시전한 덕분에 상태가 많이 좋아진걸 느꼈지만 그래도 아직 까진 머리가 어지러운 감이 좀 있었
는데 울드가 저런 자세로 있는걸 보고 있으려니 머리가 다시 아파 오기 시작했다. 울드는 재밌다는 표
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걸 케이에게 내밀었다.
"자, 울드 특제 감기약. 지금 한번 먹고, 이따 점심 먹고 30분 후에 한번 더 먹으면 감기같은건 완전히
떨어질 거야."
"고마워요, 언니."
"....."
베르단디는 그런 울드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꼈지만 케이는 영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까지
울드가 조제한 약 치고 뭐 제대로 효능을 발휘한 적이 있던가 싶었다. 그 약들 때문에 툭하면 무슨 큰
소동이 나곤 했으니깐.
".....뭐야, 그 표정은? 내 약은 못 믿겠다는 거야?"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단...."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케이의 얼굴엔 노골적으로 '못 믿겠다'라고 쓰여있었다. 울드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내가 어찌 장난을 치겠어? 이번만큼은 어떤
장난도 안치고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그럼 이제 까진 장난을 치긴 쳤었다는 거군, 이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케이는 그냥 삼키고 말
았다. 꺼냈다간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케이는 약간 주저하며 약봉지를 받아들었다. 베르단디가 컵
에 물을 따라 케이에게 주었다.
"케이씨, 여기 물이요."
"아, 고마워."
솔직히 울드가 만든 약은 웬만해선 먹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케이는 베르단디가 법술을 시전 해준
덕에 거의 다 나았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그냥 베르단디에게 다시 한번 법술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기
도 했다. 그러나 지상계에서 생활하기 위해 일정수준 이상의 힘을 봉인한 그녀에게 잦은 법술시행은 많
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자기 몸이 아프더라도 케이는 베르단디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
다. 케이는 눈을 꼭 감은 채로 울드의 약을 삼켰다.
"으이구,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네요. 괜찮다니깐 그러네... 뭐, 하여튼 오전중이라도 푹 쉬어둬. 괜히 무리
하면 더 안 좋아지니깐."
"...고마워, 울드."
케이의 인사에 울드는 그저 살짝 웃어주고는 방밖으로 나갔다. 약을 먹은 케이는 다시 자리에 누우려고
하였다.
"케이씨.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감기가 악화될 거예요. 갈아 입혀 드릴께요."
"에? 아..아냐! 나 혼자 갈아입을께! 나 혼자 할 수있으니까! 아하하!"
베르단디가 옷을 벗기려 하자 케이는 엄청나게 당황해하며 말했다. 베르단디는 그런 그의 행동이 이해
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웃으며 마른 옷들을 케이의 앞에 놓고 일어섰다.
"그럼 케이씨, 갈아입으시고 푹 쉬세요. 그래도 아침은 드셔야 하니까 죽 금방 끓여올께요."
"응, 고마워 베르단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베르단디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케이는 왠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가 베
르단디가 갈아 입혀 주겠다고 하는걸 뿌리친 건 부끄럽기 때문인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실 한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
웃옷을 벗은 케이는 손을 목 뒤로 넘겨 어깨 부분을 만져보았다. 역시 부스럼 같은 게 느껴졌다. 그의
등에는 뭔가 우둘투둘 한게 손바닥 보다 좀 작은 범위 안에 나 있었다. 각각의 어깨부근에 한군데씩 좌
우 대칭으로 두군데 나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피부병이라도 난 것처럼 보였다.
어제 호수에서 그런 소동이 있고 나서 목욕을 하려고 옷을 벗었을 때 뭔가 가려운 느낌이 나 긁으려고
손을 댔는데 이게 느껴진 것이다. 거울로 봤을 땐 무슨 피부병인가 싶었다. 부스럼이 난 범위가 꽤 넓었
지만 이상하게 만져봤을때 고통 같은 것은 없었고 진물 같은 이상징후도 없었다. 게다가 호수 소동이
있기 전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 소동이 있고 나서 갑자기 생긴 것이다.
'그 갑옷 같은 것 때문에 그런 건가?'
보기 좀 그렇다는 것 빼곤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걸 방치해 둘 순 없는 노릇이니
베르단디나 울드에게 보이긴 해야 했다. 당장이야 숨기긴 했지만 -왜 숨겼는진 모르겠지만 마치 무슨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숨기게 됐다- 어쨌든 정상은 아니니까. 물론 어제 호수에서 있었
던 괴물이랑 갑옷 소동까지 말할 순 없었다. 잘 설명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베르단디에게 더 이상 걱
정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옷을 전부 갈아입은 케이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
"스쿨드 님?"
"....."
스쿨드에게 정비를 받고 있던 시글은 스쿨드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자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등쪽
의 점검창을 열어봐야 했기 때문에 지금 시글은 웃통을 벗은 상태로 뒤돌아 앉아 있었다. (때문에 밤페
이는 진작에 밖으로 쫓겨났다)시글이 뒤돌아보니 스쿨드는 손에 인두를 든 채로 그저 멍하니 앉아있기
만 하였다.
어제 호수에서 있었던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스쿨드였다. 폭발과 함께 날아온 수수께끼의 삼각형
물체. 그리고 그 후 케이를 덮친 괴 생명체. 그 직후 나타난 '그레골'이라 불린 녹색괴물. 그 엄청난 괴
물을 간단하게 박살낸 처음 보는 인간형 물체, 알고 보니 그것이 케이였던 점.....
-'드르륵!'
"스쿨드! TV가 고장났어!"
그 때, 울드가 문을 갑자기 확 열어젓히며 들어왔다. 깜짝 놀란 스쿨드는 그만 뜨겁게 달구어진 인두에
손을 대이고 말았다.
"악!!! 뜨거!!!!"
"스쿨드 님!"
대인 손을 움켜쥐며 스쿨드는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시글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와중에 스쿨드는 바닥
에 있던 날카로운 부품을 그만 발로 밟고 말았고 또 비명을 지르며 발을 잡고 깡충거리다 이번엔 균형
을 잃고 넘어지면서 장롱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농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이 떨어지면
서 방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너 지금 뭐하냐....?? 그런 개그까지 할 정도로 심심하니?"
울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스쿨드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울드 바보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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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의 폭발력과 유니트의 무게 등을 감안해서 유니트가 날려갔다고 생각되는 범위를 지금 집중적으로
조사중입니다."
"...."
속이 타는 듯 마키시마 겐죠는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우기만 하였다. 건강을 지킨다는 제약회사의 사장
실이 담배냄새로 가득 차면 안 된다고 스스로 금연구역으로 정해놓고 자신과 타인에게 그것을 항상 강
조해놓고선 지금은 그가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비서가 계속해서 보고를 하였다.
"또한, 어제 현장에 있었다던 여자애 말입니다만....어찌 된 일인지 인적사항 등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
다. 아무래도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아닌 듯 합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계속 수소문 중이니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뭐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겐죠가 책상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치면서 소리질렀다. 그의 이마엔 굵은 힘줄이 돋아있었고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책상을 내리쳐서 손이 아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난 중앙에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어. 그럼 당신은 이거야, 이거'
아까 리스카 감찰관의 빈정거리는 모습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른 지위인데, 어떻게 이뤄놓은 회사인데....비록 그들의 도움이 매우 컸지만 분명 지금 이 순간
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중앙'에 보고된다면.....
'잃을 수 없어. 절대로..!!!'
*************************************
울드의 방, 일명 '울드님의 성'에서 여신 3자매가 윗통을 벗어젓힌 케이의 등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케이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었고 울드는 뭔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베르단디는 상당히 심
각한 표정을, 스쿨드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케이의 등에 난 부스럼을 본 여신들의 표정
이었다.
오후에 케이는 울드와 베르단디를 불러선 등에 난 부스럼을 보여줬다. 스쿨드의 경우엔 무슨 이상한 오
해를 할까봐 케이가 같이 부른 것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러신 거예요? 케이씨."
"그...그게 어제 밤에 목욕하다가 알았어."
"흐응...'갑자기' 이랬단 말이지..?"
베르단디는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울드는 뭔가 미심쩍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방사능에
오염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큰게 하루도 안돼서 순식간에 생겼다? 그것도 다른 부분은 아주 깨끗한데
등의 일부분에만 이런 게 생기다니...케이가 잘 안 씻는 타입이라면 혹 모르겠지만 매일 목욕을 하니 그
런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어서 치료를 해야 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베르단디는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하며 조용히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법술을 시전해 보
려는 것이었다. 베르단디의 손에서 하얀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녀는 케이 등의 부스럼을 쓰다듬
기 시작했다.
-팟!
"?! 이...이건..?"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스럼에 손을 대자마자 베르단디의 손에 맻혀있던 법술력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법술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깨진 것이다. 깜짝 놀란 베르단디는 다시 한번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건....단순한 피부병은 아니군. 법술이 깨지다니..."
놀라기는 울드도 마찬가지였다. 베르단디가 실수할 리는 없고 그렇다면 저 부스럼에 법술을 거부하는
힘이 담겨있다는 건데....
"좋아! 투지가 끓어오르는군! 이 울드님이 특제의 비약을 만들어서 반드시 깨부숴 주겠어!!"
".....제발 좀 참아 줘, 울드."
한숨을 쉬면서 케이는 다시 웃옷을 입었다. 왠지 그대로 계속 있었다간 '샘플을 채취해야 한다'며 칼이
라도 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치료'가 아니라 '깨부순다'? 뭔가 대형사고의 예감이 들었다.
"어제 처음 봤을때보단 많이 줄어든 거야. 게다가 이 부분이 아프거나 가려운 것도 없고 더 번질 기미도
없으니깐 좀만 지나면 자연히 나을 거야."
"하지만 케이씨..."
"걱정하지마 베르단디. 난 아무렇지도 않아."
베르단디에게 한번 웃어준 케이는 문밖으로 나갔다. 베르단디는 그를 근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고 울드
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법술력을 깨는 부스럼이란 건 들
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슨 저주 같은 건 아닐까? 그러나 최근 마라나 힐드를 포함, 어떤
마족도 이 근처에 온 적은 없었다. 왔더라면 무슨 기운을 느꼈을 텐데.....집안에 마족이 있긴 하지만 사
실상 힘을 거의 못쓰는 단순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을 뿐.
반면 스쿨드는 뭔가 짚이는 데가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이내 서둘러 케
이를 쫓아 밖으로 뛰어나갔다. 스쿨드는 금방 케이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마당에 나가려는 듯 케이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케이!"
"스쿨드?"
"그 등의 부스럼....혹시 어저께 그 호수에서...."
그 대목에서 케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살며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리곤 그는 고
개를 끄덕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누군가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하지만 스쿨드. 그 갑옷얘긴 베르단디나 울드에겐 비밀로 해줘. 알았지?"
"그래도 언제까지 감출 순 없잖아....."
"우선 그 갑옷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자. 지금 상황에선 우리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자세히 설명할 수도 없잖아. 사실을 말하는 건 그 뒤에 해도 늧지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케이는 문밖으로 나갔다. 스쿨드는 그저 근심스런 표정으로 케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
"일단 그나마 1개라도 회수해서 다행이오."
마키시마 겐죠와 리스카는 맥스제약 건물내부의 연구소 구역으로 가고 있었다. 어제 요원들이 회수한
유니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말로는 다행이라고 말해도 리스카의 얼굴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파손....되었다고?"
"네, 하지만 겉의 금속부분이 살짝 금이 간 정도고 내부의 유기체에는 이상이 없는 듯 합니다."
겐죠의 질문에 옆에 걷고있던 검은 선글라스의 비서가 대답하였다. 리스카는 또 다시 짜증을 냈고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겐죠는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긴장할 만도 했다. 귀중한 유니트 3개를 몽땅 도둑맞았고 각각의 유니트들중 한 개는 이미 해방, 다른
한 개는 아직도 행방불명, 그나마 회수한 것도 경미하다지만 손상을 입은 상태라니. 나머지 2개를 어떻
해서든 온전하게 회수하지 못하면 그는 사실상 끝장이었다. 재산과 지위를 몽땅 잃는 건 물론이고 목숨
까지....
연구소로 들어가는 문 앞에 이르자 비서가 전자 키를 꺼내서 문을 열었다. 도쿄 도심에 위치한 맥스제
약의 본사건물은 좀 특이하다. 다른 제약회사들은 본사건물과 연구소가 분리되있는게 보통이지만 맥스
제약은 본사 건물 안에 연구소까지 모두 같이 모여있었다. 그 때문인지 맥스제약의 건물은 밖에서 보면
빌딩의 규모가 좀 큰 편이다. 연구소는 회사의 모든 기술력이 있는 곳이며 때문에 당연한 얘기지만 이
곳은 엄중한 보안조치가 취해져 있어서 일반인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되있었다.
그러나, 안에서 연구하고 있는 건 보통 약만이 아니었다.
연구소 안쪽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원형의 유리로 된 통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녹색의 액체가 채워져있
는 그 안엔 끔찍한 모습들의 괴물들이 들어있었다. 그 유리 통들 주변을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부
지런히 돌아다니며 뭔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이윽고, 리스카와 겐죠는 연구소 내부의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안의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 위에
금속의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회수한 유니트는 이 안에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리스카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푸른색의 삼각형 물체가 들어있었다. 바로
스쿨드들이 어제 호수에서 봤던 그 물체였다. 그들은 이것을 '유니트'라 불렀다.
"파손된 부분이란 건....여긴가?"
리스카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유니트에 가까이 다가갔다. 중심부에 위치한 금속구의 한 쪽 귀퉁이
가 함몰돼 있었고 살짝 금도 가 있었다. 리스카가 손을 뻗어 그 금속구를 살짝 만져보았다. 그 모습을
본 겐죠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위험하네! 리스카 감찰관. 아직 유니트는 불분명한 부분이 너무 많아!"
리스카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웃어 보였다. 그 때 중심부의 금속구가 푸
른빛을 내기 시작했다.
-키이이잉....파앙!!!
"헉!"
순간 유니트의 겉을 둘러싸고 있던 금속판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가면서 그안에 있던 유기체가 밖으로 튀
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곁에 있던 리스카를 덮쳤다.
"리...리스카 감찰관!!"
"지부장님, 위험합니다!"
비서가 그 유기체로부터 겐죠를 보호하듯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런 그들의 눈에 유니트 내부에서 튀
어나온 유기체에 둘러싸이고 고통스러운 듯 비틀거리는 리스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걸 벗겨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그 유기체는 리스카의 몸을 더욱더 조여들었다. 이윽고 중심부에 있던 금속구가
리스카의 이마부위로 이동해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리스카는 머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으...으아아아!!!"
*************************************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면서 케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이미 땀투성이었고 호흡도 상당히 거칠
었다. 아마도 악몽을 꾼 듯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베르단디가 근심스런 얼굴을 하며 옆에 앉아있었
다.
"케이씨, 괜찮으세요? 뭔가 안 좋은 꿈이라도...."
"으...응...조금 안 좋은.....꿈...이었어."
케이는 방금 전까지 꿨던 꿈을 떠올렸다. 토요일날 호수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괴상한 생물이 자신의 온
몸을 문어처럼 칭칭 감아버리곤 온 몸을 꽉 조르던 그 감각....숨을 전혀 쉴 수 없었던 그 공포.... 그리고
그 직후 닥쳐온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
"...베르단디는 여기 웬일이야?"
"케이씨가 계속 끙끙거리시기에 어디 아프신가 해서요.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신경써줘서 고마워, 베르단디."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는 베르단디의 세심함이 너무 고마웠다. 베르단디가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내 근심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케이씨, 아무래도 등의 그 부스럼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
"!"
부스럼 얘기가 나오자 케이는 움찔하였다.
"역시 뭔가 이상해요, 법술이 안 듣는다니....다시 한번 해볼께요."
베르단디가 케이의 등을 보려고 하자 케이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베르단디의 행동을 제지했다. 케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괜찮다니까. 아프거나 한 것도 아냐. 그리고 악몽이랑 부스럼이랑 무슨 상관이지? 난 잘 모르겠는걸."
"하지만...."
베르단디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베르단디는 그 부스럼이 단순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부스럼에 손을 대자 법술이 깨져버렸었다. 처음이야 모르겠지만 두번째까지 그런 간단한
걸 실수할 베르단디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때의 상황은 누가 봐도 법술이 '어떤 외부 간섭'에 의해서
깨진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본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지만 비슷한 걸 찾자면 무언가의 '저주'가 아닐
까.....
"아아..4시인가...아침에 출근하려면 지금 바로 자야겠는걸."
"........"
케이가 딴 데로 화재를 돌려보려 했지만 베르단디의 얼굴엔 여전히 근심이 걷히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케이는 뭔가를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주저하듯 입을 열었다.
"저기...베르단디. 사실은 말야...."
"네."
"............아, 아무 것도 아냐. 저기 미안하지만 나 물이나 한잔 갖다줄래? 목이 좀 마르네."
"네, 그럴께요."
베르단디가 문밖으로 나가자 케이는 한숨을 내 쉬었다. 일단은 비밀로 해 두기로 했지만 걱정하는 그녀
의 얼굴을 보니까 마음이 흔들리는 케이였다. 베르단디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한 건데 오히려 역효
과가 나는 듯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볼껄 그랬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
"왜 그래? 잠을 못 잤어? 오늘 따라 좀 퀭해 보이네?"
월요일 오전, 출근한 케이의 컨디션은 확실히 안 좋아 보였다. 눈가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행동도
다소 굼떠 보였다. 휴일 다음날이 피곤한 거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케이는 좀 더 상
태가 안좋은듯 했다. 데스크에서 베르단디가 차를 끓이면서 그런 그를 근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케이씨, 홍차에 레몬이랑 꿀을 넣었어요. 피로회복에 조금은 도움이 될 거에요. 지로 씨도 한잔 드세
요."
"Thank you~~! 베르단디의 차라면 언제라도 OK!"
"아..고마워 베르단디."
레몬의 신맛이 느껴지면서 조금은 정신이 드는 듯 했다. 지로가 찻잔을 기울이며 마치 케이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하여튼 알고 있겠지만 월요일에는 일이 많이 밀려드니깐 어여 정신 좀 차리라고. 일요일 저녁엔 다음날
에 대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거, 상식 아닌감?"
물론 케이도 알고 있고 어제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중간에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고 그때이후로
눈을 감고 있어도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자꾸 그때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반면 베르단
디는 별로 피로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케이때문에 베르단디 역시 잠을 설친 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 였다. 다만 케이가 걱정스러운 듯 얼굴에 근심이 있다는 게 좀 달랐다.
-따르르릉!
"저기, 오토바이 수리 받으러 왔는데요."
차를 다 마시기도 전에 전화랑 손님이 동시에 왔다. 이제부턴 좀 바빠질 것이었다. 케이가 정신을 차리
려는 듯 남은 차를 단숨에 비우고는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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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케이는 훨윈드에 있는 조그만 경트럭으로 거래처에서 정비부품등을 받으러 나왔다. 경리일이 바
쁘지 않다면 대게는 베르단디도 따라 나오곤 했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정도로 베르단디도
바빴다.
부품 등을 다 구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찰나 스쿨드가 밤페이를 타고 전자상가 쪽에서 나오고 있는 것
을 보았다. 밤페이를 타고 도로로 나오면 도로교통법에 걸릴 수 있다고 주의를 줘도 언제나 스쿨드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스쿨드도 케이를 봤는지 방향을 돌려 케이 앞으로 달려왔다.
"스쿨드? 여긴 웬일이야?"
"으응. 부품이 필요해서 말야. 파격세일이란 광고를 보고 서둘러 달려왔지. 케이도 부품 사러 온 거야?"
"아아, 난 거래처에서 부품 받으러 온 거야. 물론 이 가겐 아니지만."
스쿨드가 필요한 건 전자 부품 등으로 케이의 분야와는 별로 상관은 없는 물건들이다. 다만 우연히 가
게가 근처에 붙어있었을 뿐이다. 필요한 걸 전부 입수했는지 스쿨드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 보였다.
"시간 좀 있으면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갈까? 내가 사줄게."
"정말?"
아이스크림이란 말에 눈이 번뜩이는 스쿨드를 보며 케이는 미소지었다. 역시 이럴 땐 아직은 애란 생각
이 들었다. 여신인 만큼 실제 나이야 인간을 훨씬 초월하겠지만.
"스쿨드... 양인가요?"
그때 낯선 남자 두사람이 케이와 스쿨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 다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은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빵모자를 쓴 폼이 마치 탐정을 연상시켰다. 케이와 스쿨드는 두사람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스쿨드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그 때 남자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그저께 묘실공대 뒤편 숲속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에 대해서 몇 가지 묻고싶은 게 있는데..."
"경찰...이세요?"
"잠깐이면 되니까 수사본부 까지 같이 가 줬으면 하는데, 어떠니? 무서워 할 것 없어요."
남자가 꺼내보인건 신분증이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경찰 마크가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경찰인 것
같았다. 그러나 케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큰 폭발이었으니 경찰에서 수사에 나섰을 수
도 있겠지만 현장에 스쿨드가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게다가 스쿨드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여기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 기록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름을 알아내고 이렇게 찾아낼 수 있
단 말인가?
"거기 제가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아신거에요?"
스쿨드가 대번에 핵심을 질문하였다. 남자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가씨가 거기로 간 걸 본 사람이 있었지. 그래서 혹시 알고 있을까 해서 말야."
스쿨드가 어쩌면 좋냐는 표정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때 빵모자
를 쓴 남자가 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보호자 되십니까?"
"아...뭐 그렇죠."
"혹시 걱정되신다면 같이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조사할 때 같이 계셔도 됩니다. 그러면 스쿨드 양도 좀
더 편하게 응할 수 있겠죠. 아는 변호사가 있으시면 부르셔도 됩니다."
"...꼭 가야 하나요?"
"현장 사진이랑 유기물 등도 보셔야 하니까요."
알고 있는 변호사 같은 건 있지도 않지만 저렇게 말하니 별로 할말은 없었다. 아무튼 경찰이 본격적으
로 팔 걷어 붙이고 나선 거라면 가봐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스쿨드가 말한 괴물이랑
검은 옷의 남자들, 그리고 그 갑옷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자, 스쿨드. 나쁘진 않을 듯 싶은데?"
"케이가....그런다면...."
뭔가 주저하는 듯한 스쿨드였지만 경찰이 협조요청을 하는 데다 케이도 같이 가준다고 하니 조금은 용
기를 내는 스쿨드였다. 남자들이 근처에 세워둔 승용차로 두 사람을 안내하였다.
"아! 맞다. 내가 끌고 온 트럭. 부품을 싣고 있는데..."
"그럼, 갔다올때까지 밤페이더러 지키라고 할께."
스쿨드가 지시하자 밤페이는 케이의 트럭에 가서 경비를 서기 시작했다. 두 남자들은 그런 밤페이를 보
곤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오오! 아주 멋진 로봇이군요. 아직 과학기술이 저 정도는 아닐텐데...."
"그렇게 생각하죠? 내가 만들었어요!"
"정말이니? 굉장한 천재로구나! 우리 아이도 네 또래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해서 걱정인
데..."
남자들이 한껏 추켜세워주자 스쿨드가 한껏 의기양양해 하였다. 차에 오르기까지 남자들은 계속해서 스
쿨드를 칭찬하였고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 스쿨드는 아까의 주저하는 모습같은건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런 스쿨드를 보며 케이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 한편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상하다는 느낌은 차를 타고 가면서 더욱더 커졌다. 케이가 알고 있는 경찰서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차가 가고 있는 것이었다. 케이가 이쪽이 아니라고 말해봤지만 남자들은 수사본부는 다른 경찰서에 설
치되 있다는 대답만 할뿐이었다. 경찰 일에 관해선 아는 게 없으니 케이는 그저 그들의 말을 믿을 수밖
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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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시후, 그들이 스쿨드와 케이를 데려온 곳은 시 외곽의 폐쇄된 공장이었다. 사업체가 부도로 문
을 닫은 후 인수하겠다는 업체가 나타나질 않아 꽤 오랫동안 방치된 공장이었고 시에서 조만간 철거할
예정이었던 곳이다. 케이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면서 그 '경찰' 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정말로 경찰 맞아?! 왜 이런 데로 우릴 데려온 거야!"
"후....우리가 언제 경찰이라고 말했지?"
그렇게 말하며 그 들은 케이와 스쿨드를 공장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넓은 공장 안에는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빈 공간일 뿐이었다. 다만 몇 명의 다른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들을 본 스쿨드는
깜짝 놀랐다. 그저께 호수에서 본 그 사람들이었다! 검은 유니폼에 이상한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
들, 그 녹색괴물이랑 함께 있던 사람들이었다.
"다...당신들은 그저께 호수에서!!"
"헤헤, 꼬마야 안녕! 널 찾느라고 꽤 고생 좀 했단다."
남자들은 모두 얼굴에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케이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주변을 빠르
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스쿨드 만이라도 도망치게 해야 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
다. 하나같이 자신보다 체격들이 큰 데다 무엇보다 대여섯명의 사람들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건 거의 불
가능했다. 그 때 케이들과 함께 들어온 남자들 중 한 명이 그런 케이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등에 뭔가를
들이댔다.
"어이, 형씨. 섣부른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이..이건 총?!'
케이는 뭔가 쇠막대 같은 것이 자신의 등을 누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는 어디서 났는지 권총을
꺼내선 케이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쿨드가 새파랗게 질렸다.
"다...당신들 뭐야! 우리에게 뭔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거야!"
"무서워 할 거 없단다. 꼬마. 우린 그저 너에게 뭣좀 물어볼려고 이러는 거야."
평소의 스쿨드 같으면 꼬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강하게 항의했을 테지만 겁에 질린 스쿨드는 그걸 잊고
있었다. 물론 분위기 상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빵모자를 쓴 남자가 품안에서
뭔가를 꺼내곤 스쿨드에게 들이대었다. 사진이었다.
"자, 꼬마야. 그저께 호수에서 이걸 봤지?"
스쿨드는 깜짝 놀랐다. 사진에 찍힌 건 그때 폭발직후 날아온 수수께끼의 삼각형 물체였다. 그 중심의
금속구를 누르자 거기서 이상한 생물이 튀어나와 케이를 덮쳤고 그리고 케이의 몸은....
"자, 이건 지금 어딨지?"
"모...몰라!!"
그러자 남자의 얼굴엔 비웃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뭐, 순순히 불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안 했지. 그럼 좀 재미있는 걸 보여줄까?"
그렇게 말하며 빵모자는 케이를 붙잡고 있는 남자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권총을 치
우고는 케이를 돌려서 자신과 마주보게 하였다. 그 순간 케이는 깜짝 놀랐다. 남자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으으으....크으으....크아아아!!!"
남자가 입고 있는 옷 여기저기가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그 남자의 덩치가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신에서 엄청나게 많은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얼굴까지도 한 마리의 짐승의 모양으로 바뀌어
나갔다.
"으..으아아아!!!"
"크아악!!!"
놀란 케이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고 변신이 완료된 괴물은 그 자리에서 케이의 어깨를 꽉 잡아 올
렸다. 괴물의 신장은 2m 이상이었고 전신에 짙은 회색 빛의 털이 무수히 덮여 있었다. 거기다 긴 귀와
위협적으로 생긴 송곳니.....
"어때? 조아노이드 '라모티스'라고 하는 것이지. 멋지지 않니?"
빵모자는 여유 있게 웃으며 스쿨드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스쿨드는 완전히 겁에 질린 듯
그 저 온몸을 떨고만 있었다.
"순순히 말한다면 둘 다 무사히 돌려보내 주지. 자, 어서 말해. 유니트는 지금 어딨나?"
"그...그건...그래! 호수!! 호수 속에 있어!!"
"호오~ 그래?"
확실히 그 때 본 갑옷 같은 것이 이 사람들이 말하는 '유니트'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호수 속에 있을
터였다. 물 속으로 사라지는걸 케이와 함께 분명히 봤으니까 틀림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잔인하게 웃으
며 말했다.
"꼬마야...어른들에게 거짓말하면 못써."
"거짓말 아냐!! 분명 그때 호수 속으로 들어갔단 말야!"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나 본데.....라모티스! 그 녀석의 팔을 물어뜯어 버려!!"
빵모자가 잔인한 명령을 내리자 라모티스는 케이를 거칠게 한쪽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벽에 등을 세게
부딪힌 케이가 답답한 듯 캘록거렸다. 라모티스는 금방이라도 케이의 팔을 물어뜯을 기세로 으르렁거리
고 있었다.
"정말이야! 정말로 호수에 들어갔단 말야!! 사실대로 말했으니 우릴 놔줘!!"
스쿨드는 울먹이며 큰 소리로 호수라고 말했으나 남자들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빵모자가 스쿨드를
위협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호수는 우리 크로노스가 이미 샅샅이 조사했어."
"크로노스?"
"아무래도 안되겠군....라모티스."
그러자 라모티스가 입을 크게 벌리곤 케이의 오른팔에 이빨을 대었다. 놀란 케이가 비명을 질러대며 발
버둥 쳤지만 라모티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스쿨드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케이!! 정말이야! 호수로 들어갔단 말야!! 믿어 줘!"
"닥쳐!! 우릴 바보로 알아? 이 계집애가! 말해! 유니트 '가이버'는 어딨나!!"
그때, 케이의 뇌리를 뭔가가 스치고 갔다. 그 갑옷 같은 것을 '가이버'라고 부르는 건가? 만약 그게 호
수 속에는 없다면 혹시....
"크아아!!"
라모티스가 케이의 오른팔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였다. 그 순간, 케이는 있는 힘을
다 해 외쳤다!
"가..가이버어어!!!!!"
그 순간, 케이의 등에 나있던 부스럼 같은 부분에서 옷을 뚫고 나올 정도의 강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케이의 주변에 강한 빛이 퍼져나갔고 라모티스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랄 세도 없
이 어떤 강렬한 충격파를 맞고 케이에게서 튕겨나갔다.
-콰아앙!!
"캬아아!!!"
충격파는 케이를 잡고있던 라모티스를 날려버렸고 동시에 그의 등뒤쪽 공장벽면까지 박살내버렸다. 그
리고 케이의 등뒤엔 언제 나타났는지 호수 속으로 사라졌던 그 갑옷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이어 케이는
뭔가가 자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등뒤에 나타난 갑옷이 순식간에 분해되더니 케이의
몸 곳곳을 둘러싼 것이다.
-키이잉! 푸슈우욱!!
곧 이마에 위치한 금속구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빛을 발하고 입 양쪽의 공기흡입구에서 공기를 뿜어내
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그 자리엔 그 때 호수에서 녹색 괴물을 쓰러트렸던 하늘색의 정체불명의 물
체가 서 있었다. 충격파 발생시 튕겨져 나간 라모티스는 숨이 끊어졌는지 온몸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급
속하게 부패하고 있었다.
"아, 아니!! 이럴 수가!"
"저 녀석이 유니트 .....가이버!"
남자들은 경악했고 스쿨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만 볼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게
다가 케이의 모습이 왜 갑자기 저렇게 변한 것일까?
"이놈!"
남자들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던 권총을 케이에게 발사하였다. 그러나 총탄은 케이의 몸을 둘러싸고 있
던 푸른색의 갑옷을 관통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튕겨나갔다. 연거푸 다섯 발을 발사하였지만 케이는 끄
덕도 하지 않았다.
'이..이건!'
분명 저 남자는 나에게 총을 쏘고 있다, 케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총을 쏜다면 당연히
피해야 하건만 케이는 왠지 마음이 차분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그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려운 마음 같은 것도 없었다.
남자들이 스쿨드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본 케이는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권총을 가진 남자
가 당황해하며 총을 스쿨드에게 겨눴다.
"움직이지마! 움직이면..."
-푸슝!!
그 순간 케이의 이마에 있던 금속구 위쪽에 자리잡은 조그만 구슬에서 한줄기 빔이 발사됐다. 그 빔은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권총을 파괴해버렸다.
-쾅!
"으악!!"
권총이 터지면서 손에 부상을 입은 남자가 손을 움켜쥐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 자리에 있던 모
두가 깜짝 놀랐다. 심지어 빔을 발사한 케이 자신조차 놀라고 있었다. 단지 총을 본 것뿐인데 무의식적
으로 빔이 발사된 것이다.
"당황하지마라! 힘들게 찾아다니는 수고가 줄어든 셈이니까. 우리들의 임무는 가이버 유니트의 포획이
다!!"
빵모자가 주변 남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듯 큰 소리로 외쳤다. 허둥대던 남자들이 이내 평정을 되찾았
다.
"포획해!"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들의 눈이 붉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모두 아까 케이를 공격했던 라모티스라는 괴물이 되었다. 모두 5마리였다.
"쿠아아!!"
"크르릉...."
'이...이것들 전부 괴물이 인간으로 둔갑해 있던 거야?! 언니...나 무서워!!'
그 광경을 본 스쿨드는 공포에 질려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고 있었다. 라모티스 들은 케이 주변
을 포위하고는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
1대 5, 게다가 모두 엄청난 덩치의 괴물들뿐이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게 척보기에도 1:1이라 할지라도
보통 인간은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보통 사람은 공포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던가 아
니면 도망치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하지만 케이의 마음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차분했다.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갑옷을 입은 덕분일까?
"크아아!"
라모티스 두 마리가 케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케이는 손 날을 세워선 바로 자신의 앞에 육박한 괴
물 한 마리의 명치부근을 찔렀다.
-푹!
"카아악!!"
케이의 손은 너무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괴물의 가슴을 관통해 들어갔다. 가슴을 찔린 괴물은 잠시 몸
을 부르르 떨더니 케이가 손을 빼내자 많은 피를 내뿜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같이 돌격해 들어간 다른
괴물은 그 광경을 보곤 그 자리에서 움찔하며 멈춰 섰다.
'이게 가이버의 힘....'
케이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괴물의 피에 젖어있는 갈색의 섬유질 같은 걸로 뒤덮여 있는 자신의
손. 그 때 호수에서 처음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손이었다. 자기 손이 맞지만 왠지 남의 손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분명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도로 괴물의 가슴을 찔렀다. 평소
의 케이라면 절대로 못할 일이었다.
-콰악!
"잡았다! 크하하하...."
그러나 길게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느새 라모티스 두마리가 케이의 양팔을 하나씩 잡고 비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을 케이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거 놔!!!"
케이가 소리치면서 자신의 오른손을 빼내었다. 분명 꽉 잡고 있었건만 케이가 간단하게 빼내자 라모티
스 들이 당황해 했다. 그때 케이가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왼쪽에 있던 녀석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자
신보다 몇 배나 큰 라모티스를 벽으로 집어던졌다.
-쿠웅!!
"크악!"
다른 한 마리가 당황해 하는 순간, 케이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주먹을 쥐고는 점프해서 다른 한 마리
의 이마를 정확하게 가격하였다. 두개골이 깨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리면서 라모티스는 뒤로 힘없이 쓰
러졌다.
그 사이 또 다른 한 마리가 케이의 등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케이는 이를 미리 눈치채고는 그
대로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달려드는 라모티스의 목을 노리고 돌려차기를 하였다.
-퍽!
신장이 2m가 넘어가는 라모티스의 목을 케이는 정확하게 찼다. 그러자 목이 부러진 라모티스가 그 자리
에서 천천히 허물어져 갔다. 쓰러진 라모티스 들은 즉시 온몸이 검게 변하면서 급격하게 부패해 갔다.
이 모든 광경을 본 스쿨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케이가 저렇게 싸움을 잘 했던가? 평소의 어리숙해
보이는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였다. 분명 아까 케이가 '가이버'라고 외치자 순식간에 저런
모습이 되었으니 저건 분명히 케이가 맞았다. 그러나, 지금의 광경들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크아아아!!!!"
그 사이 케이가 마지막 남은 한 마리를 끝장내고 있었다. 오른팔을 라모티스의 목에 두르고는 그대로
목을 졸랐고 잠시 버둥거리던 라모티스는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은 걸 확인한 케이가 마지막 남은 한 사
람 -빵모자-를 쳐다봤다. 그러나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빵모자는 두려워하긴 커녕 오히려 여유가 넘
쳐 보였다. 그는 천천히 모자와 코트를 벗었다.
"흐흐...과연. 그레골이 당한 이유를 알겠군."
그리고 그 남자의 눈이 붉게 충혈 되면서 순식간에 괴물이 되었다. 역시 그도 조아노이드였다. 그런데
라모티스 들과는 모습이 달랐다. 앞서의 라모티스 들이 무슨 고릴라 같은 인상들 이였다면 이 남자는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리고 왠지 어깨가 이상할 정도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 '바모아'는 그레골이나 라모티스 따위와는 차원이 틀려!"
바모아의 어깨부분이 마치 조개가 열리듯 위 아래로 벌어졌다. 그러자 그 안에 있는 원형의 판 같은 것
이 드러났다. 이윽고 그 원형 판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푸슈웅!!
갑자기 바모아의 양어깨에서 두줄기의 빔이 발사되었다. 그 빔은 케이의 양옆을 지나쳐선 그의 뒤쪽 공
장벽면에 명중하였다. 공장 벽이 순식간에 시꺼멓게 그을려졌다. 바모아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고출력 레이져 빔이다. 따로 발진기 같은 게 있는 건 아냐. 난 이렇게 조제된 생체 병기다."
"생체....레이저?"
스쿨드는 깜짝 놀랐다. 생물이 저런 빔을 쏠 수 있다니! 게다가 그것도 아무런 외부 지원장비 없이 생체
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만으로 저런 게 가능하다니! 로봇이라면 모르겠지만 생물체가 저런 능력이 있다
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넌 내상대가 못돼!!"
아까 것은 그저 위협이었다. 바모아는 이번엔 확실히 명중시킬 생각이었다. 바모아의 양어깨가 다시 빛
나면서 빔이 발사되었다.
-푸슈웅! 콰앙!!
그러나 케이는 간단하게 빔을 피했다. 바모아가 다시 한번 양어깨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푸슝! 푸슝!
연거푸 빔을 발사하는 바모아였지만 그때마다 케이는 재빨리 움직여서 빔을 피했다. 바모아는 약이 오
르기 시작했다.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하고! 이 자식이! ...응?"
그 때 바모아의 눈에 주저앉아 있는 스쿨드가 들어왔다. 그러자 바모아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미소
를 띄었다.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바모아가 빔포를 스쿨드에게 조준하였다. 바모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스쿨드는 깜짝 놀랐다. 케이
역시 갑작스러운 바모아의 행동에 당황하였다. 바모아가 양어깨의 빔 발생부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시작
했다.
"저 계집애라면 한 방에 녹아버릴껄?"
"스쿨드!!"
케이가 바모아에게서 스쿨드를 지키기 위해 그녀 앞을 막아섰다. 바모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
도 저 녀석은 이번엔 피하지 못할 것이다. 피했다간 저 꼬마는 빔을 맞고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테니까.
바모아는 승리를 확신하였다.
-키이잉!
그 때, 케이의 이마에 있는 금속구가 빛을 발하였다. 그러자 케이가 두 손을 가슴께로 가지고 가서는 가
슴부위의 장갑판을 양옆으로 열어 젖혔다. 그러자 가슴 안쪽에 무슨 젤리 같은 것이 보였다.
-위이잉~~
곧 그 젤리 같은 것들이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에너지가 모이는 듯 그 빛은 점점 더 강해지
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본 바모아는 깜짝 놀랐다. 저것은 틀림없이 빔 발생기관이었다. 아까 머리에서
나온 빔 이외에도 또 다른 생체레이져를 갖추고 있었단 말인가!
-우우웅~~~~!!
케이의 양 가슴 부위의 빛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모양이었
다.
"받아랏!!"
-푸슈웅!!
아무래도 내버려두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바모아가 먼저 발사하였다. 그러나!!
-퍼어어엉!!
케이의 양 가슴에서 엄청난 양의 빛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바모아 같이 가는 모양의 빔이 아니라 무
슨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엄청난 양의 에너지였다. 그 빔의 폭포는 바모아의 빔을 간단하게 튕겨내고
그대로 바모아를 덮쳤다.
"....!!!"
바모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 거대한 빔은 바모아의 몸을 순식간에 증발시키고 그대로 직진, 공장
벽에 명중하였다.
-콰아앙!!!
빔의 홍수는 그대로 공장 벽면 전체를 파괴해 버렸다. 빔에 맞은 벽면과 그 주변에 있던 거대한 굴뚝
등도 그 자리에서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의 여파로 공장건물에 남아있던 유리들이 모두 깨져버
렸다. 상상이상의 엄청난 위력에 케이와 스쿨드는 경악하였다.
"....."
빔에 맞은 곳은 무슨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아니, 아무 것도 안 남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가슴의 장갑판을 닫은 케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서있었다. 스쿨드 역시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무너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케이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스쿨드."
"으..응?"
"나....아무래도 엄청난 걸 손에 넣은 거 같아...."
그 시각, 공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서있었다. 그 남자는 무너진 공장을 쳐다보며 미소지었
다.
"...일본지부 최신형 조아노이드 라는 바모아조차도....가이버 유니트 앞에선 무력할 뿐이군."
Next episode 제3화 '리스카의 도전' coming soon....
p.s : 앞으로 연재는 일주일에 한편씩 할 예정입니다. 제가 워낙 글재주가 없어서 쓰는 속도가 느려서요. ^^;;;;;;;; 이번편 이후엔 다음 연재는 다음주 수요일 되겠군요. 그럼 돌들 많이들 날려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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