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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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3화 -리스카의 도전-
".....늦은 건 알고 있겠지? 케이군."
"..죄..죄송합니다. 차가 좀 막혀서...."
훨윈드로 돌아왔을 땐 이미 퇴근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케이 없이 밀려드는 많은 일을 처리한 지로는 당연
히 엄청 화가 나 있었고 베르단디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두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는 그야말로 쥐구멍
으로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폐공장에서 괴물들과 싸우고 오느라 늦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완전 정신병자 취급을 당
할 것이다. 아까 공장에서의 전투이후 케이는 아무래도 스쿨드의 존재가 그들에게 완전히 노출됐다고 보고
이대로 혼자 집으로 보내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집까지 스쿨드를 바래다주느라 늦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말할 수는 없는지라 지각했을 때 흔히들 하는 변명인 '차가 막혀서....'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뭐, 그 근처 차가 많이 막히는 거야 전부터 있던 일이니 이해는 하겠는데....그걸 감안해도 너무 늦었잖아!"
"사...사고도 나서 차가 꼼짝을 못했어요...그래서...."
물론 교통사고같은건 없었다.
"으으....그러니깐 휴대폰 정도는 좀 갖고 다니란 말야! 연락이라도 해줘야지!"
평소엔 거의 지각도 안하고 결근도 없는 성실한 케이였기에 지로도 더 화는 내지 못했다. 덤으로 케이가 간
거래처 방향이 요즘 정체가 심각하다는 점도 있었기에 케이의 변명에 납득하는 지로였다.
케이가 간 곳 도쿄 신주쿠 부근은 요즘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앎고 있었다. 바로 도쿄도청 바로 옆에
건설중인 일본 최대의 초고층빌딩 '크라우드 게이트(Cloud-gate)' 때문이었다. 높이 412m로 도쿄도청 234m
의 거의 2배가까운 두개의 초고층 빌딩으로 구성된 크라우드 게이트는 현재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
다. 바로 그 빌딩 공사현장에 들어가는 자재차량들로 인해 그 일대가 많이 혼잡해 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크라우드 게이트에 관해선 말들이 많았다. 평소에도 혼잡한 그 거리에 그런 고층빌딩이 들어서려면
당연히 공사차량들로 인해 혼잡이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거기에 더해 도청 바로 옆에 세워지는 통에
도청 한쪽 면을 완전히 가려버리게 되는데도 건축허가가 떨어진 것 자체가 신기한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특혜시비나 로비설등으로 완공을 눈앞에 둔 현재도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아시아 최고 높이라 한다면 자부심이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크라우드 게이트보다 높은 빌딩
이 아시아에 무려 4개나 되는 상황이었다. (그 중 3개가 중국에 있다) 결정적으로 크라우드 게이트 자체도
외국계 회사가 자본을 대고 설계와 주시공까지 도맡는 상황이었으니 자부심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일본계
건설기업들은 일부 하청 정도만 참여) 긍정적인 게 있다면 덕분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는 점이 있었지
만 말이다.
"참 내....그 지긋지긋한 빌딩 숲에 뭘 또 추가하는 거람. 게다가 거래처는 또 왜 그런데 자리잡고 있데. 확
바꿔버릴까?"
"죄송해요, 선배. 다음부턴 조심할께요."
".....죄송해요."
현장엔 가지도 않은 베르단디까지 사과를 하였고 지로도 한가지 가지고 오랫동안 뚱해 있을 인물은 아닌지
라 곧 그녀의 표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베르단디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가지도 않았으면서. 그리고 케이. 사고난거야 불가항력이니 할 수 없지.
그래도 앞으론 좀 더 빨리 다녀보도록 노력해봐."
"네."
케이는 속으로 지로와 베르단디에게 미안해하였다. 현재는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는 법.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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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구나."
저녁 9시경. 퇴근한 케이와 베르단디를 울드가 맞았다. 실험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흰색 가운차림에 몸에서
약품냄새가 풍겨 나왔다.
"네. 일이 좀 많아서요. 정리 좀 하느라고 늦었어요."
"울드, 스쿨드는 집에 있어?"
"응? 그 녀석 아까 들어온 이후로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안나와. 또 쓸데없는 잡동사니 만들고 있나 보지."
울드는 별거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이는 스쿨드의 방쪽을 쳐다봤다. 울드의 태도로 보아 그 뒤로
놈들이 습격해온것 같지는 않았다. 케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러자 울드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
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아니 그냥."
"케이씨, 시장하시죠. 금방 저녁 만들어 드릴께요. 우선 간단히 씻고 오세요."
"응. 알았어."
베르단디는 바로 부엌으로 향했고 케이는 세면장으로 갈려고 하였다. 그때 울드가 케이 눈앞에 뭔가를 내밀
었다. 무슨 빨간 색 액체가 담겨있는 시험관이었다.
"자! 기대하시라! 어떤 저주도 박살내는 이 울드님의 특제약, 울드라민 하이퍼Z!! 이전에 실패했던 슈퍼Z의
강화판!! 이거라면 그 등의 부스럼도 한방이야!!"
"........제발 부탁이니 좀 참아 줘....."
이전 마라의 저주에 걸려 오토바이가 됐을 때 울드가 저주를 풀어준답시고 케이의 입(연료 주입구)에다 잔
뜩 부었던 액체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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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고급 리무진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주 값비싼 고급차란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이 차가 대변해 주고 있었다.
"주변을 수색해 본 결과, 유니트가 떨어진 듯한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유니트는 찾았나?"
차안에는 마키시마 겐죠가 타고 있었다. 그는 거의 흔들림이 없는 리무진 안에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게...주변에 발자국도 있던 걸로 봐선 누군가가 이미 줓어간듯 합니다."
"뭐라고!"
겐죠가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결국 회수한 유니트는 1개뿐. 그것도 리스카 감찰관이
식장한 것뿐이었다.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유니트를 식장한 리스카는 현재 의료진들에게 정밀검
진을 받고 있었다. 호수에서 발견한 것을 최초의 가이버, 이를 '가이버I'이라 칭하고 있었으므로 리스카는 2번째
가이버, 가이버II 가 되는 셈이었다.
리무진은 어느덧 거대한 고급주택안으로 들어갔다. 시외곽에 위치한 겐죠의 자택이었다. 무슨 영화에나 나
올 듯한 고급스러운 집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현관 앞에 하인들과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들이 도열해
있었다.
겐죠가 차에서 내리자 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지만 겐죠는 그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비서
와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버님. 내년도 경영 시뮬레이션 레포트는 서재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준수하게 생긴 건장한 청년이 겐죠를 맞이하였다. 겐죠의 아들인 듯 싶었다. 그러나 겐
죠는 여전히 비서와 대화할 뿐이었다.
"하여튼, 어서 서둘러라. 현장 근처에 있었던 놈들을 최대한 찾아봐. 그놈이 위에 보고하기 전에 빨리 찾아
야 한다!"
"예."
청년이 다소 굳은 표정을 지으며 겐죠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님.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신 지요."
"됐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시다면.....회사 일이 아니라 크로노스....."
그러자 겐죠가 갑자기 불같이 화내기 시작했다. 겐죠의 반응에 청년은 움찔하였다.
"됐다면 됀거지 뭔 말이 많으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잖나!!"
"....죄송합니다"
청년은 고개를 숙여 보였지만 겐죠는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갔다. 아무리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해도 청년과 겐죠의 모습에선 부자지간의 모습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청년의 입가엔 미소
가 번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했다는 집사의 말을 무시한 채로 겐죠는 그대로 서재로 직행하였다. 책상 위엔 청년이 준비
했다던 레포트가 놓여있었지만 겐죠는 거기엔 눈길도 주지 않고는 담배부터 물어 피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겐죠였다. 회사경영따위는 어찌돼도 좋았다. 지금은 유니트를 회수하는 것
만이 중요했다. 그런데 2개가 이미 해방됐고 나머지 1개마져 누군가가 줓어가다니....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
일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후에 그는 그 때 현장에 있었다던 여자애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제 유니
트의 행방을 알 수 있게되겠다며 잔뜩 기대하던 그였는데 몇시간후에 날아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일본 지
부의 최신형이라는 '바모아'조차 가이버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바모아만 보낸 것도 아니고 라모티
스도 6마리나 보냈는데도 말이다. 되는 일이 없었다.
맥스제약이 이렇게 커진 대에는 겐죠의 능력보다는 '그들'의 도움이 훨씬 컸다. 바꿔말하자면 그것은 그들
의 눈밖에 나면 그의 회사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위험해진다는 뜻이었다. 담배를 든 겐죠의 손이 부들부
들 떨리기 시작했다.
*****************************
".........."
케이는 자리에 누웠지만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낮에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케
이였다. 무심결에 '가이버'라고 외치자 갑자기 나타나선 온 몸을 둘러싼 갑옷, 평소의 자신이라 생각되지 않
는 격투, 그리고 가슴에 숨겨져있던 엄청난 무기. 그게 다 자기가 한 일이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도
저히 실감이 안가는 케이였다.
'한 번 해볼까..."
왠지 어릴 적 TV에서 보던 변신히어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케이였다. 평소엔 보통사람들과 다름없이
생활하다가 악당들이 나타나면 멋진 포즈를 잡으며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변신해선 적들을 때려눕히던 히
어로. 남자아이라면 대게는 꿈꾸던 것이었고 그런 점에선 케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케이가 재밌게 보던
히어로는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그걸 보고는 자전거로 히어로 흉내내다가 넘어져 다친 일도 있었던
것이다.
케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베르단디는 자고 있는지 방에 불이 꺼져있었고 울드와 스쿨드의 방
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특히 스쿨드의 방에선 무슨 용접이라도 하는지 강한 빛이 불규칙적으로 점
멸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선 밖으로 나간다고 들킬 것 같지는 않았다. 케이는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나갔다. 단순히 느낌 탓인지 정말로 그런 진 모르겠지만 왠지 오늘따라 마루가 삐걱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
렸다.
절 뒤편의 숲속으로 들어간 케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따라온 것 같지는 않았다. 절에서도 꽤 떨어
졌으니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변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케이의 심
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케이는 일단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다.
"가...가이버..."
무슨 모기가 기어 들어가는 듯한 소리로 말해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변신 히어로 중에서 이런 맥빠지는 목소리로 구호 외치는 인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 큰 소리로 구호
를 외쳐야 하나?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도 왠지 창피한 마음이 드는 케이였다. 주변에
누가 없는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케이는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가이버!!"
제법 큰 소리로 외쳐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변화는 없었다. 케이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까 낮
에 공장에서 있었던 일은 환상도 꿈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안될까?
"그 갑옷의 모습을 떠올려봐. 그리고 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떠올리며 외쳐봐."
"스...스쿨드!!"
갑자기 등뒤에서 스쿨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케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여깄다는걸 알았을
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아까의 장면을 다 본 걸까? 케이의 얼굴은 홍당무
처럼 빨개졌다.
"분명히 케이는 아까 공장에서 변신했었어. 지금도 가능할 꺼야. 한번 그렇게 해봐."
케이를 놀려댈 줄 알았는데 스쿨드의 얼굴은 의외로 심각했다. 아마도 놈들에게 노출된 '당사자'라서 그런
걸까? 케이는 눈을 감고 스쿨드의 말처럼 그 갑옷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
렸다. 그 다음 케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어어!!!"
-쿠아앙!!
순간 케이의 몸 주변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섬광이 번쩍이면서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충격파로 인
해 불어온 강한 바람에 스쿨드가 움찔하였다. 스쿨드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앞엔 바로 낮에 봤던 '그것',
그들이 유니트 '가이버'라고 불렀던 것으로 변신한 케이가 서있었다.
"됐다!! 드디어 해낸 거야! 케이!!"
스쿨드는 환호성을 질렀고 케이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기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있었다. 정말
로 변신하였다! 어릴 때 보던 TV속의 히어로처럼 정말로 변신한 것이다. 케이의 심장은 거의 폭발직전까지
뛰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은 환희로 가득차 올랐다. 그 때였다.
"스쿨드! 누군가 오고 있어!"
"뭐?"
케이가 다급하게 말하자 스쿨드는 뒤를 돌아다 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스쿨드가 누가 있냐는 듯한 표
정으로 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케이는 자세를 낮추곤 절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스쿨드도 덩달아 자세를 낮추었다. 절 쪽으로 접근하자 누군가가 절에서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울드와
베르단디였다.
"어..언니!!"
"숨자! 빨리!"
케이와 스쿨드는 서둘러서 숲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두사람은 반사적으로 숨
을 생각부터 하였다. 다급해진 케이는 스쿨드의 허리에 손을 두르곤 옆구리에 무슨 푸대자루 마냥 끼워 안
았다. 그리곤 정신없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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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일까요?"
갑자기 밖에서 뭔가가 크게 터지는 소리가 나서 베르단디는 잠에서 깨었다. 연구를 하느라 아직까지 잠들지
않고 있던 울드도 그 소리를 들었다. 둘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절 뒤편의 숲 같은데.... 한번 가보자고."
마당엔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므로 가볼 만한 곳이라면 뒤쪽의 숲뿐이었다. 하지만 거기라고 무슨 인화물질
같은게 있는 건 아니었다. 두사람은 숲속으로 들어섰다.
"언니! 이것은..."
"여기 같은데. 뭔가가 터진 곳이 말야."
울드와 베르단디는 이내 폭발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땅이 꽤 넓은 범위에 걸쳐 파여있었고 주변엔 나무
도 세 그루가 부러져서 쓰러져 있었다. 꽤 두꺼운 나무가 저렇게 부러진걸 보면 상당한 폭발이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한걸?"
울드는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폭발 당시의 위력은 굉장했지만 이상하게 주변에 불이 난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화약같은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벼락인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어서 별이 환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자연적으로 벼락이 내릴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법술이나 마술을 구사해서 인위적으로 벼락
을 내릴수도 있다. 그러나 불탄 흔적이 전혀 없다면 벼락도 아니었다.
"이건 마치 압축되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사방으로 퍼진 것 같은 모습이네요."
베르단디의 말에 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에 탄 흔적이 없다면 공기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이렇게 된 것
일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대기를 이런 식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자는 그리 흔치 않다. 대기계 속성
의 일급신인 베르단디라도 현재 힘이 봉인된 상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울드는 속성이 다르니 말할 것
도 없고.
"공기를 인위적으로 모았다가 터뜨렸다기 보다는 이건 마치....뭔가가 소환된 것 같아요."
"소환?"
흔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던 베르단디가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 말에 울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공기
를 압축시켰다 터뜨렸다는 것보다는 소환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뭘
소환한 것일까? 그리고 주변에 법술진의 흔적같은게 안보이는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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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되겠다 싶어 케이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곤 깜짝 놀랐다. 잠깐 달린 것뿐인데
절이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먼 거리를, 그것도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제대로된 길도 아니라서 그냥 걷는
것도 상당히 힘든 코스인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케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또 한가지 의문은 어떻게 베르
단디들이 절에서 나오는걸 알아냈느냐 하는 것이다. 숲속 깊이 들어갔기 때문에 절에서 누가 나오는지는 보
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이었는데 과연 어떻게 알아냈을까. 생각나는 건 그때 그저 머릿속에서 반사적으
로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걸 '느꼈다'는 것뿐.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내려줘!!"
"아, 미..미안!"
그러고 보니 스쿨드를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다. 케이는 바로 그녀를 내려놓았고 땅에 내려선 스쿨드는 지친
듯 숨을 헐떡거렸다. 하긴 그렇게 앞뒤로 흔들리면서 매달려 오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
가 땅바닥은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스쿨드까지 옆구리
에 안아들고 산길을 뛰어온 케이는 그다지 숨이 차지 않았다.
"케~~~~이~~~!!"
"미...미안해...나도 모르게 그만..."
숨을 고른 스쿨드는 잔뜩 골이난 표정으로 케이를 쏘아보았다.
"바보야!!!!"
스쿨드가 케이를 향해 뭔가를 날리는 듯 손을 뻗으며 바보라고 소리쳤다. 바로 스쿨드의 유일한 '공격법술'
이라고 할 수 있는 '글자새기기 법술'이었다. (명칭은 순전히 케이의 생각일 뿐 정식명칭같은건 없다) 상대
방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글씨를 쓰는 건데 물리적 타격이야 별거 아니지만 한번 새겨진 글씨는 좀처럼 안
지워진다는게 문제였다. 케이가 몸을 웅크렸다.
"어라?"
그런데 스쿨드가 놀라는 표정을 짖고 있었다. 그리곤 케이와 자기 손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스쿨
드가 왜 저러는지 케이는 의아할 뿐이었다. 케이는 몰랐지만 스쿨드의 법술이 지금의 케이에게 안 통해서
스쿨드가 놀란 것이다. 그의 몸에 글씨가 안 새겨진 것이었다. 약이 오른 스쿨드가 다시 한번 시도하였다.
"바보! 멍청이! 얼간이!! 해삼! 멍게!! ...!!!"
여러 번 시도했지만 케이의 몸에는 어떠한 글자도 새겨지지 않았다. 그제야 케이도 스쿨드의 법술이 자기에
게 안통한다는걸 알았다. 그럼 스쿨드의 그 능력이 사라진 걸까? 하지만 케이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엔 분명
히 '멍청이'라고 글씨가 쓰여있었다. 어쩌다 한 개가 빗나간 건가 본데 글씨가 새겨진 걸로 봐선 능력이 사
라진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이 갑옷이 막은 걸까?
"으으...훌쩍... 케이 바보오오!! 으아앙!!"
약이 바짝 오른 스쿨드가 결국엔 울면서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케이가 스쿨드를 부르
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스쿨드! 미안해~~ 그리고 그쪽으로 가면 위험해! 그러니 좀 멈춰봐!!"
*****************************
"으하암...."
어제 밤에 가이버로의 변신에 성공한 케이는 결국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잤다.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난 힘이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올라서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아침에
출근할 때 하마터면 교통사고까지 날 뻔했었다. 베르단디가 재빨리 법술을 구사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병
원신세를 지고 있을 터였다.
"케이씨, 괜찮으세요?"
베르단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케이에게 차를 건넸다. 케이는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지금 자기 입속에
어떤 액체가 흘러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지로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래가지고 일이나 하겠냐...도대체가 직장인이라는 놈이...."
지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케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자기의 오른발로 케이의 오른발을, 오른팔은
케이의 오른팔을 걸고는 그대로 케이의 옆구리를 눌러 허리를 옆으로 꺾이게 한 다음 팔을 뒤로 젖혀버렸
다.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어버린 것이다.
"밤에 잠 안자고 뭐하는겨! 내가 회사서 졸라고 월급 주는 줄 아냐!!"
"크어억!! 서..선배!!"
갑작스런 지로의 기습(?)에 케이는 온몸의 관절이 분리되는 기분을 맛보며 괴로워하였고 그런 모습을 보며
베르단디는 어쩔 줄 몰라하였다. 그 때였다.
"저....실례합니다."
"어서 오세요!!"
프로레슬링에 열중하던 지로는 손님이 오자 그대로 케이를 팽개쳐(?) 두곤 공손히 인사하며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온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즐거우신 것 같네요. 선배님들..."
"어머나, 핫세 아니니? 여긴 웬일이야?"
"..........후우"
케이와 지로는 핫세가 가지고 온 도면을 보면서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짖고 있었다. 그런 두사람을 보면서
핫세는 거의 울상을 짖고있었다.
핫세가 가지고 온 도면은 일주일 후에 있을 대학대항 레이스에 출전시킬 바이크의 설계도면이었다. 매년 대
학대항으로 치러지는 황금망치배 대회였는데 경기방식은 직선거리를 누가 가장 빨리 달리느냐를 겨루는 '드
래그 레이스(Dirttrack drag)'였다.
심각한 부원 부족사태를 겪고 있는 자동차 부로선 이 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우승해야 그것을 크게 부각하여 많은 신입부원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래자랑 같은
부의 성격과는 관계없는 단발성 행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우승 상금도 만만찮기 때문에 예산부족
에 시달리는 현재의 상황을 단번에 호전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출전을 결정한 드래그 레이스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거리를 남보다 더 빨리 주파해야 하
기 때문에 자연히 머신의 세팅은 내구력보다는 순간 가속력으로 맞춰지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무
턱대고 강한 엔진만 탑재하면 될 것 같지만 그랬다간 프레임과의 밸런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밖에도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자동차부원들 중에는 머신 설계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머신이 있어도 이걸 몰고 출전할 만한 라이더도 없다는 것이었다. 라이더 문제
야 백보양보해서 어떻게든 해결해 볼 수 있다고 해도 머신 설계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하필이면 타미야와 오딘이라....이거지?"
"우리가 찾아간 게 아니라 두 선배가 먼저 온 거에요."
핫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는지 타미야와 오딘이 '이대로 만들면 승리할 수 있다'라면서 설
계도를 자동차부원들 앞에 던져주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설계가 한참 답보상태에 있던 자동차부로썬 그들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고 바로 제작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역시나' 였다.
프레임의 능력에 비해 너무 강력한 엔진을 채용해 밸런스 문제도 심각했던 데다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순
발력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던 것이다.
생각 같아선 다시 전면 재설계를 하고 싶었지만 예산도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이젠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
였다. 대회 까진 일주일. 다른 팀들은 벌써 머신제작을 완료하고 테스트를 하면서 세팅을 마무리해나가는
단계였지만 자동차부는 아직도 출발점에서 헤매고 있는 셈이었고 결국엔 핫세가 이렇게 구원을 요청하러
훨윈드에 오게 된 것이었다.
"후우....타미야와 오딘 녀석. 각자 실력은 확실한 녀석들이건만 무슨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건 왜 이리 못할
까..."
"진작에 오지 그랬냐. 어려우면 좀 도와달라고 하지."
지로는 고개를 가로 저었고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확실히 남은 시간 일주일 안에 설계에다가
머신제작까지 하는 건 불가능했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미 있는 머신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계량하는 것
뿐이지만 이것 역시 빠듯하긴 마찬가지였다. 핫세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볼 생각이었군요."
베르단디가 핫세에게 차를 건네면서 말하자 그녀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베르단디의 얼굴을 한번 보곤 무슨
죄를 지은것마냥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베르단디는 그런 핫세의 어깨를 두손으로 살며시 감싸고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걸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에요."
"그래, 핫세. 힘들면 도와달라고 해. 우린 언제든지 너흴 도와줄 수 있는걸."
케이 역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제야 핫세의 얼굴엔 안도감이 돌았다. 지로는 양팔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설계도를 집어들었다.
"자! 그럼 난 이 엉망진창인 계산을 바로 잡을 테니깐, 그 동안 손님맞이는 케이 네가 해라."
"서..선배! 그런 게 어딨어요!"
"방금 전까지 비몽사몽이었던 녀석이 뭘 하겠다고. 업무시간에 졸지 말고 열심히 해."
케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지로는 곧바로 옆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럴 땐 도저히 가게를 책임지는 사장
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어서 오세요."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베르단디가 손님을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유니트의 회수에 관해 비서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면서 겐죠는 사장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의 자리에 누군
가가 앉아있었다. 그것도 무례하게도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로 담배까지 피워대면서. 바로 리스카 였
다. 겐죠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거긴 내 자리요, 리스카 감찰관! 당장 비켜주게나!"
겐죠가 불같이 화를 냈으나 리스카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겐죠가 한번 더 소리치려는 찰라, 리스카가 자세
를 바로잡았다. 그리곤 겐죠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겐죠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말을 하
였다.
"조만간 규오 사령관께서 여기 오실꺼요."
"규..규오 각하께서!!"
"뭐, 당신 격려해주려고 오시는 건 아니오. 모가지를 치려고 오시는 거지. 후후후...."
겐죠가 눈에 띨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리스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겐죠의 바로 앞까지 천천
히 걸어오고 있었다. 겐죠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리스카의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하였다.
"왜 그런 진 잘 알고 계시겠지."
"이...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유니트를 회수할 수 있소! 감찰관 당신덕분에 유니트의 개요가 상당부분 파악
되었소. 이제 작전만 잘 짜면...."
리스카가 가이버가 된 덕분에 그가 변신한 상태에서 여러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가이버의 신체 능력이나
신체각부의 각종 무기들에 대한 데이터 등은 리스카가 없었다면 아마 수많은 조아노이드의 희생이 난 다음
에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전이야 잘 짜겠지만 그 작전을 실행할 녀석들이 이리도 형편없어서야 성공할 가능성 따윈 없겠지. 당신
네들이 최신형이라 자랑하던 바모아도 별볼일 없었잖소? 후후후."
그 때 갑자기 겐죠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럴 순 없어! 네 놈이지? 본부에 고자질 한 녀석이! 내가 곧 탈환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왜!"
겐죠의 갑작스런 행동에 리스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리스카는 다시 비웃음을 띄며 말했
다.
"나한테 그러지 마시오. 본부에서 상황을 물어보는데 거짓말을 할 순 없는 거 아뇨.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
봐야 당신들은 글렀어. 일본 지부의 조아노이드들은 놈을 못 당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리스카가 잠시 말을 멈추곤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리곤 갑자기 겐죠의 안면에 담배연기를 훅 하고 뿜
어대었다. 갑자기 많은 양의 담배연기를 정통으로 맞은 겐죠가 답답한 듯 켈록거렸다. 비서가 비틀거리는
겐죠를 부축하였다. 그리곤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리스카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바로 같은 가이버인 나뿐이지."
거기까지 말한 리스카는 들고 있던 담배를 비서의 안면을 향해 가볍게 던졌다. 담배는 비서의 얼굴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리 본부 감찰관이라 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이 무례한 행동에 겐죠의 얼굴엔 강한 노
기가 번졌다. 그런 겐죠를 본 리스카가 껄껄 웃으면서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이...이놈이!!"
"지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비서가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겐죠의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나타났다. 이젠 마지막이었다. 현
재도 행방이 묘연한 세번째 유니트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단 확인된 것 하나만이라도 규오 사령관이 오기
전까지 어떻해 해서든 회수해야 했다. 그걸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확실히....이젠 너 밖에 믿을게 없다. 어떻게 해서든 유니트를 회수해라. 리스카 따위에게 지지마!!"
"옛! 반드시....!!"
*****************************
밤잠을 설친 것에다가 오전 내내 혼자서 정비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한 케이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때문
에 점심을 먹는 것도 거의 졸다시피 하면서 먹고 있었고 베르단디는 그런 케이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았다. 반면에 지로는 재설계작업이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으이구~ 이 한심한 청춘아. 잠좀 덜 잤다고 꼴이 그게 뭐냐. 오후엔 내가 할 테니 들어가서 잠좀 자."
"죄송해요...선배. 그럼 오후에 한시간 정도만..."
"케이!!"
그 때 가게문을 벌컥 열어 젖히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 사람이 문 쪽을 바라보니 거기엔 스쿨드가 서있
었다. 그런데 얼굴에 안 어울리게 커다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큼지막한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감추려고 하는 듯 싶었지만 그런 언밸런스한 모습이 오히려
더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생겼다. 위장이 목적이라면 그다지 잘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죄송해요! 케이 좀 잠깐 빌려갈께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아! 스쿨드, 케이씨는 지금..."
베르단디가 말릴 새도 없이 스쿨드는 케이 손을 잡고는 밖으로 끌고나갔다. 같이 온 밤페이까지 가세해서
잡아끈 덕에 케이는 속수무책으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지로는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
에 없었다.
*****************************
스쿨드가 케이를 닦달해서 끌고 온 곳은 바로 토요일날 갔었던 호수였다. 토요일에 있었던 폭발사건이 경찰
에 신고돼서 바로 어저께까지만 해도 경찰들이 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 부로 통제가 풀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런다고 여기 올 사람도 없었지만.
호수에서의 사건이 떠오른 케이는 잠이 확 달아났다. 여기서 얼쩡거리다간 바로 어제 공장에서 자신들을 덮
쳤던 '크로노스'라고 하는 녀석들이 또 나타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케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
리번거렸지만 스쿨드는 그런 건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 등에 진 기계로 뭔가를 찾는 것에만 열중하였
다. 또 무슨 기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지뢰탐지기 같은 모습이었다.
"스..스쿨드."
"이건 스쿨드 특제 수색기계 '찾아내라 군'이야. 이게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흔적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꺼
야."
"아니...그게 아니라 이런데서 이러고 있으면 그 때 그 녀석들이.."
"그래서 케이를 데려온 거 아냐. 그 녀석들이 또 나타나면 변신해서 해치워버려!"
스쿨드는 잠시 수색을 중단하고는 케이에게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보디가드 삼아서 케이를 데려온
것이었다. 어저께 공장에선 괴물 7마리를 단숨에 해치워버렸고 게다가 가슴의 장갑판 안에는 엄청난 위력의
레이져포가 숨겨져있으니 어떻게 보면 보디가드로선 최고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케이는 그저 두려
울 뿐이었다.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 갑옷과 괴물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여기서 뭔가 단서를 찾아내야 해. 그걸 조사해 볼 수 있으면
실마리가 풀릴 꺼야. 어제까지만 해도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못 왔지만."
스쿨드는 다시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탐지봉으로 지면을 천천히 훑어 나가면서 간간이 손에 든 액정 모니
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쿨드의 성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금방 끝
날 일 같진 않았다. 결국 점심시간은 이렇게 다 날려보내게 되었다.
"뭘 찾는 거냐, 꼬마야."
그 때 누군가가 스쿨드를 불렀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소리가 난 방향을 보자 그 곳엔 어제 공장에서 자신
들을 덮쳤던 그 크로노스라는 조직원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다섯명이었는데 이
들은 케이들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케이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야!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냐!"
남자들이 일제히 헬맷을 벗었다. 그 직후 남자들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저께의 그들처럼 저들도 조
아노이드였다. 변신을 완료한 조아노이드들중에는 케이와 스쿨드도 알고 있는 것도 있었는데 그레골이 한마
리, 라모티스가 두마리, 그리고 처음 보는 조아노이드 두마리가 섞여 있었다.
"유니트 가이버를 회수하러 왔다!!"
"그렇겐 안될껄!"
당당하게 소리친 건 케이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스쿨드였다. 어제 공장에선 조아노이드를 보고 덜덜 떨더니
만 결국엔 케이가 이기자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아주 기세등등 하였다. 오히려 당사자인 케
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스쿨드! 일단 어딘 가로 피해있어!"
여기서 싸웠다간 잘못하면 스쿨드가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케이는 언덕위로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러자 조아노이드들도 케이를 뒤쫓아오기 시작했다. 언덕을 다 뛰어올라간 케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
-퍼엉!!!
어젯밤과 같은 강렬한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케이는 가이버로 변신하였다. 케이는 일단 숲속으로 뛰어들어갔
다. 조아노이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가고 있었다.
"거기 서라! 가이버!"
조아노이드들이 숲속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등을 보이며 서있는 가이버가 보였다. 더 도망갈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멈춘 거라고 지레짐작한 조아노이드들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
나 그들은 곧바로 오판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가이버가 천천히 뒤돌아 섰다. 그러자 조아노이드들은 경악하였다. 뒤돌아선 가이버는 양쪽가슴의 장갑판을
활짝 열어 젖힌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출격전 브리핑에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무기였다! 가이버는 여기까지 그들을 유인한 것일 뿐이었다. 실수를 깨달은 조아노이드들이 뒤돌아 서서
도망치려고 할려는 찰나 가이버의 가슴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퍼어어엉!!!
거대한 빔의 홍수는 그대로 조아노이드들을 덮쳤고 그들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증발되
어 버렸다. 조아노이드 다섯마리를 한번에 날려버린후 빔의 홍수는 그대로 건너편 산까지 날아가서 그곳 지
면에 명중하였다.
"으으...."
케이는 자기 몸에서 저런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빔의 홍수는 조아노이
드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면에 거대한 밭고랑을 만들어버린것으로도 모자라 거리가
최소한 2Km는 되 보이는 산까지 날아가서 엄청난 기세로 폭발하였다. 빔의 여파로 인해 건너편 산에는 산
불까지 나고 있었다.
"크...큰일났다. 산불이 번지려나 본데...이거 아무 데서나 쓰면 안되겠군."
"케이!"
그 때 스쿨드가 활짝 웃으면서 언덕아래에서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가이버야!! 저딴놈들은 역시나 상대가.....꺅!!"
그때 스쿨드의 발에 뭔가가 감겼다. 순식간에 스쿨드는 언덕 아래쪽으로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케이는
서둘러서 스쿨드를 쫓아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무슨 촉수 같은 것에 잡혀 호수 쪽으로 끌려가는
스쿨드가 보였다. 케이가 촉수를 바라보며 의식을 집중하자 머리에서 한줄기 빔이 발사되면서 촉수가 끊어
졌다.
"괜찮아? 스쿨드!"
"이...으히힉!! 이..이거 뭐야아아!!"
진저리를 치면서 스쿨드는 발에 아직도 감겨있는 촉수를 떼어내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흡판등이 잔뜩 붙어
있는게 마치 문어의 다리 같아 보였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케이는 스쿨드의 상태를 살폈다. 땅바닥에 질질 끌려가면서 옷이 좀 더러워지고 많이 놀란 모습이란 것 빼
고는 다행히도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때 호수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대단한 놈이군. 유니트 가이버."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본 케이와 스쿨드는 크게 놀랐다. 호수 위에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땅위에 서있는 것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호수 한가운데를 말이다. 저 모습을 보니 저 남자도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조아노이드인가? 아까의 촉수도 저 남자가 보낸 걸까?
"다섯 마리의 조아노이드를 일격에 없애다니....굉장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촤악!!
그 때 그 남자의 발밑 물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튀어나와서 케이와 스쿨드를 덮쳤다. 케이는 재빨리 스쿨드
를 안아들고는 높이 점프하였다. 높은 곳에서 보니 튀어나온 물체들이 뭔지 확실히 보였다. 아까 스쿨드를
덮쳤던 촉수였다.
"난 아까의 조아노이드들과는 차원이 틀려!"
남자의 덩치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면서 옷의 여기저기가 찟어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얼굴부터 피부색도
달라지고 있었다. 역시나 저 남자도 조아노이드였다. 변신을 완료한 남자는 마치 문어에다가 두 팔과 두 다
리를 붙여놓은듯한 다소 우스워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능력까지 우습지는 않을 것이다. 그 모
습을 본 케이는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변신이 완료된 남자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시네바이트가 가이버 유니트를 회수하겠다!!"
"큭...! 이쪽이다! 시네바이트!!"
케이는 스쿨드를 그 자리에 두고는 시네바이트에게 이쪽으로 따라오라며 호숫가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고
시네바이트는 스쿨드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대로 물 속으로 잠수해서는 케이를 빠른 속도로 뒤쫓기 시
작했다. 격렬한 시네바이트의 움직임에 호수 위에는 높은 물기둥이 연속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네바이트는 케이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좋아! 다시 한번!'
케이는 아까의 조아노이드들 처럼 이 녀석도 한방에 날려버릴 생각으로 달리면서 왼쪽 가슴 부위의 장갑판
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잠시 에너지가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빛이 꺼져버린 것이다. 발사
가 안되자 케이는 당황해 하였지만 시네바이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저런 무식한 걸 연속으로 쏠 순 없겠지...'
그는 이미 바모아의 전투기록을 본 뒤였기에 저 무기의 위력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고출력의 무
기를 아무때나 얼마든지 쓸 수 있을까? 혹시 저 무기에는 에너지 제한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일단 한번 저걸 쏘면 다시 발사태세가 같춰질때 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 판단한 시네바이트는 저 무기를
봉하기 위해 상대가 안된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일반 조아노이드 다섯 마리를 총알받이 삼아 내보낸
것이었다. 작전이 멋지게 성공했으니 이젠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푸슉!
시네바이트가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입에서 갑자기 먹물을 쏘았다. 그야말로 문어가 따로 없었다. 그
먹물을 얼굴에 맞은 케이는 시야가 막히자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그 틈에 시네바이트가 물 밖으로 뛰쳐나와
케이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하앗!"
얼굴에 묻은 먹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낸 케이가 급히 돌려차기로 시네바이트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케이의
발차기는 정확하게 시네바이트의 얼굴에 명중하였다.
"후후후..."
"아니? 안 통한다니!"
그러나 공격이 통하질 않았다. 발차기에 맞았을 땐 얼굴이 심할 정도로 찌그러졌지만 케이가 발을 떼자 다
시 원래대로 펴진 것이다. 시네바이트는 여유 있게 웃었고 케이는 다시 한번 공격을 하였다.
-퍽!
다시 한번 얼굴에다가 주먹을 날려봤지만 맞은 직후에만 크게 찌그러졌을 뿐 손을 떼자 다시 원래대로 돌
아오고 말았다. 마치 탄력 있는 고무인형에다 주먹을 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육체는 연체동물의 그것과 같지. 때문에 어떤 충격도 흡수할 수 있는 거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
다, 라고나 할까?"
케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슴의 레이져포를 쓸 수가 없는 현 상황에서 주먹질
만으로는 저걸 쓰러뜨릴 수 없었다. 부드러운 베개를 아무리 걷어차 봐야 찟어버릴수 없는 것처럼. 그럼 도
대체 뭘로 저걸 쓰러트려야 하는가?
"넌 날 이기지 못해!"
시네바이트가 촉수를 케이를 향해 강하게 날렸다. 케이는 무의식적으로 높이 점프하여 이를 피했고 간발에
차로 촉수는 케이를 빗겨가 뒤쪽의 바위를 부셔버렸다. 그 위력은 도저히 물렁물렁한 촉수가 내는 것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공격할 때는 순간적으로 적과 접촉하는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
는 것으로 보였다.
-촤악!
"아차!"
순간 공중에 뛰어오른 케이의 손발에 시네바이트의 촉수가 휘감겼다. 공중으로 뜬것은 큰 실수였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공중에선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시네바이트가 승리
를 확신한 듯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와하하하! 각오해라, 가이버!!"
-콰앙!
케이를 붙잡은 시네바이트는 그대로 케이를 바위위로 매다 꽂았다. 바위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고 큰 충격
을 받은 케이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네바이트는 케이를 붙잡은 채로 여기저
기에 매다꽃기 시작했고 사지를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케이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퍼억! 우지끈!!
"으아아!!"
*****************************
"하아..하아... 아!!"
스쿨드가 두사람을 뒤쫓아 언덕위로 올라왔을 땐 케이는 촉수에 양손과 발을 묶인 채로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시네바이트는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충격으로 실신했는지 케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케이!! 정신차려!"
"호오~ 여기까지 따라왔냐?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쳐서 조금이라도 살려고 발버둥칠텐데 말이지.
후후후."
시네바이트가 스쿨드를 향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이 세갈레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쿨드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시네바이트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스쿨드에게 말했다.
"크로노스의 비밀을 봤으니...꼬마. 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스쿨드에게....손...대지마!!"
그 때 케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네바이트는 가소롭다는 투로 말하며 케이를 다시
한번 들어올렸다.
"아직도 말할 기운이 남았냐. 그렇다면...이번엔 완전히 피떡을 만들어주마!"
"케이!! 빨리 빠져나와! 언니에게 돌아가야 하잖아! 이런 녀석에게 지지마!!"
스쿨드가 애타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케이로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시네바이트는 인정 사정없
이 케이를 땅바닥으로 던졌다.
'베르단디..! 그래, 난 질 수 없어!'
시네바이트의 몸은 탄력 있는 고무공 같다. 주먹질을 아무리 해도 녀석은 모든 충격을 흡수해 버린다. 저렇
게 자유자제로 늘어나는 걸로 봐서는 잡아당겨서 끊어버린다는 것도 무리다. 가슴의 레이져포는 지금은 사
용불능. 어차피 이렇게 잡혀있어서는 그 무기는 쓰지 못한다. 때리는 것도, 잡아당겨 끊는 것도 못한다면 남
은 방법은 하나!
-부웅!
"아니! 이럴 수가!"
땅에 부딧히기전 케이가 양팔을 크게 휘두르자 케이의 손발을 묶고 있던 촉수들이 모두 잘려나갔다. 촉수가
잘려나가자 자유로워진 케이는 땅에 무사히 착지하였다. 시네바이트는 그 광경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저 녀석이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촉수가 모조리 잘려져 버린 걸까.
잠시 숨을 고른 케이는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양팔에 뭔가 이상한 것이 길게 뻗어 나와서
는 하얀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우웅!
'이건, 칼인가? 대체 어느세...'
케이는 잠시 자신의 양팔에 길게 돋아난 돌기를 바라보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저걸 '잘라야' 한다 라는 생
각을 하자 이것이 양팔에서 길게 뻗어 나온 것이었다. 그 칼은 계속 하얀빛을 내뿜으며 이상한 소리를 울리
며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어!!'
케이의 마음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너무나 부드러워서 때려서는 타격을 줄 수 없다면 자르면 된다! 케이는
그대로 시네바이트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상황이 역전되자 당황한 시네바이트가 양손바닥의 날카로운 이빨들을 꺼내들고는 고함을 지르며 케이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작전은 아니었고 대책 없이 무작정 돌격해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죽어라! 가이버!!"
-부웅! 촤악!!
케이는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며 시네바이트의 옆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시네바이트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천천히 뒤돌아 섰다.
"네...네놈이...!! 크..크아아!!"
시네바이트의 허리부분에서 하얀 색 액체가 잔뜩 뿜어져나오기 시작하더니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갈라져
버렸다. 두조각이 난 시네바이트는 그대로 절명하였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스쿨드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
고 케이의 양팔의 검은 그대로 줄어들더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멀리서 스쿨드가 케이쪽으로 달려오
고 있었다.
"케이! 이겼구나!"
"스쿨드!"
스쿨드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케이도 미소를 지었다. 비록 가이버의 안면마스크
때문에 스쿨드에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적은 꽤 강적이었지만 그래도 스쿨드를 무사히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이지...저 딴 녀석에게 이렇게 고전하다니, 한심하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두사람은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 두사람의 눈에 양
복을 입은 금발의 건장한 외국인이 서있었는데 그는 케이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도 저 녀석들과 한패야?"
스쿨드가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남자는 그저 피식 웃기만 하였다.
"저 딴 녀석들과 동급 취급하지 말아라. 꼬마야."
"뭐야!! 누구더러 꼬마래! 멀대같이 크기만 한 노랑머리!"
케이의 승리로 다시 기세가 오른 스쿨드가 그 남자에게 악을 쓰며 대들었다. 그러나 케이는 저 남자에게서
뭔가 엄청난 기운을 느꼈다.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저 남자도 조아노이드 인가? 케이가 긴장을
억누르려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야! 정체를 밝혀!"
"난 크로노스 본부 감찰관 오스왈드 A. 리스카다. 그리고...."
리스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가 그때까지 바지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 있던 양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순간 리스카가 강하게 외쳤다.
"Adapter!!"
-퍼엉!!
그 순간 강렬한 빛과 충격파가 그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충격파로 인해 불어온 강한 바람에 케이와 스
쿨드는 움찔하였다. 잠시후 두사람이 고개를 들어 앞을 봤을 때 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 앞에 서있는
건 조아노이드가 아니었다. 겉의 장갑의 색깔이나 얼굴의 세부 디테일등이 케이가 변신했을 때와는 틀리긴
했지만 저건 틀림없이...!
"네 녀석과 같은 가이버다!"
Next episode 제4화 '경이의 하이퍼 조아노이드' coming soon.....
제3화 -리스카의 도전-
".....늦은 건 알고 있겠지? 케이군."
"..죄..죄송합니다. 차가 좀 막혀서...."
훨윈드로 돌아왔을 땐 이미 퇴근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케이 없이 밀려드는 많은 일을 처리한 지로는 당연
히 엄청 화가 나 있었고 베르단디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두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는 그야말로 쥐구멍
으로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폐공장에서 괴물들과 싸우고 오느라 늦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완전 정신병자 취급을 당
할 것이다. 아까 공장에서의 전투이후 케이는 아무래도 스쿨드의 존재가 그들에게 완전히 노출됐다고 보고
이대로 혼자 집으로 보내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집까지 스쿨드를 바래다주느라 늦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말할 수는 없는지라 지각했을 때 흔히들 하는 변명인 '차가 막혀서....'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뭐, 그 근처 차가 많이 막히는 거야 전부터 있던 일이니 이해는 하겠는데....그걸 감안해도 너무 늦었잖아!"
"사...사고도 나서 차가 꼼짝을 못했어요...그래서...."
물론 교통사고같은건 없었다.
"으으....그러니깐 휴대폰 정도는 좀 갖고 다니란 말야! 연락이라도 해줘야지!"
평소엔 거의 지각도 안하고 결근도 없는 성실한 케이였기에 지로도 더 화는 내지 못했다. 덤으로 케이가 간
거래처 방향이 요즘 정체가 심각하다는 점도 있었기에 케이의 변명에 납득하는 지로였다.
케이가 간 곳 도쿄 신주쿠 부근은 요즘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앎고 있었다. 바로 도쿄도청 바로 옆에
건설중인 일본 최대의 초고층빌딩 '크라우드 게이트(Cloud-gate)' 때문이었다. 높이 412m로 도쿄도청 234m
의 거의 2배가까운 두개의 초고층 빌딩으로 구성된 크라우드 게이트는 현재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었
다. 바로 그 빌딩 공사현장에 들어가는 자재차량들로 인해 그 일대가 많이 혼잡해 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크라우드 게이트에 관해선 말들이 많았다. 평소에도 혼잡한 그 거리에 그런 고층빌딩이 들어서려면
당연히 공사차량들로 인해 혼잡이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거기에 더해 도청 바로 옆에 세워지는 통에
도청 한쪽 면을 완전히 가려버리게 되는데도 건축허가가 떨어진 것 자체가 신기한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특혜시비나 로비설등으로 완공을 눈앞에 둔 현재도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아시아 최고 높이라 한다면 자부심이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크라우드 게이트보다 높은 빌딩
이 아시아에 무려 4개나 되는 상황이었다. (그 중 3개가 중국에 있다) 결정적으로 크라우드 게이트 자체도
외국계 회사가 자본을 대고 설계와 주시공까지 도맡는 상황이었으니 자부심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일본계
건설기업들은 일부 하청 정도만 참여) 긍정적인 게 있다면 덕분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는 점이 있었지
만 말이다.
"참 내....그 지긋지긋한 빌딩 숲에 뭘 또 추가하는 거람. 게다가 거래처는 또 왜 그런데 자리잡고 있데. 확
바꿔버릴까?"
"죄송해요, 선배. 다음부턴 조심할께요."
".....죄송해요."
현장엔 가지도 않은 베르단디까지 사과를 하였고 지로도 한가지 가지고 오랫동안 뚱해 있을 인물은 아닌지
라 곧 그녀의 표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베르단디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가지도 않았으면서. 그리고 케이. 사고난거야 불가항력이니 할 수 없지.
그래도 앞으론 좀 더 빨리 다녀보도록 노력해봐."
"네."
케이는 속으로 지로와 베르단디에게 미안해하였다. 현재는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는 법.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
"늦었구나."
저녁 9시경. 퇴근한 케이와 베르단디를 울드가 맞았다. 실험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흰색 가운차림에 몸에서
약품냄새가 풍겨 나왔다.
"네. 일이 좀 많아서요. 정리 좀 하느라고 늦었어요."
"울드, 스쿨드는 집에 있어?"
"응? 그 녀석 아까 들어온 이후로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안나와. 또 쓸데없는 잡동사니 만들고 있나 보지."
울드는 별거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이는 스쿨드의 방쪽을 쳐다봤다. 울드의 태도로 보아 그 뒤로
놈들이 습격해온것 같지는 않았다. 케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러자 울드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
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아니 그냥."
"케이씨, 시장하시죠. 금방 저녁 만들어 드릴께요. 우선 간단히 씻고 오세요."
"응. 알았어."
베르단디는 바로 부엌으로 향했고 케이는 세면장으로 갈려고 하였다. 그때 울드가 케이 눈앞에 뭔가를 내밀
었다. 무슨 빨간 색 액체가 담겨있는 시험관이었다.
"자! 기대하시라! 어떤 저주도 박살내는 이 울드님의 특제약, 울드라민 하이퍼Z!! 이전에 실패했던 슈퍼Z의
강화판!! 이거라면 그 등의 부스럼도 한방이야!!"
"........제발 부탁이니 좀 참아 줘....."
이전 마라의 저주에 걸려 오토바이가 됐을 때 울드가 저주를 풀어준답시고 케이의 입(연료 주입구)에다 잔
뜩 부었던 액체의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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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고급 리무진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주 값비싼 고급차란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이 차가 대변해 주고 있었다.
"주변을 수색해 본 결과, 유니트가 떨어진 듯한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유니트는 찾았나?"
차안에는 마키시마 겐죠가 타고 있었다. 그는 거의 흔들림이 없는 리무진 안에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게...주변에 발자국도 있던 걸로 봐선 누군가가 이미 줓어간듯 합니다."
"뭐라고!"
겐죠가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결국 회수한 유니트는 1개뿐. 그것도 리스카 감찰관이
식장한 것뿐이었다.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유니트를 식장한 리스카는 현재 의료진들에게 정밀검
진을 받고 있었다. 호수에서 발견한 것을 최초의 가이버, 이를 '가이버I'이라 칭하고 있었으므로 리스카는 2번째
가이버, 가이버II 가 되는 셈이었다.
리무진은 어느덧 거대한 고급주택안으로 들어갔다. 시외곽에 위치한 겐죠의 자택이었다. 무슨 영화에나 나
올 듯한 고급스러운 집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현관 앞에 하인들과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들이 도열해
있었다.
겐죠가 차에서 내리자 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지만 겐죠는 그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비서
와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버님. 내년도 경영 시뮬레이션 레포트는 서재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준수하게 생긴 건장한 청년이 겐죠를 맞이하였다. 겐죠의 아들인 듯 싶었다. 그러나 겐
죠는 여전히 비서와 대화할 뿐이었다.
"하여튼, 어서 서둘러라. 현장 근처에 있었던 놈들을 최대한 찾아봐. 그놈이 위에 보고하기 전에 빨리 찾아
야 한다!"
"예."
청년이 다소 굳은 표정을 지으며 겐죠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님.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신 지요."
"됐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시다면.....회사 일이 아니라 크로노스....."
그러자 겐죠가 갑자기 불같이 화내기 시작했다. 겐죠의 반응에 청년은 움찔하였다.
"됐다면 됀거지 뭔 말이 많으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잖나!!"
"....죄송합니다"
청년은 고개를 숙여 보였지만 겐죠는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갔다. 아무리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해도 청년과 겐죠의 모습에선 부자지간의 모습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청년의 입가엔 미소
가 번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했다는 집사의 말을 무시한 채로 겐죠는 그대로 서재로 직행하였다. 책상 위엔 청년이 준비
했다던 레포트가 놓여있었지만 겐죠는 거기엔 눈길도 주지 않고는 담배부터 물어 피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겐죠였다. 회사경영따위는 어찌돼도 좋았다. 지금은 유니트를 회수하는 것
만이 중요했다. 그런데 2개가 이미 해방됐고 나머지 1개마져 누군가가 줓어가다니....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
일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후에 그는 그 때 현장에 있었다던 여자애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제 유니
트의 행방을 알 수 있게되겠다며 잔뜩 기대하던 그였는데 몇시간후에 날아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일본 지
부의 최신형이라는 '바모아'조차 가이버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바모아만 보낸 것도 아니고 라모티
스도 6마리나 보냈는데도 말이다. 되는 일이 없었다.
맥스제약이 이렇게 커진 대에는 겐죠의 능력보다는 '그들'의 도움이 훨씬 컸다. 바꿔말하자면 그것은 그들
의 눈밖에 나면 그의 회사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위험해진다는 뜻이었다. 담배를 든 겐죠의 손이 부들부
들 떨리기 시작했다.
*****************************
".........."
케이는 자리에 누웠지만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낮에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케
이였다. 무심결에 '가이버'라고 외치자 갑자기 나타나선 온 몸을 둘러싼 갑옷, 평소의 자신이라 생각되지 않
는 격투, 그리고 가슴에 숨겨져있던 엄청난 무기. 그게 다 자기가 한 일이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도
저히 실감이 안가는 케이였다.
'한 번 해볼까..."
왠지 어릴 적 TV에서 보던 변신히어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케이였다. 평소엔 보통사람들과 다름없이
생활하다가 악당들이 나타나면 멋진 포즈를 잡으며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변신해선 적들을 때려눕히던 히
어로. 남자아이라면 대게는 꿈꾸던 것이었고 그런 점에선 케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케이가 재밌게 보던
히어로는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그걸 보고는 자전거로 히어로 흉내내다가 넘어져 다친 일도 있었던
것이다.
케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베르단디는 자고 있는지 방에 불이 꺼져있었고 울드와 스쿨드의 방
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특히 스쿨드의 방에선 무슨 용접이라도 하는지 강한 빛이 불규칙적으로 점
멸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선 밖으로 나간다고 들킬 것 같지는 않았다. 케이는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나갔다. 단순히 느낌 탓인지 정말로 그런 진 모르겠지만 왠지 오늘따라 마루가 삐걱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
렸다.
절 뒤편의 숲속으로 들어간 케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따라온 것 같지는 않았다. 절에서도 꽤 떨어
졌으니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변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케이의 심
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케이는 일단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다.
"가...가이버..."
무슨 모기가 기어 들어가는 듯한 소리로 말해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변신 히어로 중에서 이런 맥빠지는 목소리로 구호 외치는 인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 큰 소리로 구호
를 외쳐야 하나?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도 왠지 창피한 마음이 드는 케이였다. 주변에
누가 없는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케이는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가이버!!"
제법 큰 소리로 외쳐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변화는 없었다. 케이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까 낮
에 공장에서 있었던 일은 환상도 꿈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안될까?
"그 갑옷의 모습을 떠올려봐. 그리고 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떠올리며 외쳐봐."
"스...스쿨드!!"
갑자기 등뒤에서 스쿨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케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여깄다는걸 알았을
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 아까의 장면을 다 본 걸까? 케이의 얼굴은 홍당무
처럼 빨개졌다.
"분명히 케이는 아까 공장에서 변신했었어. 지금도 가능할 꺼야. 한번 그렇게 해봐."
케이를 놀려댈 줄 알았는데 스쿨드의 얼굴은 의외로 심각했다. 아마도 놈들에게 노출된 '당사자'라서 그런
걸까? 케이는 눈을 감고 스쿨드의 말처럼 그 갑옷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
렸다. 그 다음 케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어어!!!"
-쿠아앙!!
순간 케이의 몸 주변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섬광이 번쩍이면서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충격파로 인
해 불어온 강한 바람에 스쿨드가 움찔하였다. 스쿨드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앞엔 바로 낮에 봤던 '그것',
그들이 유니트 '가이버'라고 불렀던 것으로 변신한 케이가 서있었다.
"됐다!! 드디어 해낸 거야! 케이!!"
스쿨드는 환호성을 질렀고 케이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기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있었다. 정말
로 변신하였다! 어릴 때 보던 TV속의 히어로처럼 정말로 변신한 것이다. 케이의 심장은 거의 폭발직전까지
뛰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은 환희로 가득차 올랐다. 그 때였다.
"스쿨드! 누군가 오고 있어!"
"뭐?"
케이가 다급하게 말하자 스쿨드는 뒤를 돌아다 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스쿨드가 누가 있냐는 듯한 표
정으로 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케이는 자세를 낮추곤 절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스쿨드도 덩달아 자세를 낮추었다. 절 쪽으로 접근하자 누군가가 절에서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울드와
베르단디였다.
"어..언니!!"
"숨자! 빨리!"
케이와 스쿨드는 서둘러서 숲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두사람은 반사적으로 숨
을 생각부터 하였다. 다급해진 케이는 스쿨드의 허리에 손을 두르곤 옆구리에 무슨 푸대자루 마냥 끼워 안
았다. 그리곤 정신없이 달렸다.
*****************************
"무슨 일일까요?"
갑자기 밖에서 뭔가가 크게 터지는 소리가 나서 베르단디는 잠에서 깨었다. 연구를 하느라 아직까지 잠들지
않고 있던 울드도 그 소리를 들었다. 둘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절 뒤편의 숲 같은데.... 한번 가보자고."
마당엔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므로 가볼 만한 곳이라면 뒤쪽의 숲뿐이었다. 하지만 거기라고 무슨 인화물질
같은게 있는 건 아니었다. 두사람은 숲속으로 들어섰다.
"언니! 이것은..."
"여기 같은데. 뭔가가 터진 곳이 말야."
울드와 베르단디는 이내 폭발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땅이 꽤 넓은 범위에 걸쳐 파여있었고 주변엔 나무
도 세 그루가 부러져서 쓰러져 있었다. 꽤 두꺼운 나무가 저렇게 부러진걸 보면 상당한 폭발이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한걸?"
울드는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폭발 당시의 위력은 굉장했지만 이상하게 주변에 불이 난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화약같은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벼락인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어서 별이 환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자연적으로 벼락이 내릴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법술이나 마술을 구사해서 인위적으로 벼락
을 내릴수도 있다. 그러나 불탄 흔적이 전혀 없다면 벼락도 아니었다.
"이건 마치 압축되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사방으로 퍼진 것 같은 모습이네요."
베르단디의 말에 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에 탄 흔적이 없다면 공기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이렇게 된 것
일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대기를 이런 식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자는 그리 흔치 않다. 대기계 속성
의 일급신인 베르단디라도 현재 힘이 봉인된 상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울드는 속성이 다르니 말할 것
도 없고.
"공기를 인위적으로 모았다가 터뜨렸다기 보다는 이건 마치....뭔가가 소환된 것 같아요."
"소환?"
흔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던 베르단디가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 말에 울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공기
를 압축시켰다 터뜨렸다는 것보다는 소환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뭘
소환한 것일까? 그리고 주변에 법술진의 흔적같은게 안보이는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
이만하면 되겠다 싶어 케이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곤 깜짝 놀랐다. 잠깐 달린 것뿐인데
절이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먼 거리를, 그것도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제대로된 길도 아니라서 그냥 걷는
것도 상당히 힘든 코스인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케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또 한가지 의문은 어떻게 베르
단디들이 절에서 나오는걸 알아냈느냐 하는 것이다. 숲속 깊이 들어갔기 때문에 절에서 누가 나오는지는 보
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이었는데 과연 어떻게 알아냈을까. 생각나는 건 그때 그저 머릿속에서 반사적으
로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걸 '느꼈다'는 것뿐.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내려줘!!"
"아, 미..미안!"
그러고 보니 스쿨드를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다. 케이는 바로 그녀를 내려놓았고 땅에 내려선 스쿨드는 지친
듯 숨을 헐떡거렸다. 하긴 그렇게 앞뒤로 흔들리면서 매달려 오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
가 땅바닥은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스쿨드까지 옆구리
에 안아들고 산길을 뛰어온 케이는 그다지 숨이 차지 않았다.
"케~~~~이~~~!!"
"미...미안해...나도 모르게 그만..."
숨을 고른 스쿨드는 잔뜩 골이난 표정으로 케이를 쏘아보았다.
"바보야!!!!"
스쿨드가 케이를 향해 뭔가를 날리는 듯 손을 뻗으며 바보라고 소리쳤다. 바로 스쿨드의 유일한 '공격법술'
이라고 할 수 있는 '글자새기기 법술'이었다. (명칭은 순전히 케이의 생각일 뿐 정식명칭같은건 없다) 상대
방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글씨를 쓰는 건데 물리적 타격이야 별거 아니지만 한번 새겨진 글씨는 좀처럼 안
지워진다는게 문제였다. 케이가 몸을 웅크렸다.
"어라?"
그런데 스쿨드가 놀라는 표정을 짖고 있었다. 그리곤 케이와 자기 손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스쿨
드가 왜 저러는지 케이는 의아할 뿐이었다. 케이는 몰랐지만 스쿨드의 법술이 지금의 케이에게 안 통해서
스쿨드가 놀란 것이다. 그의 몸에 글씨가 안 새겨진 것이었다. 약이 오른 스쿨드가 다시 한번 시도하였다.
"바보! 멍청이! 얼간이!! 해삼! 멍게!! ...!!!"
여러 번 시도했지만 케이의 몸에는 어떠한 글자도 새겨지지 않았다. 그제야 케이도 스쿨드의 법술이 자기에
게 안통한다는걸 알았다. 그럼 스쿨드의 그 능력이 사라진 걸까? 하지만 케이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엔 분명
히 '멍청이'라고 글씨가 쓰여있었다. 어쩌다 한 개가 빗나간 건가 본데 글씨가 새겨진 걸로 봐선 능력이 사
라진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이 갑옷이 막은 걸까?
"으으...훌쩍... 케이 바보오오!! 으아앙!!"
약이 바짝 오른 스쿨드가 결국엔 울면서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케이가 스쿨드를 부르
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스쿨드! 미안해~~ 그리고 그쪽으로 가면 위험해! 그러니 좀 멈춰봐!!"
*****************************
"으하암...."
어제 밤에 가이버로의 변신에 성공한 케이는 결국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잤다. 생각지도 못하게 엄청난 힘이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올라서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아침에
출근할 때 하마터면 교통사고까지 날 뻔했었다. 베르단디가 재빨리 법술을 구사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병
원신세를 지고 있을 터였다.
"케이씨, 괜찮으세요?"
베르단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케이에게 차를 건넸다. 케이는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지금 자기 입속에
어떤 액체가 흘러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지로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래가지고 일이나 하겠냐...도대체가 직장인이라는 놈이...."
지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케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자기의 오른발로 케이의 오른발을, 오른팔은
케이의 오른팔을 걸고는 그대로 케이의 옆구리를 눌러 허리를 옆으로 꺾이게 한 다음 팔을 뒤로 젖혀버렸
다.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어버린 것이다.
"밤에 잠 안자고 뭐하는겨! 내가 회사서 졸라고 월급 주는 줄 아냐!!"
"크어억!! 서..선배!!"
갑작스런 지로의 기습(?)에 케이는 온몸의 관절이 분리되는 기분을 맛보며 괴로워하였고 그런 모습을 보며
베르단디는 어쩔 줄 몰라하였다. 그 때였다.
"저....실례합니다."
"어서 오세요!!"
프로레슬링에 열중하던 지로는 손님이 오자 그대로 케이를 팽개쳐(?) 두곤 공손히 인사하며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온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즐거우신 것 같네요. 선배님들..."
"어머나, 핫세 아니니? 여긴 웬일이야?"
"..........후우"
케이와 지로는 핫세가 가지고 온 도면을 보면서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짖고 있었다. 그런 두사람을 보면서
핫세는 거의 울상을 짖고있었다.
핫세가 가지고 온 도면은 일주일 후에 있을 대학대항 레이스에 출전시킬 바이크의 설계도면이었다. 매년 대
학대항으로 치러지는 황금망치배 대회였는데 경기방식은 직선거리를 누가 가장 빨리 달리느냐를 겨루는 '드
래그 레이스(Dirttrack drag)'였다.
심각한 부원 부족사태를 겪고 있는 자동차 부로선 이 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우승해야 그것을 크게 부각하여 많은 신입부원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래자랑 같은
부의 성격과는 관계없는 단발성 행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우승 상금도 만만찮기 때문에 예산부족
에 시달리는 현재의 상황을 단번에 호전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출전을 결정한 드래그 레이스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거리를 남보다 더 빨리 주파해야 하
기 때문에 자연히 머신의 세팅은 내구력보다는 순간 가속력으로 맞춰지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무
턱대고 강한 엔진만 탑재하면 될 것 같지만 그랬다간 프레임과의 밸런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밖에도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자동차부원들 중에는 머신 설계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머신이 있어도 이걸 몰고 출전할 만한 라이더도 없다는 것이었다. 라이더 문제
야 백보양보해서 어떻게든 해결해 볼 수 있다고 해도 머신 설계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하필이면 타미야와 오딘이라....이거지?"
"우리가 찾아간 게 아니라 두 선배가 먼저 온 거에요."
핫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는지 타미야와 오딘이 '이대로 만들면 승리할 수 있다'라면서 설
계도를 자동차부원들 앞에 던져주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설계가 한참 답보상태에 있던 자동차부로썬 그들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고 바로 제작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역시나' 였다.
프레임의 능력에 비해 너무 강력한 엔진을 채용해 밸런스 문제도 심각했던 데다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순
발력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던 것이다.
생각 같아선 다시 전면 재설계를 하고 싶었지만 예산도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이젠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
였다. 대회 까진 일주일. 다른 팀들은 벌써 머신제작을 완료하고 테스트를 하면서 세팅을 마무리해나가는
단계였지만 자동차부는 아직도 출발점에서 헤매고 있는 셈이었고 결국엔 핫세가 이렇게 구원을 요청하러
훨윈드에 오게 된 것이었다.
"후우....타미야와 오딘 녀석. 각자 실력은 확실한 녀석들이건만 무슨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건 왜 이리 못할
까..."
"진작에 오지 그랬냐. 어려우면 좀 도와달라고 하지."
지로는 고개를 가로 저었고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확실히 남은 시간 일주일 안에 설계에다가
머신제작까지 하는 건 불가능했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미 있는 머신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계량하는 것
뿐이지만 이것 역시 빠듯하긴 마찬가지였다. 핫세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볼 생각이었군요."
베르단디가 핫세에게 차를 건네면서 말하자 그녀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베르단디의 얼굴을 한번 보곤 무슨
죄를 지은것마냥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베르단디는 그런 핫세의 어깨를 두손으로 살며시 감싸고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걸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에요."
"그래, 핫세. 힘들면 도와달라고 해. 우린 언제든지 너흴 도와줄 수 있는걸."
케이 역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제야 핫세의 얼굴엔 안도감이 돌았다. 지로는 양팔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설계도를 집어들었다.
"자! 그럼 난 이 엉망진창인 계산을 바로 잡을 테니깐, 그 동안 손님맞이는 케이 네가 해라."
"서..선배! 그런 게 어딨어요!"
"방금 전까지 비몽사몽이었던 녀석이 뭘 하겠다고. 업무시간에 졸지 말고 열심히 해."
케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지로는 곧바로 옆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럴 땐 도저히 가게를 책임지는 사장
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어서 오세요."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베르단디가 손님을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유니트의 회수에 관해 비서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면서 겐죠는 사장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의 자리에 누군
가가 앉아있었다. 그것도 무례하게도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로 담배까지 피워대면서. 바로 리스카 였
다. 겐죠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거긴 내 자리요, 리스카 감찰관! 당장 비켜주게나!"
겐죠가 불같이 화를 냈으나 리스카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겐죠가 한번 더 소리치려는 찰라, 리스카가 자세
를 바로잡았다. 그리곤 겐죠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겐죠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말을 하
였다.
"조만간 규오 사령관께서 여기 오실꺼요."
"규..규오 각하께서!!"
"뭐, 당신 격려해주려고 오시는 건 아니오. 모가지를 치려고 오시는 거지. 후후후...."
겐죠가 눈에 띨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리스카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겐죠의 바로 앞까지 천천
히 걸어오고 있었다. 겐죠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리스카의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하였다.
"왜 그런 진 잘 알고 계시겠지."
"이...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유니트를 회수할 수 있소! 감찰관 당신덕분에 유니트의 개요가 상당부분 파악
되었소. 이제 작전만 잘 짜면...."
리스카가 가이버가 된 덕분에 그가 변신한 상태에서 여러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가이버의 신체 능력이나
신체각부의 각종 무기들에 대한 데이터 등은 리스카가 없었다면 아마 수많은 조아노이드의 희생이 난 다음
에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전이야 잘 짜겠지만 그 작전을 실행할 녀석들이 이리도 형편없어서야 성공할 가능성 따윈 없겠지. 당신
네들이 최신형이라 자랑하던 바모아도 별볼일 없었잖소? 후후후."
그 때 갑자기 겐죠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럴 순 없어! 네 놈이지? 본부에 고자질 한 녀석이! 내가 곧 탈환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왜!"
겐죠의 갑작스런 행동에 리스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리스카는 다시 비웃음을 띄며 말했
다.
"나한테 그러지 마시오. 본부에서 상황을 물어보는데 거짓말을 할 순 없는 거 아뇨.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
봐야 당신들은 글렀어. 일본 지부의 조아노이드들은 놈을 못 당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리스카가 잠시 말을 멈추곤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리곤 갑자기 겐죠의 안면에 담배연기를 훅 하고 뿜
어대었다. 갑자기 많은 양의 담배연기를 정통으로 맞은 겐죠가 답답한 듯 켈록거렸다. 비서가 비틀거리는
겐죠를 부축하였다. 그리곤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리스카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바로 같은 가이버인 나뿐이지."
거기까지 말한 리스카는 들고 있던 담배를 비서의 안면을 향해 가볍게 던졌다. 담배는 비서의 얼굴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리 본부 감찰관이라 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이 무례한 행동에 겐죠의 얼굴엔 강한 노
기가 번졌다. 그런 겐죠를 본 리스카가 껄껄 웃으면서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이...이놈이!!"
"지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비서가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겐죠의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나타났다. 이젠 마지막이었다. 현
재도 행방이 묘연한 세번째 유니트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단 확인된 것 하나만이라도 규오 사령관이 오기
전까지 어떻해 해서든 회수해야 했다. 그걸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확실히....이젠 너 밖에 믿을게 없다. 어떻게 해서든 유니트를 회수해라. 리스카 따위에게 지지마!!"
"옛! 반드시....!!"
*****************************
밤잠을 설친 것에다가 오전 내내 혼자서 정비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한 케이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때문
에 점심을 먹는 것도 거의 졸다시피 하면서 먹고 있었고 베르단디는 그런 케이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았다. 반면에 지로는 재설계작업이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으이구~ 이 한심한 청춘아. 잠좀 덜 잤다고 꼴이 그게 뭐냐. 오후엔 내가 할 테니 들어가서 잠좀 자."
"죄송해요...선배. 그럼 오후에 한시간 정도만..."
"케이!!"
그 때 가게문을 벌컥 열어 젖히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 사람이 문 쪽을 바라보니 거기엔 스쿨드가 서있
었다. 그런데 얼굴에 안 어울리게 커다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큼지막한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감추려고 하는 듯 싶었지만 그런 언밸런스한 모습이 오히려
더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생겼다. 위장이 목적이라면 그다지 잘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죄송해요! 케이 좀 잠깐 빌려갈께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아! 스쿨드, 케이씨는 지금..."
베르단디가 말릴 새도 없이 스쿨드는 케이 손을 잡고는 밖으로 끌고나갔다. 같이 온 밤페이까지 가세해서
잡아끈 덕에 케이는 속수무책으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지로는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
에 없었다.
*****************************
스쿨드가 케이를 닦달해서 끌고 온 곳은 바로 토요일날 갔었던 호수였다. 토요일에 있었던 폭발사건이 경찰
에 신고돼서 바로 어저께까지만 해도 경찰들이 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 부로 통제가 풀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런다고 여기 올 사람도 없었지만.
호수에서의 사건이 떠오른 케이는 잠이 확 달아났다. 여기서 얼쩡거리다간 바로 어제 공장에서 자신들을 덮
쳤던 '크로노스'라고 하는 녀석들이 또 나타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케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
리번거렸지만 스쿨드는 그런 건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 등에 진 기계로 뭔가를 찾는 것에만 열중하였
다. 또 무슨 기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지뢰탐지기 같은 모습이었다.
"스..스쿨드."
"이건 스쿨드 특제 수색기계 '찾아내라 군'이야. 이게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흔적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꺼
야."
"아니...그게 아니라 이런데서 이러고 있으면 그 때 그 녀석들이.."
"그래서 케이를 데려온 거 아냐. 그 녀석들이 또 나타나면 변신해서 해치워버려!"
스쿨드는 잠시 수색을 중단하고는 케이에게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보디가드 삼아서 케이를 데려온
것이었다. 어저께 공장에선 괴물 7마리를 단숨에 해치워버렸고 게다가 가슴의 장갑판 안에는 엄청난 위력의
레이져포가 숨겨져있으니 어떻게 보면 보디가드로선 최고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케이는 그저 두려
울 뿐이었다.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 갑옷과 괴물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여기서 뭔가 단서를 찾아내야 해. 그걸 조사해 볼 수 있으면
실마리가 풀릴 꺼야. 어제까지만 해도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못 왔지만."
스쿨드는 다시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탐지봉으로 지면을 천천히 훑어 나가면서 간간이 손에 든 액정 모니
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쿨드의 성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금방 끝
날 일 같진 않았다. 결국 점심시간은 이렇게 다 날려보내게 되었다.
"뭘 찾는 거냐, 꼬마야."
그 때 누군가가 스쿨드를 불렀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소리가 난 방향을 보자 그 곳엔 어제 공장에서 자신
들을 덮쳤던 그 크로노스라는 조직원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다섯명이었는데 이
들은 케이들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케이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야!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냐!"
남자들이 일제히 헬맷을 벗었다. 그 직후 남자들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저께의 그들처럼 저들도 조
아노이드였다. 변신을 완료한 조아노이드들중에는 케이와 스쿨드도 알고 있는 것도 있었는데 그레골이 한마
리, 라모티스가 두마리, 그리고 처음 보는 조아노이드 두마리가 섞여 있었다.
"유니트 가이버를 회수하러 왔다!!"
"그렇겐 안될껄!"
당당하게 소리친 건 케이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스쿨드였다. 어제 공장에선 조아노이드를 보고 덜덜 떨더니
만 결국엔 케이가 이기자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아주 기세등등 하였다. 오히려 당사자인 케
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스쿨드! 일단 어딘 가로 피해있어!"
여기서 싸웠다간 잘못하면 스쿨드가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케이는 언덕위로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러자 조아노이드들도 케이를 뒤쫓아오기 시작했다. 언덕을 다 뛰어올라간 케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
-퍼엉!!!
어젯밤과 같은 강렬한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케이는 가이버로 변신하였다. 케이는 일단 숲속으로 뛰어들어갔
다. 조아노이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가고 있었다.
"거기 서라! 가이버!"
조아노이드들이 숲속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등을 보이며 서있는 가이버가 보였다. 더 도망갈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멈춘 거라고 지레짐작한 조아노이드들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
나 그들은 곧바로 오판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가이버가 천천히 뒤돌아 섰다. 그러자 조아노이드들은 경악하였다. 뒤돌아선 가이버는 양쪽가슴의 장갑판을
활짝 열어 젖힌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출격전 브리핑에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무기였다! 가이버는 여기까지 그들을 유인한 것일 뿐이었다. 실수를 깨달은 조아노이드들이 뒤돌아 서서
도망치려고 할려는 찰나 가이버의 가슴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퍼어어엉!!!
거대한 빔의 홍수는 그대로 조아노이드들을 덮쳤고 그들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증발되
어 버렸다. 조아노이드 다섯마리를 한번에 날려버린후 빔의 홍수는 그대로 건너편 산까지 날아가서 그곳 지
면에 명중하였다.
"으으...."
케이는 자기 몸에서 저런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빔의 홍수는 조아노이
드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면에 거대한 밭고랑을 만들어버린것으로도 모자라 거리가
최소한 2Km는 되 보이는 산까지 날아가서 엄청난 기세로 폭발하였다. 빔의 여파로 인해 건너편 산에는 산
불까지 나고 있었다.
"크...큰일났다. 산불이 번지려나 본데...이거 아무 데서나 쓰면 안되겠군."
"케이!"
그 때 스쿨드가 활짝 웃으면서 언덕아래에서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가이버야!! 저딴놈들은 역시나 상대가.....꺅!!"
그때 스쿨드의 발에 뭔가가 감겼다. 순식간에 스쿨드는 언덕 아래쪽으로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케이는
서둘러서 스쿨드를 쫓아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무슨 촉수 같은 것에 잡혀 호수 쪽으로 끌려가는
스쿨드가 보였다. 케이가 촉수를 바라보며 의식을 집중하자 머리에서 한줄기 빔이 발사되면서 촉수가 끊어
졌다.
"괜찮아? 스쿨드!"
"이...으히힉!! 이..이거 뭐야아아!!"
진저리를 치면서 스쿨드는 발에 아직도 감겨있는 촉수를 떼어내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흡판등이 잔뜩 붙어
있는게 마치 문어의 다리 같아 보였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케이는 스쿨드의 상태를 살폈다. 땅바닥에 질질 끌려가면서 옷이 좀 더러워지고 많이 놀란 모습이란 것 빼
고는 다행히도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때 호수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대단한 놈이군. 유니트 가이버."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본 케이와 스쿨드는 크게 놀랐다. 호수 위에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땅위에 서있는 것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호수 한가운데를 말이다. 저 모습을 보니 저 남자도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조아노이드인가? 아까의 촉수도 저 남자가 보낸 걸까?
"다섯 마리의 조아노이드를 일격에 없애다니....굉장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촤악!!
그 때 그 남자의 발밑 물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튀어나와서 케이와 스쿨드를 덮쳤다. 케이는 재빨리 스쿨드
를 안아들고는 높이 점프하였다. 높은 곳에서 보니 튀어나온 물체들이 뭔지 확실히 보였다. 아까 스쿨드를
덮쳤던 촉수였다.
"난 아까의 조아노이드들과는 차원이 틀려!"
남자의 덩치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면서 옷의 여기저기가 찟어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얼굴부터 피부색도
달라지고 있었다. 역시나 저 남자도 조아노이드였다. 변신을 완료한 남자는 마치 문어에다가 두 팔과 두 다
리를 붙여놓은듯한 다소 우스워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능력까지 우습지는 않을 것이다. 그 모
습을 본 케이는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변신이 완료된 남자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시네바이트가 가이버 유니트를 회수하겠다!!"
"큭...! 이쪽이다! 시네바이트!!"
케이는 스쿨드를 그 자리에 두고는 시네바이트에게 이쪽으로 따라오라며 호숫가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고
시네바이트는 스쿨드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대로 물 속으로 잠수해서는 케이를 빠른 속도로 뒤쫓기 시
작했다. 격렬한 시네바이트의 움직임에 호수 위에는 높은 물기둥이 연속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네바이트는 케이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좋아! 다시 한번!'
케이는 아까의 조아노이드들 처럼 이 녀석도 한방에 날려버릴 생각으로 달리면서 왼쪽 가슴 부위의 장갑판
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잠시 에너지가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빛이 꺼져버린 것이다. 발사
가 안되자 케이는 당황해 하였지만 시네바이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저런 무식한 걸 연속으로 쏠 순 없겠지...'
그는 이미 바모아의 전투기록을 본 뒤였기에 저 무기의 위력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고출력의 무
기를 아무때나 얼마든지 쓸 수 있을까? 혹시 저 무기에는 에너지 제한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일단 한번 저걸 쏘면 다시 발사태세가 같춰질때 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 판단한 시네바이트는 저 무기를
봉하기 위해 상대가 안된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일반 조아노이드 다섯 마리를 총알받이 삼아 내보낸
것이었다. 작전이 멋지게 성공했으니 이젠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푸슉!
시네바이트가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입에서 갑자기 먹물을 쏘았다. 그야말로 문어가 따로 없었다. 그
먹물을 얼굴에 맞은 케이는 시야가 막히자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그 틈에 시네바이트가 물 밖으로 뛰쳐나와
케이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하앗!"
얼굴에 묻은 먹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낸 케이가 급히 돌려차기로 시네바이트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케이의
발차기는 정확하게 시네바이트의 얼굴에 명중하였다.
"후후후..."
"아니? 안 통한다니!"
그러나 공격이 통하질 않았다. 발차기에 맞았을 땐 얼굴이 심할 정도로 찌그러졌지만 케이가 발을 떼자 다
시 원래대로 펴진 것이다. 시네바이트는 여유 있게 웃었고 케이는 다시 한번 공격을 하였다.
-퍽!
다시 한번 얼굴에다가 주먹을 날려봤지만 맞은 직후에만 크게 찌그러졌을 뿐 손을 떼자 다시 원래대로 돌
아오고 말았다. 마치 탄력 있는 고무인형에다 주먹을 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육체는 연체동물의 그것과 같지. 때문에 어떤 충격도 흡수할 수 있는 거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
다, 라고나 할까?"
케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슴의 레이져포를 쓸 수가 없는 현 상황에서 주먹질
만으로는 저걸 쓰러뜨릴 수 없었다. 부드러운 베개를 아무리 걷어차 봐야 찟어버릴수 없는 것처럼. 그럼 도
대체 뭘로 저걸 쓰러트려야 하는가?
"넌 날 이기지 못해!"
시네바이트가 촉수를 케이를 향해 강하게 날렸다. 케이는 무의식적으로 높이 점프하여 이를 피했고 간발에
차로 촉수는 케이를 빗겨가 뒤쪽의 바위를 부셔버렸다. 그 위력은 도저히 물렁물렁한 촉수가 내는 것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공격할 때는 순간적으로 적과 접촉하는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
는 것으로 보였다.
-촤악!
"아차!"
순간 공중에 뛰어오른 케이의 손발에 시네바이트의 촉수가 휘감겼다. 공중으로 뜬것은 큰 실수였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공중에선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시네바이트가 승리
를 확신한 듯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와하하하! 각오해라, 가이버!!"
-콰앙!
케이를 붙잡은 시네바이트는 그대로 케이를 바위위로 매다 꽂았다. 바위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고 큰 충격
을 받은 케이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네바이트는 케이를 붙잡은 채로 여기저
기에 매다꽃기 시작했고 사지를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케이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퍼억! 우지끈!!
"으아아!!"
*****************************
"하아..하아... 아!!"
스쿨드가 두사람을 뒤쫓아 언덕위로 올라왔을 땐 케이는 촉수에 양손과 발을 묶인 채로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시네바이트는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충격으로 실신했는지 케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케이!! 정신차려!"
"호오~ 여기까지 따라왔냐?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쳐서 조금이라도 살려고 발버둥칠텐데 말이지.
후후후."
시네바이트가 스쿨드를 향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이 세갈레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쿨드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시네바이트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스쿨드에게 말했다.
"크로노스의 비밀을 봤으니...꼬마. 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스쿨드에게....손...대지마!!"
그 때 케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네바이트는 가소롭다는 투로 말하며 케이를 다시
한번 들어올렸다.
"아직도 말할 기운이 남았냐. 그렇다면...이번엔 완전히 피떡을 만들어주마!"
"케이!! 빨리 빠져나와! 언니에게 돌아가야 하잖아! 이런 녀석에게 지지마!!"
스쿨드가 애타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케이로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시네바이트는 인정 사정없
이 케이를 땅바닥으로 던졌다.
'베르단디..! 그래, 난 질 수 없어!'
시네바이트의 몸은 탄력 있는 고무공 같다. 주먹질을 아무리 해도 녀석은 모든 충격을 흡수해 버린다. 저렇
게 자유자제로 늘어나는 걸로 봐서는 잡아당겨서 끊어버린다는 것도 무리다. 가슴의 레이져포는 지금은 사
용불능. 어차피 이렇게 잡혀있어서는 그 무기는 쓰지 못한다. 때리는 것도, 잡아당겨 끊는 것도 못한다면 남
은 방법은 하나!
-부웅!
"아니! 이럴 수가!"
땅에 부딧히기전 케이가 양팔을 크게 휘두르자 케이의 손발을 묶고 있던 촉수들이 모두 잘려나갔다. 촉수가
잘려나가자 자유로워진 케이는 땅에 무사히 착지하였다. 시네바이트는 그 광경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저 녀석이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촉수가 모조리 잘려져 버린 걸까.
잠시 숨을 고른 케이는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양팔에 뭔가 이상한 것이 길게 뻗어 나와서
는 하얀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우웅!
'이건, 칼인가? 대체 어느세...'
케이는 잠시 자신의 양팔에 길게 돋아난 돌기를 바라보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저걸 '잘라야' 한다 라는 생
각을 하자 이것이 양팔에서 길게 뻗어 나온 것이었다. 그 칼은 계속 하얀빛을 내뿜으며 이상한 소리를 울리
며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어!!'
케이의 마음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너무나 부드러워서 때려서는 타격을 줄 수 없다면 자르면 된다! 케이는
그대로 시네바이트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상황이 역전되자 당황한 시네바이트가 양손바닥의 날카로운 이빨들을 꺼내들고는 고함을 지르며 케이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작전은 아니었고 대책 없이 무작정 돌격해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죽어라! 가이버!!"
-부웅! 촤악!!
케이는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며 시네바이트의 옆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시네바이트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천천히 뒤돌아 섰다.
"네...네놈이...!! 크..크아아!!"
시네바이트의 허리부분에서 하얀 색 액체가 잔뜩 뿜어져나오기 시작하더니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갈라져
버렸다. 두조각이 난 시네바이트는 그대로 절명하였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스쿨드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
고 케이의 양팔의 검은 그대로 줄어들더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멀리서 스쿨드가 케이쪽으로 달려오
고 있었다.
"케이! 이겼구나!"
"스쿨드!"
스쿨드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케이도 미소를 지었다. 비록 가이버의 안면마스크
때문에 스쿨드에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적은 꽤 강적이었지만 그래도 스쿨드를 무사히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이지...저 딴 녀석에게 이렇게 고전하다니, 한심하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두사람은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 두사람의 눈에 양
복을 입은 금발의 건장한 외국인이 서있었는데 그는 케이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도 저 녀석들과 한패야?"
스쿨드가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남자는 그저 피식 웃기만 하였다.
"저 딴 녀석들과 동급 취급하지 말아라. 꼬마야."
"뭐야!! 누구더러 꼬마래! 멀대같이 크기만 한 노랑머리!"
케이의 승리로 다시 기세가 오른 스쿨드가 그 남자에게 악을 쓰며 대들었다. 그러나 케이는 저 남자에게서
뭔가 엄청난 기운을 느꼈다.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저 남자도 조아노이드 인가? 케이가 긴장을
억누르려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야! 정체를 밝혀!"
"난 크로노스 본부 감찰관 오스왈드 A. 리스카다. 그리고...."
리스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가 그때까지 바지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 있던 양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순간 리스카가 강하게 외쳤다.
"Adapter!!"
-퍼엉!!
그 순간 강렬한 빛과 충격파가 그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충격파로 인해 불어온 강한 바람에 케이와 스
쿨드는 움찔하였다. 잠시후 두사람이 고개를 들어 앞을 봤을 때 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 앞에 서있는
건 조아노이드가 아니었다. 겉의 장갑의 색깔이나 얼굴의 세부 디테일등이 케이가 변신했을 때와는 틀리긴
했지만 저건 틀림없이...!
"네 녀석과 같은 가이버다!"
Next episode 제4화 '경이의 하이퍼 조아노이드'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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