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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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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4화 -경이의 하이퍼 조아노이드-







꿈은 아니었다. 분명히 지금 그들 앞에 서있는건 가이버였다. 어떻게 가이버가 또 한 명이 있을 수 있는지
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분명한 건, 저 가이버는 크로노스의 일원이고 따라서 최소한 아군은 아니라는 점이
었다. 상대가 같은 가이버라서 케이와 스쿨드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가이버가 또 한 명이 있다니...!"

"원래 유니트는 세 개가 있었다. 그 중에서 두개는 너와 내가 하나씩 식장한 것이지. 나머지 한 개는 찾고
있는 중이고."

"세 개라고..."

리스카는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났다. 일본지부란 놈들이 이렇게까지 무능한 놈들일 줄이야. 조직의 최우선
기밀이라 할 수 있는 유니트를 실험체들 따위에게 탈취 당해선 그 중에 하나를 저런 놈이 가지게 만들다니.
혹시라도 일본지부가 남은 한 개를 무사히 회수한다해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겐죠만큼은 처벌해야 한
다는 생각이 드는 리스카였다.

"가이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지. 포식된 생명체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그 생체기능을 강화, 증폭시키는
미지의 생명체. 그리고, 그것의 증식과 폭주를 제어하는 컨트롤 메탈을 박아 넣어 식장과 분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강식장갑 시스템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유니트 가이버다."

리스카의 말을 들은 케이와 스쿨드는 서로를 그저 멀뚱히 쳐다만 볼뿐이었다. 솔직히 지금 두 사람은 리스
카의 말을 반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리스카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말했
다.

"흥. 생물학 강의는 별로 인가 보지?"

"다..당신들의 목적은 대체 뭐야!"

"얌전히 날 따라온다면 알게 될 거야. 저항해봐야 넌 날 이길 수 없으니 괜히 힘빼지 마라."

케이는 호기 있게 소리쳤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같은 가이버끼리의
대결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지금 케이는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과연 싸우게 될 경우 이길 수 있을까?
만약 패하게 되면 스쿨드도 위험해 질게 뻔했기에 케이는 지금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케이! 저딴녀석 말 무시해! 같은 가이버잖아. 이기고 지는 건 해봐야 아는 거야!"

그 때 스쿨드가 앞으로 나서며 케이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려는 듯 소리쳤다. 그러자 리스카가 스쿨드를 쳐다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이마에 있는 빔 발생부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케이는 그 모습을 보고 위험을
느꼈다.

"아, 그러고 보니 널 처치하는걸 깜빡했군. 꼬마야."

-푸슝! 팍!

리스카의 이마에서 빔이 발사됐지만 간발의 차로 케이가 스쿨드 앞을 막아서서 가슴의 장갑판으로 빔을 막
아내었다. 가이버의 머리에서 나오는 빔은 상당히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고에네르기 레이저지만 같은 가이
버의 강식장갑을 뚫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고통은 전해지는지 케이는 왼쪽 가슴부위가 따끔함을
느꼈다.

"큭! 리스카.... 나도 스쿨드도, 당신 뜻대론 안돼!!"

케이는 전의를 다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해보는 거다. 어차피 둘 다 같은 가이버. 조건은 같다. 스
쿨드 말대로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조건이 다르다 해도 케이는 절대로 질 수 없었다.
여기서 지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스쿨드도 위험해지고 무엇보다 베르단디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후...좋아. 말 안 듣는 아이는 엉덩이를 때려줘야겠지."

"이쪽이다! 리스카!!"

장소를 바꾸자는 듯 케이는 숲속으로 먼저 뛰어들어갔다. 리스카 역시 그런 케이를 뒤쫓아 숲속으로 들어갔
다. 스쿨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숲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책임하게 말하긴 했지만 과연 같은 가이버끼
리의 싸움도 이길 수 있을까?


************************************
 

-푸슝!

선공은 리스카였다. 케이와 나란히 달려가던 리스카는 케이의 다리를 노리고 빔을 날렸고 케이는 한바퀴 텀
블링을 하면서 이를 피하였다. 평소에 케이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보면 도저히 케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
의 날쌘 동작이었다.

"이것은 머리의 빔 발생구에서 나가는 빔으로 우리들은 '헤드빔'이라고 부르지. 인류가 만든 어떤 레이저
발생장치보다도 크기 대 위력 면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레이저다."

-푸슝!

리스카의 설명에 대한 케이의 대답은 헤드빔이었다. 그러나 리스카 역시 이를 가볍게 피하였다. 잠시동안
두사람은 서로 거리를 둔 채로 헤드빔을 이용한 사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직은 빔에 맞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설령 맞는다 해도 헤드빔 만으론 승부를 가를 수 없다는 건 아까 케이가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도
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한 케이가 리스카에게 돌진하여 거리를 좁혔다.

-철컥! 부웅!!

케이는 아까 시네바이트를 해치웠던 양팔의 검을 전개시키고 리스카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리스카는 가볍게
이를 피하였다. 케이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지만 그때마다 리스카는 이를 간단히 피할 뿐이었
다. 케이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 지고 있을 때 갑자기 리스카가 뒤로 크게 물러서면서 거리를 두었다. 또 헤
드빔을 날릴 거라고 판단한 케이가 리스카에게 대쉬해들어가며 거리를 좁히려고 하였다. 그때 리스카의 양
팔에 있던 돌기가 늘어나면서 케이의 것과 같은 검이 되었다.

"고주파수로 진동하면서 모든 물체를 절단하는 '고주파 소드'다!"

-부웅!

리스카가 검을 휘둘러 그의 양옆에 서있던 나무 두그루를 베었다. 나무는 똑바로 달려오는 케이의 앞으로
쓰러지기 시작했고 간발의 차로 케이는 쓰러지는 나무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 때문에 한순간이지
만 케이의 시야가 가려졌고 리스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으악!!"

리스카의 돌려차기가 케이의 얼굴 옆면에 정확하게 명중하였다. 발차기에 맞은 케이는 그 자리에서 옆으로
2~3m 정도 날려가서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케이는 반사적으로 몇 바퀴 정도 더 지면을 굴러서 리
스카와 거리를 벌린 후 일어섰다. 일어서긴 했지만 케이는 머리속이 심하게 울리는 듯이 아파 왔다.

"검이란 건 말이지, 무작정 휘두른다고 되는 게 아냐."

"젠장!"

빈정거리는 듯한 리스카의 말투에 발끈한 케이가 다시 한번 고주파 소드를 전개시키고 리스카에게 달려들
었다. 이번엔 높이 점프해 들어가서 한번에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리스카는 그런 케이의 행동을 모두 읽고
있었고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한발먼저 케이의 손을 한 손으로 꽉 잡았다. 착지 전에 한 손을 잡혀 순간 균
형을 잃은 케이는 비틀거렸다. 그런데 그 때 리스카가 오른쪽 가슴 장갑을 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 장갑
이라면 바로 그 무기다!

"넌 'F'다. 케이."

리스카가 한 손을 꽉 잡고 있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팔의 힘이 무지막지하게 쌨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가까
운 거리에서 저 무기를 쓴다는 것에 케이는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리스카의 오른쪽 가슴속 빔 발생부의 빛
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퍼어엉!!!


************************************



"아! 저건!!"

아무래도 케이가 걱정스럽던 스쿨드는 혼자 있자니 무섭기도 해서 두 사람이 뛰어들어간 숲속으로 따라 들
어왔다. 하지만 울창한 숲으로 인해 두사람의 흔적을 놓친 스쿨드가 당황해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엄청난 폭
음과 함께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틀림없이 가이버의 양 가슴속에 있는 그 레이져
포였다. 누가 쏜 건지 몰라 스쿨드가 당황해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스쿨드의 앞으로 어떤 물체가 떨어졌다.

-쿵!!

"꺅! 케, 케이!!"

떨어진 물체는 케이였다. 큰 충격을 받은 듯 케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까 그 무기의 발사직전
리스카의 손에서 힘이 빠져서 간발의 차로 케이는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됐는지라 케이는 전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몸의 어딘가가 소멸되지는 않았다.

"좀 전의 무기는 가이버 최강의 무기, '메가 스매셔'다. 발사시에 시간이 좀 걸리고 연속발사가 안된다는게
단점이긴 하지만 말이지."

리스카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두사람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이 마스크로 가려져있어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는 잔뜩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터였다. 저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니 아까
그의 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리스카가 일부러 놔준 게 아닐까 싶었다. 리스카가 다가오자 케이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갖췄지만 솔직히 서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것들 말고도 또 있지. 복부의 중력제어구에서 발생되는 웜홀을 충격파로 변환하여 적에게 날리는 '프레
셔 캐논', 입에 있는 금속구에서 발생하는 진동파로 물체 고유의 공명주파수를 튜닝, 목표를 분쇄하는 '소닉
버스터'도 있다."

리스카의 목소리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그 모습에 스쿨드는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케이! 힘내란 말야! 케이도 같은 가이버잖아!"

"바로 그거다, 꼬마야."

평소라면 꼬마라는 말에 발끈할 스쿨드지만 지금은 리스카의 엄청난 위압감에 크게 주눅이 들어 뭐라 대꾸
하지도 못했다. 그런 스쿨드의 모습을 보며 리스카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녀석이 유니트를 식장해서 저 만큼 강해졌는데, 나라고 안 강해지겠냐?"

그 말을 듣고 케이는 리스카에게 밀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일단 유니트란게 기본적으로 같은 물건이라면 가
이버끼리의 대결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요소는 식장자의 능력일 것이다. 같은 총을 쏘더라도 누구는 제
대로 못 맞추고 누구는 스나이퍼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리스카가 전문적인 전투훈련을 받은 자
라면..!

"20년 넘는 세월동안 기계나 만지작거린 저 녀석이랑 크로노스 간부양성소에서 각종 훈련으로 단련된 나랑
과연 같을까? 그리고 이젠 옛날 얘기지만, 난 크로노스에 들어오기 전엔 미 육군 특수부대 즉, '그린베레'소
속이었지."

그리고 리스카는 케이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린베레 하면 너무나도 유명한 특수부대. 군대
에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케이였지만 영화나 뉴스 등으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반면 케이는 이제까지
자라면서 누구랑 싸운 적도 없었다. 무도 도장같은덴 근처도 안 가봤다. 저런 자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
을 리가 없었다.

사실 '그린베레'에 관해 케이를 비롯해서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명칭으로
서 이들의 정식명칭은 '미 육군 특수부대(Army special forces)'라는 다소 단순한 이름이며 그린베레는 단
지 별명일 뿐이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그 이전까지만 해도 특수부대의 상징처럼 되있으면
서도 착용이 금지돼 있던 녹색 베레모를 공식적으로 착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린베레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 한가지 잘못 알고 있는 건 이들의 본연의 임무에 관한 것. 흔히들 특수부대 하면 람보를 떠올리기 쉽지
만 이들은 직접 싸우는 것보다는 정보수집이나 미국의 이익에 맞는 게릴라 조직이나 우방국 특수부대를 훈
련시키는 교관역할을 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적성국내의 불평불만분자들을 모아서 그들을 훈련시켜 반정부 게릴라로 만드는 것이 그린베레의 가장 중요
한 임무이다 보니 이들은 파견지역에서 조금이라도 통할 수 있는 언어 -가능하면 그 나라 언어-를 마스터
해야 하며 때문에 그린베레 대원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1개정도의 외국어는 완전히 마스터한다. 언어뿐만 아
니라 교관으로서 필요한 기술 -각종 전술과 다양한 총기의 사용법, 맨손 격투술 등등- 뿐만 아니라 교섭능
력과 선무공작능력, 그리고 현지 주민들의 호의를 이끌어낼수 있는 의료 기술 등등 여러 가지를 익히게 된
다. 특히나 의료 기술 등은 어지간한 의사수준까지 지식과 실력을 쌓아야 하며 이를 위해 대도시의 응급실
에 현장실습까지 나가게 된다.

물론 일반인들이 금방 떠올릴 수 있는 타격임무 역시 이들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때문에 막대
한 양의 실탄사격을 포함 각종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1 특전단으로서 일본에 주둔해 있다가 어쩌다 보니 크로노스를 알게됬고 결국 제대후 크로노스의 간부가
될 수 있었지. 뭐, 옛날 얘기다. 이제 알겠지? 넌 날 이기지 못해."

"...당신 뜻대론..안돼!"

케이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걸 느꼈다. 이대로 싸우면 패배는 확실했다.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케이는 최소한 스쿨드 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
기로 하였다. 그 후 기회를 봐서 케이도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일단은 가능한 한 오
랫동안 리스카를 붙잡아 둬야 했다.

"거 참. 고집 한번 쌔군.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널 시체로 만들어서라도 데리고 갈 수....."

-파지직!

바로 그때 리스카의 이마에 있던 금속구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스카의 몸에도 변화
가 오기 시작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가 마치 많은 양의 공기를 한번에 불어넣은 듯 부풀어오르기 시작했고
겉의 색깔도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가 이내 원래의 노란 색으로 다시 바뀌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으...으으아아....!!!"

리스카는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역시 전혀 예상 못한 일인것 같았다. 놀라
고 있는 건 케이와 스쿨드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리스카의 변화에 두사람은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케..케이. 저건 대체..."

"어쨌든 찬스야! 빨리 도망치자. 서둘러!"

"아! 같이가!!"




리스카가 정신을 차린 건 몇분정도 시간이 지난 뒤였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오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유니트를 식장한 이후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도망쳤는가...."

정신을 잃은 동안 그 꼬마 계집애와 가이버I 은 멀리 도망친 듯 했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치고 만 리스카는
짜증이 났다. 그 일만 없었다면 유니트를 회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리스카는 그 자리에서 이마를 만지면서 방금 전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근처의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현장을 무사히 빠져나온 케이는 바이크를 훨윈드까지 전속력으로 몰고 왔다. 도중에 교통순경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있었다면 케이는 속도위반으로 딱지를 떼였을 것이 확실했다. 훨윈드 근처의 인적이 드문
골목까지 달려온 케이는 스쿨드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었다.

"아무튼 위험하니깐 앞으로 혼자 하는 외출은 자제해. 알았지?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사다줄께."

"...알았어."

스쿨드는 풀죽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행운인 건 틀림없
었다. 그러나 다음 번에 또다시 리스카를 만났을 때 이번과 같은 행운이 또 올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행운 같은 우연적 요소들을 배제한 상태에서는 케이는 솔직히 리스카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밤페이는 스스로 돌아가라고 할께. 넌 여기서 공간이동으로 가는 게 좋겠어."

케이는 근처 가게에서 산 생수를 종이컵에 따른 후 바닥에 내려놓았다. 스쿨드는 물이 있어야만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간이동으로 가면 미행 당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케이는 이미 집의 위치도 놈
들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런 인적사항도 없는 스쿨드를 찾아낼 정도의 녀석
들이라면 현재 거처를 알아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놈들은 케이가 가이버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집으로 쳐들어올지 알 수가 없었다.

-슈우우~~

스쿨드는 종이컵정도의 좁은 면적의 물임에도 불구하고 거길 통해 간단하게 공간이동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케이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베르단디!"




"베르단디!!"

훨윈드로 허둥지둥 돌아온 케이는 급한 마음에 문을 확 열어 젖혔다. 그러자 케이의 눈에 깜짝놀란듯한 모
습의 지로와 베르단디가 보였다. 베르단디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다녀오셨어요? 케이씨."

"베르단디! 무슨 일없었어?"

"네? 무슨 일이요?"

베르단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로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
며 말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다온건진 모르겠다만 갑자기 문을 벌컥 열어 젖혀선 한다는 소리가 '죄송합
니다'가 아니라 '무슨 일없었어'라고...?"

"아...선배. 그게 아니라 전 무슨 일이 없었나 걱정이 되어서...."

지로의 얼굴에 힘줄이 돋아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이번엔 단단
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무슨 일? 있었지. 네 녀석이 거의 세시간 가까이 사라진 덕에 밀려드는 일을 그 동안 나 혼자 다 처리
하고 있었거든. 당장 와서 운행불능 바이크를 회수해 달라는 요청도 지금 두건이나 있고 말이야...."

그리고 한순간, 지로는 정말이지 놀라운 스피드로 케이에게 기술을 걸었다.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라 케이는
그대로 지로의 필살기 '새우꺾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두둑!

"도대체가 너 요즘 왜 그러냐! 이 웬수야!! 역시 네놈을 살려두기엔 쌀이 아까워!"

"크허억!! 서..선배에에~~!!"

지로의 기술에 당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만약 지로 선배가 유니트를 식장 했다면 이 기술을 거는 속
도로 봤을 때 리스카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는 케이였다. 



************************************



-투투투투!!

맥스 제약 옥상의 헬리포트에 한대의 헬기가 내려앉았다. 아주 귀한 손님이 오시는 듯 사장인 겐죠를 비롯
해서 리스카 감찰관과 기타 맥스제약의 임원진 -그리고 크로노스 일본지부의 간부들이기도 한- 들이 헬리
포트 앞에 도열해 서있었다. 헬기의 로터 회전이 거의 멈추자 바깥의 요원들이 헬기 문을 열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헬기에서 한 남자가 내리기 시작했다. 외국인인 듯 짙은 금발의 올백머리를 하고 구
릿빛 피부색을 가진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그 모습을 본 겐죠는 누가 봐도 눈에 확 띌 정도
로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다.

남자가 먼저 내리고 그 뒤를 이어 그의 수행원인 듯한 사람들이 차례대로 헬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모두 4
명이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큰 체격들을 갖추고 있었다. 얼마후 리스카가 먼저 내린 금발의 남자에게 다가가
서는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규오 총사령관님."







"사령관님.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유니트들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맥스 제약내부엔 연구개발구역 이외에 외부에 절대로 공개할 수 없는 곳이 한군데 더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이곳 종합 상황실이었다. 수많은 오퍼레이터들과 관제콘솔, 일본 전역의 각종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벽면의
거대한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이곳은 군대의 지휘본부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도저히 제약회사와는 어울
리지 않는 곳이었다.

상황실 가운데,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잡은 메인 데스크는 지휘관 석이었는데 이곳엔 지금 규오
가 앉아있었고 그의 뒤로 같이 따라온 수행원들이 쭉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선 겐죠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규오에게 애원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규오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물론이다.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에 왔으니까. 지금부터 일본지부의 지휘는 나 리헐트 규오가 맡는다!"

겐죠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겐죠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지휘권 박탈, 단순히 지휘권만
박탈당하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크로노스 일본지부
장으로 있어오면서 크로노스가 쓸모 없어진 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똑똑히 봐온 겐죠는 공포에 질렸다.

"네 녀석의 처분은..."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겐죠가 절규하듯 외치며 규오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관제 콘솔앞으로 달려갔다. 총사령관이 말하는데 중간
에 끼여드는 짓은 평소라면 감히 생각도 못하는 무례한 일이건만 지금의 겐죠에겐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겐죠는 필사적으로 콘솔을 조작하였고 이윽고 전면의 대형 디스플레이에 여러 타입의 조아노이드들이 나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십시오! 이제까지 일본지부가 실용화시킨 조아노이드들 입니다. 이런 저의 공적도 조금은 인정을
해 주셔야....!!"

"확실히 조아노이드 개발 성적은 일본지부가 톱이었다. 그건 인정하지."

규오가 호의적인 말을 하자 겐죠의 표정은 크게 밝아졌다. 전세계의 크로노스 지부 중에서 일본지부의 연구
개발 성과는 단연 최고였고 여기서 개발된 조아노이드들이 세계각지의 다른 지부들에도 전해져 그 곳에서
유용하게들 쓰이고 있기도 하였다. 비용 대 효과면 에서 최고의 생체열선포 장비형 조아노이드라 칭해지는
바모아도 이곳의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규오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과거 얘기지. 젤브부스."

"예."

규오의 부름에 맨 왼쪽에 서있던 대머리의 남자가 한발 앞으로 나왔다. 그 직후 이 남자의 눈이 붉게 충혈
되더니 몸집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크아아!!"

변신을 완료한 그 남자는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척 보기에도 두꺼워보이는 전신의 붉은 장갑, 그레골보다
한층 더 큰 덩치. 누가 봐도 이것은 보통 조아노이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겐죠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근력 증폭도는 그레골의 3배, 레이져포의 출력은 바모아의 8배. 그 외에도 지구력이라던가 장갑의 강인함
이라던가 여러 면에서 종래의 조아노이드와는 차원이 틀리지."

"하...하이퍼 조아노이드!!"

"이제 알겠지? 더이상 네녀석의 성과 따윈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규오는 그대로 쐐기를 박았고 겐죠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철푸덕 주저앉고 말았다. 저 하이퍼
조아노이드의 존재는 이제 그가 기댈 수 있던 마지막 희망인 '기술력'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었다. 이제 더이상 일본 지부는 톱이 아니었다.

"네 녀석의 처분은 좀 있다 결정하도록 하지. 끌고 가라."

그러자 주변에 있던 요원들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상관이었던 겐죠를 무슨 죄인처럼 양팔에 끼곤
끌고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겐죠는 그저 넋나간 표정으로 떨기만 할뿐이었다.



************************************



퇴근한 케이가 절에 돌아와서 맨 처음 보게된건 절 주변에 빈틈없이 배치되있는 미니군 무리들 이였다. 밤
페이를 축소시켜놓은듯한 형태의 미니군은 한 대만으론 거의 장난감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약하지만 수
십 수백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이 미니군은 밤페이를 메인으로
한 경비 시스템의 일부란 점이다. 밤페이 혼자만으로 경비를 설 경우 사각지대가 너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 미니군이 그러한 지점에 배치돼서 일종의 경보장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만 너무 작아서 집단으
로 모일경우 밤페이의 이동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과 메인 시스템인 밤페이의 기능이 정지될 경
우 무차별 공격모드에 들어가 버린다는 좀 어처구니없는 기능이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미니군들 뿐만 아니라 시글까지 곳곳을 순찰하는 모습이 보이는 걸로 봐선 스쿨드는 크로노스가 공격해올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베르단디는 이런 풍경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케이는 절
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렇게 하면 기습을 당하는 일은 없다. 단 몇 분이라도 대비할 여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적의 움직임을 미리 안다는 것하고 그 적을 격퇴할 수 있냐는 거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
다. 리스카가 온다면 과연 놈을 이길 수 있을까? 베르단디나 울드, 스쿨드를 말려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케이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케이씨. 어디 불편하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응? 아..아무 것도 아냐. 그것보다 난 스쿨드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저녁은 좀 있다가 먹을께."

"네, 알겠어요."




스쿨드의 방, 일명 '스쿨드 연구소'의 안은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불은 켜져있는걸로 봐선 자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또 뭔가 이상한 발명에 몰두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설마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건 아
닐까? 물론 스쿨드의 성격으로 봐선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케이는 조심스럽게 스쿨드를 불렀다.

"스쿨드. 잠깐 할 얘기가 있어. 들어가도 될까?"

".....들어와."

방안에 들어선 케이가 본 것은 방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각종 전자부품들과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키보
드를 두들기며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스쿨드의 모습이었다. 물론 컴퓨터 옆에는 다 먹은 아이스크림 포장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보통 뭔가에 열중하는 사람들 옆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있는 재떨이 아니면
커피 잔이 놓여있기 마련인데 스쿨드에겐 아이스크림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대 크로노스용 결전병기. 조아노이드나 그 노란 가이버가 또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하하...걱정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께."

그러자 스쿨드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는 케이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케이는 순간 움찔했다.

"이길 자신 있어? 그 리스카란 놈에게?"

"그..그건... 어떻게 작전만 잘 짜면...."

"그걸 말이라고 해?"

그렇게 쏘아붙이곤 스쿨드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무안해진 케이는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하지만 케이로선 저런 스쿨드의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지금 스쿨드가 저러는건 아마도 불안해서 
그러는 것일 것이다. 단순히 리스카 때문만은 아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적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케이 혼자서. 그렇다고 케이가 놈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아니란 게 문제였다.

"저기...스쿨드. 내일 대학에 오지 않을래? 네 도움이 필요해."

"대학에?"

"응. 자동차부가 레이스에 나가거든. 앞으로 6일 정도밖에 시간이 없어. 그래서 내일 안으로 엔진 재

조정을 마치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네 실력이라면 단숨에..."

스쿨드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케이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케이는 또한번 움찔하
였다. 케이는 자기가 뭔가 말을 잘못한 게 있어서 저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태평하네.... 케이. 정체불명의 괴물 놈들이 습격해온다구! 이런 판국에 한가하게 레이스나 하겠다는
거야?"

"놈들이 무서운 거야 알고있지만 그렇다고 집안에 웅크리고 있어봐야 기분만 우울해질걸."

"누가 웅크리고 있었다는 거야! 안 무섭다, 뭐!!"

딱히 스쿨드를 지칭한 게 아닌데도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 보면 무서워서 방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뜻이 된
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던가.

"미안 미안. 하지만 놈들도 아무 데서나 막 조아노이드가 되진 못할 거야. 최소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함
부로 습격 못해올걸? 오히려 여긴 좀 외진 데니까 놈들이 공격해올 가능성이 꽤 높다고 보는데."

"으...음.."

"게다가 너와 난 서로 붙어있는게 더 낮다고 보는데. 그러면 여차할 때 내가 지켜줄 수도 있고."

"케이가 없어도 내겐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아직 완성은 안됐잖아?"

"우...."

케이가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조리 있게 말하자 스쿨드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곰곰이 따
지고 보면 케이의 말이 맞았다. 최소한 케이라면 보통의 조아노이드 너댓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으니까. 물
론 리스카가 또 온다면 대책이 없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네 비장의 무기가 완성될 때까지 만이라도 네 보디가드가 되주고 싶은데. 좀 미덥진 못하겠지만 말야."

"...."

"일단은 기분전환이나 한다고 생각해. 뭐 바람좀 쐰다고 작전이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우울하게 있는 것 보
단 낮지."

"알았어...내일 몇 시에 가면 돼?"

스쿨드는 입을 삐쭉이면서 대답하였고 케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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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제약의 사장실에서 규오는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유니트를 강탈당한 경위부터 시작해서
가이버I 과의 현재까지의 전투기록등이었다. 보고서를 읽던 규오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일본지부에는 멍청이들만 모였냐!"

규오는 보고 중이던 일본지부의 중간간부에게 서류철을 휙 집어던졌다. 간부는 그 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었
고 덩달아서 규오의 옆에서 같이 보고를 듣고있던 리스카 역시 움찔하였다. 사실 리스카는 여기 일본지부
소속도 아니니까 원칙적으론 규오가 화낸다고 맘 졸일 이유가 없지만 리스카 역시 규오 앞에서 떳떳할 순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그나마 회수한 한 개는 관계자가 식장하고 있고...."

거기까지 말한 규오는 리스카를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더 말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규오는 같은 가이버
이고 철저하게 훈련까지 받은 리스카가 그깟 정비공 녀석 하나 잡지도 못한걸 두고 질책하는 듯 했다. 할
말이 없는 리스카는 그저 시선을 딴 데로 돌리는 수밖엔 없었다. 그때 책상 위의 인터폰이 울렸다.

-"사령관님. 마키시마 아키토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잠시후 사장실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상당히 준수하게 생긴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듯 했다. 사실 그
는 숙청된 마키시마 겐죠의 외아들이었지만 누가 봐도 겐죠와 아키토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는 규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부르셨습니까. 사령관님."

"그래. 유니트 탈환에 관한 것 때문이다. 이번엔 이 젤브부스를 출격시킬 거다. 서포트 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마침 계획을 세워놓은게 있는데 하이퍼 조아노이드가 출격한다면 정말 든든합니다."

"계획이라...기대하겠다. 넌 겐죠같은 실수는 안 하겠지."

거기까지 말한 규오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그의 옆에 자리잡은 젤브부스를 바라보았다.

"젤브부스. 기대하고 있겠다. 반드시 유니트를 회수해와라!"

"예. 걱정 마십시오. 전 리스카와는 다릅니다."

그렇게 말한 젤브부스는 리스카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리스카는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
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규오가 젤브부스에게 질문하였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예. 그와는 양성소 동기입니다."

동기라곤 하지만 분위기로 봐선 친구라기 보단 원수지간에 더 가까워 보였다. 잠시 둘 사이에 험악한 분위
기가 연출되었다. 이윽고 젤브부스는 마치 두고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키토와 함께 사장실을 나
섰다. 그런 두사람의 모습을 리스카는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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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와 케이, 베르단디는 바이크를 몰고 네코미 공대에 도착하였다. 아직 퇴근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가
게 일을 일찍 끝내고 곧장 학교로 왔다. 지로의 사이드카인 크라우저의 조수석에는 여러 가지 부품들과 공
구들이 실려있었다. 이들은 자동차부의 머신제작을 도와주러 온 것이었다.

사실 케이는 설계도 조정만 해주고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는게 낮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지로는 조립까지 손수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야 그들 스스로 하게 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불과 6일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마지막 날은 대회 조직위에
차량 검사와 라이더 등록을 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5일밖에 안 남은 셈이었다.

"결국 내일 오후 까진 머신이 완성되있어야 해."

그 대목에서 케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계도 조정은 일단 끝났으니 머신 제작은 내일오후
까지 끝내놓는다. 남은 3일 정도는 라이더의 훈련을 함과 동시에 머신의 세팅을 한다. 이것이 지로의 계획
이었다.

케이는 터무니없는 일정이라고 생각했다. 머신제작의 경우 무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존 제작품의
계량이었지만 작업 중에 무슨 문제가 터져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이틀만에 머신을 완성시
켜야 하며 -그나마 오전과 오후 한두시간 정도는 가게 일을 봐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작업하는 시간은 오
후 몇 시간 정도뿐- 남은 3일 동안 라이더의 훈련 및 머신 세팅까지 같이 한다니. 라이더야 핫세가 선발해
놓겠다고 말했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말이다.

"너란 녀석은 근성이 부족해! 우리들의 열정과 저녁시간을 희생하면 충분하다고."

지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의욕을 불태웠지만 케이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집에 일찍 귀가하는 건 포기해야했다.

"지로 선배님 아니십니까."

그때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는 지로에게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하였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처음 보는 사람이
었지만 지로는 그 남자를 알고 있는 듯이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아! 이게 누구야. 정말 오랜만이네, 마키시마."

"예, 오랜만에 보는군요.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잠깐동안 지로와 그 남자는 즐거운 듯이 대화를 하였다. 선배라고 하는 걸로 봐선 이 대학 출신인 것 같았
다. 그러다 지로가 케이와 베르단디를 바라보았다.

"아, 소개할게. 여긴 내 후배들이면서 우리가게 직원들. 얘는 전 자동차부 부장 케이, 그리고 이 아리따운 아
가씨는 케이의 피앙세 베르단디. 유학생이야."

피앙세란 말에 케이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졌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피앙세가
뭔 뜻인지 모르는 베르단디는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 자네가 자동차부 부장이었나? 나도 전엔 자동차부에 있었지. 난 마키시마 아키토라고 해. 잘 부탁하네,
케이군."

"아...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모리사토 케이입니다."

"안녕하세요. 베르단디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군요."

만난 지 5분도 안됐지만 케이는 이 마키시마란 사람에게서 어떤 경외심같은게 느껴졌다. 준수한 외모와 다
부진 체격, 그리고 절도 있는 동작들은 마치 귀족의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이 사람은 온몸에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남자 치곤 좀 긴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도 이 사람이 하니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야성미를 강조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건 그렇고 여긴 웬일이야? 마키시마군?"

"아, 네. 사업문제 때문에 왔습니다. 대학과 공동으로 연구할게 있어서 여기 이외에도 여러 대학들과 접촉중
이지요."

"산학협동? 너네 회사는 제약회사잖아. 공대와는 별로 인연 없지 않아?"

"의료기기 산업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여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흐응~ 그래. 역시나 넌 예나 지금이나 바쁘구나."

"하하, 그래도 아직은 좀 여유가 있지요. 그래도 여기는 앞으로 며칠은 더 들락날락해야 할겁니다. 뭐, 잘됐
지요. 모교를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도 좋지요."

"헤에~ 네가 추억이란 말을 얘기할 때도 다 있구나."

지로의 말에 마키시마는 약간은 쑥쓰러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저런 광경을 보
고 있자니 저 두사람은 예전에 아주 친한 관계였던 것 같았다.

"하여튼 시간 나면 부실로 놀러와라. 나도 앞으로 며칠동안은 자동차부에 좀 들락날락해야 하거든. 이왕 오
는 거 우리도 좀 도와주고. 그리고 베르단디가 끓이는 맛있는 홍차도 마셔볼겸 해서 말이야."

"네, 그러죠. 그거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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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기 적혀있는 걸로 봐선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그 마키시마란 분."

핫세가 이제까지 자동차부의 주요 멤버들의 신상을 기록해둔 자동차부 인명부를 보며 감탄을 하였다. 지로
는 그런 핫세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 짖고 있었다.

마키시마 아키토. 타미야와 오딘과 같은 학년이었지만 나이는 두사람보다는 어렸다. -아마도 두사람은 재수
를 했을 것이다.-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을 한 그는 졸업성적역시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인재였다.
아버지는 유명 제약회사 사장이며 장차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현재에는 회사에서 경영에 관한 각종
경력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뭐, 제약회사 차기 사장님이 어째서 공대에 입학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말야. 뭐, 자기말로는 경영 보단 딴
걸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하지만 그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그가 처음 가입했을 당시 자동차부는 정식 부가 아닌 그저 동호회 수준이
었고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도 학교측의 지원도 극히 미미한 힘겨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출전
한 대학 대항 사이드카 레이스대회에서 지로와 페어를 이룬 그는 2위와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을 차지하였
고 그 후에도 2개의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을 차지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자동차 동호회를 일년만에 자동차부로 까지 끌어올리는데 지로와 함께 열심히 노력한 일등공신이었지만 부
로 승격된 후 그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탈퇴해 버렸다. 회사경영에 관여해야 하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까지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론 자주 못 봤지. 아무리 딴걸 하고 싶었다고 해도 역시나 운명을 거스를 순 없었나봐."

그 말을 들은 베르단디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변의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모습을 본 지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뭐,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확실히 마키시마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겠지만 아까 녀석을 봤
을 때 어두운 구석같은건 안보이던걸?"

"그렇네요. 그분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삶의 기쁨을 찾으신 걸꺼에요. 아까 잠깐 뵌 것뿐이
었지만 그분에게선 상당한 자신감이 느껴졌었어요."

"그래. 그렇게 굉장한 녀석이었지. 그래서 학교다닐땐 그 녀석 여학생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어."

아키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사람을 보며 케이는 왠지 자신이 왜소해지는걸 느끼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지닌 그는 어찌 보면 모든 남자들의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싶었다. 더불
어 그에 대해 즐겁게 얘기하는 베르단디를 보자 약간의 질투도 났다.

"왜 그러세요? 케이씨. 표정이 좀 어두워요."

"응? 아..아무 것도 아냐."

순간 당황한 케이는 그냥 얼버무렸지만 지로는 케이가 왜 저러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지로는 지나가는 말투
로 말했다.

"뭐, 그래도 그 녀석은 누구처럼 교내 제일의 미녀유학생을 애인으로 두진 못했지....훗훗."

"......."

그 누구란 게 누구인지는 뻔하다. 바로 그 누구인 케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고 베르단디는 지로의
말뜻을 이해 못해서 그저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었다. 지로의 그 말은 주변에 있던 다른 남자 자동차부원들
의 가슴에도 찬바람이 불게 만들었다. 애인이 있을 리가 만무한 녀석들뿐이니 그저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만 내쉴 따름이었다.

-덜컹.

"케이. 여기 있어?"

그 때 부실 문이 열리면서 간편한 복장을 하고 나온 스쿨드가 들어왔다.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으며 스쿨드
를 반겼다.

"어머, 어서와. 스쿨드. 너도 케이씨 도와주러 왔니?"

"그럼, 내가 없으면 안됀다고 사정하기에 큰맘먹고 도와주러 온 거지."

스쿨드가 으스대며 대답했고 케이는 뭐라 반박도 못하고 그저 네 맘대로 말해라 라는 식으로 한숨만 내쉬
었다. 어쨌든 엔진조정을 빨리 끝내려면 스쿨드가 있어야 했다. 툭하면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해버리는것만
빼면 스쿨드는 사실 굉장한 기술자인 것이다.

"어라? 쟤도 불렀니?"

"네. 선배. 같이 엔진조정을 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괜찮죠?"

"뭐, 그게 좋겠다. 그럼 난 여기서 프레임 조립과 기타 부품들 체크를 하고 있을 테니 너흰 창고에 가서 엔
진조정을 하도록 해. 나도 여기 마무리하고 가서 볼 테니깐."

밤페이 정도의 로봇을 만들어낸 스쿨드의 실력은 지로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별 말없이 승낙하였다. 엔진
조정과 프레임 조립을 동시에 할 수 있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잘 된 셈이다. 케이와 스쿨
드는 공구를 챙겨선 엔진을 갖다 놓은 자동차부 창고로 향했다.



************************************



지로에겐 산학협동을 협의하러 학교에 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그는 수행원들을
이끌고 학교 방송실로 들어갔다. 마침 방송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키토는 웃옷주머니에서 CD케이스를
꺼내들고는 그 안에 있던 CD를 CD플레이어 안에 넣었다.

"그게 뭡니까? 아키토 님."

수행원들이 궁금하다는 듯이 아키토에게 물었고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뭐, 일단 학교 내에 쓸데없는 사람들부터 다 내보내야겠지. 이건 그걸 위한 도구다."

아키토는 헤드폰을 쓰고는 CD의 재생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방송장비들을 조작하여 교내 전체에 방송이 울
리도록 하였다.




-아아아아아.....

네코미 공대 전체에 이상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음악은 방송용 스피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다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방송은 점심시간에만 하는 것이었던지라 갑작스러운 음악방송에 사람들은 의아
해하기 시작했고 한창 강의 중이던 교수들은 대체 왜 수업방해를 하는 거냐며 짜증들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뭔가 최면에 빠진 듯 몽롱한 얼굴들이 되었다. 멍한 표정의
사람들은 이윽고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더니 그대로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강의실내의 교수와 학
생들도 각자의 소지품들을 모두 그 자리에 둔 채로 강의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방송은 자동차부안에도 들려왔다. 한참 프레임 조립에 열중하던 지로와 자동차부원들, 그리고 부실한켠에
있던 조그만 부엌에서 한참 다과를 준비중이던 베르단디의 귀에도 그 음악이 들렸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
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응? 웬 음악 방송?"

"음악 방송은 할 시간이 아닐 텐.....데....."

그러나 곧바로 이들도 최면에 빠진 듯한 몽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곤 조립 중이던 프레임을 그대로 내버
려두고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베르단디도 예외가 아니었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
도 어느새 몽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곤 천천히 부실 벽면에 있는 거울로 걸어가더니 어딘가로 공간이동을
하였다.

-슈우우~~

사람들 앞에서 법술사용 장면을 보여선 안됀다는걸 뻔히 알고있는 베르단디였고 부득이 사용할 때에도 들
키지 않도록 조심해서 사용하던 그녀가 어째서인지 갑자기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공간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로와 자동차부원들은 분명히 그 광경을 봤을 터인데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점이
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들은 지금 그 어떤 것에도 시선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맹목적으로 어딘가
로 걸어가기만 할뿐이었다.   




************************************



-부아아아앙!!!

네코미 공대 자동차부실내의 창고에서 케이와 스쿨드는 엔진의 조정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 넓
다곤 못하는 공간 안에서 시끄러운 바이크 엔진의 소리에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밖
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들 늦네... 어디서 뭐하는 걸까."

"뭐라고?!!"

케이가 중얼거리자 스쿨드는 있는 힘껏 큰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워 보인 케이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러자 스쿨드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더 밟아보자! 천까지 올려!!"

-부아아앙!!

스쿨드는 바로 엔진의 rpm을 올렸고 엔진은 더욱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엔진 조정에 몰
두하는 스쿨드의 모습을 보며 케이는 역시 데리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뭔가에 몰두하고
있으면 그 무서운 조아노이드 들이나 리스카에 대한 불안이나 앞으로의 일에 대한 염려를 잊을 수 있으니
까. 집안에 틀어박혀 덜덜 떨고 있어봐야 나아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있으면 여차할
때 자신이 지켜주기도 쉬우니까 일석이조다.

"좋았어! 여기선 이제 이 스쿨드 님의 특제 파워업메카를 달면...!!"

"그..그건 안돼!! 스쿨드!!"

뭐, 저런 식으로 목적을 망각한 채 엔진 파워만 높이려고 자꾸 수상한 부품을 달려고 한다는 점만 빼면 말
이다. 저런걸 달았다간 대회전 차량검사를 통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대회규정엔 터보나 니트로가 금지돼
있다) 주행중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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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조정을 끝낸 두사람이 창고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좁은 창고 안에서 두어시간
이상 보내다 보니 귀가 다 멍멍할 지경이었다. 사실 두시간 정도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이미
대회까지는 5일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 늦어도 내일은 차체에 엔진을 장착하고 기타 부품조립이 대부분 끝
나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은 3일정도의 기간동안 머신세팅 및 라이더의 훈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유... 귀아파..."

스쿨드는 귀가 아픈 듯 귀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케이 역시 귀가 멍멍하긴 마찬가지였다.

"부실 쪽으로 가자. 프레임 조립은 다 됐나 보게."

케이와 스쿨드는 자동차부 부실 쪽으로 갔다. 지로가 프레임 조립을 도와주었으니 어느 정도 틀은 잡혀있을
터였다. 프레임 조립 완료후 케이와 지로가 다시 한번 엔진의 상태를 최종 점검할 것이었다. 대회가 끝날때
까진 일찍 들어가긴 아무래도 틀렸다.

"엔진 점검은 더 안 해도 돼! 이 스쿨드 님이 완벽하게 마무리했으니까!"

"....나 몰래 뭐 이상한 거 달은 건 아니겠지."

"케이가 나쁜 거야! 그거만 달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스쿨드는 투정을 부리고 케이는 한숨을 내쉬면서 어느덧 두사람은 부실 앞에 도착하였다. 스쿨드가 먼저 문
을 확 열었다.

"언니! 나....왔어. 어라?"

그러나 부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아직 조립이 다 안된 프레임과 재료들, 그리고 용접기 등의
공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스쿨드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쳇! 다들 그냥 집에 갔나봐! 누구 땜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씨이...."

그러나 케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모두 다 땡땡이
를 쳤다?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 책임감 강한 지로선배가 마무리도 안하고 그냥 갔을 린 만무하고
무엇보다 베르단디의 모습까지 안보인다는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케이가 열심히 작업중인데 말도 없이 혼
자 돌아갈 베르단디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갑자기 케이가 부실을 뛰쳐나갔다. 스쿨드도 그런 케이를 서둘러 쫓아가기 시작했다. 케이는 학교 건물까지
전력으로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없어."

본관 앞에도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본관 건물 앞은 저녁 무렵까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주말에
도 심지어 일요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건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스쿨드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케이곁에 바짝 붙었다.

두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지만 안에도 사람들의 인기척은 없었다. 강의실 안에는 학생들이 보던 교재
들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깜빡 잋고간건 절대 아니었고 수업도중 그냥 나갔다고 봐야 했다. 케
이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스쿨드는 겁에 질렸는지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때 복도 저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을 보자 안도감을 느낀 두사람이 이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기 위해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 사람도 케이들 쪽으로 똑바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검은 양복에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느 기관의 조직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상함을 느낀 케이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케이... 뒤에도."

스쿨드의 말에 케이가 뒤를 보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로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 차림
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케이는 앞뒤로 포위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은....

"크으으...카아아아!!!"

갑자기 두 남자가 소리를 지르더니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들은 크로노스의 조아노이드들 이었다.
짙은 보랏빛의 털이 온 몸을 감싸고 있고 새의 부리와 발을 가진 조아노이드 였는데 두사람은 처음 보는
종류였다. 도대체 조아노이드란게 얼마나 다양한 종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케이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쪽에 있
던 조아노이드들도 모두 케이들 쪽으로 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조아노이드가 순식간에 케이 바
로 앞까지 육박해왔고 그 거대한 손을 케이를 향해 휘두르려는 찰나 케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

-콰아앙!!

"캬아아!!"

식장때 발생한 충격파로 앞에 있던 조아노이드를 날려버린 케이는 뒤를 돌아봤다. 남은 한 마리가 스쿨드를
쫓고 있었고 스쿨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케이쪽으로 도망 오고 있었다.

"케이! 구해줘!!"

"고개 숙여!"

-부웅!

케이가 고주파 소드를 전개시키며 조아노이드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둘이 서로 교차할 때 케이는 팔을 크게
휘둘렀고 조아노이드는 그대로 허리가 두동강이 나면서 쓰러졌다. 죽은 후 급격하게 부패하기 시작한 조아
노이드들을 보면서 케이는 치를 떨었다.

"이 녀석들 학교까지 오다니...!"

어떻게 했는진 모르겠지만 학교 내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이유는 이 녀석들의 공작일 것이다. 케이는 아
무래도 빨리 학교를 빠져나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케이와 스쿨드는 함정에 빠진 것이 분명했
다. 그러나 조아노이드 두마리는 함정의 전부라고 보기에는 너무 약했다. 이게 다는 분명히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단디의 안부도 너무나 걱정되었다.

"스쿨드! 위험해!!"

"꺄아!!"

-퍼억!! 푸슈우우~~

갑자기 케이가 스쿨드를 껴안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그들이 서있던 곳의 벽이 급격
하게 녹아 내리기 시작하면서 큰 구멍이 뚫려버렸다. 무슨 염산 같은걸 뿌린 모양인데 그 위력이 상상을 초
월하였다.

아무리 짙은 농도의 염산이라 해도 물체를 일방적으로 녹이진 못한다. 녹이면서 동시에 녹인 물질과 섞여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리기 때문인데 지금처럼 제법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 벽을 이렇게 크게 한번에 녹여버
릴 정도라면 엄청나게 강력한 용해액일 것이다. 두사람은 질린 표정으로 구멍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 저기에!"

"조아노이드 인가?"

반대편 건물 옥상 위에 뭔가 거대한 덩치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역시나 또 다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겨우
한 마리뿐이었다. 겉보기에는 좀 덩치가 크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게 상당히 강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
래도 겨우 한 마리만이 도전을 해올줄은 몰랐다.

"흥! 네 녀석이 가이버I 이냐! 이 젤브부스, 규오 각하의 명으로 네 녀석의 목을 가지러 왔다!!"

"누구 맘대로! 이 못생긴 괴물딱지야!!"

자신을 젤브부스라고 밝힌 조아노이드의 도발에 흥분한 건 엉뚱하게도 스쿨드였다. 오히려 케이는 상대가
만만찮음을 느끼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혼자서 가이버에게 도전할 정도면 상당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고 봐야 할 터였다. 아니면 저 조아노이드 조차도 무언가의 함정의 일부일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간다! 가이버!!"

"스쿨드! 어딘가로 피해있어!"




맥스제약내의 종합상황실에서 규오는 가이버에 관한 데이터들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고있었다. 리스카가
식장했을때의 데이터와 가이버I과의 지금까지의 전투기록등이 상세하게 표시되고 있었다. 한동안 그 자료를
같이 보고 있던 리스카가 규오에게 말했다.

"총사령관님. 주제넘은 건의일진 모르겠습니다만 젤브부스에게 처음부터 이걸 보여주고 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훗....녀석은 이미 보고있어."

"네?"




젤브부스가 옥상에서 케이들이 있는 곳으로 점프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도약력
이었다. 케이 역시 이에 맞서 높이 점프하여 젤브부스에게 날아갔다. 둘의 거리는 이내 좁혀졌고 그와 동시
에 먼저 케이가 주먹을 힘껏 뻗으며 공격을 하였다.

-퍼억!!

"아니?! 이럴 수가!"

조아노이드를 한방에 쓰러트려 버리던 가이버의 펀치를 가슴에 정확하게 명중시켰는데도 놈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케이가 당황해하고있는 찰나 곧바로 젤브부스의 반격이 날아왔다.

-퍽!

"아악!"

젤브부스의 주먹에 케이는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케이는 충격 때문에 숨쉬기
가 힘겨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아마 가이버 상태가 아니었으면 100% 죽었을 것이다. 그때 케이의 눈에
바로 자신의 위로 곧바로 낙하하는 젤브부스가 보였다.





"젤브부스가 가이버I과 접촉하였군."

"사령관 각하...?"

리스카는 규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규오의 눈은 황금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보통 안광(眼光)을 발
한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 저런 식으로 눈에서 빛이 나오진 않는다. 보통 인간이라면 말이다.

'사념파인가...!'

그제야 리스카는 간부교육당시 배웠던 내용이 떠올랐다. 크로노스 최고간부들은 '사념파'란 것을 방사하여
조아노이드들을 자유자제로 부릴 수 있다고 들었었다. 언제 어디서나 조아노이드의 정신에 직접 명령을 내
릴 수 있다는 최고 간부만의 능력. 쓰기에 따라서는 조아노이드의 정신과 싱크로 되어서 조아노이드가 보는
광경을 최고 간부도 같이 볼 수 있다고도 하였었다. 물론 그 광경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말이다.

"자! 가라 젤브부스. 하이퍼 조아노이드의 힘을 보여주어라!!"

 



-콰앙!

젤브부스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기세 그대로 케이를 찍어버리려 했고 케이는 간발의 차로 그 공격을 피
할 수 있었다. 뒤로 점프하면서 젤브부스와 거리를 벌린 케이는 그대로 헤드빔을 발사하였다.

-푸슝! 티잉!

그러나 헤드빔은 젤브부스의 장갑을 뚫지못하고 그대로 튕겨나가고말았다. 깜짝 놀란 케이는 다시 한번 헤
드빔을 날려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엄청나게 두꺼운 장갑에 케이는 물론이고 건물 안에서 내다보고
있는 스쿨드도 경악하였다.

헤드빔으론 안되겠다고 판단한 케이가 이번엔 고주파 소드를 전개시키고 젤브부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젤브부스의 머리에 있던 뿔이 움직이더니 그곳에서 뭔가 검은 액체가 뿜어져나왔다. 당황한 케이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려 그 액체를 막아내었다.

-치이익~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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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밥님의 댓글

카렌밥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유연재가 가이버님에게 먹히고 있습니다!

[두두두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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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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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4개인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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