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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서 시작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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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뜰을 거닐면,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단지 나 혼자만이 남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단지 미소를 지으면서 나 혼자가 아님을 다시한번 상기하고는 한다.

 혼자라는 것을 좋아했었다. 한 때에는 그것이 가장 좋았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눈에 반했다!' 라고부를 정도는 아니었던 만남일까나? 단순하게 난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었고,  그 사람은 어쩐일 인지 이곳에서 한숨을 쉬며 작은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4달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다였다. 난 그 사람의 곁을 지나치면서 물었을 뿐이었다.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좋아한다기 보다는 이런 손질된 정원에서 들꽃이 피어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 작은 힘에 대해서 감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실례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면 이만.."

 그 사람은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지나쳐갔다. 그저 단순히 서로를 무안하지 않게 하기 위한 질문과 응답.. 단순히 얼굴을 마주칠 뿐인 그런 인연이었다. 뜰에는 또 다시 나 혼자만이 남았고, 그것을 즐겼다. 고독을 즐기며 미소를 지었다.

 혼자만 있기에 즐겁다.

***

 "쓸때 없는 질문 같겠지만, 다시한번만 물을께요. 정체가 뭐라구요?"

 그러나 상대는 진정으로 쓸때 없는 질문이라고 느꼈는지, 아예 입도 열지 않고서 나의 입을 그 손으로 가릴 뿐이었다. '어째서?' 라고하는 질문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었다. 단지 이 남자는 나를 인질로 잡았고, 나는 그의 인질이 되어서 이리저리 끌려다닐 뿐이었다. 그 와중에 이 사람이 내가 거닐던 뜰에서 들꽃을 바라보던 사람임을 알아냈다. 덤으로 남자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의 조건은 간단했다. 자신이 이 나라를 빠져나갈 때까지만 인질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동의도 안했지만, 거부도 하지 않았었다. 솔직히 지금 쫓아다니는 현상금 사냥꾼이나, 관군이나 보는 즉시 피아를 불문하고 살인멸구를 하려고 했었으니까. 백작가의 영애가 이렇게 추살령에 몸을 숨겨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당연히 한번쯤은 아버지께 일회용 비상 통신수정으로 연락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 녀석은 국가기밀연구마전사. 원래대로라면 나같은 귀족과는 전혀 만날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는 무언가를 알아내고서 탈출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너무도 중요해서 그자와 같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질이라도 모조리 죽이라는 왕명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나는 아버지께로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이 나라에 남을 수도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낳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1~2년 후면 나도 언니처럼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서 느끼한 어느 귀족가의 아들과 결혼, 그 이후에는 저택에 같혀서 늙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각오도 되어 있었고, 저택에 같혀 지내지 않기 위해서 이곳저곳에서 여러가지 친분과 그리고 간단한 마법따위 등을 배워 놓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인생이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망치면서 나의 인생을 바꿔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모두다 사라졌어. 그리고 자꾸만 정체를 캐물어도 소용없잖아. 이미 마흔 여섯번째 물어봤고, 또 대답해줘야 하는거야?"

 "뭐, 이전까지의 마흔 여섯번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고 쳐두죠. 자아! 빨리 말씀해주세요. 정체가 뭐죠? 게다가 저의 뜰에서 나가자마자 다시 무서운 얼굴을 해서는 도로 뛰어들어와서 날 어깨에 들쳐매고 어딜 그렇게 도망을 가는거예요?"

 "국가기밀연구마전사. 한마디로 특급 스파이지. 그마만큼 여러가지 정보를 알고 있었는데, 결국 녀석들은 나를 제거하려고 한거야. 각오는 했지만, 쉽게 죽기는 싫지. 결국 널 인질로 잡고서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너마저도 살인멸구 대상이 되었다니.. 인질로써 쓸모는 없어졌지만, 마법을 배운 흔적이 있으니 방패막이로 삼은거야."

 "남자치고서는 꽤나 치졸한 방법이군요. 여성을 방패로 삼는건 정말 저질이에요."

 "원래 나의 품종은 저질이라서."

 그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저질로 단정 짓고서는 갈라진 판자사이로 바닷가를 살펴본 뒤에야 다시금 편히 앉아서 그 갈라진 판자 사이로 새어나오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지 그 뿐이었지만, 충분히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도망치는 중이라기엔 너무도 고요한 분위기였다. 모래사장에 부숴지는 파도소리와 그리고 작은 구멍이지만, 판자사이로 보이는 별빛에 충분히 취해도 좋을 만큼의 여유로움이었다.
 
 "이봐. 너 설마 자는거야?"
 
 "말시키지마요. 더 이상은 안자고 못배기겠어요."
 
 "귀족가의 영애치고는 말이 거칠군."
 
 "늙은 마법사 할아범에게 마법을 배우느라고 그런거예요. 걱정말라구요. 이래뵈도 사교계에서는 청순한 분위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까."
 
 "여자란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건 그렇고, 진짜로 자려는 것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절대로 쓸모없는 것이라고 쳐두고서는 일단 눈부터 감아버렸다. 가만히 혼자의 세계를 즐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리, 바로 앞에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에 다시 눈을 뜨고서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까 서로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군요. 당신의 이름은?"
 
 "로이. 로이 엘레이아."
 
 "엘레이아라. 꽤나 오래된 이름이군요. 저는 아시겠지만 드큐 백작가의 사람이죠. 이름은 아리스. 아리스 데 드큐."
 
 "좋아. 그렇다면 아리스에게 묻겠어. 잠시후면 난 이 바닷가를 날아서 건너편의 바자르 제국에 들어갈꺼야. 아시다시피 너 조차도 살인멸구의 대상에 올라있어. 나쁘지만 않다면 동행하지 않겠어? 혼자보다는 두명인 편이 훨씬더 안전하고 경비병들의 시선을 피하기에는 좋지."
 
 "데이트 신청인가요? 조금 품위가 떨어지지만.. 이 상황에다가 저질품종의 남자에게 뭘 바라겠어요? 같이 가죠.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에서 하는 말이지만.."
 
 "삐졌군. 정말로.."
 
 "이 상황에서 삐졌다는 수준인걸 감사하세요. 아니면 완전히 실신해서 거치적 거릴까요?"
 
 그러자 로이는 관자놀이를 짚고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미안. 일단 사과는 해두지."
 
***

 잠시후 로이는 지표 마법으로 근처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천장의 낡은 판자를 걷어치우고 다시금 지면위로 올라갔다. 마전사라는게 아무래도 이런 추격전이나, 또는 추살전에서는 단연코 으뜸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로이는 일사천리로 근처의 나무를 잘라서 수액을 모으는 한편 나에게는 나무열매 서너개를 쥐어주더니 최대한 약한 버닝 핸즈(C.1)로 익혀줄 것을 요청했다.

 "손안에 감춰진 기운이여 나의 바람에 응답하여 붉은 불꽃을 태워다오. 버닝 핸즈."

 손이 잠깐 불그스름하게 변하더니 이윽고 손의 표면위로 얕은 불꽃막이 형성되었다. 일단은 로이의 충고대로 바다쪽을 향해서 앉았기에 육지쪽으로는 불빛이 새어나갈리는 없었다.

 화르르륵! 탁! 탁!

 손위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익어가는 열매를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감정이 느껴졌다. 두근거림일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종류의 기대감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더욱 기대감을 북돋아 주는 것일지도.. 물론 쫓기고 있다는 현실은 조금 냉정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왕좌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배워오기도 했지만, 사실 이 사람이 주는 자신감에 더욱 긴장감은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음.. 다 익었군. 이거 받아."

 그는 끝을 묶은 나무 줄기를 내밀었다. 말랑말랑한 줄기 안에서는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살짝 묶은 곳을 풀어해치자 달콤한 냄새가 슬며시 코끝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내 손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은 열매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집어서는 입에넣고 씹었다.

 "그 나무 줄기에는 많은 수액이 저장되어있지. 바자르 제국에서는 그게 일반 식수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이 열매는 식사 대용으로 쓰는거야.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바자르 제국에서는 빵나무라고 하더군."

 "확실히 맛은 빵맛이군요. 그런데 바자르 제국의 식물들이 어째서 여기 루기니아 대륙에서 자라는거죠?"

 "글쎄? 식물들도 사람들의 배를 타고서 이리저리 전파되는거지. 게다가 여긴 바자르 제국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해협이야. 그러니 이 근처에서 이걸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는 마지막으로 입속에 열매를 털어넣고서는 수액을 쪽쪽거리며 빨아먹었다. 때 맞춰 바다위로 해가 떠올랐다. 로이는 걷어치운 판자에 홈을 파서는 그 사이에 빨간 구슬을 끼워넣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판자는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먼저 판자에 올라차서는 손을 내밀었다. 나 역시 그 손을 붙잡고서 올라탔다.

 "출발한다. 바자르 제국에 도착한다면 추격은 더이상 없을꺼야."

 "..다시 한가지만 물어보죠. 어째서 저를 인질로 삼으신건가요? 그날 저희 저택 무도회에는 왕녀도 참석하고 있었었는데.. 어째서 절 인질로 삼으신거죠?"

 "그냥.. 이라고 하기엔 뭔가 걸렸었어. 너의 그 눈빛. 마치 고독을 즐기는 어두운 눈이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런 눈을 가진사람을 이전에 딱 한번 본 적이 있어. 내 사부라고 할까? 그 사람의 눈도 어두웠었지. 하지만 왠지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야.."

 "사부라는 분.. 닮았었던 것인가요?"

 로이는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서 입을 열었다.

 "내가 쫓기는 이유는 바로 그 사부 때문이야.."

***

 "크아아악!"

 거친 비명소리에 국가기밀연구소는 발칵 뒤집혔다. 마전사들이 급히 현장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순찰을 돌던 그들의 동료 한명이 차가운 바닥에 토막난 채로 구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거대한 마법장벽이 뒤틀린채로 덜그덕 거리고 있었고, 그 안쪽에는 가장 중요하다는 지도 하나가 사라져있었다.

 "가브리엘의 석판이 기록된 지도가 도둑 맞았다! 그것을 훔친자는 마전사. 그 중에서도 바람마법이 특기인자."

 "정확하게 대지의 기운을 파훼시켜서 마법장벽을 모조리 갈아버렸어. 약 C.40의 위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도저히 부술 수 없는 강도야."

 "그정도의 힘을 가진 바람의 마전사는 단 한사람! 로이 엘레이아!"

 마전사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무기를 든채로 빠르게 건물에서 퍼져나갔다.

***

 "가브리엘의 석판?"

 "신의 사자인 가브리엘 천사가 남긴 석판이야. 석판에 대고서 자신의 소원을 말하면 단한번이지만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지."

 "사부를 살리실 생각인가요?"

 그 질문에도 로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서 단지 검게 변한 구슬을 홈에서 빼내고 다시 빨간 구슬로 갈아껴넣을 뿐이었다. 판자는 빠르게 바다를 가로질러 바자르 제국의 해안선이 보이는 곳까지 날아왔다. 그 순간 뒤쪽에서 파공성과 함께 날카로운 수정 파편들이 쏘아져 날아왔다. 로이는 구슬을 더욱더 홈에 깊숙히 밖아넣었다.

 콰직!

 구슬이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판자는 강렬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나머지 바다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옆으로 스쳐지나가던 수정파편들이 곧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에 파편들을 앞질러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이는 더욱 긴장을 하며 나를 감싸 안았다.

 "미안해. 잘못된 일에 끌여들여서.."

 "한번만 더 물어볼께요. 사부라는 분을 제가 닮았나요?"

 "응. 물론이야. 그렇기 때문에 너를 선택한 것일지도 몰라. 비록 뒤틀린 만남이었지만."

 "아니요. 감사하고 있어요. 어차피 그 무도회는 저의 정략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로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너는 나를 알지 못하고 너는 날 알지 못해. 그것은 단순한 호감일지도 모르잖아?"

 그것은 알고 있다. 분명히 지금 느끼는 감정은 호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단순한 호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절실함이 묻어났다. 그것은 분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 사부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잖아요? 그래서 나를 데려온 것이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단지 얼굴만이 붉게 물들어서는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왠지 이 호감이 점점 변해갈 것만 같았다. 그에게 반해서는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파렴치한 남자가 어디있을까? 인질로 잡아놓고서는 자신의 사부를 닮았다면서 얼굴을 붉히는 남자인데..

 하지만 그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것이 가브리엘의 석판."

 로이는 판자를 멈춰세우고서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판자는 얼마 있지 않아서 수정파편에 의해 처참하게 찢겨져 버렸다. 단순한 바닷가였다. 부른 잔듸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하나의 석판이 서있을 뿐이었다. 로이는 석판 주위로 펼쳐져 있는 무형의 결계를 깨뜨리고서는 가만히 석판을 만지려고 하였다.

***

 "기다려! 로이 엘레이아!"

 "...쫓아왔군. 너희들..."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검은 갑옷을 걸치고서는 매섭게 나와 로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고서는 위혐적으로 우리를 향해 조준을 하거나 또는 뻗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이는 가만히 선두에 서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안하군. 하지만 나를 막지는 못할꺼야."

 "로이 엘레이아. 너의 그 무책임한 행동으로 오는 피해를 우리가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단지 한번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유스럽지 못했지. 그래서 이렇게 석판을 찾아낸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너의 사부는 마녀의 계승자. 결코 같이 있을 수 없을 존재야."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마침내 무기를 발출했다. 그리고...

 푸욱!? 스팍!?

 아찔한 피빛이 눈앞을 장식하고서야 스스로 몸을 던져 로이를 막아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이 녀석을 조금은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법사 할아범이 말했었다. 여자란 감정에 약한 존재라고, 물론 나는 해당하지 않을 줄 알았다. 입가에는 허탈함이 묻어나는 듯이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왜 막은거야?"

 로이는 천천히 물었다. 지금 다친사람에게 설명을 시키다니.. 정말 저질 품종이라고 자부할만한 사람이네..

 "애메한 기분이 들어서요.."

 "바보. 단순한 감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다니 감정에 약하구나."

 로이의 말이 할아범의 말과 겹쳐졌다. 약간의 실망과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정에 약한게 아니에요. 전 진지했다구요."

 "그럼 나를 사랑했다는거야?"

 로이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주위로 드센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서는 그는 검은 갑옷의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싸움은 잠시 유보하도록 한다. 트위스트 바리어!(C.60)"

***

 거센 회오리가 그들과 우리를 분리시켰다. 나는 자꾸만 목안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억지로 꺼내며 말했다.

 "사랑이라니요. 당신같은 사람에게 사랑하고 있었어? 라는 말이 나와요. 저질.. 단지 당신의 눈도 어두워서 그랬어요. 어쩌면 우리는 닮아있네요. 어두운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니.. 모순덩어리죠?"

 "닮아있다는 이유로 날 대신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거야?"

 "그건 감정에 약한 걸지도? 푸훗.. 모순이군요. 하아~ 말하기 힘들어라. 사실 당신을 따라나선 것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기 싫어서 였어요. 하지만 당신이 나의 눈을 보고서는 어둡다고 말했을 때부터 느꼈죠. 당신도 어둡다라는 것을.."

 "......"

 "말하기 힘들다니까요. 계속 말을 시키는군요. 그러니까 비긴걸로 쳐요. 당신이 나를 데려온거랑 내가 당신을 위해서 죽는거랑."

 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손해보는 구나. 아리스."

 "어쩌면요. 단지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안에 그게 가능할까요?"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 회오리의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너와 나는 패러랠 라이프 였을지도.."

 "아..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요?"

 "조금은 다른의미지만 그런 의미일지도 몰라. 모순덩어리지?"

 그와 함께 회오리가 걷혔다.

***

 "빌어먹을! 이젠 그만 포기해라!"

 "가브리엘의 석판이여. 하나의 소원을 빈다."

 로이는 석판에 손을 올려놓고 나서는 빙그레 웃었다. 그가 원하던 소원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서는 나머지 말을 이었다.

 "이 소녀를 살릴수 있는 힘을 다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하나의 빛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

 "조금쯤은 융통성이 있을줄 알았는데 당신 역시 감정에 약했군요."

 눈을 떴을 때에는 살아있음에 의아했다. 그리고 나 이외에 이곳에 아무도 없음에 더욱 의아했다. 그리고 하나를 생각했다.

 이 소녀를 살릴수 있는 힘을 다오.

 로이가 마지막으로 남긴말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소원을 빌어야 할 것이다.

 "가브리엘의 석판이여. 하나의 소원을 빕니다."

 그 소원을 빌기전에 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말했었지? 패러랠 라이프.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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