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Of Fantasy - 제 1악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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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appassionato
“할아버지!”
대리석으로 지어진 작고 하얀 신전을 향해 뛰어가는 갈색머리의 소년-칼은 신전의 문을 힘차게 열고 신전의 예배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던 늙은 사제는 고개를 돌려 뛰어오는 칼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서 멈춘 칼을 바라보며 늙은 사제는 손을 꽉 지고는 칼의 머리에 꿀밤 한대를 때렸다.
“아얏!”
“이녀석! 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니? 이 예배당은 매우 경건한 곳이다... 라고 하였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렇게 뛰어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살짝 혹이 난 머리를 손으로 감싼 칼은 늙은 사제를 쳐다보았다.
“이.. 왔단 말이에요. 군인들이.”
칼의 말에 늙은 사제는 옷깃을 살짝 펼치고 신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을 중앙에 있는 공동 우물 앞에 모여 있는 5명의 기사들. 가벼운 링메일을 걸치고 허리에는 은색의 숏소드를 차고 있었다. 늙은 사제는 둘러싸여진 사람들을 해쳐 맨 앞에 있는 기사의 앞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이곳의 타이스로베니칸 중앙 산맥에 있는 타이룬 마을의 신관 ‘엘 라도’ 입니다.”
늙은 사제의 말을 들은 기사들은 뭔가를 찾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찾는 것이 없는 듯하자 다시 고개를 돌려 늙은 사제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스완제국 인트라시에 주둔중인 제 7기사단 단장 ‘파 헬름’ 이다. 이 마을에는 촌장이 없는가?”
파의 말에 늙은 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신관일과 함께 이 마을의 촌장 일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여기..”
파는 허리춤에 걸린 작고 네모난 주머니에서 붉은 끈으로 묶인 두루마리 종이를 꺼내어 늙은 사제에게 넘겨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대 아스완 제국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아스완 제국 내에서 군역에 있는 남자들은 자경단 및 최소 필요 인원을 제외한 모두를 징병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파의 말에 엘은 몸을 떨었다. 일주일전 도시에 내려간 그는 조만간 전쟁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었다. 그 말에 엘은 웃어넘길 수밖에는 없었다. 5년 전 ‘St.카르멘’ 에서의 평화회담의 담화문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에 모든 나라의 황제 또는 국왕들이 그들의 인장을 찍었었다. 219년에 종전된 제 1차 코트라 대륙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막심했고, 그 해에 일어난 ‘제 3차 노비아 전쟁’ 으로 인해 대륙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 했었다. 거기다 6년 후에 일어난 라이너제국 내전으로 인한 주위 나라의 야심으로 라이너 제국이 아스완 제국에게는 타이스로베니칸 산맥 전체를, 룩프룸벨크에게는 서 켄트 평야를 빼앗기는 피해를 당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정히 의심이 난다면 그 두루마리를 읽어보게. 간단히 말해 황제폐하께서 내리신 징병서라네.”
떨리는 손으로 붉은 리본을 풀어 두루마리를 펴낸 엘은 서서히 고개를 내리면서 두루마리에 쓰여진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고개를 올려 떨리는 눈으로 파를 바라보았다. 파는 눈을 감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엘은 뒤로 돌아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잘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두 달 뒤. 그러니 24월경에 전쟁이 일어난답니다. 이에 따라 황제 폐하께서는 모든 제국에 징집령을 내려 15세 이상 40세 미만의 농노나 평민들은 최소한의 자경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 도시의 훈련장에 집합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명에 따라 이곳 타이룬 마을에서도 병사를 징병하게 되었습니다.”
엘의 말을 들은 마을사람들 중 몇 명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늙은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의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젊은 사내. 그 사내는 눈길을 돌려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파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5년 전에도, 11년 전에도 느꼈던 이 눈길을.
-젊을 때에 처음 느꼈던 그 눈길은 그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줄로만 알고 그 눈길을 준 사내를 죽여 버렸었다. 이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거역. 기사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가 느꼈던 것은 또 다른 눈길. 말 못 하는 노파의 애한이 담긴 눈길은 그의 심장을 압박하였었다. 그들의 평화를 앗아가는 그 자신을 느꼈었기에 파는 자신을 노려보는 사내의 눈길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었다.-
엘은 두루마리에서 눈길을 돌려 마을 사람들. 그 속에 있는 8명의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움직였다.
“따라서... 판, 켄트, 잭, 클리프, 타우렌, 콜리드, 클락, 에트는 지금 즉시 간단한 준비를 하고 이곳으로 나오거라. 알.. 알았느냐?”
8명의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일. 이 말이 끝나자 몇몇 여인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오열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여인들의 곁으로 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애처롭게 쳐다볼 뿐.
8명의 청년들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간단한 가방 하나만을 챙긴 채 우물 앞으로 다시 나왔다. 그들은 쓰러져 있는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걱정 마세요. 5년 전에도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안 그래요?”
한 청년은 웃으면서 한 여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젊은 여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될거야. 이번엔 이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를 보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저번에도 무사히 다녀왔으니.... 그러니 걱정 말어. 알았지?”
청년의 말에 젊은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양 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끝이 없는 듯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여 젊은 여인에게 미소를 안겨 주었다.
하나 둘 씩 청년들은 엘의 앞으로 모였다. 엘은 8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 있는 클리프의 앞으로 갔다. 클리프는 무릎을 굽히고 그의 머리를 가만히 숙였다. 늙은 사제는 그의 머리위에다가 손을 살며시 올렸다.
“에어리즈님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엘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새하얀 빛. 그 빛은 클리프의 전신으로 번져나갔다. 전쟁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청년을 위해 축복을 소망하는 의식. 그 의식은 8명의 청년 모두에게 거행되어졌고, 그것을 파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자 파는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늙은 사제의 옆으로 갔다. 엘은 고개를 올려 파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자.”
파의 말과 함께 4명의 기사들은 말머리를 돌려 마을 밖으로 천천히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서는 8명의 청년들. 점점 멀어지는 8명의 청년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들을 마지막 까지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잘 안보이자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안식처로 하나 둘 씩 돌아갔다.
“칼.”
집으로 들어가려는 칼을 부르는 엘의 목소리에 칼은 고개를 돌렸다.
“내일 라네아와 함께 신전으로 오거라. 알겠지?”
엘의 말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집 앞에 서 있는 라네아에게 뛰어갔다.
엘은 마을 밖으로 향하는 길을 향해 무릎을 구부리며 양손을 가지런히 접고 고개를 숙이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누런색의 흙을 적시는 조그마한 물방울. 그는 기도하였다. 지금 떠나서 보이지 않는 8명의 청년들...을 위해서...
“그대들에게 축복을... 그리고... 제발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붉은 벽난로가 그려내고 있는 짙은 하나의 그림자. 삐걱 거리는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라네아의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눈물은 그대로 그녀의 아스라운 볼을 따라 저 밑을 향해 내려갔다. 점점 꺼져가고 있는 작은 불꽃. 라네아는 그녀의 옆에 놓여있는 마른장작을 하나를 벽난로 안으로 던져넣었다. 마른장작의 비명소리와 함께 다시 되살아나는 붉은 불꽃.
‘엄마. 내일 할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신전에 오라는데요?’
그녀의 귓가에 울리는 칼의 목소리. 그리고 오늘 있었던 마을 사람들의 징발. 삼주일 전 엘이 그녀에게 말했던 제안.
‘칼을 그곳으로 보내세.’
그녀의 작고 여린 붉은 두 손은 그녀의 이마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이번에 칼을 아스완에 있는 에어리즈 대신전으로 보내려고 한다네. 아마 그곳으로 그 아이를 보낸다면 그 아이가 다 클 때 까지 자네는 칼을 못 볼 걸세. 하지만 난 칼이 미네바처럼 전쟁터에 나가서 죽는 꼴은 볼 수가 없다네. 그렇게 보내는 거는 이제 미네바로 족하단 말일세. 칼을 에어리즈 대신전으로 보내주게. 부탁하네 라네아.’
점점 떨려오는 그녀의 양손. 그리고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 저 멀리 눈 앞에 보이는 백발의 검은 갑옷의 노장.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은색 갑옷을 입은 갈색머리의 남자. 라네아는 눈 앞에 보이는 두 사람의 이름을 힘없이 불러보았다.
아버지.
미네바.
서서히 뿌옇게 흐려지는 두 사람의 모습. 그리고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해 사라지고 있는 두 사람을 그녀는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었을까.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녀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두 사람. 라네아는 손을 뻗어 두 사람의 그림자라도 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는 것은 붉은 벽난로가 비추어주는 붉은색의 그리움뿐.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붉은 바이올린 케이스. 라네아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이올린 케이스 앞에 앉았다. 그리고 케이스를 천천히 열어보았다. 핏빛 와인으로 물들인 것 같은 샤콘느. 그녀가 전해 들은 가장 슬픈 전설이 서려있는 바이올린.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칼에게 가버린 그녀의 또다른 사랑. 그녀는 마치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듯 샤콘느를 쓰다듬었다.
“너는 알겠구나. 너는...”
그녀의 손길을 받은 샤콘느의 음영은 점점 짙어져 갔다.
“내가 제일로 좋아했던 사람이 떠나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도 내 곁을 떠나고 이제 남은건 그와 나의 마지막 줄인데.. 그것도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너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테지만...”
파르르 떨리는 검붉은 샤콘느의 현. 그리고 라네아의 떨리는 한줄기 손가락.
마른 장작이 들려주는 따스한 소리에 라네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너무나도 슬픈 음악소리. 샤콘느가 내보내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눈물이 만들어 내는 화음. 구름에 가려졌던 룬의 빛이 다시금 나타나 창문을 통해 그녀와 샤콘느를 따스히 비추어 주었다.
라네아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왼손에 잡혀 있는 샤콘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케이스에 놓여져 있는 활을 꺼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샤콘느를 그녀의 어깨에 올려 놓았다.
창문을 통해 내려온 달빛에 비춰진 금발의 여자. 그리고 핏빛의 붉은 바이올린. 그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붉은 눈물. 천천히 현 위에서 떨기 시작한 활.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그녀의 어깨 위에서 울리기 시작하였다. 너무나도 낮은 음영. 그리고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는 선의 춤. 지금까지 사랑했었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그녀의 손 위에서 울려퍼지고 그 기억들은 하나 둘 저 룬의 빛에 이끌려 나아갔다. 그녀의 옷깃을 적시는 투명한, 그러나 붉은 눈물과 점점 떨려지는 어깨. 점점 뿌옇게 보이는 벽에 걸려있는 그의 얼굴. 그리고 바이올린의 선율과 함께 춤을 추면서 웃고 있는 그. 그의 어깨에서 흔들리는 피로 물들여진 아스완제국의 망토. 그녀의 반주에 맞추어 바이올린의 선율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그. 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갈색 곱슬머리의 작은 소년. 소년도 그녀를 향해 웃어보였다.
선율이 점점 높아지면서 그의 춤동작은 더욱 격해졌다. 그의 곁에서 흩어져 내리는 새하얀 빛. 그리고 땅을 적시는 검은 그림자. 그녀가 가장 바래오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만 했었던 순간. 하지만 다시금 낮아지는 음영.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 그녀의 옆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소년. 하지만 그녀의 음은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결국 사라져 버린 그의 자리에 남아있는 건 피로 물들여진 붉은색의 망토 뿐. 하지만 소년은 저 멀리서 계속 연주를 하고 있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와 소년. 그리고 이어져 내리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
그녀는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빛. 그리고 그 빛 속에 혼자 있는 그녀. 끊어지는 선율과 함께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마른 장작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타는 소리를 낼 뿐. 어깨에서 흘러 내려오는 금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 머리카락 밑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투명한 눈물.
그녀는 샤콘느를 내려 활과 함께 살며시 케이스안에 넣었다. 샤콘느가 보여준 그녀에 대한 마지막 선물-그녀가 가장 바래왔던.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앞으로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비참한 기분이 든 그녀는 결국 주저 앉았다. 앞으로 오지 않을 시간이었기에 그녀에게는 바라지 않았던 시간이었기에, 아니 앞으로 생각해선 안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빛바랜 금색의 목걸이. 그녀는 목걸이에 걸려 있는 로켓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곳에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지막 유품. 그리고 전쟁터에서 만난 그에게 걸어준 그녀의 목걸이. 그의 모습은 초췌했어도 막 태어난 칼이 보여주는 웃음에는 같이 웃어주고, 울면 달래주는 그. 그녀는 로켓의 뚜껑을 열었다. 안쪽에 음각되어져 있는 그녀와 막 태어난 칼의 얼굴. 하지만 거기엔 없는 한 사내의 얼굴이 그녀의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녀는 웃으면서 한 사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을...
미네바.
이제 무관심 무관념의 초기 소설연재로 돌아갑니다....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듯 하네요.. ^^;..
조금씩 노트에 써내려 가는 중이라..
이 소설도 7000짤 노트 한 1/3정도는 써내려갔네요.
이제 인터넷에 조금씩 올리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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