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靑月] 그리고 월계계승전[月界繼承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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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사실, 그렇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라고 이해해버렸다. 알카드는 창가로 다가가서 햇살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기만 했다. 알카드는 피식 웃으면서 허탈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내가 봤던 평행세계의 그곳.. 정말이지 웃긴 일이었어. 고작 우리의 세계를 복구하기 위한 것 치고는 너무나도 완벽했던거야. 그래. 그곳에서는 너희와 같은 사람이 살았어. 그리고 모든 생명종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걸 우리는 모두 소멸시켰어. 아카식 레코드에 그 모든것을 우겨 쳐넣었던 것이지. 그리고 이 세계를 복구시켰어. 웃기지 않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소멸당해버린거야.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물조차도 아카식 레코드에 쳐밖혀져서,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존재들로.."
알카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커텐을 거칠게 창문에 휘둘러쳤다. 시엘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푸른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서는 가방을 들쳐매었다. 그리고는 알카드를 향해 예의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말했다.
"그건 당신이 맡은 운명, 결코 누군가도 맡을 수 없었던 것이죠. 운명은 장난스럽답니다.. 하지만 그 장난스러움은 결코 후회가 없는 장난스러움.. 당신이라면 이해하실테죠?"
"..그래..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래서 더 아프군."
알카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시엘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시엘 역시 거부하지 않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잠시동안 시엘을 바라보던 알카드는 곧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너나 그 녀석이나 너무나도 똑같아. 하나같이 멋대로인 성격."
"그러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래뵈도 대학생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시엘은 나가버렸다. 곧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카드는 낮게 웃고서는 곧 벽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
"어째서.. 어째서 입니까.."
아키하는 쥐어짜듯이 말했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싱긋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키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아키하의 붉은 머릿결이 그를 감싸 들어갔지만, 그의 몸 주변에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있듯이, 그저 이리저리 밀려날 뿐이었다.
"어째서냐고? 너희 토오노가에 흐르는 마(魔)의 힘이 필요할 뿐이지."
"다.. 닥치세요!"
"그럼그럼.. 난 이래뵈도 조용히 닥치고 있었지. 이제 그만 갈까? 아키하?"
"싫어.. 싫어엇! 나는! 나는 당신들과 같은 것이 되고 싶지 않아!"
아키하는 그렇게 외쳤다. 그러자 상대는 멈춰섰다. 그리고는 아키하를 흘겨보면서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천천히 아키하의 곁을 지나서 거울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토오노가에 흐르는 마의 힘은 사실 우리와는 조금 거리가 멀 뿐이야. 그래 어쩌면 청월과도 연관이있을지도.. 훗! 그렇군. 어차피 서두르지 않아도 넌 변화할테니까. 쿡쿡.. 마(魔)의 힘이란 원래부터 사람을 망쳐왔으니까."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알카드처럼 벽으로 스며들 듯이..
아키하는 고개를 숙이고서는 몸을 떨면서 조그맣게 중얼 거렸다.
"아니야. 난.. 나는 아니야."
맑은 액체가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져 내렸다.
***
"시엘 선배?"
"에.. 토오노군? 뭔가 조금 더 집중하셨으면 합니다만.."
시엘은 싱긋 웃고서는 다시 교재로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시키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시엘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시키는 다시 시엘의 팔을 펜으로 콕콕 찌르면서 조그맣게 말했다.
"그러니까 말야 선배가 어떻게 이곳에 온거야?"
"하.. 토오노군은 뭔가 쓸때없는 곳에는 예민하군요."
곧 시엘은 조용히 일어나서 나갔다. 물론 시키에게 몰래 따라나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시키는 시엘이 나간뒤 교수의 눈총을 피하며 걸어나갔다. 강의실 밖의 복도에는 시엘이 싱긋 웃으면서 어느새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 서있었다. 시키는 시엘에게로 곧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우아.. 선배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거야?"
"아주 간단해요. 유학생으로 왔어요."
"유.학.생?"
시키가 또박또박 낱말을 띄어서 말하지 시엘은 "쿡.." 하고 웃더니 곧 시키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예. 그 유.학.생.입니다. 토오노군? 이래뵈도 저 법왕청에서 대학급의 학력을 마쳤답니다. 또 로어의 지식도 있었구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법왕청에서 유학생이라고 밀어만 준다면야 못 올 것도 없죠."
시엘은 다시 싱긋 웃었다. 시키는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시엘처럼 복도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는 음료수 캔의 뚜껑을 따고서 내용물을 들이마셨다. 역시나.. 독한 탄산음료답게 목에는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콜록콜록.. 우하아!?"
"토오노군? 그건 탄산음료니까 조금은 천천히 마시지 않으면 위험하다구요."
"선배.. 그런건 조금 일찍 말해주는게 낳지 않을까 한데?"
"아! 그랬었지요. 하지만 이것으로 토오노군의 귀여운 모습하나를 더 추가했네요."
뭔가.. 이 사람은 무섭다고 느끼는 시키였다.
어느새 수업은 끝났고, 시키와 시엘은 강의실에서 가방을 꺼내왔다. 아직도 해는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시엘은 가방에 교재를 넣고 있었다. 시키는 잠깐 볼을 긁적이다가 곧 입을 열었다.
"저기 선배?"
"왜 그러시죠? 토오노군?"
"그냥. 오랫만에 선배로서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뭐해서 말야."
"확실히.. 그동안은 시엘이라는 사람으로만 만났었죠?"
시엘은 얼굴을 살짝 흐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곧 다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토오노구느이 말은.. 마치 데이트신청과 똑같다는 것 아세요?"
"에.. 그런가? 아무튼 선배 시간 있다면 같이 갈래요? 마침 맛있는 스파게티 집도 알고 있고, 게다가 아리히코와도 만나기로 했었고, 그녀석 시엘 선배를 보면 아마도 좋아하겠지?"
"예. 그 이누이군이라면요."
간단하게 오후일정을 잡은 시키와 시엘은 곧 아리히코와 함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간단하게, 토마토 스파게티, 해물 크림 스파게티, 그리고 카레 스파게티로 정해져 버렸다. 대학교 근처의 음식점이 으레 그렇듯이, 아늑한 분위기가 감도는 음식점 이었다. 시키는 해물 크림 스파게티를 포크에 감아서 입으로 가져갔다. 시엘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포크와 스푼을 이용해 면을 감아올렸다. 다만 아리히코는 면을 감지도 않고, 통째로 건져먹고 있었다. 조용한 음식점 사이로 들려오는 것은 아리히코의 웃음소리였다.
"그런데 선배? 대체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거야?"
"어느 학교라고 딱히 물어보신다면.. 그냥 바티칸에 있었다고 할까요?"
시엘은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결국 아리히코는 참지를 못하고 오른손 검지를 펴면서 휘파람을 불어댔다. 시키는 열심히 스파게티 면을 말아서 입에 넣고 있었다. 시엘은 싱긋 웃으면서 포크와 스푼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두분은 어쩌다가 다시 같은 학교에?"
"와하하핫! 토오노 이녀석은 약하잖아. 그러니까 이 녀석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이거였지."
"아니 정정하지. 내가 미사키 현립 대학을 간다고 했을때 성적도 안돼면서 같이 입학원서를 낸 사람이 어디의 누구였더라?"
"그런거 알게뭐냐? 시키. 이래뵈도 당당히 합격한 학생이라고."
아리히코는 가슴을 탕탕치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엘도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놀라는 듯이 말했다.
"이누이군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군요?"
"물론이지!"
"..못 말리겠네.."
***
"상당히 웃기는군."
사내는 좀전부터 계속해서 낮게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 뭔가 불안한 듯이 주위를 살피는 청년은 곧 다시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는 웃음을 멈추고서는 곧 의자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그러자 펼쳐지는 어두운 흑림..
"이모럴 장로님. 어찌하실 껍니까?"
"어시밀라. 어찌해야 할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청월이 되 살아났어. 조금은 웃기는군. 그거야 말로 우리의 존재자체가 부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이를 "뿌드득!"하고 갈았다. 청년은 가만히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낮이지만, 흑림을 꿇고서 지면까지 내려오는 빛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이곳은 마치, 달빛이 비취는 밤처럼 희끄무레했다. 사내는 곧 몸을 돌려서 청년을 지나 방문을 열었다.
"가자. 우리에게는 아직 처리해야할 일이 남아있어."
"예의.. 그 일 말입니까?"
"그래. 마왕으로 변한 진조의 처형을 집행해야 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나에게 잠시 맡겨진 사명이지."
어두운 천년성의 복도로 사내와 청년은 사라져갔다. 다시 어두운 천년성의 복도를 따라서 올라가 다른 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푸른 머릿결의 청년이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그 눈은 이전과는 다르게 약간은 비통과 공허함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천년성의 상층부에 머물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온 청년에게도 그 당시의 소식은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어서 였을까? 청년의 행동 하나하나마다 고뇌가 흘러넘쳤다. 헤레시.. 이단의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청년.. 푸른장미로 불리우던 그 젊은 진조는 지금 수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레이카. 너 말야. 이번에는 내가 알아서 무마하기엔 너무 크게 일을 벌렸다고."
헤레시는 곧 일어서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서, 거의 나가본 적이 없던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레이카. 아무도 너의 끝을 장식하게 하지는 않겠어. 이 손으로.. 이 손으로 끝낼테니까."
헤레시도 어두운 천년성의 복도로 사라져갔다. 다만 그의 방에서는 전혀 맡아본 적이 없던 향기가 퍼져나고 있었다. 이 세상의 향기가 아닌 것 같은 향기..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단의 꽃.. 푸른 장미의 향기가 퍼져나고 있었다.
***
"끝났군."
금발의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소녀의 뒤로는 청록빛 머릿결을 지닌 청년이 서서 싱긋 웃고 있었다.
"아버지.. 한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해줘."
"그 때에.. 어째서 아버지는 신의 곁으로 돌아가셨던 것입니까? 저희들의 힘을 모아서.."
그러자 소녀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다시 청록빛의 청년을 바라봤다. 청록빛과 푸른빛의 각기 다른 눈으로..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 그건 나도 잘은 몰라. 다만 나는 너와 같아. 나의 일부는 고귀한 천사의 것이야. 그래 루시펠이라 불리우는 대천사의.. 그는 돌아갔어. 신의 곁으로."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이제와서 루시퍼와 루시펠이 갈라진다 하여도 신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텐데.."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스스로 어이가 없었는지 허탕하게 웃어버렸다. 하지만 소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푸른 달빛..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가이아를 타락시키면서까지 머물려고 했던 푸른 달빛.. 루시퍼는 다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어쩌면 바보일꺼야. 너무도 그 분을 사랑한 나머지 이렇게 스스로를 망쳤잖아."
"그렇군요.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루시펠이었군요."
"아마도. 여기 이렇게 있는 나는.. 그냥 단순한 힘덩어리지. 신께서 루시펠을 어ㅏ떻게 하셨는지는 나도 몰라. 난 더 이상 목적도, 목표도 없는 힘의 집합체니까."
"조금더 아버지 답게 변하신 겁니까?"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가운 밤바람이 한차례 소녀의 긴 금발을 쓸고 지나갔다. 소녀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곧 생각이 난 것처럼 베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월계계승전을 치루겠다는 의식은 뚜렷해."
"그렇군요.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수고해줘. 미루일.. 아니 마몬.."
- More To Life [Briss Remixed] -
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사실, 그렇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라고 이해해버렸다. 알카드는 창가로 다가가서 햇살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기만 했다. 알카드는 피식 웃으면서 허탈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내가 봤던 평행세계의 그곳.. 정말이지 웃긴 일이었어. 고작 우리의 세계를 복구하기 위한 것 치고는 너무나도 완벽했던거야. 그래. 그곳에서는 너희와 같은 사람이 살았어. 그리고 모든 생명종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걸 우리는 모두 소멸시켰어. 아카식 레코드에 그 모든것을 우겨 쳐넣었던 것이지. 그리고 이 세계를 복구시켰어. 웃기지 않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소멸당해버린거야.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물조차도 아카식 레코드에 쳐밖혀져서,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존재들로.."
알카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커텐을 거칠게 창문에 휘둘러쳤다. 시엘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푸른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서는 가방을 들쳐매었다. 그리고는 알카드를 향해 예의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말했다.
"그건 당신이 맡은 운명, 결코 누군가도 맡을 수 없었던 것이죠. 운명은 장난스럽답니다.. 하지만 그 장난스러움은 결코 후회가 없는 장난스러움.. 당신이라면 이해하실테죠?"
"..그래..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래서 더 아프군."
알카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시엘에게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시엘 역시 거부하지 않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잠시동안 시엘을 바라보던 알카드는 곧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너나 그 녀석이나 너무나도 똑같아. 하나같이 멋대로인 성격."
"그러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래뵈도 대학생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시엘은 나가버렸다. 곧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카드는 낮게 웃고서는 곧 벽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
"어째서.. 어째서 입니까.."
아키하는 쥐어짜듯이 말했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싱긋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키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아키하의 붉은 머릿결이 그를 감싸 들어갔지만, 그의 몸 주변에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있듯이, 그저 이리저리 밀려날 뿐이었다.
"어째서냐고? 너희 토오노가에 흐르는 마(魔)의 힘이 필요할 뿐이지."
"다.. 닥치세요!"
"그럼그럼.. 난 이래뵈도 조용히 닥치고 있었지. 이제 그만 갈까? 아키하?"
"싫어.. 싫어엇! 나는! 나는 당신들과 같은 것이 되고 싶지 않아!"
아키하는 그렇게 외쳤다. 그러자 상대는 멈춰섰다. 그리고는 아키하를 흘겨보면서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천천히 아키하의 곁을 지나서 거울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토오노가에 흐르는 마의 힘은 사실 우리와는 조금 거리가 멀 뿐이야. 그래 어쩌면 청월과도 연관이있을지도.. 훗! 그렇군. 어차피 서두르지 않아도 넌 변화할테니까. 쿡쿡.. 마(魔)의 힘이란 원래부터 사람을 망쳐왔으니까."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알카드처럼 벽으로 스며들 듯이..
아키하는 고개를 숙이고서는 몸을 떨면서 조그맣게 중얼 거렸다.
"아니야. 난.. 나는 아니야."
맑은 액체가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져 내렸다.
***
"시엘 선배?"
"에.. 토오노군? 뭔가 조금 더 집중하셨으면 합니다만.."
시엘은 싱긋 웃고서는 다시 교재로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시키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시엘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시키는 다시 시엘의 팔을 펜으로 콕콕 찌르면서 조그맣게 말했다.
"그러니까 말야 선배가 어떻게 이곳에 온거야?"
"하.. 토오노군은 뭔가 쓸때없는 곳에는 예민하군요."
곧 시엘은 조용히 일어나서 나갔다. 물론 시키에게 몰래 따라나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시키는 시엘이 나간뒤 교수의 눈총을 피하며 걸어나갔다. 강의실 밖의 복도에는 시엘이 싱긋 웃으면서 어느새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 서있었다. 시키는 시엘에게로 곧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우아.. 선배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거야?"
"아주 간단해요. 유학생으로 왔어요."
"유.학.생?"
시키가 또박또박 낱말을 띄어서 말하지 시엘은 "쿡.." 하고 웃더니 곧 시키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예. 그 유.학.생.입니다. 토오노군? 이래뵈도 저 법왕청에서 대학급의 학력을 마쳤답니다. 또 로어의 지식도 있었구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법왕청에서 유학생이라고 밀어만 준다면야 못 올 것도 없죠."
시엘은 다시 싱긋 웃었다. 시키는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시엘처럼 복도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는 음료수 캔의 뚜껑을 따고서 내용물을 들이마셨다. 역시나.. 독한 탄산음료답게 목에는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콜록콜록.. 우하아!?"
"토오노군? 그건 탄산음료니까 조금은 천천히 마시지 않으면 위험하다구요."
"선배.. 그런건 조금 일찍 말해주는게 낳지 않을까 한데?"
"아! 그랬었지요. 하지만 이것으로 토오노군의 귀여운 모습하나를 더 추가했네요."
뭔가.. 이 사람은 무섭다고 느끼는 시키였다.
어느새 수업은 끝났고, 시키와 시엘은 강의실에서 가방을 꺼내왔다. 아직도 해는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시엘은 가방에 교재를 넣고 있었다. 시키는 잠깐 볼을 긁적이다가 곧 입을 열었다.
"저기 선배?"
"왜 그러시죠? 토오노군?"
"그냥. 오랫만에 선배로서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뭐해서 말야."
"확실히.. 그동안은 시엘이라는 사람으로만 만났었죠?"
시엘은 얼굴을 살짝 흐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곧 다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토오노구느이 말은.. 마치 데이트신청과 똑같다는 것 아세요?"
"에.. 그런가? 아무튼 선배 시간 있다면 같이 갈래요? 마침 맛있는 스파게티 집도 알고 있고, 게다가 아리히코와도 만나기로 했었고, 그녀석 시엘 선배를 보면 아마도 좋아하겠지?"
"예. 그 이누이군이라면요."
간단하게 오후일정을 잡은 시키와 시엘은 곧 아리히코와 함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간단하게, 토마토 스파게티, 해물 크림 스파게티, 그리고 카레 스파게티로 정해져 버렸다. 대학교 근처의 음식점이 으레 그렇듯이, 아늑한 분위기가 감도는 음식점 이었다. 시키는 해물 크림 스파게티를 포크에 감아서 입으로 가져갔다. 시엘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포크와 스푼을 이용해 면을 감아올렸다. 다만 아리히코는 면을 감지도 않고, 통째로 건져먹고 있었다. 조용한 음식점 사이로 들려오는 것은 아리히코의 웃음소리였다.
"그런데 선배? 대체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거야?"
"어느 학교라고 딱히 물어보신다면.. 그냥 바티칸에 있었다고 할까요?"
시엘은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결국 아리히코는 참지를 못하고 오른손 검지를 펴면서 휘파람을 불어댔다. 시키는 열심히 스파게티 면을 말아서 입에 넣고 있었다. 시엘은 싱긋 웃으면서 포크와 스푼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두분은 어쩌다가 다시 같은 학교에?"
"와하하핫! 토오노 이녀석은 약하잖아. 그러니까 이 녀석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이거였지."
"아니 정정하지. 내가 미사키 현립 대학을 간다고 했을때 성적도 안돼면서 같이 입학원서를 낸 사람이 어디의 누구였더라?"
"그런거 알게뭐냐? 시키. 이래뵈도 당당히 합격한 학생이라고."
아리히코는 가슴을 탕탕치면서 말했다. 그러자 시엘도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놀라는 듯이 말했다.
"이누이군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군요?"
"물론이지!"
"..못 말리겠네.."
***
"상당히 웃기는군."
사내는 좀전부터 계속해서 낮게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 뭔가 불안한 듯이 주위를 살피는 청년은 곧 다시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는 웃음을 멈추고서는 곧 의자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그러자 펼쳐지는 어두운 흑림..
"이모럴 장로님. 어찌하실 껍니까?"
"어시밀라. 어찌해야 할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청월이 되 살아났어. 조금은 웃기는군. 그거야 말로 우리의 존재자체가 부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이를 "뿌드득!"하고 갈았다. 청년은 가만히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낮이지만, 흑림을 꿇고서 지면까지 내려오는 빛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이곳은 마치, 달빛이 비취는 밤처럼 희끄무레했다. 사내는 곧 몸을 돌려서 청년을 지나 방문을 열었다.
"가자. 우리에게는 아직 처리해야할 일이 남아있어."
"예의.. 그 일 말입니까?"
"그래. 마왕으로 변한 진조의 처형을 집행해야 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나에게 잠시 맡겨진 사명이지."
어두운 천년성의 복도로 사내와 청년은 사라져갔다. 다시 어두운 천년성의 복도를 따라서 올라가 다른 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푸른 머릿결의 청년이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그 눈은 이전과는 다르게 약간은 비통과 공허함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천년성의 상층부에 머물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온 청년에게도 그 당시의 소식은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어서 였을까? 청년의 행동 하나하나마다 고뇌가 흘러넘쳤다. 헤레시.. 이단의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청년.. 푸른장미로 불리우던 그 젊은 진조는 지금 수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레이카. 너 말야. 이번에는 내가 알아서 무마하기엔 너무 크게 일을 벌렸다고."
헤레시는 곧 일어서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서, 거의 나가본 적이 없던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레이카. 아무도 너의 끝을 장식하게 하지는 않겠어. 이 손으로.. 이 손으로 끝낼테니까."
헤레시도 어두운 천년성의 복도로 사라져갔다. 다만 그의 방에서는 전혀 맡아본 적이 없던 향기가 퍼져나고 있었다. 이 세상의 향기가 아닌 것 같은 향기..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단의 꽃.. 푸른 장미의 향기가 퍼져나고 있었다.
***
"끝났군."
금발의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소녀의 뒤로는 청록빛 머릿결을 지닌 청년이 서서 싱긋 웃고 있었다.
"아버지.. 한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해줘."
"그 때에.. 어째서 아버지는 신의 곁으로 돌아가셨던 것입니까? 저희들의 힘을 모아서.."
그러자 소녀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다시 청록빛의 청년을 바라봤다. 청록빛과 푸른빛의 각기 다른 눈으로..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 그건 나도 잘은 몰라. 다만 나는 너와 같아. 나의 일부는 고귀한 천사의 것이야. 그래 루시펠이라 불리우는 대천사의.. 그는 돌아갔어. 신의 곁으로."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이제와서 루시퍼와 루시펠이 갈라진다 하여도 신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텐데.."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스스로 어이가 없었는지 허탕하게 웃어버렸다. 하지만 소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푸른 달빛..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가이아를 타락시키면서까지 머물려고 했던 푸른 달빛.. 루시퍼는 다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어쩌면 바보일꺼야. 너무도 그 분을 사랑한 나머지 이렇게 스스로를 망쳤잖아."
"그렇군요.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루시펠이었군요."
"아마도. 여기 이렇게 있는 나는.. 그냥 단순한 힘덩어리지. 신께서 루시펠을 어ㅏ떻게 하셨는지는 나도 몰라. 난 더 이상 목적도, 목표도 없는 힘의 집합체니까."
"조금더 아버지 답게 변하신 겁니까?"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가운 밤바람이 한차례 소녀의 긴 금발을 쓸고 지나갔다. 소녀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곧 생각이 난 것처럼 베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월계계승전을 치루겠다는 의식은 뚜렷해."
"그렇군요.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수고해줘. 미루일.. 아니 마몬.."
- More To Life [Briss Remix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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