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月話...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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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오오오~"
비가 오려는 듯이 바람이 거칠게 등줄기를 쓸어갔다. 시엘은 어둠의 한 가운데에 서서 곧장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눈을 뜬 어둠은 모든 존재에게 자신의 몸뚱아리를 들이밀고, 모든 존재는 그 몸 가운데에서 잠이 들 것이다.
"휘오오오~ 츠카칵!? 휘오오오~"
거친 바람소리 가운데에 뭔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시엘의 법의 팔뚝 부분이 벌어지고, 시엘의 문신이 살며시 비쳤다. 시엘은 곧장 높이 뛰어올라 제비돌기와 함께 강한 회전을 먹은 흑건은 날린다. 거친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파공성, 그리고 어둠의 푸른 눈을 꿰뚫는 빛줄기가 한 점에 찍힌다.
"파아아아~ 파캉!"
움푹 파인 지면과 여기저기 흩어진 살점들, 그리고 반동을 못이기고 높이 치솟아 오르는 검, 시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점을 바라봤다. 대상은 소멸한 것인가? 마치 확인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곧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움푹파인 지면 앞까지온 그녀는 조용히 서있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간다. "오늘은 여기까지 인가?" 라는 말이 바람결에 묻혀서 들려왔다.
"휘오오오~"
***
"선배 요즘 밤에 일하시나요?"
시키는 예의 멍한 표정으로 시엘에게 물었다.
시엘은 나뭇가지에서 꿈쩍도 않은채 늘어뜨린 팔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예. 조금 피곤하네요. 토오노군."
"하아.. 역시 그 일 때문인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은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시키의 발소리가 점차적으로 멀어져갔다.
시엘은 얼굴을 덮고 있는 책을 살짝 들췄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시키의 뒷모습을 보면서 뭔지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씁쓸한 말투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했다.
"토오노 군은.. 더 이상 밤의 세계에 있어서는 안될테니까요."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책을 덮었다.
지금은 낮이다.
하지만 책을 덮은 시점에서 시엘에게는 그녀만의 밤이 찾아왔다.
천천히 그녀는 과거를 돌아본다.
어디서 부터인가 잘못 되었다.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그리고 뭔가 잘못 되어감을 알았을 때의 괴로움이 몰려와 가슴에 벽을 쌓았다. 알 수 없다는 듯이, 책을 집어 들고서는 눕혔던 상체를 일으켰다. 언제나 따스한 햇살이 적당히 비취는 나뭇가지 위라지만, 이미 날씨는 쌀쌀한 초겨울이었다. 이런 곳에서 잠들었다가는, 2~3일 정도는 감기로 고생할게 뻔했다. 이미 몸은 충분히 차가워 졌다.
"후우.. 요즘 들어서 왜이럴까요? 정말로.."
시엘은 대상없는 한탄을 내뱉어 놓고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다시 날은 저물어 버렸다. 너무도 빠른 시간의 흐름이랄까?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간간히 느껴지는 차가운 빗방울, '초겨울의 비인가?' 시엘의 작은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가로등이 켜졌다. 시엘은 몸을 띄워 건물 사이로 날아올랐다. 이리저리 뛰어가는 그녀의 행동에는 아무런 소음도 없었다. 아담한 체구와는 달리, 그녀의 모든 충격을 받아들일 정도로 잘 발달된 근육은 아무런 소음도 없이 움직이는 것을 돕고 있었다.
"오늘은 나타나실 껀가요?"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빠르게 검을 날렸다. 운이 좋았을까?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퍼졌다. 시엘은 매달렸던 벽에서 빠르게 튀어나와 검의 궤도를 뒤 쫓았다. 곧 대상의 모습이 보였다. 시엘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상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표범처럼 천천히 다가갔다.
"오랫만이네요. 뱀.."
"크큭.. 시엘.. 날 쫓아 올 줄 알았다. 그래.. 이번에도 날 죽여야 겠지?"
"그럼요.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어주셔야 겠어요. 토오노군에게 치명상을 입었던 당신으로서는 지금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겠지요.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 언제나 공주와 너는 날 노렸었지. 처음에는 뭔가를 바라고 있던 것도 같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모르게 되었지. 게다가 지금은 무엇을 해야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군."
아직 확실히 각성하지 않은, 아니 할 수 없는 로어의 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하지만 시엘은 가차없이 검을 던졌다. 다시 울려퍼지는 둔탁한 파열음은.. 이미 없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흰 그림자. 금발에 붉은 눈을 반짝이며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진조가 보였다.
"카레괴물이 뭘 하나 했더니, 사냥 중이었네?"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무슨 일이시죠?"
"이 녀석은 내가 죽일꺼야. 너는 이만 손때기를 바래."
"저도 그 분을 제 손으로 끝내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냥은 안될 것 같군요."
시엘은 흑건을 더욱 꽉 잡았다. 얼마만일까? 이런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은, 이전의 생활은 하품만 나올 것 같은 느낌, 시엘은 잔뜩 기대감을 갖고서 알퀘이드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만둘레. 괜히 너만 좋은 일 시키는거 아냐?"
"겁나시는 건가요? 후후.."
"아니. 넌 지금 너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로어의 처리라면, 조금더 확실한게 좋겠지? 시키에게 맡기자고.."
"설마.. 당신!?"
"선배는 거짓말쟁이로군요."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시엘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더듬 거리면서 말을 찾기 시작했다.
"저.. 토오노군?"
"괜찮아요. 이제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하니까요."
시키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안경을 벗어 들었다. 로어는 아까전부터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도 잊은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키가 자신을 바라보자, 허탈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아.. 그 눈.. 기억이 나는군. 나의 존재의 의미마저 죽이던 그 눈을..."
"기억해 줘서 고맙네. 하지만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야. 어떻게 할래?"
"이젠.. 그만 둬야겠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없으니까. 어차피 지금 평온히 죽어도 다음대에서는 내가 발현 될지도 모르겠어. 점점 희석화 되어 나중에는 존재가 사라지겠지.."
로어는 담담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시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시엘을 바라보았다. 시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퀘이드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다시 로어를 노려보며 담담히 내뱉었다.
"그럼 이만.."
"스슷!"
별다른 소음도 없이 로어의 몸은 분해되어 갔다. 시키는 완전히 재가되어 날려가는 로어를 등진채, 시엘과 알퀘이드를 바라보았다. 이로써, 오래된 악연을 끝났다. 천년을 이어져 오던 악연은 마무리 된 것이다. 시엘은 자신의 팔뚝을 들춰보았다. 화려하게 장식 되었던 문신은.. 사라졌다. 시엘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지어보는 표정, 무척 귀여운 미소.. 시엘은 입을 열었다.
"이제 끝이군요. 기나긴 악몽은.."
"응."
"쏴아아아!"
초겨울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차갑지도, 따스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저.. '기분 좋은 비' 라고 말할 정도로 내렸다. 11월의 끝자락.. 천년의 악몽의 책은 접혔다.
***
"후후후.. 카이스케.. 잡았다."
레이카는 화사한 미소를 띄우고서는 카이스케를 바라보았다. 카이스케는 멍한 눈으로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레이카는 그대로 카이스케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찰싹! 찰싹!"
카이스케의 고개는 획 돌아갔다. 하지만 레이카의 손길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이윽고, 손을 멈춘 레이카는 천천히 카이스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가둔거니? 너의 정신을? 너무한다. 이러면 널 죽여도 재미 없잖아.."
레이카는 심심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한후에 카이스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나갔다. 곧 헤레시가 피곤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말했다.
"일은 일으키지 말라구. 지난 번처럼 얼티밋이라도 다시 찾아오는 날에는 내 존재가 사라져 있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몰라.."
"설마~"
레이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빛줄기와 함께 몸을 띄웠다. 빛줄기는 이곳저곳을 지나가며,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향했다. 곧 어두운 문이 열리고, 주위로는 비슷한 빛줄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서로끼리 부딫힐때마다, 어디선가 하얀빛이 쏘아져 부딫힌 빛줄기를 갈라버렸다. 레이카의 빛줄기는 능숙하게 다른 빛줄기들을 피하며 다른 문으로 빠져들었다.
"슈하아아!"
곧 넓은 창공으로 빠져나온 빛줄기는 레이카와 카이스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자아~ 카이스케~ 정신을 차리고 오려무나.. 괴롭힘은 그 다음이란다.."
레이카는 카이스케를 그대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카이스케는 구체에 휩싸이면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언덕위의 익숙한 집으로.. 레이카는 곧 다시 빛줄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천천히 떨어져 내리던 구체는 곧 땅에 닿자, 임무를 마친듯이 자연스럽게 대기중으로 녹아들어갔다. 카이스케는 여전히 멍하니 떨어져 내리던 자세로 쓰러져서는 인형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쏴아아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초겨울의 비는 세차게 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슬비처럼 흩뿌려지지도 않을 정도로 내렸다. 카이스케의 손이 살며시 모아졌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눈물은 빗물과 섞이고, 그리고 땅으로 떨어져 흙속에 스며들어 갔다. 카이스케는 천천히 후들거리는 팔을 휘저으며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잡히는 것도 없이 빗줄기만 이리저리 휘젖고 있었다.
곧 소년의 손 주위가 울렁이기 시작했다. 시간의 요동에 근처의 대기가 급격한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쇠하여 버리고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애처롭기도 하고, 광포하기도 한 외침이 울려퍼져 나갔다.
"쏴아아아~"
11월의 끝자락..
-More to Life-
비가 오려는 듯이 바람이 거칠게 등줄기를 쓸어갔다. 시엘은 어둠의 한 가운데에 서서 곧장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눈을 뜬 어둠은 모든 존재에게 자신의 몸뚱아리를 들이밀고, 모든 존재는 그 몸 가운데에서 잠이 들 것이다.
"휘오오오~ 츠카칵!? 휘오오오~"
거친 바람소리 가운데에 뭔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시엘의 법의 팔뚝 부분이 벌어지고, 시엘의 문신이 살며시 비쳤다. 시엘은 곧장 높이 뛰어올라 제비돌기와 함께 강한 회전을 먹은 흑건은 날린다. 거친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파공성, 그리고 어둠의 푸른 눈을 꿰뚫는 빛줄기가 한 점에 찍힌다.
"파아아아~ 파캉!"
움푹 파인 지면과 여기저기 흩어진 살점들, 그리고 반동을 못이기고 높이 치솟아 오르는 검, 시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점을 바라봤다. 대상은 소멸한 것인가? 마치 확인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곧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움푹파인 지면 앞까지온 그녀는 조용히 서있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간다. "오늘은 여기까지 인가?" 라는 말이 바람결에 묻혀서 들려왔다.
"휘오오오~"
***
"선배 요즘 밤에 일하시나요?"
시키는 예의 멍한 표정으로 시엘에게 물었다.
시엘은 나뭇가지에서 꿈쩍도 않은채 늘어뜨린 팔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예. 조금 피곤하네요. 토오노군."
"하아.. 역시 그 일 때문인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은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시키의 발소리가 점차적으로 멀어져갔다.
시엘은 얼굴을 덮고 있는 책을 살짝 들췄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시키의 뒷모습을 보면서 뭔지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씁쓸한 말투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했다.
"토오노 군은.. 더 이상 밤의 세계에 있어서는 안될테니까요."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책을 덮었다.
지금은 낮이다.
하지만 책을 덮은 시점에서 시엘에게는 그녀만의 밤이 찾아왔다.
천천히 그녀는 과거를 돌아본다.
어디서 부터인가 잘못 되었다.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그리고 뭔가 잘못 되어감을 알았을 때의 괴로움이 몰려와 가슴에 벽을 쌓았다. 알 수 없다는 듯이, 책을 집어 들고서는 눕혔던 상체를 일으켰다. 언제나 따스한 햇살이 적당히 비취는 나뭇가지 위라지만, 이미 날씨는 쌀쌀한 초겨울이었다. 이런 곳에서 잠들었다가는, 2~3일 정도는 감기로 고생할게 뻔했다. 이미 몸은 충분히 차가워 졌다.
"후우.. 요즘 들어서 왜이럴까요? 정말로.."
시엘은 대상없는 한탄을 내뱉어 놓고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다시 날은 저물어 버렸다. 너무도 빠른 시간의 흐름이랄까?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간간히 느껴지는 차가운 빗방울, '초겨울의 비인가?' 시엘의 작은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가로등이 켜졌다. 시엘은 몸을 띄워 건물 사이로 날아올랐다. 이리저리 뛰어가는 그녀의 행동에는 아무런 소음도 없었다. 아담한 체구와는 달리, 그녀의 모든 충격을 받아들일 정도로 잘 발달된 근육은 아무런 소음도 없이 움직이는 것을 돕고 있었다.
"오늘은 나타나실 껀가요?"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빠르게 검을 날렸다. 운이 좋았을까?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퍼졌다. 시엘은 매달렸던 벽에서 빠르게 튀어나와 검의 궤도를 뒤 쫓았다. 곧 대상의 모습이 보였다. 시엘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상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표범처럼 천천히 다가갔다.
"오랫만이네요. 뱀.."
"크큭.. 시엘.. 날 쫓아 올 줄 알았다. 그래.. 이번에도 날 죽여야 겠지?"
"그럼요.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어주셔야 겠어요. 토오노군에게 치명상을 입었던 당신으로서는 지금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겠지요.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 언제나 공주와 너는 날 노렸었지. 처음에는 뭔가를 바라고 있던 것도 같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모르게 되었지. 게다가 지금은 무엇을 해야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군."
아직 확실히 각성하지 않은, 아니 할 수 없는 로어의 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하지만 시엘은 가차없이 검을 던졌다. 다시 울려퍼지는 둔탁한 파열음은.. 이미 없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흰 그림자. 금발에 붉은 눈을 반짝이며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진조가 보였다.
"카레괴물이 뭘 하나 했더니, 사냥 중이었네?"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무슨 일이시죠?"
"이 녀석은 내가 죽일꺼야. 너는 이만 손때기를 바래."
"저도 그 분을 제 손으로 끝내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냥은 안될 것 같군요."
시엘은 흑건을 더욱 꽉 잡았다. 얼마만일까? 이런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은, 이전의 생활은 하품만 나올 것 같은 느낌, 시엘은 잔뜩 기대감을 갖고서 알퀘이드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만둘레. 괜히 너만 좋은 일 시키는거 아냐?"
"겁나시는 건가요? 후후.."
"아니. 넌 지금 너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로어의 처리라면, 조금더 확실한게 좋겠지? 시키에게 맡기자고.."
"설마.. 당신!?"
"선배는 거짓말쟁이로군요."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시엘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더듬 거리면서 말을 찾기 시작했다.
"저.. 토오노군?"
"괜찮아요. 이제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하니까요."
시키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안경을 벗어 들었다. 로어는 아까전부터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도 잊은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키가 자신을 바라보자, 허탈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아.. 그 눈.. 기억이 나는군. 나의 존재의 의미마저 죽이던 그 눈을..."
"기억해 줘서 고맙네. 하지만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야. 어떻게 할래?"
"이젠.. 그만 둬야겠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없으니까. 어차피 지금 평온히 죽어도 다음대에서는 내가 발현 될지도 모르겠어. 점점 희석화 되어 나중에는 존재가 사라지겠지.."
로어는 담담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시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시엘을 바라보았다. 시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퀘이드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다시 로어를 노려보며 담담히 내뱉었다.
"그럼 이만.."
"스슷!"
별다른 소음도 없이 로어의 몸은 분해되어 갔다. 시키는 완전히 재가되어 날려가는 로어를 등진채, 시엘과 알퀘이드를 바라보았다. 이로써, 오래된 악연을 끝났다. 천년을 이어져 오던 악연은 마무리 된 것이다. 시엘은 자신의 팔뚝을 들춰보았다. 화려하게 장식 되었던 문신은.. 사라졌다. 시엘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지어보는 표정, 무척 귀여운 미소.. 시엘은 입을 열었다.
"이제 끝이군요. 기나긴 악몽은.."
"응."
"쏴아아아!"
초겨울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차갑지도, 따스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저.. '기분 좋은 비' 라고 말할 정도로 내렸다. 11월의 끝자락.. 천년의 악몽의 책은 접혔다.
***
"후후후.. 카이스케.. 잡았다."
레이카는 화사한 미소를 띄우고서는 카이스케를 바라보았다. 카이스케는 멍한 눈으로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레이카는 그대로 카이스케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찰싹! 찰싹!"
카이스케의 고개는 획 돌아갔다. 하지만 레이카의 손길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이윽고, 손을 멈춘 레이카는 천천히 카이스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가둔거니? 너의 정신을? 너무한다. 이러면 널 죽여도 재미 없잖아.."
레이카는 심심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한후에 카이스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나갔다. 곧 헤레시가 피곤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말했다.
"일은 일으키지 말라구. 지난 번처럼 얼티밋이라도 다시 찾아오는 날에는 내 존재가 사라져 있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몰라.."
"설마~"
레이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빛줄기와 함께 몸을 띄웠다. 빛줄기는 이곳저곳을 지나가며,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향했다. 곧 어두운 문이 열리고, 주위로는 비슷한 빛줄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서로끼리 부딫힐때마다, 어디선가 하얀빛이 쏘아져 부딫힌 빛줄기를 갈라버렸다. 레이카의 빛줄기는 능숙하게 다른 빛줄기들을 피하며 다른 문으로 빠져들었다.
"슈하아아!"
곧 넓은 창공으로 빠져나온 빛줄기는 레이카와 카이스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자아~ 카이스케~ 정신을 차리고 오려무나.. 괴롭힘은 그 다음이란다.."
레이카는 카이스케를 그대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카이스케는 구체에 휩싸이면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언덕위의 익숙한 집으로.. 레이카는 곧 다시 빛줄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천천히 떨어져 내리던 구체는 곧 땅에 닿자, 임무를 마친듯이 자연스럽게 대기중으로 녹아들어갔다. 카이스케는 여전히 멍하니 떨어져 내리던 자세로 쓰러져서는 인형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쏴아아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초겨울의 비는 세차게 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슬비처럼 흩뿌려지지도 않을 정도로 내렸다. 카이스케의 손이 살며시 모아졌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눈물은 빗물과 섞이고, 그리고 땅으로 떨어져 흙속에 스며들어 갔다. 카이스케는 천천히 후들거리는 팔을 휘저으며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잡히는 것도 없이 빗줄기만 이리저리 휘젖고 있었다.
곧 소년의 손 주위가 울렁이기 시작했다. 시간의 요동에 근처의 대기가 급격한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쇠하여 버리고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애처롭기도 하고, 광포하기도 한 외침이 울려퍼져 나갔다.
"쏴아아아~"
11월의 끝자락..
-More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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