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月話...13
페이지 정보
본문
"다시 한번 말씀해 보시죠? 오라버니.."
아키하가 재차 묻자 시키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키하는 팔짱을 끼고서 시키의 앞에서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시키는 다시 고개를 들고 안경을 고쳐쓰고서는 입을 열었다.
"아키하.. 안될까나?"
"제가 오라버니를 토오노 저택으로 부른것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지. 결코 식객을 늘린다거나 하는 목적은 없었답니다. 뭐 가끔 놀러오시는 선배는 그렇다쳐도 이미 오라버니가 끌고 들어온 알퀘이드라는 식객이 있지 않습니까?"
아키하가 이리저리 돌려서 "더 이상은 안돼!"라고 못밖아 버렸다. 시키는 역시나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뒤에 소파에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아키하는 옆으로 시키를 흘려보다가 곧 자신의 가방을 들고서는 코하쿠에게 말했다.
"코하쿠. 오라버니께 식사를 챙겨드리도록 하세요."
"예. 아키하님."
"오라버니도 쓸때 없는데에 신경 쓰지 마시고 면학에 신경을 써주세요. 아무리 강한 힘이 있지만 그건 오라버니와 밤에만 통용되는 힘일 뿐, 현실세계에서 살아가시려면 직업정도는 있어야 겠지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아키하는 거실을 나가버렸다.
시키는 목을 뒤로 젖혀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코하쿠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시키에게 물어왔다.
"시키씨. 식사 하실껀가요?"
"아.. 조금 뒤에요. 산책부터 하고 올께요."
"예. 그럼 조금뒤에 준비하도록 할께요."
코하쿠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곧 거실을 나갔다.
코하쿠가 나가자 시키는 일어나서 거실 한구석에 있는 옷걸이에서 따뜻해 보이는 남색의 자켓을 어깨에 걸쳐매었다. 그리고는 거실을 나서서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는 히스이가 가만히 서서 시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코하쿠가 시키의 외출사실을 알려준 모양인 듯 했다.
"아.. 배웅은 필요 없을텐데. 산책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정원을 둘러본다는 것 뿐이고.."
"시키님."
"응?"
히스이는 잠깐 머뭇거렸다. 가만히 바닥을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들고서 결심을 한 듯이 시키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시키님께서는 아키하님의 마음을 좀더 알아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충고 하러 왔구나.. 히스이는.."
"아니요. 다만 아키하님께서 슬퍼보이셨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히스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시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히스이에게 말했다.
"알겠어. 고마워 히스이."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비가 왔던 탓인지, 기온은 매우 낮게만 느껴졌다. 시키는 자켓을 입고서는 곧 정원을 가로질러 겆기 시작했다. 언덕아래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토오노 저택은 정원이 넓었다. 시키는 정원을 가로질러 걷다가 문득, 정원의 한 구석에 서있는 시엘을 볼 수 있었다. 따듯해 보이는 흰색 점퍼에 두터워 보이는 남색 바지를 입은 시엘은 정원의 한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시키는 천천히 시엘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러자 시엘은 발걸음 소리를 눈치챈 듯이 시키를 바라보자,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시키도 손을 흔들며 시엘에게 다가갔다.
"왔었군요. 선배."
"네. 토오노군은 정원에서 뭐하시는 거죠? 산책인가요?"
"바로 맞추셨네요. 산책 중이었는데 선배가 보여서 와본거에요. 선배는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아. 저 소나무요."
시엘은 손을 들어 정원의 한 쪽에 서있는 커다란 소나무를 가리쳤다. 그리고는 시엘은 소나무로 다가갔다. 시키도 시엘의 뒤를 따라서 소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곧 소나무 둔치로 온 시엘은 소나무 기둥을 쓰담으면서 말했다.
"토오노군은 이 나무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음.. 꿋꿋한 기상?"
"역시 평범한 학생의 대답이네요. 하지만 전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시간이 멈춰버린 나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시엘의 마지막 말은 쓸쓸하게 들려왔다. 시키는 소나무의 가지를 올려다봤다.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푸르고 가는 나뭇잎은 파랗게 자신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시키는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확실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여. 하지만 선배와는 상관이 없잖아?"
"네. 이제는 상관이 없지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이 나무를 보러 온거에요."
"헤에.. 선배 의외로 감정적이네?"
"토오노군. 저 오랫동안 살았다고 해도 아직은 16살의 소녀에요."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시키는 곧 자신이 실수했음을 느끼고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미안.. 선배."
"아니요. 그것보다 오늘 이 나무를 보니까. 안심이 되는걸요."
"응? 어째서?"
"이 나무는 시간이 멈춘게 아니구나 해서요. 보세요. 자세히 보면 나뭇잎이 흔들거리는게 보이죠? 게다가 아주 적은 양이지만, 이렇게 낙옆도 떨구고요."
시엘은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가는 갈색빛의 소나무 잎사귀를 들고서는 웃었다. 시키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갈색빛의 소나무 잎을 들었다. 푸석푸석하고 멋 없는 갈색빛의 잎사귀였다. 하지만 시엘은 기뻐하면서 다시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멈춘게 아니라는거죠. 다만 천천히 흘러갈 뿐이라는 것을.. 이 나무는 가르쳐 준게 아닐까요?"
시엘의 입가에는 오랫만에 그녀의 참된 미소가 걸렸다.
"그렇네. 선배.."
***
"해가 저물어 가네요."
시엘이 말했다.
차가운 아파트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잇었지만, 시엘과 뮤리엘은 별다른 무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엘은 법의를 입은 상태에서 품속에 여러가지 무기를 집어넣고 있었다. 뮤리엘도 그녀의 곁에서 여러가지 개념무장의 무기들을 품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무기라고 해봤자, 성시들이 적힌 종잇조각들 이지만, 강력한 갸념으로 무장된 이 종이들은 간단한 마법적 요소만 가미시킨다면 훌륭한 무기로 재탄생 될 수 있었다.
"오늘.. 하실 것입니까?"
"예. 더 이상은 피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시엘은 마지막으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을 끼고서는 이리저리 손을 돌리고 있었다. 뮤리엘은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밖을 쳐다봤다.
"그렇군요. 오늘은 하얀 초승달.."
"예. 월령의 영향이 가장 적은 밤이죠."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마지막으로 확인을 마친듯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잇었다. 그리고는 곧 테라스로 걸어나갔다. 이지러진 초승달은 하얗게 물들어서 희미하게 달빛을 뿌리고 있었다. 시엘은 천천히 팔을 펴고 테라스의 난간을 밟고서 떨어져 내렸다. 갑작스레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밤의 공기에 시엘은 벽을 박차고 수평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곧바로 다가오는 콘크리트의 벽을 몸을 돌려 걷어차고서는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곧 시엘의 뒤로 뮤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벽을 차고, 몸을 돌려가면서.. 천천히 하얀 어둠이 비취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작지만 탄탄한 근육은 그들의 모든 충격을 흡수한채로 아무런 소음도 없이, 고양이처럼 빠르게 날도록 해주는 것일까?
"기다리고 있었네요. 피브리오."
공중에서 보이는 검은 후드를 쓴 사제들과 그리고 새치가 섞여있는 남빛의 머릿결을 뒤로 붙잡아맨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시엘은 서서히 지상을 향해 날아내렸다.
"왔군. 이단의 푸른악마."
"오랫만에 만났는데, 인사정도는 따뜻하게 건내줘도 되지 않을까요? 라파엘로 피브리오 집정관."
"아! 실례했네. 시엘 에레이시아. 자네와 뮤리엘이 하도 신출귀몰해서 말야."
피브리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시엘과 뮤리엘은 똑같이 웃으면서 서로 한마디씩 건냈다.
"역시 피브리오 집정관은 취미가 좋지 못하군요.."
"어머? 뮤리엘도 취미 별로 안 좋아요."
"칫.. 언제나 똑같이 행동하는군. 너희 둘은 말야."
피브리오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얗게 이지러진 달빛이 푸르게 변했다.
청월일까? 아니면 그것은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이 빛을 거부하며 보이는 단순한 착시 현상일까? 시엘은 손에 흑건을 집어들며 말했다.
"예. 오늘은 끝을 보려고 왔습니다."
"그런가? 그렇군.. 오늘은 끝을 내기에 아주 좋은 밤이야."
피브리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싱긋 웃는다. 뮤리엘은 천천히 창을 꺼내어 들었다. 날카로운 삼지창은 희미한 달빛에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시엘은 자세를 낮추고 곧 뛰어들었다. 검은 후드의 사제들은 저마다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어 시엘의 흑건을 막아낸다. 시엘은 뒤로 튀어오르며, 다시 회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회전사이로 3개 정도의 검이 검은 후드의 사들제의 가슴을 격탕시키고 튀어오른다. 시엘은 다시 흑건을 봅아 들고서는 날카롭게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검을 들어 자신의 앞으로 나타난 피브리오를 막는다. 피브리오는 이단 심판의 무기인 아론의 지팡이를 들고 있다. 시엘은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피브리오를 바라본다.
"여전히 질기군요. 당신은.."
"너희들도 질겼어. 설마하니 아론의 지팡이까지 들게할 줄이야. 정말 어이 없잖아? 겨우 두명 뿐인데 말야."
"그 두명에게 이리도 많은 아픔을 준 당신들이야 말로.. 스스로가 용서가 되던가요?"
시엘은 지팡이를 걷어내며 말한다.
피브리오는 지팡이를 고쳐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것이 악마라면, 수에는 관계 없지."
"하아..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악마라고 불리우는 것인가요?"
시엘의 검이 빠르게 피브리오의 목을 향해서 날아간다.
하지만 휘둘러지는 지팡이에 가로막혀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만다.
피브리오는 지팡이를 땅에 내려놓고서는 말했다.
"글쎄. 사람의 모습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지. 당신들은 인간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난 악마라고 평가하고 싶어지는걸?"
"그렇다면 당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다른이가 죄가 없다고 하면 당신은 깨끗한 사람입니까? 결코 그런 것은 아닐텐데요. 그것은 보기좋은 변명입니다."
"그래? 하지만 이 세상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어. 그래. 세계는 완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현실로 나타난 것은 불완전한 현실.. 그렇기에 이렇게 망가져 가는 것일지도.."
그렇게 말하고서는 피브리오는 다시 아론의 지팡이를 휘두르며 시엘에게 뛰어
든다. 그러자 시엘은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같이 뛰어든다. 다시 격전이 벌어진다. 빠른 움직임은 주위의 풍경을 흐릿하게 만들고,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서로의 살기가 뒤섞이는 공간이.. 시엘과 피브리오는 서로의 무기를 마주하며 점점 가까이 붙어간다.
뮤리엘은 창을 가볍게 휘둘러 보고는 검은 후드의 사제들을 향해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장난반 진심반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못된 상관을 만나 고생하는 것은 당신들이나 저나 똑같네요."
"......"
"그렇게 냉랭하면 인기가 없다니까요. 자아~ 그러면 갑니다."
뮤리엘은 휘두르던 창을 단단히 잡고서는 뛰어들었다. 창에서는 하늘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하게 창을 휘두를 때마다 허공중에는 길다란 선이 은은하게 빛나고, 그럴때마다 검은 사제들의 검들도 빠르게 변해간다. 하나의 검을 쳐내고 그대로 창을 돌려 창대에 모든 충격을 넘긴다. 그리고는 그 충격으로 다른 상대방을 쳐올린다. 그리고는 뒤로 창대를 길게 뻗어내려 날아드는 수십개의 검을 피하여 공중으로 뛰오른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시선과 검의 물결, 뮤리엘은 창대로 자신의 기운을 폭사시킨다. 점점 은빛으로 물들던 창은 이내에 땅을 짓뭉개며 지면을 넓게 압박해 들어간다.
"쿠웅!"
"크어억!?"
뮤리엘은 지연을 밟고서 웃는다. 그리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잔인한 말을 던진다.
"그렇게 움직이면 일도 못하고 죽어요."
달빛은 이제 푸른색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청색의 달빛...
- 8 Sentence -
아키하가 재차 묻자 시키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키하는 팔짱을 끼고서 시키의 앞에서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시키는 다시 고개를 들고 안경을 고쳐쓰고서는 입을 열었다.
"아키하.. 안될까나?"
"제가 오라버니를 토오노 저택으로 부른것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지. 결코 식객을 늘린다거나 하는 목적은 없었답니다. 뭐 가끔 놀러오시는 선배는 그렇다쳐도 이미 오라버니가 끌고 들어온 알퀘이드라는 식객이 있지 않습니까?"
아키하가 이리저리 돌려서 "더 이상은 안돼!"라고 못밖아 버렸다. 시키는 역시나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뒤에 소파에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아키하는 옆으로 시키를 흘려보다가 곧 자신의 가방을 들고서는 코하쿠에게 말했다.
"코하쿠. 오라버니께 식사를 챙겨드리도록 하세요."
"예. 아키하님."
"오라버니도 쓸때 없는데에 신경 쓰지 마시고 면학에 신경을 써주세요. 아무리 강한 힘이 있지만 그건 오라버니와 밤에만 통용되는 힘일 뿐, 현실세계에서 살아가시려면 직업정도는 있어야 겠지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아키하는 거실을 나가버렸다.
시키는 목을 뒤로 젖혀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코하쿠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시키에게 물어왔다.
"시키씨. 식사 하실껀가요?"
"아.. 조금 뒤에요. 산책부터 하고 올께요."
"예. 그럼 조금뒤에 준비하도록 할께요."
코하쿠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곧 거실을 나갔다.
코하쿠가 나가자 시키는 일어나서 거실 한구석에 있는 옷걸이에서 따뜻해 보이는 남색의 자켓을 어깨에 걸쳐매었다. 그리고는 거실을 나서서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는 히스이가 가만히 서서 시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코하쿠가 시키의 외출사실을 알려준 모양인 듯 했다.
"아.. 배웅은 필요 없을텐데. 산책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정원을 둘러본다는 것 뿐이고.."
"시키님."
"응?"
히스이는 잠깐 머뭇거렸다. 가만히 바닥을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들고서 결심을 한 듯이 시키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시키님께서는 아키하님의 마음을 좀더 알아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충고 하러 왔구나.. 히스이는.."
"아니요. 다만 아키하님께서 슬퍼보이셨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히스이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시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히스이에게 말했다.
"알겠어. 고마워 히스이."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비가 왔던 탓인지, 기온은 매우 낮게만 느껴졌다. 시키는 자켓을 입고서는 곧 정원을 가로질러 겆기 시작했다. 언덕아래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토오노 저택은 정원이 넓었다. 시키는 정원을 가로질러 걷다가 문득, 정원의 한 구석에 서있는 시엘을 볼 수 있었다. 따듯해 보이는 흰색 점퍼에 두터워 보이는 남색 바지를 입은 시엘은 정원의 한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시키는 천천히 시엘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러자 시엘은 발걸음 소리를 눈치챈 듯이 시키를 바라보자,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시키도 손을 흔들며 시엘에게 다가갔다.
"왔었군요. 선배."
"네. 토오노군은 정원에서 뭐하시는 거죠? 산책인가요?"
"바로 맞추셨네요. 산책 중이었는데 선배가 보여서 와본거에요. 선배는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아. 저 소나무요."
시엘은 손을 들어 정원의 한 쪽에 서있는 커다란 소나무를 가리쳤다. 그리고는 시엘은 소나무로 다가갔다. 시키도 시엘의 뒤를 따라서 소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곧 소나무 둔치로 온 시엘은 소나무 기둥을 쓰담으면서 말했다.
"토오노군은 이 나무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음.. 꿋꿋한 기상?"
"역시 평범한 학생의 대답이네요. 하지만 전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시간이 멈춰버린 나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시엘의 마지막 말은 쓸쓸하게 들려왔다. 시키는 소나무의 가지를 올려다봤다.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푸르고 가는 나뭇잎은 파랗게 자신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시키는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확실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여. 하지만 선배와는 상관이 없잖아?"
"네. 이제는 상관이 없지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이 나무를 보러 온거에요."
"헤에.. 선배 의외로 감정적이네?"
"토오노군. 저 오랫동안 살았다고 해도 아직은 16살의 소녀에요."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시키는 곧 자신이 실수했음을 느끼고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미안.. 선배."
"아니요. 그것보다 오늘 이 나무를 보니까. 안심이 되는걸요."
"응? 어째서?"
"이 나무는 시간이 멈춘게 아니구나 해서요. 보세요. 자세히 보면 나뭇잎이 흔들거리는게 보이죠? 게다가 아주 적은 양이지만, 이렇게 낙옆도 떨구고요."
시엘은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가는 갈색빛의 소나무 잎사귀를 들고서는 웃었다. 시키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갈색빛의 소나무 잎을 들었다. 푸석푸석하고 멋 없는 갈색빛의 잎사귀였다. 하지만 시엘은 기뻐하면서 다시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멈춘게 아니라는거죠. 다만 천천히 흘러갈 뿐이라는 것을.. 이 나무는 가르쳐 준게 아닐까요?"
시엘의 입가에는 오랫만에 그녀의 참된 미소가 걸렸다.
"그렇네. 선배.."
***
"해가 저물어 가네요."
시엘이 말했다.
차가운 아파트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잇었지만, 시엘과 뮤리엘은 별다른 무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엘은 법의를 입은 상태에서 품속에 여러가지 무기를 집어넣고 있었다. 뮤리엘도 그녀의 곁에서 여러가지 개념무장의 무기들을 품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무기라고 해봤자, 성시들이 적힌 종잇조각들 이지만, 강력한 갸념으로 무장된 이 종이들은 간단한 마법적 요소만 가미시킨다면 훌륭한 무기로 재탄생 될 수 있었다.
"오늘.. 하실 것입니까?"
"예. 더 이상은 피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시엘은 마지막으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을 끼고서는 이리저리 손을 돌리고 있었다. 뮤리엘은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밖을 쳐다봤다.
"그렇군요. 오늘은 하얀 초승달.."
"예. 월령의 영향이 가장 적은 밤이죠."
시엘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마지막으로 확인을 마친듯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잇었다. 그리고는 곧 테라스로 걸어나갔다. 이지러진 초승달은 하얗게 물들어서 희미하게 달빛을 뿌리고 있었다. 시엘은 천천히 팔을 펴고 테라스의 난간을 밟고서 떨어져 내렸다. 갑작스레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밤의 공기에 시엘은 벽을 박차고 수평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곧바로 다가오는 콘크리트의 벽을 몸을 돌려 걷어차고서는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곧 시엘의 뒤로 뮤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벽을 차고, 몸을 돌려가면서.. 천천히 하얀 어둠이 비취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작지만 탄탄한 근육은 그들의 모든 충격을 흡수한채로 아무런 소음도 없이, 고양이처럼 빠르게 날도록 해주는 것일까?
"기다리고 있었네요. 피브리오."
공중에서 보이는 검은 후드를 쓴 사제들과 그리고 새치가 섞여있는 남빛의 머릿결을 뒤로 붙잡아맨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시엘은 서서히 지상을 향해 날아내렸다.
"왔군. 이단의 푸른악마."
"오랫만에 만났는데, 인사정도는 따뜻하게 건내줘도 되지 않을까요? 라파엘로 피브리오 집정관."
"아! 실례했네. 시엘 에레이시아. 자네와 뮤리엘이 하도 신출귀몰해서 말야."
피브리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시엘과 뮤리엘은 똑같이 웃으면서 서로 한마디씩 건냈다.
"역시 피브리오 집정관은 취미가 좋지 못하군요.."
"어머? 뮤리엘도 취미 별로 안 좋아요."
"칫.. 언제나 똑같이 행동하는군. 너희 둘은 말야."
피브리오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얗게 이지러진 달빛이 푸르게 변했다.
청월일까? 아니면 그것은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이 빛을 거부하며 보이는 단순한 착시 현상일까? 시엘은 손에 흑건을 집어들며 말했다.
"예. 오늘은 끝을 보려고 왔습니다."
"그런가? 그렇군.. 오늘은 끝을 내기에 아주 좋은 밤이야."
피브리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싱긋 웃는다. 뮤리엘은 천천히 창을 꺼내어 들었다. 날카로운 삼지창은 희미한 달빛에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시엘은 자세를 낮추고 곧 뛰어들었다. 검은 후드의 사제들은 저마다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어 시엘의 흑건을 막아낸다. 시엘은 뒤로 튀어오르며, 다시 회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회전사이로 3개 정도의 검이 검은 후드의 사들제의 가슴을 격탕시키고 튀어오른다. 시엘은 다시 흑건을 봅아 들고서는 날카롭게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검을 들어 자신의 앞으로 나타난 피브리오를 막는다. 피브리오는 이단 심판의 무기인 아론의 지팡이를 들고 있다. 시엘은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피브리오를 바라본다.
"여전히 질기군요. 당신은.."
"너희들도 질겼어. 설마하니 아론의 지팡이까지 들게할 줄이야. 정말 어이 없잖아? 겨우 두명 뿐인데 말야."
"그 두명에게 이리도 많은 아픔을 준 당신들이야 말로.. 스스로가 용서가 되던가요?"
시엘은 지팡이를 걷어내며 말한다.
피브리오는 지팡이를 고쳐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것이 악마라면, 수에는 관계 없지."
"하아..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악마라고 불리우는 것인가요?"
시엘의 검이 빠르게 피브리오의 목을 향해서 날아간다.
하지만 휘둘러지는 지팡이에 가로막혀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만다.
피브리오는 지팡이를 땅에 내려놓고서는 말했다.
"글쎄. 사람의 모습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지. 당신들은 인간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난 악마라고 평가하고 싶어지는걸?"
"그렇다면 당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다른이가 죄가 없다고 하면 당신은 깨끗한 사람입니까? 결코 그런 것은 아닐텐데요. 그것은 보기좋은 변명입니다."
"그래? 하지만 이 세상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어. 그래. 세계는 완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현실로 나타난 것은 불완전한 현실.. 그렇기에 이렇게 망가져 가는 것일지도.."
그렇게 말하고서는 피브리오는 다시 아론의 지팡이를 휘두르며 시엘에게 뛰어
든다. 그러자 시엘은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같이 뛰어든다. 다시 격전이 벌어진다. 빠른 움직임은 주위의 풍경을 흐릿하게 만들고,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서로의 살기가 뒤섞이는 공간이.. 시엘과 피브리오는 서로의 무기를 마주하며 점점 가까이 붙어간다.
뮤리엘은 창을 가볍게 휘둘러 보고는 검은 후드의 사제들을 향해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장난반 진심반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못된 상관을 만나 고생하는 것은 당신들이나 저나 똑같네요."
"......"
"그렇게 냉랭하면 인기가 없다니까요. 자아~ 그러면 갑니다."
뮤리엘은 휘두르던 창을 단단히 잡고서는 뛰어들었다. 창에서는 하늘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하게 창을 휘두를 때마다 허공중에는 길다란 선이 은은하게 빛나고, 그럴때마다 검은 사제들의 검들도 빠르게 변해간다. 하나의 검을 쳐내고 그대로 창을 돌려 창대에 모든 충격을 넘긴다. 그리고는 그 충격으로 다른 상대방을 쳐올린다. 그리고는 뒤로 창대를 길게 뻗어내려 날아드는 수십개의 검을 피하여 공중으로 뛰오른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시선과 검의 물결, 뮤리엘은 창대로 자신의 기운을 폭사시킨다. 점점 은빛으로 물들던 창은 이내에 땅을 짓뭉개며 지면을 넓게 압박해 들어간다.
"쿠웅!"
"크어억!?"
뮤리엘은 지연을 밟고서 웃는다. 그리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잔인한 말을 던진다.
"그렇게 움직이면 일도 못하고 죽어요."
달빛은 이제 푸른색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청색의 달빛...
- 8 Sentence -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