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eply Blue, Glass Moon...#5(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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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이유들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기다리고 싶으니 기다린다ㅡ이것이 본질적인, 나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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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eply Blue, Glass Mo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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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울타리에 걸터 앉아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것을 양분하는 끝없이 펼쳐진 울타리. 소년 자신만의 심상세계ㅡ'고유결계'의 풍경을, 소년은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
칠흑의 마견은 초원의 한쪽에 천천히 배를 깔았다. 이곳은 소년ㅡ진조(眞組) 루크의 세계...소년 본인이 아닌 그가 참견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승산은 없다.]
무거운 목소리로, 마견은 입을 열었다.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에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싱긋이 미소지었다.
[괜찮은 건가.]
괜찮을 리가 없다는 것이야 잘 알고 있다. 붉은 루비로 이루어진 마견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은 채, 그저 물끄러미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휘감았다. 지평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소년의 목소리가 환상처럼 울렸다.
「...일전의 그 검은 고양이, 기억나요?」
[아아, 그 서큐버스(夢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물론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대화 내용까지, 겠지요?」
동화(同化)라는 것도 참 프라이버시 침해라니까, 라며 소년은 쓴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그 아이는 자신의 수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동경하는 사람을 지켜 왔어요.」
'뭐, 지금은 역으로 힘을 나눠받고 있는 모양이지만'이라고 핀트가 맞지 않는 소리를 덧붙이면서도, 소년의 태도는 진지함 그 자체였다.
[너 역시도.]
으르렁거리듯, 마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박한 상황에 의식을 침체시켜버린 소년에 대한 질타와 감상에 빠져 버린 듯한 소년에 대한 비판을, 마견은 혼을 빼 버릴 정도로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요. 확실히, 전 그녀를 동경하고 있으니까......그렇지만.」
환몽에서 깨어나듯이, 소년은 지평선에서 마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정하게 정돈된 은백색 머리카락과 티 없는 홍적색의 눈동자...그 안에 서려 있는 예전의 감정을, 마견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요, 전 언제나 제멋대로일 뿐이었잖아요? 나기 스프링필드와의 회전도, 결국은 그녀를 위한다고 말하는 저 혼자만의 고집이었죠. 결국은...」
[헛고생, 이란 것인가.]
「예. 진실로 그녀가 원하는 것 따위, 전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제 수명이라면 헤아릴 수도 없이 깎아먹었지만.」
아하하, 하고 자신을 비웃듯, 소년은 소리내어 웃었다. 마견의 붉은 눈이 일순 험악해졌지만 소년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또, 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
[물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바깥은 한참 싸움중이다. 전투해야 할 이 몸의 의식을 이런 고유 결계 안에 가둬 놓고, 지금 추억이나 더듬고 있을 생각인가?]
마견의 불만에 소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기억하신다면, 아마 동화할 때 잠시 공유했던 제 과거도 기억하실테죠.」
울타리에서 뛰어내려, 소년은 마견이 누워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소년의 뒤쪽ㅡ지평선과 울타리가, 유리창이 깨지듯 조각나서 아무 것도 없는, 백색의 창공에 휘날렸다. 사태를 관망하던 마견의 붉은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고유결계의 붕괴...설마 너!]
황급히 외치는 마견을 바라보며, 소년은 서서히 갈라지는 세계의 '벽'에 털썩 몸을 기대었다.
「현재는 과거라는 보석의 유일한 세공품. 그러니까 하나만 여쭤볼게요, TYPE-PLUTO. 제가 해온 일...잘한 거예요?」
마견, TYPE-PLUTO가 몸을 날림과 동시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ㅡ시간도 공간도 없는 세계가 지르는 비명이 창공을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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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오오!]
삼두의 마견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냅다 울부짖는다. 마술로 공격하려던 '붉은 달'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주문의 영창을 중단하고 귀를 막았다.
「무슨 술수인가, 이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울부짖음은?」
마견이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눈동자ㅡ붉은 보석의 안쪽 깊은 곳에, 홍적색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호라 학원 내부의 공원에 불과했던 주위의 풍경이, 서서히 암석과 모래뿐인, '죽어버린 세계'로 바뀌어 간다. 한없이 죽음과 가까워지는 이상세계...이것이야말로 바로 고유이계(固有異界)...
[아하하핫!! 당연히 잘한 일이지. 지금까지도 네 녀석은 , 충분히 잘 해왔어!]
그 이계의 한가운데에서, 마견은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감정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가 이번에 소체로 삼았던 진조(眞祖)란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흡혈충동이라는 굴레를 갖고 태어난 생명종ㅡ고뇌라는 감정과 평생을 살아가는 생명종. 그 특성이 전이되어 버린 것일까. 붉은 달을 무시해 버린 채로, 마견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오래간만에, 주역을 빼앗겨 버렸군. 소체의 영혼에 좋은 자리를 내주다니, 여기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면, 영겁의 시간 동안 후회할 좋은 추억이 되겠어!]
지표의 재구성은 전부 끝났다. 핏빛의 하늘에는 검은 태양이 떠오른다. 마견의 눈ㅡ완전히 개방된 요옥의 마안(妖玉の魔眼)이, 눈 앞의 '방해물'을 확실히 인식한다.
[말해두지만, 이 이계(異界)에서 영창을 필요로 하는 마술 따윈 쓸 수 없어. 그쪽의 마안도 그 이상의 출력은 못 내는 듯하니...자아, 죽음의 향연을 시작해 볼까?]
묘하게 들떠서 혼자 지껄여 대는 마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붉은 달이, 처음으로 밝게 웃음지었다. 양쪽 다 모든 패를 내보이고 하는 싸움ㅡ아무런 히든 카드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싸움...그것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희락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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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침체된 의식의 안, 영겁의 어둠 속을, 그저 걷고만 있다.
의식 세계의 청소는 완벽. 잔류한 사념이라고는 찌꺼기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불청객인 내가 살고 있던 곳과는, 본질부터가 다른 어둠뿐인 세계.
아무리 동종(同種)이라 해도, 정신이라는 이차원의 공간은 이렇듯 딴판일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경의를 표하고서, 나는 마지막이 보이지 않는 걸음을 다시금 재촉한다.
「---」
「---」
「---」
의식을 부수는 어둠의 울부짖음. 자신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곳ㅡ'핵'부분으로 가려는 나를, 그들은 애써 저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릴 뿐.
어둠이, 조금씩 찌그러진다. 파괴되었던 공간이, 주인의 숨소리에 따라 다시금 곧게 펴진다. 초목이 자란다.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지평선이 생긴다. 어둠을 있는 힘껏 밀어내고서, 하늘은 그 자리를 되찾는다.
비어 버린 심상세계의 안에서, 또 하나의 세계가 그 고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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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자신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피하고 싶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더욱더 슬퍼지기만 할 뿐.
그래서ㅡ
나는 이 곳에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 황량한 벌판.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는, 아무 것도 들을 것이 없는,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는, 아무 것도 기쁠 것이 없는, 아무 것도 슬플 것이 없는...
내가 영겁의 시간 동안 쉴 장소는, 이렇게나 편안한 곳......인데......
「---」
의식의 목소리. 그런 울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나는 들을 수 없으니.
「---」
「---」
「---」
「---」
들을 수 없다. 귀를 기울여 봐도, 울림은 단지, 울림일 뿐.
「---.」
「---...」
「---...!」
「---!!!!!」
아아...맞다. 저것은, 내 이름인가. 몇 분 전에 내 스스로 포기해 버린, 그러나 아직까지 익숙한 나의......이름.
「에반젤리이이인!!!」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의 경계, 황야와 초원이 서로의 영역을 놓고 싸우는 울타리 위에서, 입 언저리에 한 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그는 내 이름만을 부르고 있었다. 사도의 기운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처음 만났을 때의 루크가...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알아채었다. 대기의 색을 바꾸는 오로라의 향연. 심상세계의 하늘을 물들이는 황금의 물결ㅡ뼈에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이 금빛 마력의 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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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든다.
심상의 세계로부터 현실 세계로 마악 돌아와서일까.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지만 그 정도쯤, 무시해도 상관없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하늘을 메웠던 황금의 오로라와 초원, 그리고 그리웠던 모습이 둘.
「뭐어,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니군.」
「그 '나쁘지 않은 결과'의 대가로, 몇 명의 맘고생이 수반되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지요.」
눈을 감은 채, 입 속으로 가볍게 되뇐 것 뿐인데도, 뾰로통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내 몸을 안아들고 있는, 기분나쁜ㅡ그러나 무엇보다도 따스한 사도의 기운. 서서히 눈을 들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루...크.」
「대체 당신이란 진조는...덕분에 TYPE-PLUTO에게 두고두고 놀림받을 이야깃거리가 생겨나 버렸잖아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을 하고는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그 '이야깃거리'가 무엇인지, 잠시 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바보. 그래도 넌 그렇게나마 하고 싶은 말, 다 했지? 어때, 소감은?」
「확실히, 아직까지 말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당신보다야, 조금은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빨갛게 된 얼굴로 반박하는 루크. 어이어이, 말에 가시가 돋혀 있잖아.
그렇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그 말은...아마도....
씁쓸함을 감추며, 루크의 눈을 잠깐 응시했다. 상대의 감정을 읽는 일은 루크 자신의 능력이었기에,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내 질문에 답했다.
「앞으로는...어쩔 생각이에요?」
「기다려야지.」
아무런 사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즉답해버리는 나. 아직 흐릿한 감각 속에서도, 얼굴에 열이 모이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애...애초에 이 저주도 녀석의 것이고, 따로 할 일도 없고...또...」
그래, 이렇게 나에게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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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ly Blue, Glass Moonㅡ<Fin.>
Written by Mitsumoto(태상™).
덧1. 마지막의 뒷부분은 앞으로.(이건 엄청 쉽죠.)
덧2. 과연 <Fin>일 것인가?
후기는 후기 나름대로 있으니, 꼭 Fin은 아닐지도. 그리고 이 쪽에서 이어 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그러면 또 하나의 언데드 소설이 탄생하겠지요.]
그 많은 이유들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기다리고 싶으니 기다린다ㅡ이것이 본질적인, 나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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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eply Blue, Glass Mo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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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울타리에 걸터 앉아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것을 양분하는 끝없이 펼쳐진 울타리. 소년 자신만의 심상세계ㅡ'고유결계'의 풍경을, 소년은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
칠흑의 마견은 초원의 한쪽에 천천히 배를 깔았다. 이곳은 소년ㅡ진조(眞組) 루크의 세계...소년 본인이 아닌 그가 참견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승산은 없다.]
무거운 목소리로, 마견은 입을 열었다.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에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싱긋이 미소지었다.
[괜찮은 건가.]
괜찮을 리가 없다는 것이야 잘 알고 있다. 붉은 루비로 이루어진 마견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은 채, 그저 물끄러미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휘감았다. 지평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소년의 목소리가 환상처럼 울렸다.
「...일전의 그 검은 고양이, 기억나요?」
[아아, 그 서큐버스(夢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물론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대화 내용까지, 겠지요?」
동화(同化)라는 것도 참 프라이버시 침해라니까, 라며 소년은 쓴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그 아이는 자신의 수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동경하는 사람을 지켜 왔어요.」
'뭐, 지금은 역으로 힘을 나눠받고 있는 모양이지만'이라고 핀트가 맞지 않는 소리를 덧붙이면서도, 소년의 태도는 진지함 그 자체였다.
[너 역시도.]
으르렁거리듯, 마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박한 상황에 의식을 침체시켜버린 소년에 대한 질타와 감상에 빠져 버린 듯한 소년에 대한 비판을, 마견은 혼을 빼 버릴 정도로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요. 확실히, 전 그녀를 동경하고 있으니까......그렇지만.」
환몽에서 깨어나듯이, 소년은 지평선에서 마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정하게 정돈된 은백색 머리카락과 티 없는 홍적색의 눈동자...그 안에 서려 있는 예전의 감정을, 마견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요, 전 언제나 제멋대로일 뿐이었잖아요? 나기 스프링필드와의 회전도, 결국은 그녀를 위한다고 말하는 저 혼자만의 고집이었죠. 결국은...」
[헛고생, 이란 것인가.]
「예. 진실로 그녀가 원하는 것 따위, 전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제 수명이라면 헤아릴 수도 없이 깎아먹었지만.」
아하하, 하고 자신을 비웃듯, 소년은 소리내어 웃었다. 마견의 붉은 눈이 일순 험악해졌지만 소년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또, 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
[물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바깥은 한참 싸움중이다. 전투해야 할 이 몸의 의식을 이런 고유 결계 안에 가둬 놓고, 지금 추억이나 더듬고 있을 생각인가?]
마견의 불만에 소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기억하신다면, 아마 동화할 때 잠시 공유했던 제 과거도 기억하실테죠.」
울타리에서 뛰어내려, 소년은 마견이 누워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소년의 뒤쪽ㅡ지평선과 울타리가, 유리창이 깨지듯 조각나서 아무 것도 없는, 백색의 창공에 휘날렸다. 사태를 관망하던 마견의 붉은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고유결계의 붕괴...설마 너!]
황급히 외치는 마견을 바라보며, 소년은 서서히 갈라지는 세계의 '벽'에 털썩 몸을 기대었다.
「현재는 과거라는 보석의 유일한 세공품. 그러니까 하나만 여쭤볼게요, TYPE-PLUTO. 제가 해온 일...잘한 거예요?」
마견, TYPE-PLUTO가 몸을 날림과 동시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ㅡ시간도 공간도 없는 세계가 지르는 비명이 창공을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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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오오!]
삼두의 마견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냅다 울부짖는다. 마술로 공격하려던 '붉은 달'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주문의 영창을 중단하고 귀를 막았다.
「무슨 술수인가, 이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울부짖음은?」
마견이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눈동자ㅡ붉은 보석의 안쪽 깊은 곳에, 홍적색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호라 학원 내부의 공원에 불과했던 주위의 풍경이, 서서히 암석과 모래뿐인, '죽어버린 세계'로 바뀌어 간다. 한없이 죽음과 가까워지는 이상세계...이것이야말로 바로 고유이계(固有異界)...
[아하하핫!! 당연히 잘한 일이지. 지금까지도 네 녀석은 , 충분히 잘 해왔어!]
그 이계의 한가운데에서, 마견은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감정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가 이번에 소체로 삼았던 진조(眞祖)란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흡혈충동이라는 굴레를 갖고 태어난 생명종ㅡ고뇌라는 감정과 평생을 살아가는 생명종. 그 특성이 전이되어 버린 것일까. 붉은 달을 무시해 버린 채로, 마견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오래간만에, 주역을 빼앗겨 버렸군. 소체의 영혼에 좋은 자리를 내주다니, 여기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면, 영겁의 시간 동안 후회할 좋은 추억이 되겠어!]
지표의 재구성은 전부 끝났다. 핏빛의 하늘에는 검은 태양이 떠오른다. 마견의 눈ㅡ완전히 개방된 요옥의 마안(妖玉の魔眼)이, 눈 앞의 '방해물'을 확실히 인식한다.
[말해두지만, 이 이계(異界)에서 영창을 필요로 하는 마술 따윈 쓸 수 없어. 그쪽의 마안도 그 이상의 출력은 못 내는 듯하니...자아, 죽음의 향연을 시작해 볼까?]
묘하게 들떠서 혼자 지껄여 대는 마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붉은 달이, 처음으로 밝게 웃음지었다. 양쪽 다 모든 패를 내보이고 하는 싸움ㅡ아무런 히든 카드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싸움...그것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희락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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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침체된 의식의 안, 영겁의 어둠 속을, 그저 걷고만 있다.
의식 세계의 청소는 완벽. 잔류한 사념이라고는 찌꺼기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불청객인 내가 살고 있던 곳과는, 본질부터가 다른 어둠뿐인 세계.
아무리 동종(同種)이라 해도, 정신이라는 이차원의 공간은 이렇듯 딴판일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경의를 표하고서, 나는 마지막이 보이지 않는 걸음을 다시금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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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부수는 어둠의 울부짖음. 자신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곳ㅡ'핵'부분으로 가려는 나를, 그들은 애써 저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릴 뿐.
어둠이, 조금씩 찌그러진다. 파괴되었던 공간이, 주인의 숨소리에 따라 다시금 곧게 펴진다. 초목이 자란다.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지평선이 생긴다. 어둠을 있는 힘껏 밀어내고서, 하늘은 그 자리를 되찾는다.
비어 버린 심상세계의 안에서, 또 하나의 세계가 그 고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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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자신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피하고 싶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더욱더 슬퍼지기만 할 뿐.
그래서ㅡ
나는 이 곳에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 황량한 벌판.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는, 아무 것도 들을 것이 없는,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는, 아무 것도 기쁠 것이 없는, 아무 것도 슬플 것이 없는...
내가 영겁의 시간 동안 쉴 장소는, 이렇게나 편안한 곳......인데......
「---」
의식의 목소리. 그런 울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나는 들을 수 없으니.
「---」
「---」
「---」
「---」
들을 수 없다. 귀를 기울여 봐도, 울림은 단지, 울림일 뿐.
「---.」
「---...」
「---...!」
「---!!!!!」
아아...맞다. 저것은, 내 이름인가. 몇 분 전에 내 스스로 포기해 버린, 그러나 아직까지 익숙한 나의......이름.
「에반젤리이이인!!!」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의 경계, 황야와 초원이 서로의 영역을 놓고 싸우는 울타리 위에서, 입 언저리에 한 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그는 내 이름만을 부르고 있었다. 사도의 기운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처음 만났을 때의 루크가...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알아채었다. 대기의 색을 바꾸는 오로라의 향연. 심상세계의 하늘을 물들이는 황금의 물결ㅡ뼈에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이 금빛 마력의 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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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든다.
심상의 세계로부터 현실 세계로 마악 돌아와서일까.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지만 그 정도쯤, 무시해도 상관없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하늘을 메웠던 황금의 오로라와 초원, 그리고 그리웠던 모습이 둘.
「뭐어,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니군.」
「그 '나쁘지 않은 결과'의 대가로, 몇 명의 맘고생이 수반되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지요.」
눈을 감은 채, 입 속으로 가볍게 되뇐 것 뿐인데도, 뾰로통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내 몸을 안아들고 있는, 기분나쁜ㅡ그러나 무엇보다도 따스한 사도의 기운. 서서히 눈을 들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루...크.」
「대체 당신이란 진조는...덕분에 TYPE-PLUTO에게 두고두고 놀림받을 이야깃거리가 생겨나 버렸잖아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을 하고는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그 '이야깃거리'가 무엇인지, 잠시 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바보. 그래도 넌 그렇게나마 하고 싶은 말, 다 했지? 어때, 소감은?」
「확실히, 아직까지 말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당신보다야, 조금은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빨갛게 된 얼굴로 반박하는 루크. 어이어이, 말에 가시가 돋혀 있잖아.
그렇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그 말은...아마도....
씁쓸함을 감추며, 루크의 눈을 잠깐 응시했다. 상대의 감정을 읽는 일은 루크 자신의 능력이었기에,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내 질문에 답했다.
「앞으로는...어쩔 생각이에요?」
「기다려야지.」
아무런 사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즉답해버리는 나. 아직 흐릿한 감각 속에서도, 얼굴에 열이 모이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애...애초에 이 저주도 녀석의 것이고, 따로 할 일도 없고...또...」
그래, 이렇게 나에게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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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ly Blue, Glass Moonㅡ<Fin.>
Written by Mitsumoto(태상™).
덧1. 마지막의 뒷부분은 앞으로.(이건 엄청 쉽죠.)
덧2. 과연 <Fin>일 것인가?
후기는 후기 나름대로 있으니, 꼭 Fin은 아닐지도. 그리고 이 쪽에서 이어 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그러면 또 하나의 언데드 소설이 탄생하겠지요.]
댓글목록


Ciel eleicia님의 댓글
Ciel eleicia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왠지.. 조금은.. 이상한 결말...
어째서! 붉은 달님아와 플루토 같은 얼티밋 님아가..
지는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