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獸人) Chap. 01 #02 [조우(遭遇)]
페이지 정보
본문
수인(獸人)
Chp. 01 #02
[조우(遭遇)]
“헉, 헉….”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한 인영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어두운 산중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뒤로 조금 떨어진 채 따라오는 물체는 영기(英氣)를 갖고 있을 법한 커다란 범 한 마리.
“좀! 가버려!”
소년이 뒤를 바라보며 권풍(拳風)으로 범을 위협해보지만 범은 그것을 가볍게 피하며 성이 난 듯 포효(咆哮)했다.
“제기라알—!”
마치 이제 잡았다는 듯 자신을 향해서 높게 뛰어오르는 범을 바라보며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위를 향해 양손을 모아 장력(掌力)을 쏘아 올렸다.
퍼엉—
제대로 명중한 건지 범은 뒤로 나가떨어지고 소년은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범이란 네 발로 달리는 지라, 제대로 된 경공(輕功)을 배우지 않는 이상, 두 발로 뛰는 인간이 범보다 더 빨리 달릴 수는 없어 금방 따라 잡힐 게 뻔했지만 체력이라는 것과 사냥감 포기라는 것이 범에게 적용될 때가 있으므로 나뭇가지와 범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찢어진 옷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렀지만 그 소년은 계속 도망을 쳤다.
다만, 그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소년의 경공실력으로는 범의 빠르기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학!”
등에 가해진 날카롭고도 묵직한 공격에 소년은 데굴데굴 굴러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잔디밭에서야 구르는 것을 멈추었다.
“쿨럭, 쿨럭—!”
생각은 했었지만 예상치를 뛰어넘는 강한 공격이었던 것인지 소년은 숨구멍이 막힌 듯 심한 기침을 토해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범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한 번 빠르게, 그리고 높게 뛰어 올랐다.
“쿨룩, 쿨룩… 치익—!”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범을 본 소년은 양손을 모아 다시 장력을 쏘았지만, 이번에는 범 역시 양 발을 모아 떨어지는 속력을 감소하게 할 뿐, 그대로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으, 으아아앗!”
뻐억—!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은발(銀髮)의 중년 남자가 한쪽 다리를 돌리며 바닥을 차고 올라, 범의 턱을 권(拳)으로써 가격하여 범을 단번에 뒤집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뛰어 또 한번 범의 배를 내려쳤다. 이상한 것은 범의 복부가 이상하게 일그러질 정도의 타격이니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야 할 법했지만 그런 소리는 전무(全無)했다.
“큭… 크륵…!”
땅에 떨어진 범은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가쁜 숨만을 내쉬었다. 한편, 중년 남자는 출혈(出血)이 심하게 보이는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소?”
마치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것처럼 친근하게, 하지만 하대(下待)를 하지 않고 평대(平待)를 함으로써 나이 어린 소년에게마저 예의를 차리며 안부(安否)를 물어오는 그에게 소년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이며 가쁜 숨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인이시로군요. 근데 아까 그 산군(山君: 호랑이를 지칭하는 말)은…?”
중년 남자는 소년의 물음에 몸을 움직여 범이 쓰러져있던 곳을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영물이라고 칭해지는 대호(大虎). 허나 그도 허기가 진다면 그저 보통 맹수로 변할 뿐이지. 죄 없는 사람을 해하려 하긴 했지만, 녀석도 그리 나쁜 건 아니니 용서하시게나.”
중년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범은 천천히 일어났다.
“뭐, 직접 충격을 주기보다는 움직임을 바꾸게 한 것뿐이니 그리 타격은 없을 것 같군.”
소년은 범의 배를 급히 확인했다. 범의 배는 전혀 함몰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멀쩡한 듯, 패퇴시킨 자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며 어슬렁어슬렁 소년의 눈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섭렵(涉獵)한 무공 중에 이렇게 상대방의 움직임을 흘리게 하거나 그저 힘을 더 가해 신형을 흐트러뜨리는 무공은 단 하나… 사신무(四神武)! 이자는…?’
“저… 실례하지만 존함(尊銜)이 어떻게 되십니까?”
소년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이 자가 사신문(四神門)의 문도(門徒)라면 이 자는 소년의 가문인 천가(天家)와는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는 문파의 산하(傘下)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음? 아, 미안하네. 나는 비류진(丕溜辰)이라고 하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일세. 그러고 보니 아직 서로 통성명도 나누질 않고 있었군.”
확실해졌다. 소년의 뇌리(腦裡)에는 그의 이름이 번쩍 하고 스쳐 지나갔다.
사신문(四神門) 제 3대 문주(門主) 광중광(光中狂) 비류진.
소년은 마음 속으로 그의 이름을 뇌까렸다.
‘사신문주(四神門主)… 비류진… 적(敵)…?’
류진은 단 한마디의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있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바꾸어 보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핫핫핫핫! 난 아직 자네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네…. 핫핫.”
소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어느새 숙여진 고개를 들어 류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재빨리 포권지례(抱券之禮)를 올렸다.
“전 전(前) 천가주(天家主)의 자녀 중 차남(次男), 천소류(天韶瀏)라고 합니다. 생명의 은인께 결례(缺禮)를 범한 점, 양해를 구합니다.”
그렇다. 소년은 바로 소류였던 것이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가 류진의 귀로 흘러들어가자, 류진은 의외라는 듯이 호오— 하며 흥미롭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에겐 첫째로 눈 앞의 소류라는 소년이 천가주의 아들이라는 것이 흥미로웠고, 소류가 전 천가주라고 칭한 것으로 깨닫게 된 자신이 알던 천가의 가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역시 그에게는 상당히 놀라운 소식이었다. 물론 처음 보는 소년의 말을 믿기에는 신빙성이 너무 없는 말이기도 했기에 그는 소류에게 되물어왔다.
“헌데 전 가주라니, 그럼 천가주가 죽었단 말인가? 허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됬군…. 그 자 덕분에 잠깐이나마 평화를 맛볼 수 있었는데 말이야.”
소류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에 류진은 안 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확인할 것이 하나 있었기에 자신의 짧고 까칠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허나, 내 자네의 말을 믿기에는 좀 무리가 있네. 나는 자네를 여기서 처음 봤고 자네가 말하는 것들은 나로썬 금시초문(今時初聞)인 말들인데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믿을 수 있겠나. 게다가 내가 칠 년 전, 천가주를 마지막으로 뵜을 땐 정정하셨던 걸로 기억되네. 그 같은 고수(高手)가 고작 십 년도 안되어서 고인(故人)이 되셨다는 건 믿기지가 않네. 또한, 만약 자네가 진정으로 전 천가주의 차남이라면 이 시각에 왜 맹수에게 쫓기며 이런 험한 산중에서 도망을 치고 있겠나?”
구구절절(句句節節) 옳은 말이었다. 확실히 소류의 생각으로써도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을 한다면 믿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허나, 이것은 진실이었기 때문에 소류는 속사정을 말하였다. 물론 아직 어린 소류로써는 천가에서 이 일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함구령(緘口令)을 내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전 현(現) 천가주인 제 형과 믿었던 사람에게…….”
◈※※※◈
햇빛이 강한 여름날 정오.
울창한 침염수림 사이로 기합 소리들이 흘러 나왔다.
“뭘 하는 게냐! 좀 더 분발해!”
대련중인 두 명 중에서 조금 더 덩치가 크고 흰 바지 위로 황색 장삼(長衫)을 입고 있는 은발의 인영이 같은 색의 바지 위로 검정색에 가까운 남색 무복(武服)을 입고 있는 흑색 장발의 수려하게 생긴 상대에게 호통을 치듯, 걸걸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비지땀을 흘리며 움직이던 인영은 몸을 일직선상에 놓고 팔을 뻗어 강하고 빠르게 오른 주먹을 날렸다.
터억—
일권(一拳)이 막히게 되자, 흑발(黑髮)의 청년은 이를 악물고 이미 막혀버린 공격의 추진력을 이용해 공격했던 오른 팔을 살짝 굽혀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함과 동시게 몸을 돌리며 어깨와 머리로 은발(銀髮)의 중년에게 연계공격(連繫攻擊)을 가했다.
상당히 변칙적인 공격이었지만 중년 남자는 여유를 잃지 않고 침착하게 들어오는 연격들을 막았다.
흑발의 청년이 왼쪽 어깨로 또 다시 공세(攻勢)를 이으려 하자 중년인(中年人)은 그대로 청년의 등에 몸통 박치기와 흡사한 기술을 꽂아 날려버렸다.
“우악—!”
청년은 그 초식에 의해 멀찌감치 날아가 나무에 등을 부딪친 후, 반동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래… 벌써부터 현무(玄武)의 연격들을 상당히 익힌 것 같구나. 하지만 명심하거라. 무예는 머리뿐만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써 익혀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평정심을 찾거라. 또한 너는 너무 강(剛)만을 추구하는 것 같구나. 후후… 게다가 연격을 펼쳐나갈 때 생각을 하다니 너와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의 상대를 만난다면 필패(必敗)할 허점을 남기는 것 같구나. 몸으로써 그 자세를 외우거라. 초석(礎石)의 단계와 장류(長流)의 단계에서 네 녀석이 상당히 소홀했던 것이 이렇게 표출되는구나. 자중하거라. 그럼 오늘 대련은 이것으로 마치자꾸나.”
중년인, 류진은 땅바닥에 대(大)자로 뻗어버린 청년을 꾸짖으며 뒷짐을 지고 상당히 고풍스러워 보이는, 또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기와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의 입가에 대견하다는 듯한 미소가 걸려있음을 청년은 보았을까?
한참 후에야 신형을 일으킬 수 있었던 흑색의 긴 댕기머리를 한 청년, 소류는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쳇… 아직은 아닌가? 극성현무칠연격(極星玄武七連擊)…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으니 오늘은 이걸로 만족해야겠군….”
소류는 주먹을 꼭 쥐어보며 앉아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마음을 비우라는 게 쉬운건가… 비울 수만 있다면 스승님은 천강의 9중천(中天)까지는 완벽하게 흘리거나 되돌릴 수 있을텐데. 제 10중천은… 한 번도 못 봤으니 모르겠고….’
근 구백 년 동안 천강의 제 10중천에 입문한 사람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겨우 십 수여 년을 살아온 소류로써는 천강 제 10중천이 어떠한 힘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하암.. 졸립 -ㅅ-..; 전에 썼던 걸 올리게 됩니다... 몇개월만에 올리는 건지 -ㅅ-..; 쓰레기라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참고해드리자면 이 글의 무공은 천랑열전과 NoW의 설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타 문파의 무공은 다른 것에서 배낀 것이나 제가 임의로 만든 것입니다.
Chp. 01 #02
[조우(遭遇)]
“헉, 헉….”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한 인영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어두운 산중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뒤로 조금 떨어진 채 따라오는 물체는 영기(英氣)를 갖고 있을 법한 커다란 범 한 마리.
“좀! 가버려!”
소년이 뒤를 바라보며 권풍(拳風)으로 범을 위협해보지만 범은 그것을 가볍게 피하며 성이 난 듯 포효(咆哮)했다.
“제기라알—!”
마치 이제 잡았다는 듯 자신을 향해서 높게 뛰어오르는 범을 바라보며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위를 향해 양손을 모아 장력(掌力)을 쏘아 올렸다.
퍼엉—
제대로 명중한 건지 범은 뒤로 나가떨어지고 소년은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범이란 네 발로 달리는 지라, 제대로 된 경공(輕功)을 배우지 않는 이상, 두 발로 뛰는 인간이 범보다 더 빨리 달릴 수는 없어 금방 따라 잡힐 게 뻔했지만 체력이라는 것과 사냥감 포기라는 것이 범에게 적용될 때가 있으므로 나뭇가지와 범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찢어진 옷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렀지만 그 소년은 계속 도망을 쳤다.
다만, 그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소년의 경공실력으로는 범의 빠르기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학!”
등에 가해진 날카롭고도 묵직한 공격에 소년은 데굴데굴 굴러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잔디밭에서야 구르는 것을 멈추었다.
“쿨럭, 쿨럭—!”
생각은 했었지만 예상치를 뛰어넘는 강한 공격이었던 것인지 소년은 숨구멍이 막힌 듯 심한 기침을 토해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범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한 번 빠르게, 그리고 높게 뛰어 올랐다.
“쿨룩, 쿨룩… 치익—!”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범을 본 소년은 양손을 모아 다시 장력을 쏘았지만, 이번에는 범 역시 양 발을 모아 떨어지는 속력을 감소하게 할 뿐, 그대로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으, 으아아앗!”
뻐억—!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은발(銀髮)의 중년 남자가 한쪽 다리를 돌리며 바닥을 차고 올라, 범의 턱을 권(拳)으로써 가격하여 범을 단번에 뒤집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뛰어 또 한번 범의 배를 내려쳤다. 이상한 것은 범의 복부가 이상하게 일그러질 정도의 타격이니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야 할 법했지만 그런 소리는 전무(全無)했다.
“큭… 크륵…!”
땅에 떨어진 범은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가쁜 숨만을 내쉬었다. 한편, 중년 남자는 출혈(出血)이 심하게 보이는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소?”
마치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것처럼 친근하게, 하지만 하대(下待)를 하지 않고 평대(平待)를 함으로써 나이 어린 소년에게마저 예의를 차리며 안부(安否)를 물어오는 그에게 소년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이며 가쁜 숨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인이시로군요. 근데 아까 그 산군(山君: 호랑이를 지칭하는 말)은…?”
중년 남자는 소년의 물음에 몸을 움직여 범이 쓰러져있던 곳을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영물이라고 칭해지는 대호(大虎). 허나 그도 허기가 진다면 그저 보통 맹수로 변할 뿐이지. 죄 없는 사람을 해하려 하긴 했지만, 녀석도 그리 나쁜 건 아니니 용서하시게나.”
중년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범은 천천히 일어났다.
“뭐, 직접 충격을 주기보다는 움직임을 바꾸게 한 것뿐이니 그리 타격은 없을 것 같군.”
소년은 범의 배를 급히 확인했다. 범의 배는 전혀 함몰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멀쩡한 듯, 패퇴시킨 자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며 어슬렁어슬렁 소년의 눈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섭렵(涉獵)한 무공 중에 이렇게 상대방의 움직임을 흘리게 하거나 그저 힘을 더 가해 신형을 흐트러뜨리는 무공은 단 하나… 사신무(四神武)! 이자는…?’
“저… 실례하지만 존함(尊銜)이 어떻게 되십니까?”
소년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이 자가 사신문(四神門)의 문도(門徒)라면 이 자는 소년의 가문인 천가(天家)와는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는 문파의 산하(傘下)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음? 아, 미안하네. 나는 비류진(丕溜辰)이라고 하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일세. 그러고 보니 아직 서로 통성명도 나누질 않고 있었군.”
확실해졌다. 소년의 뇌리(腦裡)에는 그의 이름이 번쩍 하고 스쳐 지나갔다.
사신문(四神門) 제 3대 문주(門主) 광중광(光中狂) 비류진.
소년은 마음 속으로 그의 이름을 뇌까렸다.
‘사신문주(四神門主)… 비류진… 적(敵)…?’
류진은 단 한마디의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있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바꾸어 보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핫핫핫핫! 난 아직 자네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네…. 핫핫.”
소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어느새 숙여진 고개를 들어 류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재빨리 포권지례(抱券之禮)를 올렸다.
“전 전(前) 천가주(天家主)의 자녀 중 차남(次男), 천소류(天韶瀏)라고 합니다. 생명의 은인께 결례(缺禮)를 범한 점, 양해를 구합니다.”
그렇다. 소년은 바로 소류였던 것이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가 류진의 귀로 흘러들어가자, 류진은 의외라는 듯이 호오— 하며 흥미롭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에겐 첫째로 눈 앞의 소류라는 소년이 천가주의 아들이라는 것이 흥미로웠고, 소류가 전 천가주라고 칭한 것으로 깨닫게 된 자신이 알던 천가의 가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역시 그에게는 상당히 놀라운 소식이었다. 물론 처음 보는 소년의 말을 믿기에는 신빙성이 너무 없는 말이기도 했기에 그는 소류에게 되물어왔다.
“헌데 전 가주라니, 그럼 천가주가 죽었단 말인가? 허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됬군…. 그 자 덕분에 잠깐이나마 평화를 맛볼 수 있었는데 말이야.”
소류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에 류진은 안 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확인할 것이 하나 있었기에 자신의 짧고 까칠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허나, 내 자네의 말을 믿기에는 좀 무리가 있네. 나는 자네를 여기서 처음 봤고 자네가 말하는 것들은 나로썬 금시초문(今時初聞)인 말들인데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믿을 수 있겠나. 게다가 내가 칠 년 전, 천가주를 마지막으로 뵜을 땐 정정하셨던 걸로 기억되네. 그 같은 고수(高手)가 고작 십 년도 안되어서 고인(故人)이 되셨다는 건 믿기지가 않네. 또한, 만약 자네가 진정으로 전 천가주의 차남이라면 이 시각에 왜 맹수에게 쫓기며 이런 험한 산중에서 도망을 치고 있겠나?”
구구절절(句句節節) 옳은 말이었다. 확실히 소류의 생각으로써도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을 한다면 믿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허나, 이것은 진실이었기 때문에 소류는 속사정을 말하였다. 물론 아직 어린 소류로써는 천가에서 이 일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함구령(緘口令)을 내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전 현(現) 천가주인 제 형과 믿었던 사람에게…….”
◈※※※◈
햇빛이 강한 여름날 정오.
울창한 침염수림 사이로 기합 소리들이 흘러 나왔다.
“뭘 하는 게냐! 좀 더 분발해!”
대련중인 두 명 중에서 조금 더 덩치가 크고 흰 바지 위로 황색 장삼(長衫)을 입고 있는 은발의 인영이 같은 색의 바지 위로 검정색에 가까운 남색 무복(武服)을 입고 있는 흑색 장발의 수려하게 생긴 상대에게 호통을 치듯, 걸걸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비지땀을 흘리며 움직이던 인영은 몸을 일직선상에 놓고 팔을 뻗어 강하고 빠르게 오른 주먹을 날렸다.
터억—
일권(一拳)이 막히게 되자, 흑발(黑髮)의 청년은 이를 악물고 이미 막혀버린 공격의 추진력을 이용해 공격했던 오른 팔을 살짝 굽혀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함과 동시게 몸을 돌리며 어깨와 머리로 은발(銀髮)의 중년에게 연계공격(連繫攻擊)을 가했다.
상당히 변칙적인 공격이었지만 중년 남자는 여유를 잃지 않고 침착하게 들어오는 연격들을 막았다.
흑발의 청년이 왼쪽 어깨로 또 다시 공세(攻勢)를 이으려 하자 중년인(中年人)은 그대로 청년의 등에 몸통 박치기와 흡사한 기술을 꽂아 날려버렸다.
“우악—!”
청년은 그 초식에 의해 멀찌감치 날아가 나무에 등을 부딪친 후, 반동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래… 벌써부터 현무(玄武)의 연격들을 상당히 익힌 것 같구나. 하지만 명심하거라. 무예는 머리뿐만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써 익혀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평정심을 찾거라. 또한 너는 너무 강(剛)만을 추구하는 것 같구나. 후후… 게다가 연격을 펼쳐나갈 때 생각을 하다니 너와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의 상대를 만난다면 필패(必敗)할 허점을 남기는 것 같구나. 몸으로써 그 자세를 외우거라. 초석(礎石)의 단계와 장류(長流)의 단계에서 네 녀석이 상당히 소홀했던 것이 이렇게 표출되는구나. 자중하거라. 그럼 오늘 대련은 이것으로 마치자꾸나.”
중년인, 류진은 땅바닥에 대(大)자로 뻗어버린 청년을 꾸짖으며 뒷짐을 지고 상당히 고풍스러워 보이는, 또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기와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의 입가에 대견하다는 듯한 미소가 걸려있음을 청년은 보았을까?
한참 후에야 신형을 일으킬 수 있었던 흑색의 긴 댕기머리를 한 청년, 소류는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쳇… 아직은 아닌가? 극성현무칠연격(極星玄武七連擊)…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으니 오늘은 이걸로 만족해야겠군….”
소류는 주먹을 꼭 쥐어보며 앉아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마음을 비우라는 게 쉬운건가… 비울 수만 있다면 스승님은 천강의 9중천(中天)까지는 완벽하게 흘리거나 되돌릴 수 있을텐데. 제 10중천은… 한 번도 못 봤으니 모르겠고….’
근 구백 년 동안 천강의 제 10중천에 입문한 사람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겨우 십 수여 년을 살아온 소류로써는 천강 제 10중천이 어떠한 힘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하암.. 졸립 -ㅅ-..; 전에 썼던 걸 올리게 됩니다... 몇개월만에 올리는 건지 -ㅅ-..; 쓰레기라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참고해드리자면 이 글의 무공은 천랑열전과 NoW의 설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타 문파의 무공은 다른 것에서 배낀 것이나 제가 임의로 만든 것입니다.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