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Of Fantasy - 제1악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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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nimato & Piacere
푸른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 이 세상을 순백의 물감으로 물들려고 하는 눈. 그리고 그 순백의 물감으로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
“야! 거기 비켜!”
아이들은 저마다 한 손에 혹은 양 손에 새하얀 눈덩이를 들고는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우물가 양쪽에 세워져 있는 작은 깃발-빨간색과 파란색-과 그 주위에 올라가진 설벽. 아이들은 저마다의 진지에서 눈을 던지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직접 몸들 던져 적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집중 공격을 맞고는 다시 자기 진지로 들어가기 일수였다.
“저기 카를로스가 나왔다. 공격!”
“카를로스를 보호해라! 어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대장을 내세워 서로 공격과 방어를 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멕스의 엄호에 우물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눈이 장갑과 장화 속에 들어갔는지 조금 시렸지만 카를로스는 우물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가누고 있었다.
칼은 눈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우물가에 기대어 숨어 있었다. 멕스는 빨간 깃발이 되었고 칼은 파란 깃발로 반대편이 되어버렸지만 칼은 이 기회에 멕스에게 쌓인 기분을 풀기로 하였다. 반대편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칼은 아까의 말을 듣고는 그것이 상대편의 돌격대장 카를로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눈덩이 5개를 품에 앉은 채 칼은 살금 살금 카를로스를 향해 다가갔다. 아무것도 모른채 숨을 가누고 있는 카를로스.
[퍽!]
기습을 당한 카를로스는 옷 속으로 들어간 눈의 차가움에 몸을 파르르 떨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오히려 얼굴을 향해 날라간 눈덩이에 앞을 보지도 못한 채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카를로스를 잡았다! 상대편은 이제 3명 밖에 남지 않았다! 다들 돌격! 간단하게 무기만 챙기고 돌격!”
칼을 선봉으로 파란 깃발의 설벽에서 공격하던 5명의 아이들은 날아오는 눈덩이를 무시한 채 빨간 깃발의 진지를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우물가 근처에서 결국 한명의 아이가 온 몸이 흰 눈으로 뒤덮힌 채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하하! 저기 이제 5명 밖에 안남았다. 다들 버텨라!”
멕스의 외침에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눈을 모아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을 향해 눈을 던졌다. 중간 우물가 까지 온 파란 깃발의 아이들은 우물가에 몸을 기댄 채 눈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칼은 포복으로 전진하여 상대방의 설벽 앞까지 왔었다. 뒤를 돌아본 칼은 아이들을 향해 엄호해 달라는 손짓을 하였고, 우물가에 기대어 숨어있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집중 포격! 저기 클로네스에게 던져!”
칼이 위치한 설벽 안에 있는 클로네스에게 집중포격하는 아이들. 칼은 그 틈을 타서 일어났다.
“칼.. 칼이다! 칼이 쳐들어왔다!”
“다들 칼을 공격해! 클로네스! 무시하고 칼을 공격해!”
아이들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칼을 향해 눈을 던졌다. 하지만 이미 칼은 설벽은 무너뜨린 채 깃발을 향해 손을 내딪고 있었다.
“이제 좀.. 좀더..”
칼의 눈 앞에 있는 빨간색의 깃발. 그리고 점점 차가운 느낌이 드는 왼쪽 볼. 칼은 왼쪽으로 돌아보았다. 칼의 옆에 있던건 멕스였다. 멕스는 눈덩이 몇 개를 품에 앉고 있었다.
“하하. 감히 누구의 깃발을 넘보려고.”
멕스는 칼을 향해 눈을 던졌다. 온몸이 흰색으로 둘러싸이는 칼. 하지만 칼은 굴하지 않고 깃발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깃대에 닿아버리는 손.
“안돼!”
멕스는 외침과 함께 뽑아져 버린 빨간 깃발. 칼은 멕스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온 몸을 크게 펼쳤다.
“이겼다! 파란 깃발이 이겼다! 빨간 깃발은 항복하라!”
칼의 외침에 클로네스와 멕스를 비롯한 빨간 깃발의 아이들은 모두가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망연하게 쓰러지는 카를로스와 분통을 터뜨리는 클로네스.
집안에서 아이들의 눈싸움을 보던 라네아는 칼이 깃발을 뽑는 모습을 보고는 이제 그만 해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눈으로 뒤덮혀 언제 감기 걸리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라네아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뽀드득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발에 으스러지는 눈.
“칼! 이제 들어오렴! 감기걸리겠다.”
라네아의 외침에 승리를 기뻐하던 칼은 멈춰서고 말았다. 이내 칼의 손에서 떨어지는 빨간 깃발. 파란 깃발의 아이들은 모두가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 전쟁에서 패하는 요인에 꼈기 때문이었다. 멕스를 비롯한 빨간 깃발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씨익 웃었다.
“이번 눈싸움 교칙 제 5조.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부모님이 부르면...”
칼을 비롯한 파란 깃발의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시무룩 해졌다. 반면에 점점 빨간 깃발의 아이들은 의기양양해졌다.
“부르면... 패배다. 아직 우리가 항복했다는 말은 안했으니 전쟁이 끝난건 아니니깐 우리 빨간 깃
발의 승리다!”
멕스의 말과 함께 빨간 깃발 아이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다 져버린 게임을 칼의 어머니 덕분에 이겨버렸으니 더욱 기뻐하였다.
라네아는 아까까지만 해도 기뻐하던 칼이 자신이 부르자 갑자기 시무룩 해지고 오히려 멕스가 시무룩 했어니 지금은 기뻐하는 모습에 의아함을 가졌다. 왠지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느낌. 하지만 이내 느낌을 지워버렸다. 저번에 칼이 마을로 내려가 멕스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릴때 그녀가 전에 자신의 오빠인 아비누스에게 부탁했던 것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칼! 얼른 안들어 오니?”
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 터벅 걸으며 라네아의 앞으로 왔다. 라네아는 온 몸이 눈으로 뒤덮힌 칼의 옷을 털어주었다.
“이게 뭐니. 감기들겠다. 얘들아! 너희들도 얼른 들어가렴. 벌써 저녁 10시가 넘었는데 그렇게 옷 적시고 있으면 감기걸린다!”
라네아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칼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른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불빛이 온 집안을 붉게 물들였다. 라네아는 칼을 벽난로 앞에 데려다 놓고 수건과 칼이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다. 시무룩한 얼굴의 칼. 라네아는 칼의 겉옷과 바지, 장화를 벗겨주고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칼에게 가져온 옷을 입혀 주었다. 뚱한 표정을 짖고 있는 칼을 보며 라네아는 칼의 볼을 살짝 건드렸다.
“칼 왜그러니?”
말이 없는 칼의 대답에 라네아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엄마가 뭐 잘못했니?”
“... 왜 불렀어요?”
칼의 힘 없는 대답에 라네아는 살짝 웃었다. 삐진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칼이 삐지면 한동안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칼이 감기 걸릴까봐. 그리고 내일이 트리필리의 날이잖니? 그래서 이 엄마가 선물을 준비해서 말이야 그걸 얼른 내 사랑 칼에게 보여주고 싶은걸?”
선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숙인 칼의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라네아는 그런 칼의 미묘한 변화에 사랑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눈에 젖어버린 갈색의 곱슬머리. 빨갛게 달아오른 작은 볼. 라네아는 그런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의 모습에 무릎을 굽혀 살짝 껴안았다. 칼도 라네아를 등을 껴안았다.
“피. 그래도 좀만 이따가 부르지. 눈싸움 하다가 부모님이 부르면 지는걸로 했었단 말이야.”
라네아는 그제서야 칼이 왜 시무룩해졌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귀여운 짓만 하는 칼. 아직 6살 밖에 안된 아직 어린아이였다.
“자자. 대신 이 엄마가 칼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니? 그러니깐 이제 화 풀고 엄마 뽀뽀.”
라네아의 볼에다가 칼은 살짝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차가운 느낌의 입술. 라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포장되어진 네모난 박스를 하나 가지고 왔다. 칼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그 상자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그게 뭐에요?”
라네아는 칼의 앞에다가 상자를 내려놓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칼은 포장을 풀었다. 네모난 나무상자가 보였고 칼은 그 상자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 들어 있는 거는 바이올린 케이스. 칼은 천천히 그 케이스를 꺼내보았다. 보라색 빛에 붉은 빛을 반사하는 철쇠가 담겨져 있는, 그리고 한 쌍의 독수리가 비상하는 듯한 문양을 가지고 있는 케이스를 보고 칼은 매우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한쌍의 독수리가 비상하는 문양은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칼이라고는 하지만 바이올린을 배운지 2년이 다 되가는데 이 정도는 못 알아 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라네아의 표정은 칼과는 사뭇 달랐다. 친숙한 케이스. 마치 자신과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아왔던 느낌. 그리고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는 모호함.
라네아는 바이올린 케이스로 다가가 그 케이스를 천천히 열어보았다. 서서히 둘의 눈 앞에 보이는 천상의 바이올린. 이 세상에 댄 3대 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는 바이올린이 그들의 눈 앞에 보이고 있었다. 라네아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그 바이올린들 들었다. 붉은 와인색의 스크롤(머리)과 스크롤의 오른쪽에 양각되어져 있는 한쌍의 독수리. 짙은 회색의 페그(줄감개), 아름다운 스크롤에서 이어지는 갈색의 넥, 넥의 윗부분에 살짝 나와있는 짙은 갈색에 붉은 빛을 반사하는 핑거보드, 4줄의 새하얀 눈으로 만든듯한 현, 그 4줄을 잡아주는 짙은 갈색의 장미나무로 만든 테일피스, 그리고 테일피스와 핑거보드 사이에서 현을 지탱해주는 메이플로 만든 브릿지, 스크롤과 같은 붉은 와인색의 벨리(앞판), 그리고 그 벨리에 세겨져 있는 장인의 이름. 살짝 들어가 있는 짙은 갈색의 턱받침, 그리고 f자 구멍. 뒤에서 마른 장작의 마지막 생명의 빛에 물들어져 있는 하나의 붉은 바이올린. 붉디 붉은 핏빛으로 뒤덥힌,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그리고 너무나도 애절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그 옆에 놓여진 에르센형(形)의 붉은 색에 가느다란 은색의 실로 만들어진 활. 라네아는 쓸쓸한 눈으로 그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10년전까지 자신이 연주했던 바이올린 ‘샤콘느(Chaconne)’. 어릴때 그녀에게 생일 선물이라며 그녀의 아버지가 아스완 제국을 뒤져 그녀 가문의 1/10이란 막대한 돈을 부어 사온 바이올린. 그리고 이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즐거워해주던 가족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던 그-미네바. 204년 9월 3일. 그녀가 17살 때 그녀의 아버지 생일선물로 그의 앞에서 들려주었던 마지막 연주 ‘프리덤(freedom)’. 그리고 그 다음달 전쟁터에서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닫혀버린 바이올린 케이스. 그리고 19년만에 그녀의 손으로 오게 된 바이올린‘샤콘느’. 그렇게 그녀의 기억속에 잊혀져 있던 그 바이올린이 오늘 아비누스에 의해서 그녀에게 오게 되었다.
라네아는 자신의 손에 안긴 이 바이올린을 천천히 칼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신의 손에서 멀어지는 샤콘느에 그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바이올린을 잡는 칼. 칼은 라네아를 바라보았다. 비록 어리긴 하지만 어느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아는 칼. 그래서 더욱 라네아를 바라보았다.
“칼.”
라네아의 입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이 엄마가 주는 선물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이 바이올린은 이제 이 세계에 단 3대 밖에 남지 않은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의 마지막 바이올린 ‘샤콘느’란다. 그리고 이 엄마가 가장 즐겁게 연주했던 마지막... 마지막...”
흘러내리는 붉은 빛의 눈물. 그리고 소리없는 그녀의 입술. 조금씩 떨리는 그녀의 얼굴. 붉은 빛에 물들어 버린 그녀의 금색 머리. 칼은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내려둔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살짝 기대어 주었다. 서서히 젖어드는 칼의 옷. 시계의 회전추 소리와 마른 장작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남기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소리없는 울음만이 맴돌고 있었다. 서서히 잦아드는 그녀의 울음.
“엄마 이제 그만 울어. 응?”
라네아는 칼에게서 떨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은 그녀의 눈가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더 이상의 붉은 눈망울은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칼의 얼굴을 바라보다 벽난로 위에 위치한 미네바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붉은 벽난로의 빛이 채우지 못한 그의 초상화. 비록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 우울해 보였다. 왠지 자신의 모습에 울고 있는듯한 그의 얼굴.
“칼. 이 샤콘느는 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가장 즐겁게 연주했던 바이올린이란다. 그리고 칼의 외할아버지가 그 다음달에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단다. 그 후로는 이 엄마는 이 샤콘느를 연주하지 않았지.”
“아빠처럼 전쟁터에서 돌아가신거야?”
칼의 물음에 라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미네바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던 칼. 어릴때는 아빠를 만나러 가겠다고 인트라시까지 혼자 나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응. 그래. 하지만 우리 칼은 그렇게 되지 않을꺼야. 이렇게 귀여운 칼을 이 엄마는 아무대도 안보낼껀데 말이야.”
“나도야. 나도 절대로 엄마 곁에서 떠나지 않을꺼야.”
“그래 우리 칼.”
라네아는 칼을 자신의 품에 앉았다.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그리고 그를 닮은 아이. 그런 이 아이가 있기에 지금껏 라네아는 버틸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랑스러운 그의 아이. 라네아는 칼의 등을 토닥토닥 했다. 그리고는 옆에 케이스 안에 놓여진 바이올린들 들어 칼의 품에다가 안겨주었다.
“이제부턴 이 샤콘느는 칼이 연주할꺼야.”
“정말? 엄마껀데..”
“괜찮아. 이 엄마는 이제 그 샤콘느는 연주할 수 없거든. 아니 하면 안되거든. 그러니 이젠 칼이 이 샤콘느를 소중히 대해주렴 이 엄마를 생각하듯이 말이야.”
칼은 자신의 품에 안긴 바이올린-샤콘느를 쳐다보았다. 눈을 때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핏빛으로 물들여진 바이올린.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이올린을 자신의 어깨에 갖다 대었다. 라네아는 케이스에서 활을 꺼내 칼에게 주었다. 정말로 성스러운 물건을 받듯이 그녀가 건네주는 활을 천천히 집는 칼. 붉은 벽난로가 아스람이 감싸주는 그런 따뜻함 속에서 소년은 눈을 감은 채 바이올린을 켰다. 서서히 울리기 시작하는 소년의 선율-Agnus Dei. b단조의 낮지만 중우한 선율이 온 집안을 휘감았다.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들려주었다. 조금씩 떨리는 왼손가락과 활. 그리고 그 미묘한 떨림이 가르쳐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하지만 슬픈 노래. 하늘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 그시대에 이 땅에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늘을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노래. 하늘을 향하는 선율이 아닌, 땅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한 선율. 안으로 흐느끼는 음악. 그렇기에 더더욱 바깥으로 토해 낼 수 없는 한 사람의 마음을 찬양하기 위한 선율. 붉디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진 이 세계에 대한 저주스러움을 담은 한 사내의 처절한 애절. 이 사람의 고통에 대한 연민일까. 서서히 격양되어지는 소년의 선율. 터질 수 없는 슬픔의 흐느낌. 어느 세계에도 속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슬픔. 그렇기에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자신의 이 슬픔을 어쩔 수 없이 하늘에 고하는 한 사내의 비참함. 하지만 숭고스러움이 느껴지는 사내의 기도.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할 때 땅은 흐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흐느끼는 소년의 떨리는 팔. 그리고 내려앉아버리는 선율과 활. 내려앉은 적막감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칼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보이지 않은 선율의 세계에서 보았던 아리아.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 지금 칼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세계. 하지만 그 세계속에서 느꼈었던 작은 한가닥의 선율. 라네아는 칼에게 다가가 꽉 껴안아 주었다. 칼의 눈에 보이는 아리아의 세계는 그녀 또한 느꼈었던 세계. 그리고 그 세계가 건네주는 무수히 많은 감정과 영혼. 그리고 혼돈. 슬픈 전설이 살아있는 이 샤콘느의 목소리를 들은 칼에게는 지금 이 샤콘느가 전해주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잠시후 마치 한송이의 꽃이 아스라지는 것처럼 칼의 몸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라네아는 칼을 받아내어 벽난로 앞에 눞혔다. 칼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빛의 눈물. 그리고 적히는 나무바닥. 라네아는 칼의 왼손을 펴 샤콘느를 다시 바이올린 케이스에다가 집어넣어 의자 옆에다가 기대어 두었다. 그리고 방에 잠시 들어가 커다란 모포를 하나 들고 나와 칼을 덮어 주었다. 벽난로 옆에 모아둔 마른 장작 몇 개를 벽난로 안에 던져 놓은 후 라네아는 칼의 옆으로 모포를 덮고 누웠다. 칼의 살짝 붉어진 볼에 입맞춤을 한 라네아는 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자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칼. 샤콘느가 보여주는 꿈을 잘 기억해 주렴. 그가 보여주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가 가르쳐주는 아리아의 선율을. 내일 트리필리의 날에 보자구나”
푸른 밤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들. 그리고 그들이 내려주는 새하얀 눈. 그 눈은 이 세상을 하이얀 세상으로 바꿔주고 있었다. 순수함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영원의 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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