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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여신님-출동, 머신 아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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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인은 망연자실하게 떨어진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한성 고교의 신발장. 막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려던 그는 사소한 시비에 휘말리고 말았다.

“아,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

가인과 부딪혔던 남학생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며 투덜거렸다. 가인의 발밑에 떨어져있던 신발은 그의 것이었다. 막 신발장을 돌아 나오던 참에 멍하니 있던 가인과 부딪히고 만 것이다.

‘……정말 되는 일이 없군.’

가인은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하며 재빨리 떨어진 신발을 주워들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 건지……평소라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을 놓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오감이 둔해져 있었다. 아니. 오감이 둔해진 건 아니다. 둔해진 건 자신의 정신이었다. 묘하게 넋이 빠져 있다고 해야 하나 긴장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하루 내내 딴 생각이나 하고 있고, 덕분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가인은 학생에게 사과하려고 입을 열었다.

“미안. 내 실수…….”


“하. 피스메이커는 이렇게 사람을 마구 쳐도 되는 건가.”

순간, 남학생의 말에 가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제 보니 그는 가인과 같은 2학년 1반의 학생이었다. 뒤로도 몇몇 클레스메이트들의 얼굴도 보였다. 학생은 빼앗듯이 가인의 손에서 신반을 낚아채며 자신의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야, 저것 봐라. 잠깐 부딪힌 거 가지고 사람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데?”

“냅둬. 괜히 기분 건드리지 마. 매일 몬스터나 상대하는 녀석인데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냐. 마음 내키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고.”

“나, 참. 무서워서 살겠나. 쳇.”

학생들의 속삭임에 가인은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이건 뭐 노골적인 괴물취급이지 않은가.

가인의 정체를 안 2학년 1반의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태도를 취했는데, 그 첫 번째가 그를 없는 사람인양 무시하는 것이었고 그 두 번째가 지금과 같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인이 가진 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그들이지만, 이내 그가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되려 분풀이를 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팔라딘 대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의 사정을 가인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인간적으로 힘이 빠졌다. 분명 친구들의 기억을 지워버리지 말라고 한 건 자신이었지만……그렇기에 이런 일이 생겨도 그는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시 학교에 나온 걸까? 나는 그대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게. 피스메이커라면 좀 더 바빠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한가하게 학교 나올 틈이 있으려나.”

“솔직히 고등학교도 다닐 필요 없지.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으니까 대우도 좋을 테고……아마 생명 수당까지 합하면 수입이 천문학적인 액수일 걸. 장래가 보장되는 직업이라고.”

“햐. 부럽구만. 그러면서 학교는 왜 계속 나오는 거람. 반겨주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친구들의 속삭임이 계속될수록 가인의 고개는 점점 떨어졌다. 화를 낼 기분도 들지 않았다. 단지 무력감만 느낄 뿐이었다.

‘결국 너와 난 다를 게 없어! 저들의 눈에는 똑같은 괴물로 비춰질 뿐이다!’

왜 이렇게 서글픈 기분이 드는 걸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 걸까. 나도 내 자신이 저들과 틀리다고, 그렇게 무의식 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카이가 했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자꾸만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괴물 취급 받으면서 화도 나지 않아? 회의감은 들지 않아? 이후로도 넌 변함없이 저들을 지키겠다고 말할 수 있어?’

가인은 카이의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답하길 회피했다. 그것은 일단 자신이 괴물이라는 걸, 저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인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 신발장의 위에서부터 한 검은 인영(人影)이 번개같이 가인과 학생들의 사이로 뛰어내렸다. 인영으로부터 흘러나온 긴 회색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 나풀거리며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학생들은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다. 누, 누구지?

“……브루스?”

뒤늦게 괴인의 정체를 알아본 가인이 두 눈을 휘둥그래 뜨며 소리쳤다. 난데없이 등장한 괴인. 그는 다름 아닌 가인의 동거인이자 그와 같은 피스메이커, 브루스 류였다. 브루스는 땅에 끌리는 자신의 땋은 머리를 가볍게 목에 둘러메며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학생들은 아직도 그의 등장에 얼떨떨한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파파팍

그때 브루스가 번개같이 학생들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찍어 눌렀다. 학생들은 화들짝 놀라 자신들의 이마를 감싸며 소리쳤다.

“으앗! 뭐야?”

“무슨 짓이야!”

그런 그들에게 브루스는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너희들은 지금 나에게 비공이 찔렸다. 그토록 경고했건만 감히 피스메이커에 대한 사항을 발설하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앞으로 피스메이커의 피자라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찌른 비공은 네놈들의 뇌 세포를 파괴할 것이다. 누워서 대소변을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 입을 놀려보도록.”

“거, 거짓말!”

학생들은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비공을 찔렸다느니, 뇌세포를 파괴 시킨다느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브루스는 비공을 찌른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유달리도 하얀 그 손은 왠지 모를 요사함까지 띄고 있었다.

“거짓인지 아닌지……시험해 보고 싶다는 거냐?”

“히익!”

“괴, 괴물!”

그 으름장에 학생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인인데다가 평소의 기이한 행동. 가인과 더불어 피스메이커라는 점 등이 학생들의 공포를 부추겼던 것이다. 브루스는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흥. 어기가 없군. 이런 허황된 말을 믿어버리다니.”

그 정도로 그들의 마음이 흉흉해졌다는 증거였다. 아마 저들이 가인을 괴롭혔던 것도 다 마음속의 불안함을 달랠 길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몬스터란, 피스메이커란, 미지의 존재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브루스는 침울해져 있는 가인을 돌아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뭘 그렇게 의기소침해져 있는 거냐? 저런 철없는 것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겠지?”

“아, 아뇨…….”

가인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브루스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힘을 가진 이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경계하는 거지. 그건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직장 내에서 능력이 좋은 사람은 다른 이들의 경외를 받으면서 동시에 시기와 질투도 받게 되지 않나.”

“그렇죠.”

“그것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어. 뭐, 네 녀석과 같은 경우에는 그 능력이란 게 좀 더 눈에 보이는, 인간의 폭력성을 자극시키는 부분이라서 정도가 심할지는 모르겠지만……속편하게 생각하도록. 그냥 네가 공부를 잘해서 저들이 부러워하는 거라 생각해.”

“하하하. 뭐에요. 그 비유는?”

가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브루스도 자신이 조악한 비유를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인상을 구겼다.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쳇. 어울리지 않는 위로를 하려니까 말이 다 헛 나오는군…….

가인은 그런 브루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브루스. 걱정해줘서.”

“……흥. 누가 너 같은 놈을 걱정했다는 거냐?”

브루스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뺨이 상기된 것처럼 보였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브루스는 팔짱을 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인간의 한 단면만 보고 실망하지 말아라. 지킨다는 건 그 실망감마저도 포용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는 턱으로 가인의 뒤편을 가리켰다.

“너무 저 녀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는 말도록.”

“예?”

가인은 브루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막 유리와 테레이아, 재영이 그를 발견하고선 뛰어오고 있었다. 서둘러 다가온 유리는 행여나 가인을 놓칠새라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오빠, 왜 그렇게 먼저 가버린 거야? 같이 가지 않고…….”

유리는 서운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을 마주하자 가인은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다. 사실 그는 일부러 모두를 피해 혼자서 귀가하려고 했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다. 사실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사실 자신들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바보 같은 생각인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했다. 그들은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의심하게 된다. 가인은 그런 자신이 싫었다.

“최근 들어 이상해, 가인. 잠깐만 눈을 떼면 사라져 버리고.”

테레이아가 가인의 팔짱을 끼면서 칭얼거렸다. 여느때처럼 장난스러운 태도였지만 가인을 바라보는 그 눈빛 속에서 그녀가 정말로 서운해 하고 있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재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정말 뭔가 이상하다고. 마치 바람 난 사람처럼…….”



거기까지 말하던 그는 테레이아와 유리의 이문정주 합격에 배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뒹굴어야만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인은 자신도 모르게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가인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오랜만에 노래방이나 갈까?”

“……?”

갑자기 웬 노래방?

테레이아와 유리, 재영은 영문을 몰라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가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

“그, 괜스레 걱정을 끼친 거 같아서……대신 노래방 비는 내가 낼 테니까.”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재영은 대번에 가인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소리쳤다.

“오오! 좋은 선택이다! 욕구 불만을 해소하는 데에는 소리 지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 우리 같이 잡혀 사는 남자들의 설움을 한껏 풀어보자고!”



이번에도 강한 타격음과 함께 재영은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대신 앞의 상황과 다른 점은 어느샌가 나타난 유시내와 성마리까지 유리와 테레이아의 공격에 동참했다는 것이다.(마리는 왜?)

시내는 쓰러진 재영에게 쪼그려 앉으며 방긋 웃어보였다.

“잡혀사는 남자의 설움이 어떻다고, 재영 군?”

“아, 아니……그게 저, 이건 남자라면 한번씩 겪어보게 되는 번뇌의 충돌이라고나 할까……그, 그래. 과도기인 거지. 우리에 갇혀 있는 짐승이 한번씩 산책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득!

매를 벌어라, 인간아.

시내는 가차 없이 재영의 팔을 역십자로 꺾어버렸고, 재영의 처절한 비명이 그 뒤를 따랐다. 가인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훈훈한 미소를 머금었다.

‘잃고 싶지 않아.’

유리를, 테레이아를, 재영이를, 마리 선배를, 브루스를. 이 즐거운 순간을 잃고 싶지 않아. 이들과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오라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자신은 그들에게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그들과 같은 범주 속에 포함되지 못하게 된다. 그들과 달라져 버린다.

‘괴물이……되어버려…….’

가인은 두려웠다. 문득 시민이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어째서…….

‘가인 씨는 그 힘에 잠식당하고 말거에요!’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든다. 마음 한구석에서 차갑게 머물러 있던 두려움. 그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히 정제되어 가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그 몸을 키워나간다. 언젠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그것에게 자신은 먹혀버릴 것이다.
힘을 쓰면 쓸수록, 오라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나는 모두에게서 멀어져 버린다.

‘싫어. 그런 건…….’

시끌벅적한 일행 속에서 가인은 자신의 고민을 마음 깊은 곳에 가두고 웃었다. 웃고 즐겼다. 그럴려고 노력했다. 여느 때와 같이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자신을 숨겼다.

“…….”

그리고 그런 가인을 브루스만이 근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즉 종합하자면 영국, 스위스, 미국의 LA, 일본, 중국까지 그 어디에도 세계의 중심. 즉, 옴팔로스는 없다는 결론이 나와.”

세계에 뻗어있는 주요 용맥은 여섯 곳. 주로 몬스터가 출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중에 한국을 제외한 다섯 곳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연히 남는 건…….

“결국 남은 곳은 여기 뿐. 즉 옴팔로스가 있는 곳은 여기라는 거지.”

페이오스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애초에 제일 가능성이 높은 곳을 한국으로 뽑고 만약의 가능성 때문에 세계 각지로 조사를 나갔던 것이니만큼 지금의 이 사실은 단순한 확인 작업일 뿐이다.

“그리고 옴팔로스가 있는 곳은 유레카 내부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 역시 짐작하고 있던 위치다. 유레카가 괜히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닐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으니. 게다가 이미 내부에 들어가보기까지 했지 않은가. 문제는…….

“그런데 말이야. 그 플르나라는 거. 어떻게 생긴 거야?”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찾아야 할 플르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베르단디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

우리……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던 거지?

정작 가장 중요한 목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찾아 나섰으니 도대체 어떻게 찾으려고 했던 걸까? 어쨌든 케이 덕분에 지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그러니까…….”

베르단디의 설명에 의하면 플르나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우선 푸른색의 크리스탈 모양을 한 플르나. 이게 가장 기본적인 플르나라고 한다.
두 번째는 보라색의 다이아 모양을 한 플르나. 다이아 모양의 플르나는 기본형태가 변형된 형태다.
세 번째는 붉은색의 수정 모양을 한 플르나.
다이아 모양의 플르나는 첫 번째의 10배정도 되는 기운이 모여 있고, 수정 모양의 플르나는 두 번째의 20배 정도 되는 기운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야 되는 플르나는 붉은색의 수정 모양의 플르나. 그리고……그들이 찾아야 되는 붉은색의 보석은 세계에 단 하나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보통 크기는 성인 남성의 주먹만한 크기. 뭔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느낌인데…….

“주먹만한 크기라……거기에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거고.”

“옴팔로스란 곳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 수 없는 상황.”

“난감 하네…….”

한마디씩 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찾을 수……있으려나. 진짜 자신 없어진다.

“자. 자. 힘들 건 알고 온 거잖아. 신계의 안전이 우리한테 달려있다고.”

하긴. 울드 말이 맞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온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옴팔로스를 찾아서 그곳으로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옴팔로스에 진입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현재 그들이 돕고 있는 피스메이커의 분위기도 뭔가 이상하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 움직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 하다.

‘후우.’

케이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기댔다. 푹신한 소파는 부드럽게 케이의 몸을 감싼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몇 개월간 지내온 집을.

‘……넓군.’

타력본원사도 좁은 곳은 아니었는데 이곳은 공간 확장 술법까지 걸려서 엄청 넓어보였다.
우리 집이……어떻게 생겼더라?
이미 반년이 넘게 이곳에 있다보니 이젠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높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 타력본원사. 집을 구하던 중 베르단디의 힘으로 찾아가게 된 곳. 우리들의 보금자리. 4년간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20여년간 겪었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이 4년 동안 끊임없이 일어났다. 울드와 스쿨드에 의한 사건. 마족과의 전투. 위기. 각종 레이싱 대회들.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의 만남. 쉬운 일보다는 어렵고 힘든 일들이 더 많았지만 그 일들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건, 베르단디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그녀와 함께라면 불행도 행복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빌었던 소원을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녀가 나에게 ‘소원은?’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와 같은 여신이 계속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 할 거다. 진짜로. 믿어라. 응?

“……그립네. 우리의 집이.”

“아, 맞다. 말하는 걸 깜박했는데.”

케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스쿨드가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타력본원사 그대로 있어. 시글이랑 밤페이도. 우리가 떠났던 그때와 다름없이 말이야.”

타력본원사가…….

“아직 있다고……?”

“응.”

떠나올 때, 모든 것들을 그곳에 두고 왔다. 기본적인 생필품이며 고가의 물건들까지-고가라고 해봐야 몇 개 있지도 않지만-그대로 두고 왔는데 떠났던 때와 다르지 않다고?

“어떻게 된거야?”

“내가 말했잖아. 밤페이랑 시글도 그대로 있다고. 둘 다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우리를 기다리며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아.”

“……충전은?”

“당연히 충전기로 했지. 모든 게 그대로 있었다니깐?”

“……전기는?”

“그야 당연…히…….”

어라?

그제야 스쿨드도 이상하단 걸 느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케이의 말이 이어졌다.

“수도는? 집세는? 전화비는? 가스는?”

“그만! 그만!”

결국 참다못한 스쿨드가 폭발했다.

“몰라! 나도 모른단 말이야!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라고!”

것도 그러네. 그런데 진짜 어떻게 된 일이지? 이곳은 우리가 있던 때부터 몇십년 뒤의 세계. 그런데 아무 이상 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다? 그거야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몇십년동안 계속 집세를 비롯한 비용을 대신 대주고 있다는 말인데…….

“…몰라. 신경 끄자.”

결론이 그거냐…….

“내가 결론을 어떻게 내리는 무슨 상관이야?”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거냐?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한심한 건 아니고?”

흐, 흥!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건데? 오히려 아무 일도 않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그쪽이 훨씬 한심하네!

“나는 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지만 댁은 뭐유?

윽, 망할 놈…….

“케이 씨? 누구랑 얘기하는 거에요?”

“응? 그러게? 나 누구랑 얘기했던 거지?”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려봐야 내 존재가 보일 리가 없다. 왜냐면 나는 이곳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푸하하하하!

퍽!

으윽. 어디서 짱돌이…….

빠지지직!

“응? 울드. 갑자기 왜 그래?”

페이오스의 말에 울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한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푸른 전격이 맺혀있었다.

“글쎄? 나도 모르게 갑자기 화가 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네.”

“울드도 그래? 나도 지금 화가 막 나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데.”

이상하네……라고 중얼거리는 둘. 저거 이러다가 무슨 큰 일이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면 일단……텨!텨!텨!텨!텨!








“이대로는 안돼.”

유레카의 메디컬 센터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던 브루스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오라 수치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하여 맨 몸으로 검사에 임하고 있었다. 계측기가 달린 그의 몸은 지금껏 몬스터를 상대해온 게 거짓말인 것처럼 여리고 가늘었다.

“애송이가 자신의 힘을 경계하기 시작했어. 이 상태로는 성육신의 단계에 접어들더라도 육신의 죄를 정화하지 못해. 각성은 무리다.”

“……하는 수 없죠. 그 모든 일을 견뎌내기엔 가인 군이 아직 어려요. 지금처럼 참고 있는 것만 해도 대견하지 않습니까.”

유리관 밖에서 계측기의 정보를 기록하던 닥터가 가볍게 대꾸했다. 브루스는 풀려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한탄했다. 검사실의 형광등 탓인지 그의 회색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유독 하얗게 보였다.

“마음에 안들어, 한심한 놈. 겨우 그런 꼬마의 궤변에 흔들리기나 하고.”

“네크로맨서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삶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신념들이 있고, 그 중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의 신념과 부딪혀야 한다. 지킨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지킨다는 것은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위다. 이타적인 행위가 아니란 말이지. 자신이 지키겠다고 결심한 거다.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거기에 무슨 회의감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게 있단 말인가.”

확고한 브루스의 말에 닥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가인 군에게 해주시지 그랬습니까? 이렇게 답답해하실 거라면…….”

“아니. 어차피 이건 녀석이 스스로 깨닫고 납득해야할 문제다. 내가 아무리 옆에서 얘기해봤자 애송이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밖에 되지 않아. 노인의 충고는 젊은이에게 잔소리로 들리는 법이지.”

“ 브루스 님은……가인 군을 정말 걱정하고 계시는 군요.”

“흥. 슬슬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검사가 끝난 모양이군.”

과연 그의 말대로 패턴 그레이의 수치 측정은 종료되어 있었다. 브루스는 한켠에 벗어둔 자신의 권복을 걸쳐 입으며 뒷머리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그의 회색 머리카락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재빨리 서로의 몸을 땋아 내렸다. 인계에 저장시켜둔 자신의 육체 기록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 기록은 그가 삼계로 떨어질 때 다시 인계로 돌아오기 위한 하나의 피드백(feedback)으로서 사실 의복을 벗고 입는 행위조차 이 피드백을 수동적으로 행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브루스가 의복을 갖춰 입고 유리관 밖으로 나오자 닥터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가인 군을 걱정하시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브루스 님의 몸을 더 걱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 좋은가?”

“예. 그것도 상당히.”

닥터는 침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루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스크린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그의 오라 수치와 그 외의 신체 수치들이 그래프로 분석되어 있었다. 분명 저번 달보다 모든 면에서 수치들이 떨어져 있었다.

“육체의 노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포 내의 DNA분자 절단이 증가하고 있고 DNA분자 장애의 회복 능력도 감퇴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지만……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겁니다.”

“…….”

“역시……저번의 그 일이 원인인 거겠죠?”

닥터의 질문에 브루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칠성권 제1의 발경 탐랑.’

그가 가진 극대소멸권(極大掃滅拳). 탐랑은 삼차원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아포칼립스 제너레이터(Apocalypse Generator)인 만큼 막대한 생명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브루스는 역천(逆天)의 대가로 자신의 무한에 가까운 삶을 단축시킨 것이다.
선인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노화가 멈춘 그라도 이 탐랑 만큼은 시전자에게도 똑같은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기에 그 혼돈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인계와 단절하고 삼계 사이에서 몸의 정기를 보충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랑으로 소비된 정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선기로 정기를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노화가 된 부분은 되돌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브루스의 머리카락에서 색소가 침착(沈着)된 게 그 증거였다.

그렇게 그는 2020년 이후로 다시 한번 나이를 먹고 말았다.

‘이제……얼마 남지 않았어.’

다음 번 탐랑을 쓸 때가 마지막이다. 그때가 인계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이다. 그 전에 만날 수 있을까? 그 전에 천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그때까지 오라의 주인이 각성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장 큰 대 명제였다. 그의 각성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고픈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은 숨막히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조만간 오라의 주인은 각성하게 된다. 반드시.
브루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가인을 떠올리며 낮게 탄식했다. 그가 예정된 미래 속에서 괴로워할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디 그 순간, 그가 예정된 운명의 시험을 당하는 순간, 그저 자신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그때 닥터의 목소리가 브루스의 상념을 일깨웠다. 브루스는 인상을 굳히며 물었다.

“……큰일이라니?”

“이런 때에 남은 요르문간드의 화신들이 총공세를 펼친다면 우리로선 대책이 없지 않습니까. 가인 군이 각성하지 않는 한 머신 아더는 무용지물일 뿐이고, 브루스 님의 극대소멸권도 당분간 사용할 수 없으니.”

“……!”

브루스는 두 눈을 부릅떴다. 닥터가 의외의 사실을 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놀람을 표하지 않으며 태연하게 닥터의 말을 받았다.

“그렇군. 거인은 움직일 수 없겠어.”

“예. 브리트라 때처럼 요르문간드의 본체가 구현이라도 되는 날에는 잘못하다간 제2차 대재해가 일어납니다. 아마 이번에는 도시 하나로 끝나지 않겠죠. 그 전에 가인 군이 각성을 해주면 좋겠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닥터를 브루스는 조용한 눈으로 응시했다. 분명 닥터는 대재해와 관련된 인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어째서 극대소멸권의 존재와 브리트라의 일을 알고 있는 거지?
브루스는 그의 속대를 떠볼 셈으로 말을 꺼냈다.

“브리트라 때는 운이 좋았어. 적어도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은 살아남았으니까.”

“……예? 세 명이라니? 여섯 명 아니었습니까?”

걸렸다.
브루스는 이 질문 하나로 닥터가 알고 있는 정보의 내용과 그 한계를 파악해냈다. 닥터의 코리 안겔리(Chori angeli)는 중급 버추즈(Virtues)의 바르비엘(Barbiel). 그에게 허용된 정보를 볼 때 여기서는 세 명이라고 답해야만 했다.
피스 블랙 한시영.
피스 그레이 브루스 류.
피스 카민 마유빈.
그 이상을 알고 있다면 그는 분명 다른 루트로 정보를 입수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닥터가 말한 여섯도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가진 정보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

그제야 닥터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브루스가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자 이내 한숨을 쉬며 솔직하게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조사했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차가운 브루스의 질문에 닥터는 애써 침착히 말을 이었다.

“제가 여기 메디컬 센터의 책임자로 근무한지도 어느덧 5년입니다. 그 기간동안 제게 허용된 정보가 터무니없이 작았기 때문입니다. 피스 관계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 신상 명세를 작성하다 보니 이것저것 모르던 사항들을 알게 되더군요. 뭐, 그러던 것이 어느덧 취미가 되어버려서…….”

닥터는 브루스의 눈초리가 무안해선지 연신 그답지 않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 모습에서 거짓은 보이지 않았기에 브루스는 천천히 경계심을 거뒀다.

“대재해에 관해서는 얼마만큼 알고 있지?”

“아, 예. 대재해를 일으킨 게 요르문간드의 화신 브리트라라는 것과 본체로 구현된 그를 브루스님이 극대소멸권으로 소멸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때의 생존자가 배신자 한시영과 마인드 브레이커 마유빈. 그리고 진 사령관과 수정양. 시더 양이라는 정도…….”

“호오. 그래서 생존자를 여섯이라고 한 건가?”

“예. 시더 양과 같은 경우는 그녀의 정신 분석 자료에 대재해 때의 생존자 기록이 남아 있더군요. 그리고 진 사령관 님과 수정 양은……뭐, 그때의 일로 지금의 한국 지부를 맡게 되었다는 소문이 있어서.”

“소문?”

“……5년간 그분들을 대하다 보니 꽤 여러 가지 얘기들을 들을 수 있더군요.”

브루스의 취조 아닌 취조에 닥터는 긴장하면서도 성심성의껏 답했다. 솔직히 메디컬 센터의 책임자라면 이정도 조사쯤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만 해도 준 사령관 급에 달하는데 주어진 정보는 소량으로 제한되어 있으니, 그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는가. 닥터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인격자였기에 망정이지 어지간한 국회의원이었다면 진즉에 두 팔 걷어부치고 일어났을 것이다.
브루스는 헛기침을 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흠. 내가 좀 예민했군. 요즘 꽤 뒤숭숭한 일들이 겹치다 보니.”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게 굴었을 뿐이죠. 아, 그런데……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닥터는 안경을 쓸어올리며 차분한 어조로 브루스에게 물었다.

“시더 양의 조모(祖母) 노엘 웰리스 님 말입니다. 그 분의 행방을 혹 아십니까? 대재해 때의 LA 사망자 기록에서 그 분의 성함을 찾아볼 수 없던데. 앞에 생존자 수가 여섯이 아닌 건 그 때문 아닌가요?”

“…….”

브루스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닥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호기심이 많군?”

“호기심을 업으로 삼는 학자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군요.”

닥터는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으며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보였다. 브루스는 웃음을 거두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지. 적당히 자제할 줄 아는 법도 배워두는 게 좋을 거야.”

“하하. 충고 감사드립니다.”

닥터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브루스는 그대로 찬 바람이 나게 검사실을 나가버렸다. 닥터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안경을 쓸어 올렸다.

“노인의 충고는 젊은이에게 잔소리로 들린다……라.”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브루스가 했던 말을 되씹었다.






깨어났을 때 그녀가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머리가 타버릴 것처럼 아픈, 눈조차 멀어버릴 것 같은 고열이었다. 깨어났을 때 그녀가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할아버지는……누구……?’

‘……그랜파(Grandfa)라고 부르거라. 오늘부터 내가 네 할아버지란다.’

기억 속에는 없던 그녀의 할아버지였다.








‘이, 이런 일이…….’

코리 안겔리 상급 케루빔(Cherubim)의 일원들은 자신들의 앞에서 완벽히 디멘션 트랜스퍼 이론과 초대칭 입자 와프(Waff)의 존재를 설명해낸 여덟 살 소녀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들의 시선에 불안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믿을 수 없어. 난 납득 못해! 지금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아이가 스스로 이런 지식을 깨우쳤다고!’

‘그 지능 지수라는 것도 의심스럽군! 요피엘(Jophiel)의 의장. 그 210이라는 수치는 무슨 근거로 나온 것인가? 혹 유전자 조작을 가한 실험체를 데리고 와서는 오파니엘(Ophaniel)의 손녀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회의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만큼 수많은 과학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케루빔의 요피엘, 제이스컬 드리스덴은 차분한 표정을 일관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오파니엘, 노엘 웰리스의 친우로서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런 그가 난데없이 노엘의 손녀라면서 지금의 소녀를 데려온 것이다.

소녀는 놀라웠다.

그들, 케루빔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알고 있으면서 또한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요피엘이 손수 삼년 동안 그녀를 보살펴왔으니 뭔가 가르침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차원 이동은 하루아침에 깨우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가 케루빔의 일원도 아닌 외부 소녀에게 자신들의 지식을 가르쳤다는 건 커다란 중죄에 해당했다. 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킨 자의 말로는 기억을 조작당해 유폐되는 것이다. 그것은 케루빔들 사이에서는 추방(banishment)이라고 불리우는, 차라리 자살을 택하게 만드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하지만 제이스컬은 추방이 두렵지도 않은지 너무나도 태연스러웠다. 그는 구려움에 몸을 떠는 소녀를 달래며 말했다.

‘시더야, 이 사람들에게 오리하르콘의 제련 공식을 설명해주거라.’

‘……예에.’

소녀, 시더는 사전에 제이스컬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 자리의 모두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자신을 거둬준 제이스컬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느낄 수 있었다.
시더는 최대한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오리하르콘은 자기수복 기능을 가진 살아있는 금속입니다. 거기다 높은 정신 감응력을 가져서 사용자의 정신을 물리적으로 구현화시키는 이미지메이킹이 가능하죠.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특성은 바로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고온초전도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오리하르콘을 제련하려면 특정한 화학 공식을 만족시켜줘야 합니다. 이 화학 공식이 오리하르콘의 주기적인 흐름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이 자리의 모든 분들도 알고 계시죠?’

‘으, 으음…….’

케루빔의 과학자들은 신음했다. 그리고 소녀가 오리하르콘의 암호 형 제련 공식을 열개가 넘는 보드에 걸쳐 완성해내는 것을 보고 마침내 인정해야만 했다.
이 아이는 노엘의 혈육이라는 것을.
아니, 혈육은 아닐지라도 그녀의 연구를 물려받은 것만은 분명했다. 거기다 여덟살의 나이에 이 모든 것을 이해하다니! 천재라는 말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에게 주어져야할 호칭이었다.

하지만 시더는 그 선망과 시기심에 불타는 시선들을 대하면서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자신이 이런 공식을 설명해낸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단지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제이스컬이 건네주는 어려운 용어의 논문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이론들을 흘려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정답을 알고 컨닝을 하는 학생의 기분이었다.

제이스컬은 그런 시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이 아이를 케루빔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이의는 없겠지?’

‘…….’

물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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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어어어어어..의욕이 안납니다. 의욕이..대 패닉 상태........@.@

아참. 베이더님. 그거 아십니까? 오라전대DK가 시드노벨과의 계약 완료됐다고 하더군요. 내년쯤엔 나올 수 있을거라 합니다. 흐흐흐흐.
 

* 태상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5-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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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호오!! 가뜩이나 초인동맹이란 소설 보고 있는데..거기서 '유가인'이란 이름이 3권 마지막에 등장해서

대쇼킹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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