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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일, 그것도 같은 시간에 이 곳에 나타나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취중에 장난스레 말을 몇 번 걸어 보았고, 침묵의 대답을 받았다는 것이 그들이 그에 대하여 아는 전부였다. 매일 거의 같은 시각, 그러니까 오후 7시쯤 와서 밤이 깊을 때까지 술을 마시다 조용히 술값을 내고 사람들이 눈치채기도 전에 떠나는 것이─그가 술집을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은 술집 주인뿐이다─그의 특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사람들─그 가게의 단골 술꾼들과 그에게 말을 걸어 보았던 사람들을 포함해서─에게 악평을 듣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상대하여 주지 않는다고 그가 오만하다느니. 안하무인이라느니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번 조소를 건넸다. 자신들이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 무에 있다고. 그의 침묵을 비웃을 수 있는가. 침묵을 유지하며 단 1분도 살 수 없는. 그래서 술에 의지해 자신의 말을 떠벌리곤 하는 저런 하등생물에 비하여 술에 취하고도 침묵이라는 보화를 지키고 있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대단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 아니면 대단한 감정 기폭에 빠져 있는 사람?

오늘도 그는 늘 앉던─이제는 그의 전용석이 되어 버린─창가 자리에 앉아 홀로 술을 들이키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 곳에 들어왔던 나는 슬슬 그에게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취객들이 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살짝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나는 다른 하등생물같이 섣불리 말이나 몇 번 건 후에 하등생물같이 침묵의 대답을 받은 후 하등생물같이 물러가서 하등생물같이 악평을 퍼뜨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랬기에, 술을 먹는 그를 애써 방해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곁에서. 술도 먹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보통 취객 같을 경우 욕이 나오고도 남을 상황에, 그는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를 완전히 무시해버리기라도 한 듯.

그러나 그것은 그의 언어의 일부일 뿐이었다. 침묵의 언어.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나의 노력이 2시간을 넘겨 갈 즈음. 그의 입이 환상처럼 달싹거리며, 아직 나이를 먹지 않은 젊은이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늙어 보이는 얼굴과는 전혀 다른 그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놀라 그를 다시금 뜯어보게 하였다.

"무슨 일이시죠?"

수염 관리를 한 해서 그렇지, 20대 정도의 아직 어린 청년이었다. 이런 청년이 술에 찌들어 사는 그 한 부분만으로도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는 충분했다. 그렇지만 젊은 청년이 술타령을 하는 데에는 남다른 사정이 있으리라. 내 가 이 청년의 옆에 마주 앉게 했던 그것. 호기심이 다시 나를 자극해 왔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떼었다.

"무엇 때문에 술을 먹나?"

잠시 굳어 있던 그가 퀭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술기운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원래'의 눈빛은 분명 영민했으리라. 또 다시 이어진 잠깐의 침묵 후, 그가 천천히 옷 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약간 동안 옷 속을 뒤적이던 그의 손이 끌고 나온 것은 하나의 브로치였다. 무엇인가를 넣게 되어 있는 그 브로치를 술상 위에 올려 놓은 그의 손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듯, 한 번 떨렸다.

*  *  *  *  *  *

제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박선정이었구요.-이 때 그는 아까 빼었던 브로치에 다시 손을 가져가 그것을 펼쳤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진부한 사진이 아니었다. 브로치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그러나 술집 안의 조명만으로 보일 정도의 선명함을 가진 여인의 초상화. 바로 그것이었다.

초상화 안의 여인은 절세의 미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그런 여인이었다. '원래'의 그의 모습은 아마 이런 여인과 멋진 조화를 이루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다시금 그의 이야기 속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 저는 언제까지나 함께일 듯 싶었죠. 서로에게 있어서 서로는 누구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먼저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녀를 그 정도로 사랑했었고, 제가 S대 의대 출신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알량한 자신감도 없었다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녀의 부모님을 설득하는데...잘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너무 긴장했었으니까요.

결국 그녀의 부모님께서 저희들의 교제, 결혼까지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때 얼마나 기쁘던지...눈 오는 날 그녀와 함께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이제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나는군요. 그러나 저희 앞을 가로막은 첫 번째 장벽은 바로 제 부모님이셨습니다.

저희 가문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데다, 설상가상으로 '가문의 질'을 중시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질 낮은' 가문과의 혼인이라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단박에 거절하시더군요. 어머니께서도 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하시면서, 당신이 알아 둔 혼처가 있으니까 '그런 여자'는 빨리 버리고, 잊어버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부모님의 말씀에 항의했죠. 제 자신의 목에 부엌칼을 들이밀면서까지.

나는 약간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시위를 해도 자신의 목에 부엌칼을 들이댈 수가 있다는 말이던가? 그에게 약간은 질책의 뜻을 담은 말을 하려던 즈음, 그가 나보다 빨리 입을 열어서 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무 심하다는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 것이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머니꼐서 까무러치기까지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녀를 빼앗긴다는 것은 제게 죽음을 뜻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내었습니다. 다행히 제 부모님은 자식들이 자신의 인형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아니었기 때문에, '네 뜻이 그렇게 강하다면 어찌하겠느냐'하시면서, 허락을 해 주시더군요. 그 이후로 그녀의 부모님과 연락도 자주 하셨구요.

모든 것이 성공했습니다. 정말로 기쁘더군요. 이제 서로의 결혼만 남은 그 시점이 찾아온 것입니다. 약혼식 날, 그녀에게 약혼 반지를 끼워 주면서, 저는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에서도 같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 눈물은 이제까지의 모든 힘듦을 씻어 버릴 듯 한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지금 술을 마시고 있지 아니한가? 그냥 행복히 결혼으로 끝이 났다면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지만은 아니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뒷 이야기가 심히 궁금해졌다. 내가 그에게 재차 물을 정도로.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행복감에 젖어 저희는 결혼 날짜를 기다렸습니다. 웬지 시간이 점차 느리게 가는 것 처럼 느껴지더군요. 초조해 하면서 저는 결혼 날짜를 계속 기다렸죠. 마침내 그 날이 제게로 찾아왔습니다. 아침부터 환희에 젖어서 일어났어야 할 저는 웬지 불길한 예감을 느꼈죠. 남자의 예감은 다 헛소리라고 웃어 넘겼는데...전 그 예감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감정이 복받치는지 그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술 기운일까. 그의 오열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나서서 그를 위로해서, 약 1시간을 고생해서 그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의 진정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20분.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 라는 그의 물음에 나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 후에 '결혼 날 아침까지 말했소'라고 말하고서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그 날의 일과는 1분도 놓치지 않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불길한 예감이 든 후, 서둘러 옷을 입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죠. 장소를 약속하고, 같이 식장으로 가기로요. 같이 식장에 가자고 했던 다른 사람들의 양해를 구한 뒤, 저는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죠.

약속 장소에는 벌써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을 앞둔 그녀...지금까지 그녀를 계속 만나보았지만, 이렇게 기쁨에 차 있는,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를 본 적이 없었기에, 저는 한 순간 넋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식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택시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는 택시가 너무 빠른 것 같다며 제게 달라붙었습니다. 저는 그런 그녀에게 한 번 웃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도 이제 제게는 후회가 되는 일입니다. 그 때 택시 기사에게 호통이라도 한 번 쳐서 속도를 늦췄어야 했는데...그것을 못 해서...

차 사고로군. 문맥으로 바로 짐작했다. 다시 오열하려 하는 그의 등을 토닥여 주긴 했지만, 더 이상 들을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아까보다는 조금 흥이 쇠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그의 이야기로 빨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다음 이야기가 단순히 차 사고만은 아니었다. 그 내부에, 그만이 알고 있는 그만의 진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이렇게 계속 술을 먹게 하는 이유는 그 곳에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택시의 앞 유리 바깥으로, 저 먼 곳에서 달려오는 빨간색 아반떼 한 대가, 똑똑히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에인가, 그것이 방향은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차선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 채었습니다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죠. 그것이 택시를 들이받을 때 저는 그것의 운전사를 한 번 쳐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귀안...그것이 그의 안면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런지나 모르겠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한 초점이 없는 눈. 푸들푸들 떨리고 있는 살결에 이율배반적으로 그가 흘리고 있는 눈물...그 모든 것을 합쳐서 진실로 귀안이라 불릴만 하더군요. 택시를 들이받은 순간에 그의 몸뚱아리가 앞으로 튕겨 나오고 그의 그 귀안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그 이후로 그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요.

어쨌든 강한 충격과 함께 저는 잠시 동안 정신을 잃었었습니다. 그러나 제 의지가 그리 약하지 않았던지, 눈을 떴을 때 차는 불타고 있고 그녀와 택시 기사는 기절해 있더군요.

여기서 그는 잠시 말을 끓었다. 그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 날의 회상에 따른 공포, 자책. 슬픔. 그런 것들이 뒤섞인, 무어라고 정의하기 힘든. 그러나 보는 사람의 마음을 슬픔으로 공명시키는 표정을 그는 짓고 있었다. 위로할 만한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또 다시 그의 표정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켜보았다. 그의 입이 열릴 때 까지.

이윽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 듯, 절제된 표정으로-그러나 눈물은 그의 눈에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까는 내가 흥미를 잃었었지만 지금은 다시 흥미가 생겼다. 더더욱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끝까지.

그리고 제가...아니 제 이성은...그녀를 구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죠...제 바로 옆에 앉은 그녀...이제 조금 있으면 나의 신부가 되어 줄 그녀...그녀를 구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본능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그냥 그녀를 안고 나가는 것 마저도 저는 하질 못했습니다...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녀였지만, 저는 그냥 그녀를 버리고 나왔습니다. 제가 차에서 나와 차를 멍하니 바라볼 때, 차가 폭발하더군요.

제가 기억하는 몇 가지 장면은...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얼굴이 무.척.아.름.다.웠.던.것.

그리고 차의 불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던 저에 대한 극.한.의.한.심.스.러.움.

그것뿐입니다...제가 죽일 놈이죠. 사랑? 무슨 놈의 사랑입니까. 결국 저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지켜보기만 하고 도와주지도 않는 게 무슨 사랑입니까. 그녀가 지금 하늘에서 절 얼마나 원망할까요...그 때 그녀를 살리지 못하고 혼자의 본능 대로 나가는 제 모습을 보구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술을 한 잔, 쭉 들이켰다.-저는 이 술! 술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흐흐흑...

*  *  *  *  *  *

그의 말은 여기서 끝이 났다. 평소처럼. 그는 조용히 술을 마시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듯 했다.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단지 차이라면, 지금 그의 눈에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 나온다는 것. 이야기를 다 들은 내 눈에서도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잊은 듯 싶었던 옛 친구가 조금씩 자신의 청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동시에 그에 대한 무한한 동정이 내게서 우러 나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젊은 나이를 계속 술로 보내고 있을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인가. 불쌍하다. 그렇기에 그를 술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조금씩 내 안쪽에서 물밀 듯 밀려 들어왔다.

그럼 어떻게 조언을 할 것인가? 그에게 조언을 한다 해도 그가 그 조언을 들어 줄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박선정이라는 그 여인을 위해서라도. 그는 이렇게 술만 마시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내게로 시선을 돌릴 때까지. 나는 계속 그 얼굴을 주시하였다. 그가 내게 시선을 돌려 주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을 그에게 해 주었다. 말은 장황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  *  *  *  *  *

자네의 이야기 잘 들었네. 상심이 클 거야. 자책도 될 것이고. 자네 마음이 모두 이해된다면 그것은 거짓이겠지만, 그 마음의 일말이라도 나한테 와 닿았다는 것은 자네도 부인하지는 못하겠지.

자네가 자책감을 잊기 웨해 술을 마신다고는 하지만, 술은 하나의 도피야. 자네, 죽을 때까지 이렇게 도피만 해 가며 살 텐가? 자네가 계속 이렇게 살면, 하늘에 있는 그녀는 자네를 더 원망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벗어나게. 인간의 두뇌에는 한 가지 기능이 있다네. 세월이 흐르면 아주 큰 감정의 기복이라 해도 잊혀지는 그 기능 말일세. 그 기능이 자네에게도 있으니까. 천천히. 다른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아, 그래. S대 의대 출신이라고 했지? 자네라면 병원을 하나 차릴 수도 있지 않은가. 병원을 차리고 바쁘게 살아 보게. 나중에는 그녀의 죽음도 그저 과거의 기억 중 하나로. 점점 작아지겠지. 이렇게 눈물까지 흘리며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야.

세상에 사람은 많아. 그런 사람들은 당신의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위로해 줄 수도 있네. 나는 별로 위로해 주는 사람이 될 자질을 갖추지 못했네만, 그런 사람은 확실히 있어.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위로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지 모르겠구만.

이렇게 살아 봐야 자네에게 득이 될 건 없어. 떠나간 그녀에게도 계속 더욱 죄를 짓고 있는 꼴이네. 계속 술만 마시는 자네를 보며 자네 부모도 마음 고생이 심할 것이야.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고 자네의 일로 돌아가게.

이것에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였다.

*  *  *  *  *  *

그 후로 나는 한동안 그 술집에서 그를 보지 못했다. 나도 내 일이 바빴기에, 술집에 오는 빈도가 그렇게 많지 않는 까닭도 있겠지만, 일부러 내가 그가 술집에 있던 시간에 술집에를 갔지만 그는 그의 지정석에 보이질 않았다. 그의 지정석이라 불리던 곳에도 이제 한담이나 하는 속물들이 자리할 뿐이었다.

내가 그에게 말한 '인간 두뇌의 기능'이 내게도 작용했는지, 그는 스쳐가듯 내 기억의 주마등 속에서 빠져나가서 심연의 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나에게서 소거되어 이제는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였다는 단편적인 부분만 남겨 놓고 말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갔다. 나는 회사에서 몇 번 승진해서 이제 다른 사람에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굵직굵직한 사람으로 성장해갔다. 그런 나에게 우연히 배달된 것은 어느 화백의 작품 전시회의 초대권이었다. 친구가 나에게 보낸 듯 한 그것은 이미 끓어진 줄로만 알았던 그와 나의 인생의 끈을 다시금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한적한 날이어서 그 동안 메말라버렸던 감성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나는 뚜벅뚜벅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내가 전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을 환영하기 위한 듯,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에 나는 그만 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아아! 그가 예전에 브로치에서 꺼내 보여 주었던 그녀, 박선정의 얼굴이었다. 브로치에 담겨 있는 것을 정확히 확대한 듯 한 그 얼굴이 나에게서 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게 했다. 화백이라는 것이 그였구나. 그가 이 것을 그렸구나. 눈물을 닦으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 갔다. 안쪽에도 온통 그녀의 그림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웃는 모습. 우는 모습. 토라진 모습...

그리고 전시장의 한 구석에, 다른 것과는 달리 '구원'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제목만 크게 보이고 크기는 조그마한 그림에 호기심을 느꼈기에 나는 그 그림으로 다가갔다. 다가갈 수록 생생해지는 그 조그마한 화폭에 담겨져 있는 나의 얼굴...

이것을 그린 사람은 그가 확실하다!

나는 주저 없이 그를 찾았다. 2년 동안 그는 실로 많이 변해 있었다. 젊은이의 총기 넘치는 눈이 다시 되살아나 있었고, 덥수룩하고 퀭한-즉 그가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드는-이미지는 이미 심연의 저 편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감사하다는 말 부터 전했다. 여기서 그의 이름도 처음 들었다. 최원영.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그는 2년 전 나의 말을 듣고 하늘에 있는 그녀를 보기가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한 자책 역시 감출 수 없기에, 그녀의 영혼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생전의 그녀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작품전에 내지 않은 신작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오직 그녀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그의 그림. 하늘에 있는 박선정이라는 그녀도 행복하리라 생각하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 사실은 '구원'이라는 그림의 뒷면이 그 브로치의 그림이라는 것도 말해 주었다. 그래서 그렇게 작은 그림이 되었던 거라고, 그리고 내 인생의 전환점을 둔 두 명의 사람을 같은 종이 위에 그리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에게 인사하고 그 곳을 나왔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희망을 주었다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꼭 들리라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들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그의 모습을 본 것 만으로도 나는 족하다. 터질 듯 한 감격에 집에 들어가 혼자서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직도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마음 속의 그녀, 박선정이 죽음의 순간에 그녀를 버렸던 자신을, 꿈 속에서라도 나타나 해맑은 웃음으로 용서해 줄 때만을 기다리며.


*  *  *  *  *  *

-피카녀석에게 전언.

흐음...알지, 이 소설?

예전 꺼라서 글빨도 못 받으니...괜히 올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리고 주제 말인데...니가 던져 준 그 주제에 대한 반영률은 상당히 높다고 본다.

니가 못 찾겠다면 나한테 전화해라. 친.절.히. 설명해 줄 테니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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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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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바보녀석..  내돈 내고  내가  왜 물어야하지?
그냥 심사해버리고 말지... 쿠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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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주신킨진님의 댓글

최강주신킨진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ㅡ_ㅡ... 헐헐이구나, 재봉털아 -_-.. 옛날에 올린 것도 탈락되게 해라 피카야 -_-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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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님의 댓글

태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뭐냐 킨진아? 왜 갑자기 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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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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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거 옛날 콘티 거구나.. 쿠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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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님의 댓글

태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옛날 거든 뭐든...공지에 명시되어있지 않으니 무효. 실력으로 하자고 실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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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주신킨진님의 댓글

최강주신킨진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비 -_-? 태상에게 뭔 시비를 걸겠니 -_- 쿡쿡.. 니가 재봉이라믄 몰라도 태상넘이라면 시비라기보다는 장난이지 ㅋㅋ 니가 말했잖나. 너랑 태상은 별개라고 -_-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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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님의 댓글

태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아, 더이상 깝싸면...너랑은 아예 이야기하기 싫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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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Z™님의 댓글

NTZ™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_-어째서 여긴 3인방의 코멘트 밖에 없는거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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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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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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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님의 댓글

태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인방...예전 네오홈 전투권의 99.9%를 쥐고 있었던...[전투를 우리들만 했었으니까(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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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사랑™님의 댓글

여신사랑™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난 왜 빼는거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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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a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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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그땐 재밌는 놀이였다고.. 뭔 전투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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