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때에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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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기쁜 날은 아니잖아.."
조용히 고개를 숙이면서 소녀는 말한다. 눈가에는 눈물이 떨어진다.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지만 소녀의 얼굴은 그늘져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가한 오후 소녀는 그렇게 공원의 숲길을 걸어간다. 손에는 조그마한 막대기를 쥐고서 천천히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는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몸을 눕히고는 손으로 땅바닥을 집는다. 빠른 섬광이 자신의 가슴언저리 부분이었던 곳을 훑고 지나간다. 집은 손을 튕겨내며 빠르게 막대기를 잡았던 손을 휘두른다.
"쉬아아아악!"
가느다란 파공성이 들리고 소녀의 막대기에서는 가느다란 철침이 나타난다. 소녀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나 같은 녀석에게는.. 기쁜 날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滿月 滅花舞(만월 멸화무)."
철침이 길게 뽑혀져 나온다.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철침을 날린다. 맑은 금속음이 들리고 주위로 푸른 불꽃이 튀긴다. 그러나 소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막대기를 잡아당기고는 곧바로 쏘아져 나간다. 곧 자신이 찾던 대상이 보인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머리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뿔. 소녀는 줄을 완전히 잡아당겨 철침을 뽑아낸다. 그리고는 철사와 철침을 활짝 펼친다. 은빛으로 빛나는 꽃이 활짝 핀다. 그리고는.. 대상을 서서히 감싸 먹어들어간다. 꽃은 서서히 지고 그 안의 대상은 피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갈려져버린다. 소녀는 마침내 하나로 돌아온 철사를 끌어당긴다. 그곳에는 뿔이 달려있다. 도깨비의 영혼이 담겨있는..
* * *
어느덧 석양에 물들어 가는 숲길에 소녀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앉아있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무녀복은 석양에 물들었다가 이내에 우윳빛의 달빛을 머금고 새하얗게 빛난다. 그리고 그제야 소녀는 눈을 뜨고서 정면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뿔을 건낸다.
"이제.. 되신 겁니까?"
"그래. 확실하군. 하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당신과 같은 자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도 볼일은 없군요."
그 말과 함께 소녀는 일어나서 숲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느덧 석양은 사라지고 달빛만이 주위를 비취고 있다. 소녀는 조용한 숲길을 걸으며 눈을 감는다. 바람결에 날리는 머릿결을 잡아 하얀 리본으로 단정히 묶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소녀의 무녀복은 순식간에 하얀 티와 붉은 반바지로 변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코걸이 안경을 꺼내서 쓴다.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니까.."
숲길을 지나 공원을 소녀는 걷고 있다. 자동판매기가 흐릿하게 빛나며 소녀를 맞이한다. 소녀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다. 자판기에서 캔을 뽑은 그녀는 뚜껑을 딴다. 탄산음료 특유의 거품방울이 일어나고 소녀는 그런 거품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마신다. 따끔함과 청량감이 느껴진다. 문득 자신에게 이런 캔을 건내주던 그 손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도 기뻐하고 싶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런 나를?"
그리고는 서서히 과거의 그림자로 녹아들어간다.
* * *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여도 결코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그들은 이곳에도 숨어있지."
월아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옛날 이야기에 가까운 이야기라도 월아에게는 현실이고 간접적인 경험이다. 그녀의 집안은 퇴마사의 집안이다. 그녀의 집에 가끔 찾아오는 쉐만터 목사는 소녀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가끔은 해준다. 다행히 월아는 이런 어머니의 길을 완전히 물려받을 생각인 듯하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 퇴마사들의 일이란다. 예전에는 퇴마사들이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처럼 소수의 사람만이 퇴마사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란다. 월아야. 네가 이 길을 걷기로 한 이상은, 결코 너 자신의 빛을 잃어서는 안된단다. 우리는 어둠에서 살아가야해. 스스로의 빛을 잃는다면, 그것은 타락의 길에 들어서는 일이란다."
"저.. 저.. 열심히 할꺼에요. 결코 빛을 잃지 않고! 항상 환하게 비추면서 살께요. 엄마."
* * *
가로등 사이로 소녀는 걸어간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묻어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 소녀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는 뒤를 돌아본다. 바람만이 텅 빈 거리를 쓸고 지나간다. 소녀는 그냥 고개를 파묻고 길을 걷는다.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니까.. 라는 흐느낌이 바람결에 실려 흩날린다. 더운 여름이라도 해가 사라지자 거리는 무척 쌀쌀하다. 그러나 소녀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적어도 이 날만큼은.. 그렇게 울고 싶지 않다는.. 그런 다짐을 했던 소녀지만.. 결코 울음을 멈출 수 없는 나이지만.. 소녀의 눈가는 메말라 있다. 왜냐고 물어도 그녀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니까..
* * *
벌써 2일째 학교를 빠진 월아를 보며 유키는 마음을 다시 잡고서는 월아의 방문을 연다. 월아의 방문을 열자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방이 나온다. 아니 오히려 특이하다고 할까? 일반적인 소녀의 방과는 거리가 먼 그저 단순한 방이 나온다. 유키는 월아를 찾아서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방구석으로 시선을 던진다.
"어디 아파?"
지친 듯이 방구석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월아에게 묻는다. 하지만 월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연다.
"고마워. 하지만 아프지 않아."
"……. 무리하지 마. 너 너무 아파 보여."
유키가 월아의 이마를 짚어보며 말한다. 월아는 유키를 바라보면서 울것같은 눈으로 입을 연다.
"나.. 만약 사라지게 된다해도, 유키는.. 잘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러자 유키는 잠시 월아를 바라보다가 방긋 웃으면서 월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말한다.
"당연하지.. 하지만 네가 없다면 조금은 재미 없겠지? 안 그래? 이제 좀 쉬라구. 너 그러다간 병난다구."
"으응.."
유키는 월아를 일으켜 침대에 눕히고서는 불을 끄고 방문을 닫는다.
* * *
"결코 포기하지는 않겠어요."
"나를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러자 그녀는 철침을 굳게 쥔다. 눈에는 다시금 불꽃이 일렁인다. 그리고는 천천히 팔을 뻗는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라기엔 너무도 부드러운 동작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동작에서 뻗어나온 철사와 철침은 결코 부드럽지 않다. 주위를 쓸어버릴 듯이 강렬하게 회전을 거듭한다. 그녀는 월아를 바라보며 말한다.
"잘 봐두거라. 월아야. 퇴마사란 반드시 자신의 빛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행위라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
그러나 그녀는 차갑게 월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는 따스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미안하구나. 어미로써.. 너에게 해준 것이 없지만.. 결코 빛을 잃지 말거라. 그것이 퇴마사의 길. 나의 죽음을 발판 삼아서 더욱 강렬한 빛을 타올려라. 그리고.."
"촤라라라라락!"
땅바닥이 갈라지면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솓구쳐 오른다. 거대한 소리에 그녀의 마지막 말이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월아는 그녀의 입을 주시한다. 결코 잊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마지막으로 방긋 웃어주고는 마지막으로 펼칠 그녀의 기술을 보여준다.
"月花擊怒一點破(월화격노일점파)."
그녀는 강렬한 철사의 회전속으로 몸을 던진다. 곧 거대한 꽃이 펼쳐지고 주위가 하얗게 물든다.
* * *
소녀는 리본을 풀고서 만지작거린다. 옷은 어느새 다시 무녀 복으로 돌아가 있다. 검은 머릿결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슬픈 듯이 리본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는 리본을 책상위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창가로 향한다. 처음으로 소녀는 웃어 보인다.
"다녀올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라도 웃으면서 기다려 주길 바랄게요. 이런 거 알아서는 안 되지만, 결코 잊고 싶지 않으니까..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웃어주세요. 그러면.."
소녀의 몸이 창틀을 넘어 중력과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소녀는 다리로 벽을 박차고는 반대편 건물로 향한다. 그리고는 몸을 비틀어 벽을 밟고 힘차게 찬다. 인간의 몸으로써는 상당히 어려운 삼각차기를 가뿐히 하던 그녀는 땅에 내려앉고서는 앞을 바라본다. 마치 총알처럼 갑작스레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결이나 옷은 마치 산들바람에 흔들리듯 천천히 흔들린다. 손에는 어느새 막대기가 들려있다. 철침은 그 사이로 뾰족하게 빠져나와있다.
"나 더 이상 참지 않을게요. 비록 웃게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오늘은 결코.."
소녀는 입을 굳게 다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빛을 타올리고 싶다. 웃어준다면.. 웃음을 볼 수만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함게 말이다.
* * *
소녀는 커다란 신사의 문앞에 선다. 어두운 밤에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신사의 문은 으스스함을 자아낸다. 소녀는 팔을 뻗고는 손을 돌리며 허공중에 커다란 글자를 남긴다. 곧 글자들은 희미하게 빛을 내면서 신사의 입구를 빙 둘러버린다.
"우우우우우우웅~"
저음의 소리가 들려오며 글자들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숨을 가다듬는다. 문자들의 회전이 격해지자 그 가운데로 동그랗게 구멍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작스레 털이 빽빽히 난 팔이 튀어나와 소녀를 움켜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소녀는 그 손에 침을 꽂으면서 옆으로 그어버린다. 그러자 문 사이로 괴이한 비명이 들려온다. 문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소녀가 들어설 정도로 커진다. 소녀는 그 구멍 안으로 한발짝 들려놓는다. 그러자 어둡던 구멍이 순식간에 붉게 빛나면서 그녀가 수십번도 더 봐왔던 마귀와 도깨비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문의 주인을 영접하러 나온 듯이 그들은 괴소를 지르며 각자의 무기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휘두른다. 하지만 소녀는 철침을 빼어들고는 가뿐하게 몸을 돌려가며 그들의 몸에 깊고 미세한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사점(死點)이 찍힌 그들은 간신히 숨만 붙일 정도로 허물어진다. 소녀는 다시한번 숨을 가다듬고 걸음을 내어 딛는다. 다행이랄까? 문이 열린 곳은 암옥(暗獄)으로 그녀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지옥의 층이었다. 그녀는 자주 와본 것처럼 천천히 걸어가 허공을 부여잡는다. 그러자 문이 허공중에 생겨나며 안에서 평범하게 생긴 소년이 인사를 건낸다.
"이번에는 제대로 오셨군요. 지난 번에는 연옥(煉獄)에 가셔서 얼마나 놀랬다구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내가 일전에 말했던 것. 그것을.. 나에게 하루의 시간을 돌려줘."
"안돼요!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시간의 모순이란 것을 모르시는 것도 아닐텐데요?"
"나에겐 어제가 필요해. 너도 알지? 퇴마사란 족속을.. 난 나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 가는 것이야."
"알겠어요. 퇴마사란 족속은 정말 바보에 머저리란 것을.."
* * *
벌써 2일째 학교를 빠진 월아를 보며 유키는 마음을 다시 잡고서는 월아의 방문을 연다. 월아의 방문을 열자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방이 나온다. 아니 오히려 특이하다고 할까? 일반적인 소녀의 방과는 거리가 먼 그저 단순한 방이 나온다. 유키는 월아를 찾아서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방구석으로 시선을 던진다.
"어디 아파?"
지친 듯이 방구석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월아에게 묻는다. 하지만 월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연다.
"오늘 몇일이야? 유키.."
"6일인데?"
월아는 유키를 바라보면서 울것같은 눈으로 입을 연다.
"나.. 만약 사라지게 된다해도, 유키는.. 반드시 잘 살수 있지?"
그러자 유키는 멍하니 월아를 바라본다. 그러나 월아는 간절한 눈으로 대답하기를 바라고 있다. 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당연하지.. 하지만 네가 없다면 조금은 재미 없겠지? 안 그래?"
"그래. 유키라면 그럴 수 있을꺼야. 나 다녀올께."
그 말과 함께 월아는 머리의 하얀 리본을 푼다. 그러자 자연스레 옷은 무녀복으로 변한다. 월아는 리본을 단정하게 책상위에 놓고는 유키를 바라본다. 유키는 갑작스레 변한 월아의 모습이 당황스러운지 아무말도 못하고는 멍하니 서있다. 월아는 싱긋 웃어주면서 말한다.
"다녀올께. 유키. 오늘 그다지 기쁜날이 아니지만, 유키 때문에 즐거운 날이 될 것 같아."
* * *
"와주었구나. 월아."
"응. 나 기쁜날이 아니지만 왔어요. 엄마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의 말처럼 빛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 기쁜날이 아니지만, 즐거운 날이 될꺼야."
그리고는 월아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어릴적 모습의 월아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미래의 실체로써 부탁합니다. 과거의 잔영으로의 초대를.."
그러자 조그마한 월아는 방긋 웃으면서 말한다.
"환영합니다. 미래의 실체여. 잔영의 세계로.."
"주문은 완성되었습니다."
모든 말이 끝나자 주위가 고요해진다. 두 월아의 모습은 사라져있다. 다만 어린 월아의 하얀 리본이 바람결을 따라 팔락이며 하늘로 날아갈 뿐이다.
* * *
눈을 뜨자 주위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검붉은 하늘사이로 보이는 것은 수많은 눈알과 그리고 그와 대치해 있는 한명의 여인, 월아는 천천히 걸어가 둘사이에 끼여든다. 그리고는 여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여인은 당황한 말투로 소리친다.
"도망쳐요! 저 녀석은.. 저 녀석은 악마라구요!"
"오호! 이 결계 속으로 들어올 자가 있다니. 꽤나 희한한 녀석이군."
그녀는 필사적으로 내게 말한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그 이후로.. 저 목소리를 듣기를 원했다. 월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그 동안 해보지 못했지만, 마음 안에 감추고 또 쌓아두었던 말이지만. 월아는 이제 말한다. 잃은 것이 있은 후에야 사람이 그리워하듯.. 이젠 다시 찾았고, 더 이상 잃기 싫다는 그 마음으로 말한다.
"사랑해요. 어머니. 그리고 고마워요."
"……."
"이제 저에게 남은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저.. 이렇게 컸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저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러자 월아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검붉은 하늘 쪽을 바라본다. 기분 나쁜 눈알덩어리들이 둥실둥실 떠있다. 소녀는 막대기를 잡고 부러뜨린다. 그러자 기다란 철사가 나온다. 소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고서는 미소를 지은 뒤 철사를 움켜쥐고 뛰어오른다. 더 이상 남겨진 시간은 없다. 시간의 모순이 소녀의 몸을 서서히 투명하게 만들어간다. 하지만 결코 소녀는 멈추지 않는다.
"큭큭.. 이거 장난이 너무 재미있어 지는군. 내가 이래서 사람죽이는 재미가 쏠쏠하단 말야. 시간의 모순따위에 소멸해 가는 존재이면서도 내게 달려들다니. 너무나도 하찮고 보잘 것이 없는 인간이로군."
"당신은 결코 알수 없겠지요. 단순히 그녀의 웃음 하나만을 보기위해서 온 저를.."
월아의 손에서 시작된 하얀 빛이 철사 전체를 타고 퍼져나와 유윳빛의 달처럼 빛난다. 그리고 주위의 마기를 씻어내고는 평온한 기운을 은은히 뿜어낸다. 천목귀(天目鬼)의 마기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커흑!? 이런 강대한 신성력이? 대체 너는 누구냐? 너와 같은 무녀가 어째서 시간의 모순을.."
철사가 넓게 퍼지면서 마치 달빛의 바다가 하늘에 펼쳐지듯이 출렁거린다. 그리고는 천천히 동그랗게 말리면서 구의 형태로 변하여 눈알들을 감싸버린다. 안쪽에서 강렬한 마기가 주위를 엄습해오지만 달빛의 물결은 결코 멈추지 않고 동그랗게 변해간다. 월아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연다. 거의 투명해져가는 자신의 몸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환하게 웃는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저 웃을게요. 울어도 볼게요. 그러니까.. 어머니.. 당신의 웃음을 더욱, 더욱 많이 보여 주셔야해요. 저.. 이렇게 사라 진다해도.. 어머니의 웃음을 볼 수만 있다면.."
월아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어 노래한다. 달빛의 물결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주위는 고요해진다. 월아의 모습은 이미 존재하질 않는다. 그녀가 들고있던 철침도 철사도, 마치 없던 것처럼 주위는 고요하다. 가로등 불빛이 쓸쓸하게 비췰 뿐이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월아가 서있던 자리에 가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붉은 하늘은 이미 반짝이는 별빛이 가득한 검푸른 하늘로 변하여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 * *
"해낸거요? 혜월?"
"아니요. 어떤 무녀가 그를 물리쳤어요. 그리고는 사라져 버렸어요. 저를 향해서 환하게 웃어주면서.. 그런데 이상하군요. 알지도 못하던 사람인데.. 왠지 눈물이 나오는군요."
"기쁨의 눈물일꺼요."
혜월은 쉐만터 목사는 혜월의 등을 다독이며 말한다. 혜월은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고 묻는다.
"월아는요?"
"월.. 아라니? 그런 이름은 처음인데..?"
* * *
"무슨 일이야? 엄마?"
"응? 아냐아냐. 그냥 너의 누나가 생각나서 그래."
혜월은 웃으면서 아메를 바라본다. 아메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혜월에게 묻는다.
"누나가 있는거야? 어디에? 어디에?"
"누나는 말이지. 바로 저기 높은 곳에 있단다."
"흐에에.. 저렇게 높은데 있으면 안 무서울까?"
혜월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누나는 말이지 달처럼 우릴 비추고 있단다. 누나가 지은 시를 한번 들어볼래?"
"시? 응!"
滿月萬波 (만월만파) 만월의 물결의
一通万變 (일통만변) 만가지 변화는 하나로 통하니
成事一哀 (성사일애) 하나의 슬픔을 만들고
成事一愛 (성사일애) 하나의 사랑을 만든다.
혜월은 빙긋이 웃었다. 아메는 역시나 모르겠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혜월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연다.
"누나. 이쁠까?"
"그럼 이쁘지. 저기 보이는 저 이름을 모를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거칠었지만,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이쁜 누나야."
-지금, 만나러 갈께요. O.S.T.-
P.S. : 태상님 왈 용량은 상관이 없으시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삭제, 수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 콘티를 돌립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면서 소녀는 말한다. 눈가에는 눈물이 떨어진다.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지만 소녀의 얼굴은 그늘져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가한 오후 소녀는 그렇게 공원의 숲길을 걸어간다. 손에는 조그마한 막대기를 쥐고서 천천히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는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몸을 눕히고는 손으로 땅바닥을 집는다. 빠른 섬광이 자신의 가슴언저리 부분이었던 곳을 훑고 지나간다. 집은 손을 튕겨내며 빠르게 막대기를 잡았던 손을 휘두른다.
"쉬아아아악!"
가느다란 파공성이 들리고 소녀의 막대기에서는 가느다란 철침이 나타난다. 소녀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나 같은 녀석에게는.. 기쁜 날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滿月 滅花舞(만월 멸화무)."
철침이 길게 뽑혀져 나온다.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철침을 날린다. 맑은 금속음이 들리고 주위로 푸른 불꽃이 튀긴다. 그러나 소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막대기를 잡아당기고는 곧바로 쏘아져 나간다. 곧 자신이 찾던 대상이 보인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머리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뿔. 소녀는 줄을 완전히 잡아당겨 철침을 뽑아낸다. 그리고는 철사와 철침을 활짝 펼친다. 은빛으로 빛나는 꽃이 활짝 핀다. 그리고는.. 대상을 서서히 감싸 먹어들어간다. 꽃은 서서히 지고 그 안의 대상은 피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갈려져버린다. 소녀는 마침내 하나로 돌아온 철사를 끌어당긴다. 그곳에는 뿔이 달려있다. 도깨비의 영혼이 담겨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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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석양에 물들어 가는 숲길에 소녀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앉아있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무녀복은 석양에 물들었다가 이내에 우윳빛의 달빛을 머금고 새하얗게 빛난다. 그리고 그제야 소녀는 눈을 뜨고서 정면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뿔을 건낸다.
"이제.. 되신 겁니까?"
"그래. 확실하군. 하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당신과 같은 자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도 볼일은 없군요."
그 말과 함께 소녀는 일어나서 숲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느덧 석양은 사라지고 달빛만이 주위를 비취고 있다. 소녀는 조용한 숲길을 걸으며 눈을 감는다. 바람결에 날리는 머릿결을 잡아 하얀 리본으로 단정히 묶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소녀의 무녀복은 순식간에 하얀 티와 붉은 반바지로 변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코걸이 안경을 꺼내서 쓴다.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니까.."
숲길을 지나 공원을 소녀는 걷고 있다. 자동판매기가 흐릿하게 빛나며 소녀를 맞이한다. 소녀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다. 자판기에서 캔을 뽑은 그녀는 뚜껑을 딴다. 탄산음료 특유의 거품방울이 일어나고 소녀는 그런 거품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마신다. 따끔함과 청량감이 느껴진다. 문득 자신에게 이런 캔을 건내주던 그 손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도 기뻐하고 싶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런 나를?"
그리고는 서서히 과거의 그림자로 녹아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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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여도 결코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그들은 이곳에도 숨어있지."
월아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옛날 이야기에 가까운 이야기라도 월아에게는 현실이고 간접적인 경험이다. 그녀의 집안은 퇴마사의 집안이다. 그녀의 집에 가끔 찾아오는 쉐만터 목사는 소녀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가끔은 해준다. 다행히 월아는 이런 어머니의 길을 완전히 물려받을 생각인 듯하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 퇴마사들의 일이란다. 예전에는 퇴마사들이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처럼 소수의 사람만이 퇴마사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란다. 월아야. 네가 이 길을 걷기로 한 이상은, 결코 너 자신의 빛을 잃어서는 안된단다. 우리는 어둠에서 살아가야해. 스스로의 빛을 잃는다면, 그것은 타락의 길에 들어서는 일이란다."
"저.. 저.. 열심히 할꺼에요. 결코 빛을 잃지 않고! 항상 환하게 비추면서 살께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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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사이로 소녀는 걸어간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묻어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 소녀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는 뒤를 돌아본다. 바람만이 텅 빈 거리를 쓸고 지나간다. 소녀는 그냥 고개를 파묻고 길을 걷는다.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니까.. 라는 흐느낌이 바람결에 실려 흩날린다. 더운 여름이라도 해가 사라지자 거리는 무척 쌀쌀하다. 그러나 소녀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적어도 이 날만큼은.. 그렇게 울고 싶지 않다는.. 그런 다짐을 했던 소녀지만.. 결코 울음을 멈출 수 없는 나이지만.. 소녀의 눈가는 메말라 있다. 왜냐고 물어도 그녀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니까..
* * *
벌써 2일째 학교를 빠진 월아를 보며 유키는 마음을 다시 잡고서는 월아의 방문을 연다. 월아의 방문을 열자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방이 나온다. 아니 오히려 특이하다고 할까? 일반적인 소녀의 방과는 거리가 먼 그저 단순한 방이 나온다. 유키는 월아를 찾아서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방구석으로 시선을 던진다.
"어디 아파?"
지친 듯이 방구석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월아에게 묻는다. 하지만 월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연다.
"고마워. 하지만 아프지 않아."
"……. 무리하지 마. 너 너무 아파 보여."
유키가 월아의 이마를 짚어보며 말한다. 월아는 유키를 바라보면서 울것같은 눈으로 입을 연다.
"나.. 만약 사라지게 된다해도, 유키는.. 잘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러자 유키는 잠시 월아를 바라보다가 방긋 웃으면서 월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말한다.
"당연하지.. 하지만 네가 없다면 조금은 재미 없겠지? 안 그래? 이제 좀 쉬라구. 너 그러다간 병난다구."
"으응.."
유키는 월아를 일으켜 침대에 눕히고서는 불을 끄고 방문을 닫는다.
* * *
"결코 포기하지는 않겠어요."
"나를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러자 그녀는 철침을 굳게 쥔다. 눈에는 다시금 불꽃이 일렁인다. 그리고는 천천히 팔을 뻗는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라기엔 너무도 부드러운 동작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동작에서 뻗어나온 철사와 철침은 결코 부드럽지 않다. 주위를 쓸어버릴 듯이 강렬하게 회전을 거듭한다. 그녀는 월아를 바라보며 말한다.
"잘 봐두거라. 월아야. 퇴마사란 반드시 자신의 빛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행위라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
그러나 그녀는 차갑게 월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는 따스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미안하구나. 어미로써.. 너에게 해준 것이 없지만.. 결코 빛을 잃지 말거라. 그것이 퇴마사의 길. 나의 죽음을 발판 삼아서 더욱 강렬한 빛을 타올려라. 그리고.."
"촤라라라라락!"
땅바닥이 갈라지면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솓구쳐 오른다. 거대한 소리에 그녀의 마지막 말이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월아는 그녀의 입을 주시한다. 결코 잊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마지막으로 방긋 웃어주고는 마지막으로 펼칠 그녀의 기술을 보여준다.
"月花擊怒一點破(월화격노일점파)."
그녀는 강렬한 철사의 회전속으로 몸을 던진다. 곧 거대한 꽃이 펼쳐지고 주위가 하얗게 물든다.
* * *
소녀는 리본을 풀고서 만지작거린다. 옷은 어느새 다시 무녀 복으로 돌아가 있다. 검은 머릿결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슬픈 듯이 리본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는 리본을 책상위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창가로 향한다. 처음으로 소녀는 웃어 보인다.
"다녀올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다지 기쁜 날이 아니라도 웃으면서 기다려 주길 바랄게요. 이런 거 알아서는 안 되지만, 결코 잊고 싶지 않으니까..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웃어주세요. 그러면.."
소녀의 몸이 창틀을 넘어 중력과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소녀는 다리로 벽을 박차고는 반대편 건물로 향한다. 그리고는 몸을 비틀어 벽을 밟고 힘차게 찬다. 인간의 몸으로써는 상당히 어려운 삼각차기를 가뿐히 하던 그녀는 땅에 내려앉고서는 앞을 바라본다. 마치 총알처럼 갑작스레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결이나 옷은 마치 산들바람에 흔들리듯 천천히 흔들린다. 손에는 어느새 막대기가 들려있다. 철침은 그 사이로 뾰족하게 빠져나와있다.
"나 더 이상 참지 않을게요. 비록 웃게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오늘은 결코.."
소녀는 입을 굳게 다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빛을 타올리고 싶다. 웃어준다면.. 웃음을 볼 수만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함게 말이다.
* * *
소녀는 커다란 신사의 문앞에 선다. 어두운 밤에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신사의 문은 으스스함을 자아낸다. 소녀는 팔을 뻗고는 손을 돌리며 허공중에 커다란 글자를 남긴다. 곧 글자들은 희미하게 빛을 내면서 신사의 입구를 빙 둘러버린다.
"우우우우우우웅~"
저음의 소리가 들려오며 글자들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숨을 가다듬는다. 문자들의 회전이 격해지자 그 가운데로 동그랗게 구멍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작스레 털이 빽빽히 난 팔이 튀어나와 소녀를 움켜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소녀는 그 손에 침을 꽂으면서 옆으로 그어버린다. 그러자 문 사이로 괴이한 비명이 들려온다. 문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소녀가 들어설 정도로 커진다. 소녀는 그 구멍 안으로 한발짝 들려놓는다. 그러자 어둡던 구멍이 순식간에 붉게 빛나면서 그녀가 수십번도 더 봐왔던 마귀와 도깨비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문의 주인을 영접하러 나온 듯이 그들은 괴소를 지르며 각자의 무기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휘두른다. 하지만 소녀는 철침을 빼어들고는 가뿐하게 몸을 돌려가며 그들의 몸에 깊고 미세한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사점(死點)이 찍힌 그들은 간신히 숨만 붙일 정도로 허물어진다. 소녀는 다시한번 숨을 가다듬고 걸음을 내어 딛는다. 다행이랄까? 문이 열린 곳은 암옥(暗獄)으로 그녀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지옥의 층이었다. 그녀는 자주 와본 것처럼 천천히 걸어가 허공을 부여잡는다. 그러자 문이 허공중에 생겨나며 안에서 평범하게 생긴 소년이 인사를 건낸다.
"이번에는 제대로 오셨군요. 지난 번에는 연옥(煉獄)에 가셔서 얼마나 놀랬다구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내가 일전에 말했던 것. 그것을.. 나에게 하루의 시간을 돌려줘."
"안돼요!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시간의 모순이란 것을 모르시는 것도 아닐텐데요?"
"나에겐 어제가 필요해. 너도 알지? 퇴마사란 족속을.. 난 나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 가는 것이야."
"알겠어요. 퇴마사란 족속은 정말 바보에 머저리란 것을.."
* * *
벌써 2일째 학교를 빠진 월아를 보며 유키는 마음을 다시 잡고서는 월아의 방문을 연다. 월아의 방문을 열자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방이 나온다. 아니 오히려 특이하다고 할까? 일반적인 소녀의 방과는 거리가 먼 그저 단순한 방이 나온다. 유키는 월아를 찾아서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방구석으로 시선을 던진다.
"어디 아파?"
지친 듯이 방구석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월아에게 묻는다. 하지만 월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연다.
"오늘 몇일이야? 유키.."
"6일인데?"
월아는 유키를 바라보면서 울것같은 눈으로 입을 연다.
"나.. 만약 사라지게 된다해도, 유키는.. 반드시 잘 살수 있지?"
그러자 유키는 멍하니 월아를 바라본다. 그러나 월아는 간절한 눈으로 대답하기를 바라고 있다. 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당연하지.. 하지만 네가 없다면 조금은 재미 없겠지? 안 그래?"
"그래. 유키라면 그럴 수 있을꺼야. 나 다녀올께."
그 말과 함께 월아는 머리의 하얀 리본을 푼다. 그러자 자연스레 옷은 무녀복으로 변한다. 월아는 리본을 단정하게 책상위에 놓고는 유키를 바라본다. 유키는 갑작스레 변한 월아의 모습이 당황스러운지 아무말도 못하고는 멍하니 서있다. 월아는 싱긋 웃어주면서 말한다.
"다녀올께. 유키. 오늘 그다지 기쁜날이 아니지만, 유키 때문에 즐거운 날이 될 것 같아."
* * *
"와주었구나. 월아."
"응. 나 기쁜날이 아니지만 왔어요. 엄마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의 말처럼 빛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 기쁜날이 아니지만, 즐거운 날이 될꺼야."
그리고는 월아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어릴적 모습의 월아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미래의 실체로써 부탁합니다. 과거의 잔영으로의 초대를.."
그러자 조그마한 월아는 방긋 웃으면서 말한다.
"환영합니다. 미래의 실체여. 잔영의 세계로.."
"주문은 완성되었습니다."
모든 말이 끝나자 주위가 고요해진다. 두 월아의 모습은 사라져있다. 다만 어린 월아의 하얀 리본이 바람결을 따라 팔락이며 하늘로 날아갈 뿐이다.
* * *
눈을 뜨자 주위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검붉은 하늘사이로 보이는 것은 수많은 눈알과 그리고 그와 대치해 있는 한명의 여인, 월아는 천천히 걸어가 둘사이에 끼여든다. 그리고는 여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여인은 당황한 말투로 소리친다.
"도망쳐요! 저 녀석은.. 저 녀석은 악마라구요!"
"오호! 이 결계 속으로 들어올 자가 있다니. 꽤나 희한한 녀석이군."
그녀는 필사적으로 내게 말한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그 이후로.. 저 목소리를 듣기를 원했다. 월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그 동안 해보지 못했지만, 마음 안에 감추고 또 쌓아두었던 말이지만. 월아는 이제 말한다. 잃은 것이 있은 후에야 사람이 그리워하듯.. 이젠 다시 찾았고, 더 이상 잃기 싫다는 그 마음으로 말한다.
"사랑해요. 어머니. 그리고 고마워요."
"……."
"이제 저에게 남은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저.. 이렇게 컸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저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러자 월아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검붉은 하늘 쪽을 바라본다. 기분 나쁜 눈알덩어리들이 둥실둥실 떠있다. 소녀는 막대기를 잡고 부러뜨린다. 그러자 기다란 철사가 나온다. 소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고서는 미소를 지은 뒤 철사를 움켜쥐고 뛰어오른다. 더 이상 남겨진 시간은 없다. 시간의 모순이 소녀의 몸을 서서히 투명하게 만들어간다. 하지만 결코 소녀는 멈추지 않는다.
"큭큭.. 이거 장난이 너무 재미있어 지는군. 내가 이래서 사람죽이는 재미가 쏠쏠하단 말야. 시간의 모순따위에 소멸해 가는 존재이면서도 내게 달려들다니. 너무나도 하찮고 보잘 것이 없는 인간이로군."
"당신은 결코 알수 없겠지요. 단순히 그녀의 웃음 하나만을 보기위해서 온 저를.."
월아의 손에서 시작된 하얀 빛이 철사 전체를 타고 퍼져나와 유윳빛의 달처럼 빛난다. 그리고 주위의 마기를 씻어내고는 평온한 기운을 은은히 뿜어낸다. 천목귀(天目鬼)의 마기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커흑!? 이런 강대한 신성력이? 대체 너는 누구냐? 너와 같은 무녀가 어째서 시간의 모순을.."
철사가 넓게 퍼지면서 마치 달빛의 바다가 하늘에 펼쳐지듯이 출렁거린다. 그리고는 천천히 동그랗게 말리면서 구의 형태로 변하여 눈알들을 감싸버린다. 안쪽에서 강렬한 마기가 주위를 엄습해오지만 달빛의 물결은 결코 멈추지 않고 동그랗게 변해간다. 월아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연다. 거의 투명해져가는 자신의 몸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환하게 웃는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저 웃을게요. 울어도 볼게요. 그러니까.. 어머니.. 당신의 웃음을 더욱, 더욱 많이 보여 주셔야해요. 저.. 이렇게 사라 진다해도.. 어머니의 웃음을 볼 수만 있다면.."
월아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어 노래한다. 달빛의 물결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주위는 고요해진다. 월아의 모습은 이미 존재하질 않는다. 그녀가 들고있던 철침도 철사도, 마치 없던 것처럼 주위는 고요하다. 가로등 불빛이 쓸쓸하게 비췰 뿐이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월아가 서있던 자리에 가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붉은 하늘은 이미 반짝이는 별빛이 가득한 검푸른 하늘로 변하여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 * *
"해낸거요? 혜월?"
"아니요. 어떤 무녀가 그를 물리쳤어요. 그리고는 사라져 버렸어요. 저를 향해서 환하게 웃어주면서.. 그런데 이상하군요. 알지도 못하던 사람인데.. 왠지 눈물이 나오는군요."
"기쁨의 눈물일꺼요."
혜월은 쉐만터 목사는 혜월의 등을 다독이며 말한다. 혜월은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고 묻는다.
"월아는요?"
"월.. 아라니? 그런 이름은 처음인데..?"
* * *
"무슨 일이야? 엄마?"
"응? 아냐아냐. 그냥 너의 누나가 생각나서 그래."
혜월은 웃으면서 아메를 바라본다. 아메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혜월에게 묻는다.
"누나가 있는거야? 어디에? 어디에?"
"누나는 말이지. 바로 저기 높은 곳에 있단다."
"흐에에.. 저렇게 높은데 있으면 안 무서울까?"
혜월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누나는 말이지 달처럼 우릴 비추고 있단다. 누나가 지은 시를 한번 들어볼래?"
"시? 응!"
滿月萬波 (만월만파) 만월의 물결의
一通万變 (일통만변) 만가지 변화는 하나로 통하니
成事一哀 (성사일애) 하나의 슬픔을 만들고
成事一愛 (성사일애) 하나의 사랑을 만든다.
혜월은 빙긋이 웃었다. 아메는 역시나 모르겠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혜월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연다.
"누나. 이쁠까?"
"그럼 이쁘지. 저기 보이는 저 이름을 모를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거칠었지만,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이쁜 누나야."
-지금, 만나러 갈께요. O.S.T.-
P.S. : 태상님 왈 용량은 상관이 없으시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삭제, 수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 콘티를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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