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Of Fantasy - 제 1악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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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moroso & Calmato
이른 아침 새하얀 눈으로 덮혀져 있는 타이스로베니칸 산맥의 한 자락에서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 너무나도 고요한 바이올린 소리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눈을 감으며 매일 아침마다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내 끊어지는 얇은 선율의 소리.
“칼. 이부분은 여기 2개의 현을 한번에 누르라고 하지 않았니? 이부분에서 2개의 현을 누루지 않으면 소리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네... 죄송해요.”
타이룬 마을에서 매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일. 고작 6살 밖에 되보이지 않는 소년-칼의 어깨에 걸려있는 바이올린. 그리고 바이올린 현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의 위치를 바꿔주는 라네아.
“자 이렇게 해야지. 이제 다시 해보렴.”
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활을 들어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다. 조용한 음악. 그리고 너무나도 순수한 음악이 다시금 온 산맥과 이곳 타이룬 마을을 울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의 이 고요함. 그리고 그 속에서 들리는 신비스러운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아침준비를 하였다.
[뎅~ 뎅~]
잠시 후 마을 신전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끝을 맺는 현의 소리.
“그래. 수고했구나. 많이 늘었어.”
라네아의 칭찬에 칼은 웃었다.
“정말요?”
“그럼. 이 엄마한테 배운지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도 이정도면 잘한거란다.”
라네아는 칼의 갈색 곱슬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내 떨어지는 그녀의 손.
“칼. 이제 아침준비 해야지?”
“네.”
칼은 바이올린을 식탁 위에 있던 바이올린케이스 안에다가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자신의 방 안에 갖다 놓았다. 칼이 식탁에 앉았을때 라네아가 간단한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
“칼. 식사 하기 전에 할 일이 뭐지?”
“아! 또 잊고 있었다.”
칼은 의자에서 일어나 아침에 떠다놓은 물통 위에 있던 작은 사발로 물을 떠서 양동이에다가 부었다. 아직은 추운 2월의 겨울. 살짝 얼은 물에 손을 담그는 것은 아직 어린 소년에게는 싫은 일이었다.
“앗 차거!”
하지만 이미 담거진 손을 보고 칼은 그대로 손을 닦기 시작하였다. 물에서 빼낸 손은 약간 파래져 있었다. 칼은 옆에 있던 구멍에다가 물을 버리고는 옆에 걸린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사 하기 전에 또 할 일이 있었지?”
라네아는 웃으면서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면서 눈을 감았다. 칼은 그 모습에 얼른 라네아가 한 행동을 따라하였다. 새들의 울림소리와 막 오븐에서 나온 따끈한 빵. 그리고 따뜻한 스프가 모락모락 연기를 일으키는 잠시동안의 조용한 기도시간. 라네아와 칼은 서서히 눈을 떴다.
“칼. 이제 먹자.”
“네! 잘 먹겠습니다.”
칼이 먼저 빵을 집으며 바쁘게 먹는 모습에 라네아는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6살이 되어버린 어린 소년. 라네아는 칼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 엄마는 안드세요?”
“훗. 아니. 엄마도 먹어야지. 우리 칼이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뻐서 말이야.”
칼은 빵을 입에 문 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네아는 손을 내려 식사를 시작하였다. 그 고요한 식사시간. 그리고 하나의 빈 의자. 라네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햇빛이 내려오는 그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5년 동안 비어 있는 빈 의자.
“어.. 어.. 새다 새!”
칼의 목소리에 라네아는 새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았다. 부엌창문을 통해 들어 온 한 마리의 작은 새. 그 새는 식탁위를 돌더니 이내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곳에 앉아 버린 새. 라네아는 자신의 빵을 조금 뜯어내어 그 새에게 주었다. 그녀의 손 위에 있던 빵을 쪼아먹는 새를 보면서 라네아는 왠지 기쁜 듯한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에 칼도 덩달아 기쁜지 웃으면서 식사를 하였다.
“잘 먹었습니다.”
칼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이 먹고 난 빈 식기를 들어 물통 안에 놓았다. 라네아도 곧 식사를 끝 맞추고 자신의 집기들을 들어 물통 안에 담갔다. 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바이올린케이스를 들고 나왔다.
“어디가니?”
라네아의 물음에 칼은 바이올린케이스를 살짝 들어서 보여주었다.
“나가서 연습좀 하고 올려고요.”
“그래.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연습하고 와.”
“네.”
칼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나 둘 밖으로 나오는 마을사람들. 칼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하나하나씩 인사를 하고 마을 뒤편에 있는 작은 마루에 올랐다. 마루에는 이미 마을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어. 칼. 늦었네.”
“미안미안. 오늘 조금 연습 좀 하느라고.”
“흠. 미안하면 말이지...”
칼을 향해 하나 둘 씩 모이는 마을 아이들. 칼은 일주일 전부터 이 아이들에게 자신이 연습한 곡을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아이들은 이 작은 마루 위로 올라왔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도 퍼져 사람들은 아침에 시간이 남으면 이 작은 마루 위로 올라와 5살 소년이 연주하는 바이올린곡을 듣곤 했다.
“알았어. 이번에 들려줄 곡은... Pie Jesu야.”
칼은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낸뒤 선을 잠시 조율하였다. 아이들은 그 광경이 신기한 듯이 매번 쳐다보았고, 칼은 약간의 쓴웃음을 지은 뒤 그의 작은 어깨에다가 바이올린을 걸쳤다.
“자자. 오늘도 칼 리터 오벨리스크 군의 연주가 시작되겠습니다.”
아이들중에서 가장 큰 키를 자랑하는 멕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의 앞에 섰다.
“칼 리터 오벨리스크 군이라 한다면 향년 6살을 맞이하는 내 친구로서 이년 전부터 미인인 어머니 라네아 오벨리스크 여사께 개인교습을 받았답니다. 흠흠...”
약간의 장난끼가 있는 말소리에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칼은 얼굴을 붉힌 채로 멕슬의 등을 살짝 밀었다.
“우씨..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앉아.”
“네네. 저 성격까지도 오벨리스크 여사께 개인교습을 받은...”
서서히 움츠려드는 멕스의 목소리. 칼의 눈에서 조금 보이는 눈물에 멕스는 약간 당황하였다. 뒤에서 몰려오는 따가운 눈초리에 맥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칼은 살짝 웃었다. 방금전에 살짝 분 바람 때문에 모래가 눈에 들어가서 약간 눈물이 나온건데 그 모습에 멕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칼은 자세를 잡고 활을 현 위에다가 올려놓았다. 낮은 바이올린 선율. 처음 그 선율은 너무나도 슬펐다. 하지만 점점 높아만 가는 선율... 그 속에서 우아하면서 따스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부는 바람소리를 따라서 숲 속으로 퍼지는 평화로운 음악소리. 몇줄의 현이 내는 소리에 마을 아이들은 따뜻한 물에서 목욕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에서 밀려오는 작은 파랑이 호숫가로 향하는 듯한. 너무나도 부드러운 음률. 순수한 소년이 울리는 그 곡은 점점 바람의 파도를 타고 산맥 전체를 향해 퍼져갔다. 날아다니는 한쌍의 파랑새는 칼의 바이올린 스크롤(머리)에 살짝 앉았다. 그리고는 새들은 칼의 연주에 맞추어서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하였다. 새와 인간이 함께 연주하는 Pie Jesu에 아이들은 마치... 마치... 매우 편안한 꿈 속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낮아지는 선율. 점점 끝을 향해 다가가는 한줄기의 음. 아이들은 모두 눈을 감은 채 그 줄기가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종착역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종착...
새들은 스크롤에서 내려오고 칼은 어깨에서 바이올린을 내렸다. 잠시간의 종적. 아이들은 하나 둘 씩 눈을 떴다. 마치 하나의 환상속을 해맸는지 아이들은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몇몇 여자 아이는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몇 아이들은 칼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야. 정말 대단해. 대단해 칼.”
“멋졌어.”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칼에게 하였다. 칼은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살짝 더듬고 있었다.
“아.. 아냐.. ”
“크흠.”
멕스의 헛기침 소리에 칼과 아이들은 모두 멕스를 쳐다보았다.
“자자. 다들 들었지? 이게 나의 절친한 친구 칼 리터 오벨리스크의 연주다 이말씀이야. 확실한건 말이지. 분명히 이녀석 이걸로 여자 꽤 울릴걸.”
멕스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그럴만도 하였기에 아이들 모두가 긍정을 해 버린 거였다. 멕스의 말에 칼은 약간 화가 났는지 바이올린케이스에 바이올린과 활을 집어넣고는 멕스의 뒤로 가서 멕스의 뒷통수에 꿀밤 한대를 먹였다.
“아코.... 왜?”
“흥. 나 간다.”
칼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손에 쥐고는 작은 마루를 내려갔다.
“야. 같이가.”
멕스는 여전히 아픈지 뒷머리에 손을 대고는 이미 먼저 내려가고 있는 칼을 향해 뛰어갔다. 남은 아이들은 일주일 전부터 칼이 연주를 하고 나면 꼭 멕스가 나대고 그 후에는 칼이 삐쳐서 먼저 내려가는 일에 모두가 웃어대었다.
멕스는 먼저 내려가고 있는 칼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같이좀 가자고. 너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멕스의 말에 칼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멕스는 칼의 행동에 약간 심통이 났는지 칼의 앞에 서서 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멕스는 살짝 웃고야 말았다. 이미 칼은 자신이 연주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기에.
칼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아까 중간 부분은 calmato(평화롭게) 로 연주를 했어야 했는데 calma(조용히) 로 연주해버린 것이었다.
“으그.. 그럼 안되는데. 그래서 중간에 잠시 음이 빨랐던 거구나.”
칼은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있던 멕스의 얼굴.
“헉. 멕.. 멕스..”
“으휴. 이제야 알아차리냐. 그래 어디가 또 어떻길래 그래?”
“음.. 그게.. 중간에 평화롭게 연주했어야 했는데 조용히 연주해 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걸 조금 생각했어.”
“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넌 정말 잘했다는 거야.”
멕스의 말에 칼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멕스 또한 활짝 웃었다.
“자 가자. 우리엄마가 너 데려오래. 이번에 팔려고 만든 쿠키가 있는데 그거 한번 시식해 보라고 말이야.”
“정말?”
“응.”
칼의 말에 멕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멕스의 어머니는 인근 도시인 인트라시(市)에서 제법 유명한 과자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칼은 멕스의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매번 가서 맛나는 과자를 얻어먹었었다. 칼은 멕스의 말에 멕스의 손을 붙잡고 마을을 향해 뛰어내려갔다.
2월의 겨울바람이 불어오면서 둘은 멕스의 집 앞에 멈추었다.
“엄마. 저 다녀왔어요. 칼도 함께 왔어요.”
멕스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의 훈훈한 공기가 문 바깥까지 나왔다. 그리고 푸짐한 모양의 멕스의 어머니가 나왔다.
“그래. 어머. 칼 아니니... 어서오렴.”
멕스의 어머니의 환영에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달콤한 설탕냄새가 풍겨왔었다. 그녀는 오른손에는 요리용 조리장갑을. 다른 편 손에는 거품기를 들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렴. 지금 막 반죽을 막 발효시켰거든. 한 15분 정도 기다리면 될텐데... 추울텐데 저기 벽난로 앞에 가서 앉아있으렴.”
멕스의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갔고, 칼은 바이올린케이스를 의자 옆에다 세워둔 채 멕스와 함께 앞에 있는 벽난로 앞에 앉았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의 불. 칼은 가만히 그 불을 응시하였다. 마른 장작이 타는 소리에 멕스는 벽난로 옆에 있는 장작더미로 가서 장작 몇 개를 벽난로 안에 던져넣었다.
“하아. 따뜻하다. 아까 달려오는데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깐.”
멕스의 말에 칼은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벽난로 위에 있는 수제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 칼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시계의 리듬을 천천히 타길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 마치 태엽과 태엽이. 그리고 추와 추가 서로 이야기를 하는듯한 소리. 그 소리가 칼은 너무나도 정겨웠다. 마치 자신이 시계나라의 왕자님이 된듯한 느낌속에서 칼은 조용히 그 시계의 리듬을 음미했다.
멕스는 칼의 고개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는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가 움직이는 시간이 시계추의 시간과 같다는 것을 느끼고는 의미있는 웃음을 내보였다. 멕스가 칼을 처음 본 건 4년 전. ‘제 3차 노비아전쟁’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은 멕스의 어머니와 멕스는 자신이 살던 칼틱시를 버리고 이 먼 인트라시 근처의 타이룬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이곳에 정착을 하자 멕스의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자기술을 이용하여 인트라시에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당시 3살이었던 멕스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조금은 먼 거리였기에 멕스의 어머니는 이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염치불구하고 칼의 어머니인 라네아에게 멕스를 맡겼었다. 그때부터 멕스와 칼은 라네아의 밑에서 같이 자라게 되었다.
“음흣. 이번껀 아주 잘 된거 같은데?”
손위에 들린 접시위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멕스의 어머니는 방금 막 오븐에서 나온 시제품 과자를 들고 칼과 멕스의 사이에 접시를 놓았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두 아이들을 보며 멕스의 어머니는 살짝 윙크를 한 채 엄지를 위로 올렸다.
“자. 어디 먹어보렴. 아주 잘 됬을거야.”
칼은 별모양의 과자를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입안에 퍼져나가는 향긋한 민트향에 막 나온 과자에서 묻어나오는 녹은 설탕. 그리고 뭔가 특별한 맛이 나는...
“정말 맛있어요. 근데 이게 무슨 과자에요?”
칼의 물음에 멕스 아줌마는 방긋 웃었다.
“그건 말이지...”
멕스와 칼은 둘다 아줌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 특별한 맛이 나긴 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아줌마는 살짝 둘의 귀에다가 뭔가를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는 두 아이. 아줌마는 씨익 웃었고, 칼과 멕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그런걸 먹다니.. 그런걸..”
“우리엄마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절대로 ... 저건 마.. 마녀..”
뭔가에 놀란 듯이 떨고 있는 두 아이를 아줌마는 자신의 품에 껴안았다.
“아냐아냐. 이 아줌마가 좀 놀린거야. 사실 이 아줌마가 이번에 새로 개발한 향료가 있거든. 그걸 한번 넣어본건데 이 아줌마가 너희를 너무 놀라게 했구나.”
아줌마의 말에 아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듯 아이들은 조금씩 몸을 떨고 있었다. 멕스 아줌마는 두 아이들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점점 안정을 찾는 아이들. 아줌마는 두 아이에게서 떨어져 자신이 만든 과자를 하나 집어 입안에 넣었다.
“자. 이제 다시 먹어봐야지? 아줌마가 우유 같아줄 테니깐 잠시 기다려.”
아줌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칼과 멕스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다시 과자를 하나 입에 물었다. 점점 멈추는 눈물과 서서히 웃는 입술. 정말 과자의 매력이란 어린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나무컵 두개와 우유병을 하나 들고 왔다. 두 아이 앞에 하나씩 컵을 건내주었고 그 안에 우유를 따라주었다. 아이들은 약간 목이 탔는지 우유가 컵에 차자 벌컥벌컥 마시길 시작하였다.
“천천히 천천히 마시렴.”
아줌만의 걱정어린 소리에 아이들은 조금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다시 손은 과자를 향해 갔다. 별모양. 사과모양. 하트모양등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과자모양이 있었다. 칼이 다시 과자에 손을 갈 무렵 멕스 아줌마는 칼의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왔다.
“칼 부탁이 있는데.”
아줌마의 말에 칼은 입에 있던 과자를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이 과자 홍보하는데 너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안되겠니?”
“뭘요?”
“아무래도 이번에 이 과자는 너희 어린이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할려고 만든거거든. 근데 멕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커 보이고. 사실 너만큼 귀여운 남자 아이도 없거든. 그리고 이번에 이 아줌마 부탁 들어주면 아줌마 가게에 있는 과자도 실컷 먹게 해 줄 거고.”
과자를 실컷 먹게 해준다는 대목에서 눈빛이 달라지는 칼을 보면서 멕스 아줌마는 살짝 웃었다.
“네. 네. 저 할께요.”
“그대신 엄마 허락을 받고 와야지 않겠니? 이따가 이 과자 다 먹고 아줌마랑 같이 너희 어머니께 가보자구나. 마침 이 아줌마도 너희 어머니께 할 말도 있고 하니.”
멕스 아줌마는 칼을 쳐다보았다. 아까 말한 과자를 먹게 해준다는 대목에서부터 과자 생각만을 하는지 앞에 있는 과자는 집지도 않은 채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멕스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하나씩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이잉.. 엄마 나도 나도 나도.”
멕스는 칼에게만 과자를 준다는 소리에 약간 심통인 났는지 자기 엄마의 무릎을 양손으로 때렸다. 그럼 멕스의 행동에 아줌마는 멕스의 머리를 살짝 밀어냈다.
“그래그래. 멕스도 칼이랑 같이 와야지.”
“정말?”
“응. 그대신 멕스는 엄마 일 방해하면 안된다. 칼은 이 엄마를 도와주는 거지만 멕스는 엄마일을 망치는 주자 아니니?”
아줌마의 말에 뾰루퉁 해지는 멕스의 얼굴. 멕스의 양 볼은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엄마는 칼만 좋아해.”
“아냐아냐. 이제 멕스도 그만 화 풀고. 이 엄마가 장난 친거야. 화 안풀면 앞으로 과자 안 준다.”
멕스는 그제서야 양 볼의 공기를 뺐다. 그리고는 칼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천장을 응시한 채 앞으로 먹을 과자를 생각하는 칼을 보곤 멕스도 피식 웃고야 말았다.
“야 칼. 칼.”
“으. 으.. 응?”
멕스가 어깨를 흔들자 그제서야 상념에서 벗어난 칼. 칼은 멕스를 쳐다보았다.
“이제 니네 집 가자. 과자는 다 먹었으니깐.”
그 말에 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접시를.. 빈 접시가 되어버린 접시를 바라보았다. 과자 가루 하나 없이 깨끗해져 버린 접시. 이내 칼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내일 과자성으로 초대.”
멕스의 한 마디에 다시금 칼의 얼굴은 평소대로.. 아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되어버렸다. 두 아이의 그런 모습에 멕스 아줌마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잠시 칼네 집으로 가볼까?”
“네.”
“네.”
두 아이와 함께 멕스 아줌마는 맞은 편에 보이는 칼네 집으로 갔다. 라네아는 창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밖을 보다 앞집 멕스네 엄마와 멕스, 칼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자 미리 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엄마.”
칼은 라네아를 향해 종종 뛰어갔다. 라네아는 무릎을 접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칼을 안아주었다.
“어서오렴. 안녕하세요. 멕스 어머니.”
“네. 안녕하세요.”
라네아와 멕스 아줌마는 서로 인사를 하였다. 라네아는 멕스 아줌마 옆에 있는 멕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서오렴. 멕스.”
“안녕하세요. 라네아 아줌마.”
“자.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세요.”
라네아와 칼, 멕스 아줌마와 멕스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훈훈한 공기가 그들의 얼굴을 보스라니 쓰다듬어 주었다. 칼은 방 안에 바이올린케이스를 놔두고는 멕스와 함께 집 앞으로 나갔고, 라네아와 멕스 아줌마는 아이들이 보이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요즘 바깥은 어때요?”
“평소대로죠. 전쟁도 끝난지 거의 1년이 지나가고... 아 그러고 보니 크롬웰 후작이 이번에 공작으로 임명됐다는군요.”
라네아의 얼굴은 점점 밝아져만 갔다. 자신의 친오빠 소식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그리고 낭보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라네아 K 크롬웰’이었지만 ‘미네바 L 오벨리스크'와의 결혼으로 성을 바꾼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크리타산 K 크롬웰’은 지난 204년 20월에 일어난 ‘제 1차 코트라 대륙 전쟁’때 라이노 제국을 향해 선봉을 섰지만 전세가 잠시 불리해지자 그의 가신들의 반란으로 인해 살해되었었다. 그래서 잠시 가문이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현 가주인 ‘아비누스 K 크롬웰’의 노력으로 인해 크롬웰가는 무너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아스완제국의 서부-수단, 카스라, 사이레, 보스톡, 베링-를 잡고 있던 ‘미네바 L 오벨리스크’ 후작에게 그의 여동생을 보내어 혈연관계를 이용한 동맹을 했었다. 비록 정략이긴 하였지만 그녀는 미네바를, 그는 라네아를 매우 사랑했었다. 하지만 제 13대 황제가 전쟁 중에 사망을 하자 아스완 제국은 제1황태자와 제2황태자간의 알력다툼이 생겨버렸다. 거기에서 크롬웰가와 오벨리스크가는 제1황태자와 제2황태자파로 나뉘었고, 결국 알력다툼에서 진 오벨리스크가는 준남작으로 강등당해지만 크롬웰가의 영향이 있는 이곳 타이룬 마을로 오게 된 것이었다. 비록 그녀는 그녀의 오빠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알게 모르게 아비누스는 그녀의 안전과 생계를 위해 도와주었고, 그것을 알게 된 미네바와 라네아는 잠시 이곳에 칩거한 채 알을 깨고 이 세상에 다시금 비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210년 3월 2일. 미네바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지만 결국 영원한 꿈 속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그렇군요. 잘 되었네요.”
“그리고 이번에 시장에서 클러씨하고 모스투파시가 또 싸웠대요.”
“어째서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들의 이야기. 점점 밝아지는 라네아의 얼굴. 멕스 아줌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죽은지 몇 주 동안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모습을 한 채 하루하루를 지나가다가 요즘들어 자주 웃는 모습을 보니 그녀 또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사실 이번에 새로운 과자를 하나 내놀려고 하는데 칼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에 만든 과자가 아이들만을 위해서 만든 과자거든요. 그래서 그걸 좀 사람들에게 홍보하려고 하는데 칼이 도와준다면 많이 팔릴 것 같아서요.”
“흐음...”
라네아는 조금 고민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칼이 6살이긴 하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분명히 조금은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아이는 아이. 엄마 품을 떠나기는 싫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아야 하는 법.
“걱정 말아요. 가게 앞에서 도와주는 것 뿐이니. 칼도 가끔은 제 가게에 혼자서도 오는걸요 뭐.”
“그런가요. 칼은 뭐라고 했나요?”
“후훗. 글쌔 말이죠..”
어느새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자. 멕스 아줌마는 방금전 자신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라네아에게 얘기를 해 주었고, 라네아는 과자라는 묘약에 넘어가버린 칼을 생각하면서 약간의 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말인가요?”
“네. 물론이죠. 아까 얼마나 웃겼는지. 앞에 과자는 놔두고 나중에 산더미처럼 쌓인 과자를 먹을 생각만 하다가 멕스에게 과자를 다 뺏겼으니... 호호”
“역시 애는 애네요. 과자에 넘어가다니.”
“네.. 후훗. 그럼 내일 칼을 부탁해요.”
“걱정 마세요. 오후에 저와 같이 올라갈 테니.”
“애가 과자에 넘어가다니.... 애는 애네요.”
“그래도 칼은 참 순수해요.”
라네아는 창문 넘어로 보이는 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없이 밝은 모습으로 사는 아이. 원래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아이. 그리고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내아가. 산에 올라가면 나무와 친구되어 놀고, 들에 가면 풀들과 노래를 부르는 아이.
“네...”
라네아는 탁자 위에 놓여진 따스한 커피를 마셨다. 커피내 내보내는 진한 원두의 향이 그녀의 콧내음을 스쳤다.
“벌써 2월이네요. 저 아이들이 저만큼 빨리 크다니.”
“그러게요.”
두 여자는 아이들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물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바라는건 평화스럽게 사는 것임을 그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람에 그 아이들을 춥게 해주지 않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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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새하얀 눈으로 덮혀져 있는 타이스로베니칸 산맥의 한 자락에서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 너무나도 고요한 바이올린 소리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눈을 감으며 매일 아침마다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내 끊어지는 얇은 선율의 소리.
“칼. 이부분은 여기 2개의 현을 한번에 누르라고 하지 않았니? 이부분에서 2개의 현을 누루지 않으면 소리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네... 죄송해요.”
타이룬 마을에서 매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일. 고작 6살 밖에 되보이지 않는 소년-칼의 어깨에 걸려있는 바이올린. 그리고 바이올린 현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의 위치를 바꿔주는 라네아.
“자 이렇게 해야지. 이제 다시 해보렴.”
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활을 들어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다. 조용한 음악. 그리고 너무나도 순수한 음악이 다시금 온 산맥과 이곳 타이룬 마을을 울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의 이 고요함. 그리고 그 속에서 들리는 신비스러운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각자의 아침준비를 하였다.
[뎅~ 뎅~]
잠시 후 마을 신전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끝을 맺는 현의 소리.
“그래. 수고했구나. 많이 늘었어.”
라네아의 칭찬에 칼은 웃었다.
“정말요?”
“그럼. 이 엄마한테 배운지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도 이정도면 잘한거란다.”
라네아는 칼의 갈색 곱슬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내 떨어지는 그녀의 손.
“칼. 이제 아침준비 해야지?”
“네.”
칼은 바이올린을 식탁 위에 있던 바이올린케이스 안에다가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자신의 방 안에 갖다 놓았다. 칼이 식탁에 앉았을때 라네아가 간단한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
“칼. 식사 하기 전에 할 일이 뭐지?”
“아! 또 잊고 있었다.”
칼은 의자에서 일어나 아침에 떠다놓은 물통 위에 있던 작은 사발로 물을 떠서 양동이에다가 부었다. 아직은 추운 2월의 겨울. 살짝 얼은 물에 손을 담그는 것은 아직 어린 소년에게는 싫은 일이었다.
“앗 차거!”
하지만 이미 담거진 손을 보고 칼은 그대로 손을 닦기 시작하였다. 물에서 빼낸 손은 약간 파래져 있었다. 칼은 옆에 있던 구멍에다가 물을 버리고는 옆에 걸린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사 하기 전에 또 할 일이 있었지?”
라네아는 웃으면서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면서 눈을 감았다. 칼은 그 모습에 얼른 라네아가 한 행동을 따라하였다. 새들의 울림소리와 막 오븐에서 나온 따끈한 빵. 그리고 따뜻한 스프가 모락모락 연기를 일으키는 잠시동안의 조용한 기도시간. 라네아와 칼은 서서히 눈을 떴다.
“칼. 이제 먹자.”
“네! 잘 먹겠습니다.”
칼이 먼저 빵을 집으며 바쁘게 먹는 모습에 라네아는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6살이 되어버린 어린 소년. 라네아는 칼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 엄마는 안드세요?”
“훗. 아니. 엄마도 먹어야지. 우리 칼이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뻐서 말이야.”
칼은 빵을 입에 문 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네아는 손을 내려 식사를 시작하였다. 그 고요한 식사시간. 그리고 하나의 빈 의자. 라네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햇빛이 내려오는 그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5년 동안 비어 있는 빈 의자.
“어.. 어.. 새다 새!”
칼의 목소리에 라네아는 새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았다. 부엌창문을 통해 들어 온 한 마리의 작은 새. 그 새는 식탁위를 돌더니 이내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곳에 앉아 버린 새. 라네아는 자신의 빵을 조금 뜯어내어 그 새에게 주었다. 그녀의 손 위에 있던 빵을 쪼아먹는 새를 보면서 라네아는 왠지 기쁜 듯한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에 칼도 덩달아 기쁜지 웃으면서 식사를 하였다.
“잘 먹었습니다.”
칼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이 먹고 난 빈 식기를 들어 물통 안에 놓았다. 라네아도 곧 식사를 끝 맞추고 자신의 집기들을 들어 물통 안에 담갔다. 칼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바이올린케이스를 들고 나왔다.
“어디가니?”
라네아의 물음에 칼은 바이올린케이스를 살짝 들어서 보여주었다.
“나가서 연습좀 하고 올려고요.”
“그래.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연습하고 와.”
“네.”
칼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나 둘 밖으로 나오는 마을사람들. 칼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하나하나씩 인사를 하고 마을 뒤편에 있는 작은 마루에 올랐다. 마루에는 이미 마을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어. 칼. 늦었네.”
“미안미안. 오늘 조금 연습 좀 하느라고.”
“흠. 미안하면 말이지...”
칼을 향해 하나 둘 씩 모이는 마을 아이들. 칼은 일주일 전부터 이 아이들에게 자신이 연습한 곡을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아이들은 이 작은 마루 위로 올라왔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도 퍼져 사람들은 아침에 시간이 남으면 이 작은 마루 위로 올라와 5살 소년이 연주하는 바이올린곡을 듣곤 했다.
“알았어. 이번에 들려줄 곡은... Pie Jesu야.”
칼은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낸뒤 선을 잠시 조율하였다. 아이들은 그 광경이 신기한 듯이 매번 쳐다보았고, 칼은 약간의 쓴웃음을 지은 뒤 그의 작은 어깨에다가 바이올린을 걸쳤다.
“자자. 오늘도 칼 리터 오벨리스크 군의 연주가 시작되겠습니다.”
아이들중에서 가장 큰 키를 자랑하는 멕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의 앞에 섰다.
“칼 리터 오벨리스크 군이라 한다면 향년 6살을 맞이하는 내 친구로서 이년 전부터 미인인 어머니 라네아 오벨리스크 여사께 개인교습을 받았답니다. 흠흠...”
약간의 장난끼가 있는 말소리에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칼은 얼굴을 붉힌 채로 멕슬의 등을 살짝 밀었다.
“우씨..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앉아.”
“네네. 저 성격까지도 오벨리스크 여사께 개인교습을 받은...”
서서히 움츠려드는 멕스의 목소리. 칼의 눈에서 조금 보이는 눈물에 멕스는 약간 당황하였다. 뒤에서 몰려오는 따가운 눈초리에 맥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칼은 살짝 웃었다. 방금전에 살짝 분 바람 때문에 모래가 눈에 들어가서 약간 눈물이 나온건데 그 모습에 멕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칼은 자세를 잡고 활을 현 위에다가 올려놓았다. 낮은 바이올린 선율. 처음 그 선율은 너무나도 슬펐다. 하지만 점점 높아만 가는 선율... 그 속에서 우아하면서 따스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부는 바람소리를 따라서 숲 속으로 퍼지는 평화로운 음악소리. 몇줄의 현이 내는 소리에 마을 아이들은 따뜻한 물에서 목욕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에서 밀려오는 작은 파랑이 호숫가로 향하는 듯한. 너무나도 부드러운 음률. 순수한 소년이 울리는 그 곡은 점점 바람의 파도를 타고 산맥 전체를 향해 퍼져갔다. 날아다니는 한쌍의 파랑새는 칼의 바이올린 스크롤(머리)에 살짝 앉았다. 그리고는 새들은 칼의 연주에 맞추어서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하였다. 새와 인간이 함께 연주하는 Pie Jesu에 아이들은 마치... 마치... 매우 편안한 꿈 속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낮아지는 선율. 점점 끝을 향해 다가가는 한줄기의 음. 아이들은 모두 눈을 감은 채 그 줄기가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종착역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종착...
새들은 스크롤에서 내려오고 칼은 어깨에서 바이올린을 내렸다. 잠시간의 종적. 아이들은 하나 둘 씩 눈을 떴다. 마치 하나의 환상속을 해맸는지 아이들은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몇몇 여자 아이는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몇 아이들은 칼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야. 정말 대단해. 대단해 칼.”
“멋졌어.”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칼에게 하였다. 칼은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살짝 더듬고 있었다.
“아.. 아냐.. ”
“크흠.”
멕스의 헛기침 소리에 칼과 아이들은 모두 멕스를 쳐다보았다.
“자자. 다들 들었지? 이게 나의 절친한 친구 칼 리터 오벨리스크의 연주다 이말씀이야. 확실한건 말이지. 분명히 이녀석 이걸로 여자 꽤 울릴걸.”
멕스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그럴만도 하였기에 아이들 모두가 긍정을 해 버린 거였다. 멕스의 말에 칼은 약간 화가 났는지 바이올린케이스에 바이올린과 활을 집어넣고는 멕스의 뒤로 가서 멕스의 뒷통수에 꿀밤 한대를 먹였다.
“아코.... 왜?”
“흥. 나 간다.”
칼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손에 쥐고는 작은 마루를 내려갔다.
“야. 같이가.”
멕스는 여전히 아픈지 뒷머리에 손을 대고는 이미 먼저 내려가고 있는 칼을 향해 뛰어갔다. 남은 아이들은 일주일 전부터 칼이 연주를 하고 나면 꼭 멕스가 나대고 그 후에는 칼이 삐쳐서 먼저 내려가는 일에 모두가 웃어대었다.
멕스는 먼저 내려가고 있는 칼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같이좀 가자고. 너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멕스의 말에 칼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멕스는 칼의 행동에 약간 심통이 났는지 칼의 앞에 서서 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멕스는 살짝 웃고야 말았다. 이미 칼은 자신이 연주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기에.
칼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아까 중간 부분은 calmato(평화롭게) 로 연주를 했어야 했는데 calma(조용히) 로 연주해버린 것이었다.
“으그.. 그럼 안되는데. 그래서 중간에 잠시 음이 빨랐던 거구나.”
칼은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있던 멕스의 얼굴.
“헉. 멕.. 멕스..”
“으휴. 이제야 알아차리냐. 그래 어디가 또 어떻길래 그래?”
“음.. 그게.. 중간에 평화롭게 연주했어야 했는데 조용히 연주해 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걸 조금 생각했어.”
“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넌 정말 잘했다는 거야.”
멕스의 말에 칼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멕스 또한 활짝 웃었다.
“자 가자. 우리엄마가 너 데려오래. 이번에 팔려고 만든 쿠키가 있는데 그거 한번 시식해 보라고 말이야.”
“정말?”
“응.”
칼의 말에 멕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멕스의 어머니는 인근 도시인 인트라시(市)에서 제법 유명한 과자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칼은 멕스의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매번 가서 맛나는 과자를 얻어먹었었다. 칼은 멕스의 말에 멕스의 손을 붙잡고 마을을 향해 뛰어내려갔다.
2월의 겨울바람이 불어오면서 둘은 멕스의 집 앞에 멈추었다.
“엄마. 저 다녀왔어요. 칼도 함께 왔어요.”
멕스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의 훈훈한 공기가 문 바깥까지 나왔다. 그리고 푸짐한 모양의 멕스의 어머니가 나왔다.
“그래. 어머. 칼 아니니... 어서오렴.”
멕스의 어머니의 환영에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달콤한 설탕냄새가 풍겨왔었다. 그녀는 오른손에는 요리용 조리장갑을. 다른 편 손에는 거품기를 들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렴. 지금 막 반죽을 막 발효시켰거든. 한 15분 정도 기다리면 될텐데... 추울텐데 저기 벽난로 앞에 가서 앉아있으렴.”
멕스의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갔고, 칼은 바이올린케이스를 의자 옆에다 세워둔 채 멕스와 함께 앞에 있는 벽난로 앞에 앉았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의 불. 칼은 가만히 그 불을 응시하였다. 마른 장작이 타는 소리에 멕스는 벽난로 옆에 있는 장작더미로 가서 장작 몇 개를 벽난로 안에 던져넣었다.
“하아. 따뜻하다. 아까 달려오는데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깐.”
멕스의 말에 칼은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벽난로 위에 있는 수제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 칼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시계의 리듬을 천천히 타길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 마치 태엽과 태엽이. 그리고 추와 추가 서로 이야기를 하는듯한 소리. 그 소리가 칼은 너무나도 정겨웠다. 마치 자신이 시계나라의 왕자님이 된듯한 느낌속에서 칼은 조용히 그 시계의 리듬을 음미했다.
멕스는 칼의 고개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는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가 움직이는 시간이 시계추의 시간과 같다는 것을 느끼고는 의미있는 웃음을 내보였다. 멕스가 칼을 처음 본 건 4년 전. ‘제 3차 노비아전쟁’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은 멕스의 어머니와 멕스는 자신이 살던 칼틱시를 버리고 이 먼 인트라시 근처의 타이룬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이곳에 정착을 하자 멕스의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자기술을 이용하여 인트라시에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당시 3살이었던 멕스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조금은 먼 거리였기에 멕스의 어머니는 이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염치불구하고 칼의 어머니인 라네아에게 멕스를 맡겼었다. 그때부터 멕스와 칼은 라네아의 밑에서 같이 자라게 되었다.
“음흣. 이번껀 아주 잘 된거 같은데?”
손위에 들린 접시위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멕스의 어머니는 방금 막 오븐에서 나온 시제품 과자를 들고 칼과 멕스의 사이에 접시를 놓았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두 아이들을 보며 멕스의 어머니는 살짝 윙크를 한 채 엄지를 위로 올렸다.
“자. 어디 먹어보렴. 아주 잘 됬을거야.”
칼은 별모양의 과자를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입안에 퍼져나가는 향긋한 민트향에 막 나온 과자에서 묻어나오는 녹은 설탕. 그리고 뭔가 특별한 맛이 나는...
“정말 맛있어요. 근데 이게 무슨 과자에요?”
칼의 물음에 멕스 아줌마는 방긋 웃었다.
“그건 말이지...”
멕스와 칼은 둘다 아줌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 특별한 맛이 나긴 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아줌마는 살짝 둘의 귀에다가 뭔가를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는 두 아이. 아줌마는 씨익 웃었고, 칼과 멕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그런걸 먹다니.. 그런걸..”
“우리엄마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절대로 ... 저건 마.. 마녀..”
뭔가에 놀란 듯이 떨고 있는 두 아이를 아줌마는 자신의 품에 껴안았다.
“아냐아냐. 이 아줌마가 좀 놀린거야. 사실 이 아줌마가 이번에 새로 개발한 향료가 있거든. 그걸 한번 넣어본건데 이 아줌마가 너희를 너무 놀라게 했구나.”
아줌마의 말에 아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듯 아이들은 조금씩 몸을 떨고 있었다. 멕스 아줌마는 두 아이들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점점 안정을 찾는 아이들. 아줌마는 두 아이에게서 떨어져 자신이 만든 과자를 하나 집어 입안에 넣었다.
“자. 이제 다시 먹어봐야지? 아줌마가 우유 같아줄 테니깐 잠시 기다려.”
아줌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칼과 멕스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다시 과자를 하나 입에 물었다. 점점 멈추는 눈물과 서서히 웃는 입술. 정말 과자의 매력이란 어린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나무컵 두개와 우유병을 하나 들고 왔다. 두 아이 앞에 하나씩 컵을 건내주었고 그 안에 우유를 따라주었다. 아이들은 약간 목이 탔는지 우유가 컵에 차자 벌컥벌컥 마시길 시작하였다.
“천천히 천천히 마시렴.”
아줌만의 걱정어린 소리에 아이들은 조금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다시 손은 과자를 향해 갔다. 별모양. 사과모양. 하트모양등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과자모양이 있었다. 칼이 다시 과자에 손을 갈 무렵 멕스 아줌마는 칼의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왔다.
“칼 부탁이 있는데.”
아줌마의 말에 칼은 입에 있던 과자를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이 과자 홍보하는데 너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안되겠니?”
“뭘요?”
“아무래도 이번에 이 과자는 너희 어린이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할려고 만든거거든. 근데 멕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커 보이고. 사실 너만큼 귀여운 남자 아이도 없거든. 그리고 이번에 이 아줌마 부탁 들어주면 아줌마 가게에 있는 과자도 실컷 먹게 해 줄 거고.”
과자를 실컷 먹게 해준다는 대목에서 눈빛이 달라지는 칼을 보면서 멕스 아줌마는 살짝 웃었다.
“네. 네. 저 할께요.”
“그대신 엄마 허락을 받고 와야지 않겠니? 이따가 이 과자 다 먹고 아줌마랑 같이 너희 어머니께 가보자구나. 마침 이 아줌마도 너희 어머니께 할 말도 있고 하니.”
멕스 아줌마는 칼을 쳐다보았다. 아까 말한 과자를 먹게 해준다는 대목에서부터 과자 생각만을 하는지 앞에 있는 과자는 집지도 않은 채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멕스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하나씩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이잉.. 엄마 나도 나도 나도.”
멕스는 칼에게만 과자를 준다는 소리에 약간 심통인 났는지 자기 엄마의 무릎을 양손으로 때렸다. 그럼 멕스의 행동에 아줌마는 멕스의 머리를 살짝 밀어냈다.
“그래그래. 멕스도 칼이랑 같이 와야지.”
“정말?”
“응. 그대신 멕스는 엄마 일 방해하면 안된다. 칼은 이 엄마를 도와주는 거지만 멕스는 엄마일을 망치는 주자 아니니?”
아줌마의 말에 뾰루퉁 해지는 멕스의 얼굴. 멕스의 양 볼은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엄마는 칼만 좋아해.”
“아냐아냐. 이제 멕스도 그만 화 풀고. 이 엄마가 장난 친거야. 화 안풀면 앞으로 과자 안 준다.”
멕스는 그제서야 양 볼의 공기를 뺐다. 그리고는 칼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천장을 응시한 채 앞으로 먹을 과자를 생각하는 칼을 보곤 멕스도 피식 웃고야 말았다.
“야 칼. 칼.”
“으. 으.. 응?”
멕스가 어깨를 흔들자 그제서야 상념에서 벗어난 칼. 칼은 멕스를 쳐다보았다.
“이제 니네 집 가자. 과자는 다 먹었으니깐.”
그 말에 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접시를.. 빈 접시가 되어버린 접시를 바라보았다. 과자 가루 하나 없이 깨끗해져 버린 접시. 이내 칼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내일 과자성으로 초대.”
멕스의 한 마디에 다시금 칼의 얼굴은 평소대로.. 아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되어버렸다. 두 아이의 그런 모습에 멕스 아줌마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잠시 칼네 집으로 가볼까?”
“네.”
“네.”
두 아이와 함께 멕스 아줌마는 맞은 편에 보이는 칼네 집으로 갔다. 라네아는 창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밖을 보다 앞집 멕스네 엄마와 멕스, 칼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자 미리 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엄마.”
칼은 라네아를 향해 종종 뛰어갔다. 라네아는 무릎을 접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칼을 안아주었다.
“어서오렴. 안녕하세요. 멕스 어머니.”
“네. 안녕하세요.”
라네아와 멕스 아줌마는 서로 인사를 하였다. 라네아는 멕스 아줌마 옆에 있는 멕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서오렴. 멕스.”
“안녕하세요. 라네아 아줌마.”
“자.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세요.”
라네아와 칼, 멕스 아줌마와 멕스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훈훈한 공기가 그들의 얼굴을 보스라니 쓰다듬어 주었다. 칼은 방 안에 바이올린케이스를 놔두고는 멕스와 함께 집 앞으로 나갔고, 라네아와 멕스 아줌마는 아이들이 보이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요즘 바깥은 어때요?”
“평소대로죠. 전쟁도 끝난지 거의 1년이 지나가고... 아 그러고 보니 크롬웰 후작이 이번에 공작으로 임명됐다는군요.”
라네아의 얼굴은 점점 밝아져만 갔다. 자신의 친오빠 소식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그리고 낭보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라네아 K 크롬웰’이었지만 ‘미네바 L 오벨리스크'와의 결혼으로 성을 바꾼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크리타산 K 크롬웰’은 지난 204년 20월에 일어난 ‘제 1차 코트라 대륙 전쟁’때 라이노 제국을 향해 선봉을 섰지만 전세가 잠시 불리해지자 그의 가신들의 반란으로 인해 살해되었었다. 그래서 잠시 가문이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현 가주인 ‘아비누스 K 크롬웰’의 노력으로 인해 크롬웰가는 무너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아스완제국의 서부-수단, 카스라, 사이레, 보스톡, 베링-를 잡고 있던 ‘미네바 L 오벨리스크’ 후작에게 그의 여동생을 보내어 혈연관계를 이용한 동맹을 했었다. 비록 정략이긴 하였지만 그녀는 미네바를, 그는 라네아를 매우 사랑했었다. 하지만 제 13대 황제가 전쟁 중에 사망을 하자 아스완 제국은 제1황태자와 제2황태자간의 알력다툼이 생겨버렸다. 거기에서 크롬웰가와 오벨리스크가는 제1황태자와 제2황태자파로 나뉘었고, 결국 알력다툼에서 진 오벨리스크가는 준남작으로 강등당해지만 크롬웰가의 영향이 있는 이곳 타이룬 마을로 오게 된 것이었다. 비록 그녀는 그녀의 오빠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알게 모르게 아비누스는 그녀의 안전과 생계를 위해 도와주었고, 그것을 알게 된 미네바와 라네아는 잠시 이곳에 칩거한 채 알을 깨고 이 세상에 다시금 비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210년 3월 2일. 미네바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지만 결국 영원한 꿈 속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그렇군요. 잘 되었네요.”
“그리고 이번에 시장에서 클러씨하고 모스투파시가 또 싸웠대요.”
“어째서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들의 이야기. 점점 밝아지는 라네아의 얼굴. 멕스 아줌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죽은지 몇 주 동안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모습을 한 채 하루하루를 지나가다가 요즘들어 자주 웃는 모습을 보니 그녀 또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사실 이번에 새로운 과자를 하나 내놀려고 하는데 칼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에 만든 과자가 아이들만을 위해서 만든 과자거든요. 그래서 그걸 좀 사람들에게 홍보하려고 하는데 칼이 도와준다면 많이 팔릴 것 같아서요.”
“흐음...”
라네아는 조금 고민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칼이 6살이긴 하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분명히 조금은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아이는 아이. 엄마 품을 떠나기는 싫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아야 하는 법.
“걱정 말아요. 가게 앞에서 도와주는 것 뿐이니. 칼도 가끔은 제 가게에 혼자서도 오는걸요 뭐.”
“그런가요. 칼은 뭐라고 했나요?”
“후훗. 글쌔 말이죠..”
어느새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자. 멕스 아줌마는 방금전 자신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라네아에게 얘기를 해 주었고, 라네아는 과자라는 묘약에 넘어가버린 칼을 생각하면서 약간의 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말인가요?”
“네. 물론이죠. 아까 얼마나 웃겼는지. 앞에 과자는 놔두고 나중에 산더미처럼 쌓인 과자를 먹을 생각만 하다가 멕스에게 과자를 다 뺏겼으니... 호호”
“역시 애는 애네요. 과자에 넘어가다니.”
“네.. 후훗. 그럼 내일 칼을 부탁해요.”
“걱정 마세요. 오후에 저와 같이 올라갈 테니.”
“애가 과자에 넘어가다니.... 애는 애네요.”
“그래도 칼은 참 순수해요.”
라네아는 창문 넘어로 보이는 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없이 밝은 모습으로 사는 아이. 원래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아이. 그리고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내아가. 산에 올라가면 나무와 친구되어 놀고, 들에 가면 풀들과 노래를 부르는 아이.
“네...”
라네아는 탁자 위에 놓여진 따스한 커피를 마셨다. 커피내 내보내는 진한 원두의 향이 그녀의 콧내음을 스쳤다.
“벌써 2월이네요. 저 아이들이 저만큼 빨리 크다니.”
“그러게요.”
두 여자는 아이들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물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바라는건 평화스럽게 사는 것임을 그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람에 그 아이들을 춥게 해주지 않기를 빌면서.....
* pika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1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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