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Of Goddess - <제 1악장 Pie j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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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악장 Pie jesu-
brioso & accelerando
푸르른 대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18척의 범선. 그 주위에 일렁이는 푸른 파도의 물결.
“순조롭군.”
일등 항해사인 라크네프는 눈을 살짝 가린 채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달째 아무런 일 없이 온 항해. 지금까지 그가 겪어왔던 항해 중 가장 평온했고, 너무나도 편안한 항해였다. 하지만 저 옆에서 들려오는 숨넘어가는 소리에 그는 얼굴을 찌뿌렸다. 긴 검은색 머리카락에 이상한 파란색 비단옷. 이번에 네덜란드에 일본국이라는 동양의 약간 큰 섬나라 사신으로 오는 케이라는 사람이었다. 벌써 한달째 항해가 되었지만 식사만 하고 나면 여전히 저렇게 물고기밥을 주고 있었다.
“에그... 저런 섬나라 사람이 배도 안타보고......”
하지만 저 사람은 그래도 말이라도 통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온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말 하나 제대로 못한채 선실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라크네프는 선체에 몸을 기댄 채 앉아있는 케이치에게 다가갔다. 케이치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화란국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하.. 안녕하세요. 라크네프씨.”
조금은 어눌하지만 어느정도 통할만한 화란어로 인사한 케이치는 기대어 있던 선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몸에 케이치는 자빠질 뻔 하였고, 그것을 라크네프가 그의 몸을 잡아주었다.
“고맙습니다.”
라크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조그마한 위스키병을 끄내 케이에게 주었다.
“마시게. 그거 마시면 속이 좀 가라앉을 거야.”
케이치는 그가 건내준 병을 받고 선체에 허리를 기댄 후 마셨다. 서서히 벌개지는 케이치의 얼굴.
“이.. 이거 술 아닙니까?”
“맞네. 그것도 아주 독한 위스키지. 어디냐.. 명나라라는 그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술보다는 조금 들하지만 말이야.”
“그걸 어째서 저에게 주십니까? 가뜩이나 속도 안좋은데.”
케이치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라크네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는 케이치의 등을 살짝 쳤다.
“당연한거 아닌가? 그렇게 계속 얼굴을 찌푸리면서 이 배 안에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속도 좀 이상한 거 같구. 이 위스키가 그래도 속을 앉히는데는 제법 한다고.”
“그래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는 아닙니다만..”
케이치의 대답에 라크네프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소총에 손이 가자 케이치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라크네프의 손이 향한 곳은 총 옆에 있던 작은 자루였다. 그는 자루를 열어 손바닥에 털었다. 손 위에 있는 것은 기름에 튀긴 콩.
“받게. 안주네.”
라크네프의 말에 케이치는 조금 멍해졌다. 왠지 자신을 가지고 장난치는 듯한 느낌에.
“이사람이 뭘 그리 쳐다보나. 아무리 이 배안에 남자밖에는 없다지만 그래도 난 호색남은 아니라네.”
터덜터덜한 웃음소리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장난끼가 가득한 말투. 케이치는 결국 두손을 들고는 그가 준 튀긴 콩을 안주삼아 위스키를 마셨다. 변함이 없어보이는 바다와 구름만이 떠 있는 하늘. 너무나도 변함이 없는 생활.
“지루하나?”
순간 케이치의 생각이 라크네프에 읽힌 듯 그가 케이치에게 물어왔다. 케이치는 조금 놀란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네프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맞네. 자네 말이 맞아. 한달째 같은 생활만 한다는 건 매우 지루한 일이지. 하지만 말일세. 바다란 매우 민감한 여자라네. 이렇게 한달 째 평온한 건 내 50평생동안 처음이지. 바다란 여자가 노처녀가 내는 짜증을 낸다면 말일세. 우린 모두가 죽었다고 복창한다네. 어떻게 변할지를 모르기 때문이지. 가다가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고, 갑자기 바람이 바뀔 수도 있고, 해류가 변할 수도 있고, 정말 너무나도 그녀가 화를 내면 어떻게 감당을 할 수가 없다네. 자네나라에도 그런게 있더군. 자네나라의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본적 있는가? 물론 자네나라에서 믿는 신에게 말일세..”
라크네프의 말에 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네프는 약간 목이 탄지 케이치의 손에 있던 위스키병을 건내받아 목을 축였다.
“크. 그거라네. 신께 기도를 올리는건 많이 잡아달라는게 아니야. 그져 무사히 바다에 나가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지. 바다가 이렇게 평온할 수는 없네. 분명히 심한 폭풍우도 몰아칠 거고,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서 어흥 잡아먹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하지만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자네는 알 수 없을껄..?”
“흠... 그렇군요.”
라크네프의 약간 장난끼 섞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치. 그 모습에 오히려 라크네프는 케이치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눈길에 케이치는 고개를 돌려 라크네프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케이치의 물음에 라크네프는 헛기침을 하였다.
“큼큼.. 아.. 아니네.. 내 말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게. 앞으로 6개월정도 남았지만 다른 항해에 비해서 안전하고, 또 이번에 이 배가 새로 개발된 배라서 조금 더 빨리 갈 수도 있을거야.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라크네프씨.”
뭔가 답답해 보이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일본국 청년 케이. 라크네프가 느낀 이국청년의 첫 인상이였다.
“선장님! 곧 캘커타에 도착합니다.”
“알겠네. 다들 준비하라고 일러두게.”
선미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선장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산 안드레스카 호의 선장 ‘라이노 D 클로제’는 선장실에서 자신의 집무를 보고 있었다. 이번 그의 항해 일지는 단 몇줄만이 적혀져 있는 상태. 지금까지 그가 겪어왔던 어떠한 장거리 항해보다도 매우 평온했다. 말라카 주위에 있던 해적들도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 주었고, 말라카 항구에서의 보급도 매우 풍족했고 재빨랐다. 그리고 이번 항해에는 모든 배가 최신형의 범선으로 교체가 되었다. 거기다 해류도 매우 일정하였고, 바람도 제대로 불어주었다. 마치 신의 인도에 이끌려 배가 나아가는 것처럼. 그런 것이 한달만에 캘커타에 도착한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보통 일본국의 오사카항에서 캘커타 까지 가는데 빨라여 100일정도.
클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조끼주머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갑판 문이 열리면서 그의 눈에는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황금의 땅 인도. 그리고 그곳에 있는 항구 캘커타. 영국인들이 동인도회사를 세워 저 넒은 인도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땅.
클로제는 선미로 올라가 선원들을 지휘했다.
“폴과 메인에 매여있는 모든 돛을 접어라! 미젠만 놔두고 모든 돛을 접어라!”
정말 오랜만에 바쁘게 돌아가는 선내. 선원들은 서로 움직이면서 돛을 다시 접고 폴과 메인으로 올라가서 돛을 매었다. 다른 선원들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포문에 대포를 재정비하였고, 선실에 남아있는 선원들은 보급품목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케이치와 일본국 사신 4명은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는 케이치는 사신들에게 잠시 정박해서 보급을 하고 간다는 설명과 함께 이곳에 가만히 있으라 명하고 자신은 갑판으로 나갔다. 갑판 위에서는 라크네프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박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기 라크네프씨?”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라크네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 보았다. 검은색 머리의 케이가 보였고 라크네프는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케이. 잠시 거기 있게나. 지금 좀 바뻐서 말이야. 자네는 선실에 들어가서 잠시 쉬고 있게 다 끝나면 불러줄테니 말이야.”
라크네프는 케이치에게 자신이 할 말만 한 뒤 다시 닻을 준비하는 선원들에게 뛰어갔다.
“휴.. 라크네프씨도 저리 바삐 움직이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어디.. 뭐 할 일이 있나..?”
그때 케이치의 옆으로 선실에 있던 선원들이 통과 나무박스를 들고 나와 갑판 위에다가 놓아두고는 다시 선실안으로 들어갔다. 케이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을 따라갔다. 점점 깊이 들어가는 선내 복도를 따라 한층 한층 아래로 내려간 케이치는 배의 맨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휘어진 용골과 얇은 선. 일본에서 보던 배와는 완전히 다른 내부에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었다. 그가 따라온지 모르고 통나무통과 여러 가지 잡물건을 정리하던 선원들은 잡담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저기..”
케이치의 말소리에 그제서야 그를 느낀 선원들은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 선원의 말에 케이치는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모노를 걷어붇혔다.
“저도 좀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가만히 있자니 좀 그래서요. 그래서 그런데 가벼운 물건이라도 제가 옮길테니 시켜만 주십시오.”
케이치의 말에 선원은 놀라 그가 걷은 기모노를 얼른 다시 내렸다.
“안됩니다. 사신으로 가시는 일행은 편안히 그져 항해를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건 선장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선원의 말에 케이치는 괜찮다는 미소를 보이며 그의 옆에 놓여진 작은 야채통을 들고 나갔다.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그는 다시한번 이 배의 선내를 살피게 되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양을 하고 있는 목제조각들. 그리고 넓은 선내. 지금 일본국의 기술로는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케이치는 갑판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옆에 이미 쌓아놓은 통들이 보였고, 케이치는 그곳에다가 자신이 들고 온 야채통을 내려놓았다.
“아니 케이.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케이치가 짐을 내려놓는 모습을 본 라크네프는 얼른 케이치의 옆으로 다가갔다. 케이치는 기모노에 묻은 먼지를 살짝 털어내었다.
“그냥요. 가만히 있자니 좀 몸이 쑤셔어요. 마침 가벼운 물건정도는 어떻게든 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할 수 없지. 하지만 이젠 그만해도 되네. 다 끝났으니. 자네도 답답하지? 조금만 있으면 닻을 내리고 정박할테니. 그때 내 술 한잔 사겠네. 아. 자네 일행들도 물론이지. 아마 이곳에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를 예정이니 말이야.”
“일주일 씩이나 머뭅니까?”
케이치의 물음에 라크네프는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고는 허리춤에 걸린 성냥갑을 꺼내 성냥에 불을 붙인 후 그것을 파이프에다가 살짝 넣었다. 그러자 파이프에서는 미리 들어가 있던 연초에 불이 붙었고, 그는 성냥을 흔들어 끈 후 바다에 버렸다.
“그렇다네. 이것 저것 살 것도 좀 있고. 선원들도 땅을 밟아봐야지. 희망봉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땅을 밟을 수 없으니 말일세. 그러니 자네도 이 일주일간 마음껏 땅을 밟아야 될꺼야.”
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선수(배의 앞머리)로 올라갔다. 푸른색의 바다. 새하얀 구름. 저 앞에 보이는 정박해 있는 배들. 하늘 높이 솟은 뾰족한 건물.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건물. 건물 위에서 나온느 검은 연기. 하늘을 나는 갈매기.
케이치의 눈 앞에 보이는 정경들은 모두가 생소한. 하지만 너무나도 신기한 모습들이었다. 배의 속력이 줄어들면서 한척씩 부둣가에 정박하였다.
“닻을 내려라!”
클로제의 목소리에 맞추어 선원들은 도르래에 걸어놓았던 말뚝을 뽑았다. 쇠사슬이 풀린느 소리와 함께 배 선수에 달려있던 닻이 바다 아래로 떨어졌다. 선원들은 부둣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져 배를 고정시키게 하였다. 네명의 선원이 기다란 널빤지를 들고와 배와 부두를 이었다.
클로제는 다시 선미로 올라갔다. 이미 갑판 위에는 모든 선원들과 케이치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클로제는 한번 헛기침을 한 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수고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이곳 캘커타 항구에 머무를 것이다. 어디 멀리들 가지 말고, 쉴 사람들은 쉬고, 일 해야 하는 날은 각자가 알테니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이상!”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소리. 선원들은 다들 자신의 짐을 미리 꺼내놨는지 한보따리씩들 싸을고는 모두 배에서 내렸다. 케이치는 선미로 올라가 클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클로제에게 살짝 고래를 숙였다.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은 어눌한 화란어. 하지만 클로제는 약간 멋쩍은 듯이 웃었다.
“아닙니다. 당신네 사람들도 잘 버텨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선실로 들어가 자신들의 일행을 데리고 갑판 위로 나왔다.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도시. 그리고 배. 케이치 일행은 모두 한걸음 한걸음 판자를 타고 배에서 내렸다. 처음으로 밟아보는 이국의 땅.
이것이 케이치의 첫 번째 이국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brioso & accelerando
푸르른 대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18척의 범선. 그 주위에 일렁이는 푸른 파도의 물결.
“순조롭군.”
일등 항해사인 라크네프는 눈을 살짝 가린 채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달째 아무런 일 없이 온 항해. 지금까지 그가 겪어왔던 항해 중 가장 평온했고, 너무나도 편안한 항해였다. 하지만 저 옆에서 들려오는 숨넘어가는 소리에 그는 얼굴을 찌뿌렸다. 긴 검은색 머리카락에 이상한 파란색 비단옷. 이번에 네덜란드에 일본국이라는 동양의 약간 큰 섬나라 사신으로 오는 케이라는 사람이었다. 벌써 한달째 항해가 되었지만 식사만 하고 나면 여전히 저렇게 물고기밥을 주고 있었다.
“에그... 저런 섬나라 사람이 배도 안타보고......”
하지만 저 사람은 그래도 말이라도 통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온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말 하나 제대로 못한채 선실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라크네프는 선체에 몸을 기댄 채 앉아있는 케이치에게 다가갔다. 케이치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화란국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하.. 안녕하세요. 라크네프씨.”
조금은 어눌하지만 어느정도 통할만한 화란어로 인사한 케이치는 기대어 있던 선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몸에 케이치는 자빠질 뻔 하였고, 그것을 라크네프가 그의 몸을 잡아주었다.
“고맙습니다.”
라크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조그마한 위스키병을 끄내 케이에게 주었다.
“마시게. 그거 마시면 속이 좀 가라앉을 거야.”
케이치는 그가 건내준 병을 받고 선체에 허리를 기댄 후 마셨다. 서서히 벌개지는 케이치의 얼굴.
“이.. 이거 술 아닙니까?”
“맞네. 그것도 아주 독한 위스키지. 어디냐.. 명나라라는 그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술보다는 조금 들하지만 말이야.”
“그걸 어째서 저에게 주십니까? 가뜩이나 속도 안좋은데.”
케이치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라크네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는 케이치의 등을 살짝 쳤다.
“당연한거 아닌가? 그렇게 계속 얼굴을 찌푸리면서 이 배 안에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속도 좀 이상한 거 같구. 이 위스키가 그래도 속을 앉히는데는 제법 한다고.”
“그래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는 아닙니다만..”
케이치의 대답에 라크네프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소총에 손이 가자 케이치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라크네프의 손이 향한 곳은 총 옆에 있던 작은 자루였다. 그는 자루를 열어 손바닥에 털었다. 손 위에 있는 것은 기름에 튀긴 콩.
“받게. 안주네.”
라크네프의 말에 케이치는 조금 멍해졌다. 왠지 자신을 가지고 장난치는 듯한 느낌에.
“이사람이 뭘 그리 쳐다보나. 아무리 이 배안에 남자밖에는 없다지만 그래도 난 호색남은 아니라네.”
터덜터덜한 웃음소리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장난끼가 가득한 말투. 케이치는 결국 두손을 들고는 그가 준 튀긴 콩을 안주삼아 위스키를 마셨다. 변함이 없어보이는 바다와 구름만이 떠 있는 하늘. 너무나도 변함이 없는 생활.
“지루하나?”
순간 케이치의 생각이 라크네프에 읽힌 듯 그가 케이치에게 물어왔다. 케이치는 조금 놀란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네프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맞네. 자네 말이 맞아. 한달째 같은 생활만 한다는 건 매우 지루한 일이지. 하지만 말일세. 바다란 매우 민감한 여자라네. 이렇게 한달 째 평온한 건 내 50평생동안 처음이지. 바다란 여자가 노처녀가 내는 짜증을 낸다면 말일세. 우린 모두가 죽었다고 복창한다네. 어떻게 변할지를 모르기 때문이지. 가다가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고, 갑자기 바람이 바뀔 수도 있고, 해류가 변할 수도 있고, 정말 너무나도 그녀가 화를 내면 어떻게 감당을 할 수가 없다네. 자네나라에도 그런게 있더군. 자네나라의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본적 있는가? 물론 자네나라에서 믿는 신에게 말일세..”
라크네프의 말에 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네프는 약간 목이 탄지 케이치의 손에 있던 위스키병을 건내받아 목을 축였다.
“크. 그거라네. 신께 기도를 올리는건 많이 잡아달라는게 아니야. 그져 무사히 바다에 나가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지. 바다가 이렇게 평온할 수는 없네. 분명히 심한 폭풍우도 몰아칠 거고,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서 어흥 잡아먹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하지만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자네는 알 수 없을껄..?”
“흠... 그렇군요.”
라크네프의 약간 장난끼 섞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치. 그 모습에 오히려 라크네프는 케이치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눈길에 케이치는 고개를 돌려 라크네프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케이치의 물음에 라크네프는 헛기침을 하였다.
“큼큼.. 아.. 아니네.. 내 말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게. 앞으로 6개월정도 남았지만 다른 항해에 비해서 안전하고, 또 이번에 이 배가 새로 개발된 배라서 조금 더 빨리 갈 수도 있을거야.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라크네프씨.”
뭔가 답답해 보이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일본국 청년 케이. 라크네프가 느낀 이국청년의 첫 인상이였다.
“선장님! 곧 캘커타에 도착합니다.”
“알겠네. 다들 준비하라고 일러두게.”
선미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선장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산 안드레스카 호의 선장 ‘라이노 D 클로제’는 선장실에서 자신의 집무를 보고 있었다. 이번 그의 항해 일지는 단 몇줄만이 적혀져 있는 상태. 지금까지 그가 겪어왔던 어떠한 장거리 항해보다도 매우 평온했다. 말라카 주위에 있던 해적들도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 주었고, 말라카 항구에서의 보급도 매우 풍족했고 재빨랐다. 그리고 이번 항해에는 모든 배가 최신형의 범선으로 교체가 되었다. 거기다 해류도 매우 일정하였고, 바람도 제대로 불어주었다. 마치 신의 인도에 이끌려 배가 나아가는 것처럼. 그런 것이 한달만에 캘커타에 도착한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보통 일본국의 오사카항에서 캘커타 까지 가는데 빨라여 100일정도.
클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조끼주머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갑판 문이 열리면서 그의 눈에는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황금의 땅 인도. 그리고 그곳에 있는 항구 캘커타. 영국인들이 동인도회사를 세워 저 넒은 인도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땅.
클로제는 선미로 올라가 선원들을 지휘했다.
“폴과 메인에 매여있는 모든 돛을 접어라! 미젠만 놔두고 모든 돛을 접어라!”
정말 오랜만에 바쁘게 돌아가는 선내. 선원들은 서로 움직이면서 돛을 다시 접고 폴과 메인으로 올라가서 돛을 매었다. 다른 선원들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포문에 대포를 재정비하였고, 선실에 남아있는 선원들은 보급품목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케이치와 일본국 사신 4명은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는 케이치는 사신들에게 잠시 정박해서 보급을 하고 간다는 설명과 함께 이곳에 가만히 있으라 명하고 자신은 갑판으로 나갔다. 갑판 위에서는 라크네프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박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기 라크네프씨?”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라크네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 보았다. 검은색 머리의 케이가 보였고 라크네프는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케이. 잠시 거기 있게나. 지금 좀 바뻐서 말이야. 자네는 선실에 들어가서 잠시 쉬고 있게 다 끝나면 불러줄테니 말이야.”
라크네프는 케이치에게 자신이 할 말만 한 뒤 다시 닻을 준비하는 선원들에게 뛰어갔다.
“휴.. 라크네프씨도 저리 바삐 움직이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어디.. 뭐 할 일이 있나..?”
그때 케이치의 옆으로 선실에 있던 선원들이 통과 나무박스를 들고 나와 갑판 위에다가 놓아두고는 다시 선실안으로 들어갔다. 케이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을 따라갔다. 점점 깊이 들어가는 선내 복도를 따라 한층 한층 아래로 내려간 케이치는 배의 맨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휘어진 용골과 얇은 선. 일본에서 보던 배와는 완전히 다른 내부에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었다. 그가 따라온지 모르고 통나무통과 여러 가지 잡물건을 정리하던 선원들은 잡담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저기..”
케이치의 말소리에 그제서야 그를 느낀 선원들은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 선원의 말에 케이치는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모노를 걷어붇혔다.
“저도 좀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가만히 있자니 좀 그래서요. 그래서 그런데 가벼운 물건이라도 제가 옮길테니 시켜만 주십시오.”
케이치의 말에 선원은 놀라 그가 걷은 기모노를 얼른 다시 내렸다.
“안됩니다. 사신으로 가시는 일행은 편안히 그져 항해를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건 선장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선원의 말에 케이치는 괜찮다는 미소를 보이며 그의 옆에 놓여진 작은 야채통을 들고 나갔다.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그는 다시한번 이 배의 선내를 살피게 되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양을 하고 있는 목제조각들. 그리고 넓은 선내. 지금 일본국의 기술로는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케이치는 갑판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옆에 이미 쌓아놓은 통들이 보였고, 케이치는 그곳에다가 자신이 들고 온 야채통을 내려놓았다.
“아니 케이.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케이치가 짐을 내려놓는 모습을 본 라크네프는 얼른 케이치의 옆으로 다가갔다. 케이치는 기모노에 묻은 먼지를 살짝 털어내었다.
“그냥요. 가만히 있자니 좀 몸이 쑤셔어요. 마침 가벼운 물건정도는 어떻게든 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할 수 없지. 하지만 이젠 그만해도 되네. 다 끝났으니. 자네도 답답하지? 조금만 있으면 닻을 내리고 정박할테니. 그때 내 술 한잔 사겠네. 아. 자네 일행들도 물론이지. 아마 이곳에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를 예정이니 말이야.”
“일주일 씩이나 머뭅니까?”
케이치의 물음에 라크네프는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고는 허리춤에 걸린 성냥갑을 꺼내 성냥에 불을 붙인 후 그것을 파이프에다가 살짝 넣었다. 그러자 파이프에서는 미리 들어가 있던 연초에 불이 붙었고, 그는 성냥을 흔들어 끈 후 바다에 버렸다.
“그렇다네. 이것 저것 살 것도 좀 있고. 선원들도 땅을 밟아봐야지. 희망봉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땅을 밟을 수 없으니 말일세. 그러니 자네도 이 일주일간 마음껏 땅을 밟아야 될꺼야.”
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선수(배의 앞머리)로 올라갔다. 푸른색의 바다. 새하얀 구름. 저 앞에 보이는 정박해 있는 배들. 하늘 높이 솟은 뾰족한 건물.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건물. 건물 위에서 나온느 검은 연기. 하늘을 나는 갈매기.
케이치의 눈 앞에 보이는 정경들은 모두가 생소한. 하지만 너무나도 신기한 모습들이었다. 배의 속력이 줄어들면서 한척씩 부둣가에 정박하였다.
“닻을 내려라!”
클로제의 목소리에 맞추어 선원들은 도르래에 걸어놓았던 말뚝을 뽑았다. 쇠사슬이 풀린느 소리와 함께 배 선수에 달려있던 닻이 바다 아래로 떨어졌다. 선원들은 부둣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져 배를 고정시키게 하였다. 네명의 선원이 기다란 널빤지를 들고와 배와 부두를 이었다.
클로제는 다시 선미로 올라갔다. 이미 갑판 위에는 모든 선원들과 케이치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클로제는 한번 헛기침을 한 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수고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이곳 캘커타 항구에 머무를 것이다. 어디 멀리들 가지 말고, 쉴 사람들은 쉬고, 일 해야 하는 날은 각자가 알테니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이상!”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소리. 선원들은 다들 자신의 짐을 미리 꺼내놨는지 한보따리씩들 싸을고는 모두 배에서 내렸다. 케이치는 선미로 올라가 클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클로제에게 살짝 고래를 숙였다.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은 어눌한 화란어. 하지만 클로제는 약간 멋쩍은 듯이 웃었다.
“아닙니다. 당신네 사람들도 잘 버텨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선실로 들어가 자신들의 일행을 데리고 갑판 위로 나왔다.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도시. 그리고 배. 케이치 일행은 모두 한걸음 한걸음 판자를 타고 배에서 내렸다. 처음으로 밟아보는 이국의 땅.
이것이 케이치의 첫 번째 이국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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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Z™님의 댓글
NTZ™이름으로 검색 작성일-ㅅ-......움.......참.. 햇갈리는 부분이죠 +_+;일본의 전통의상은 '기모노'이다. 기모노는 나라시대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남녀가 즐겨 입어온 의상으로 중국의 파오(袍) 양식에서 유래했다. 기모노의 기본형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소매는 길고 넓으며 목부분이 V자로 패여 있으며 단추나 끈 없이 왼쪽 옷자락을 오른쪽으로 여며 허리에 오비(帶)를 두르는 형태이다. 기모노는 원래 일본 옷은 아니지만 17~18세기 일본의 의상 디자이너들에 의해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옷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2004년 크리스마스 씰의 내용에서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