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사역마XHALO] -제3화 : 치프의 선물/루이즈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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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마와 주인의 위치를 확실히 알려주겠다고 선언한 루이즈는 아침 해가 뜨자
마자 치프가 생전 처음해보는 모래사장 에서 총탄 줍기 식의
황당한 지령들을 강요하였다. 항명은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말이다.
치프는 자신은 사역마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런 지령은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서포터이자 이 세계로 함께 넘어온 유일한 동료 AI 코타나의
설명에 그는 떠넘겨진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만 했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구원의 손길이 내려오기 전까진 여기 있어야 해요 치프.
그리고 여성의 부탁은 무엇이든지 들어주는게 남자의 도리에요. 알겠죠 치프?]
....같은 여성이라고 편을 드는 걸까?
코타나는 약간 감정이 든 웃음을 지으며 치프를 설득하였고 치프는 하는 수 없이
묠니르의 허리부분에 분홍 떙땡이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산더미만한 빨랫감
들을 어깨위에 올려놓은 채 빨래터로 가야만 했다.
결국 억지로 빨랫감들을 방망이로 탁탁 두드리고 손으로 조물조물 빠는
치프의 모습은 지나가던 구경꾼들의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푸하하. 루이즈의 사역마 좀 봐."
"하하하~갑옷차림에 앞치마라. 정말 보면 볼수록 가관인데."
"푸후훗. 배가...배가 아파와."
"......."
치프는 구경꾼 소년, 소녀들의 중얼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손을 하얀색
속옷으로 가져다 댔다. 하긴. 치프 본인이 생각해도 묠니르mk6 전투복 앞에
앞치마를 두르고 빨래를 하는 행위는 굉장히 코믹적으로 들렸다.
아마 생존한 스파르탄 동기들 중 하나가 자신을 보면 뭐라고 할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이런 조용한 시골마을[여기 기준으론 대도시지만]
에서 앞치마를 앞에 걸고 빨래나 하고 있다고 닦달할 것만 같았다.
치프는 죽은 동기들을 떠올리고 잠시 빨래를 멈춘 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렸을 때 자신보다 주먹 하나는 더 컸던 소녀 켈리와 함께 보아온 에리다누스
행성의 푸른 하늘과 비슷하였다.
'지금 나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코타나 말로는 전쟁은 헤일로 파괴 이후 전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고
하였다. 코타나 말대로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10여년 동안 동면에 든 이후로 이미 끝나고 수색대를 보내 자신을 찾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 치프의 귀에 발걸음이 들려왔다.
"푸훗. 저기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계신가요? 치프씨? 오늘도 그런 괴이한
갑옷차림을 하고서."
"빨래중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메이드 소녀 시에스타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려준 뒤
치프는 한숨을 내쉬며 오늘 아침의 일을 설명하였다.
시에스타는 치프의 땡떙이 앞치마와 빨랫감들, 그리고 바이져에 자신의 미소지은
얼굴을 담은 묠니르 차림의 치프를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푸후훗. 치프씨. 저기...웃으려는게 아니고 치프씨가...너무 귀여워서..."
"........."
귀엽다라. 치프는 전시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없었다.
이 곳 트리스테인 같이 평화로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듣는 귀엽다는 소리.
치프는 헬멧 너머로 보이는 시에스타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볼멘 소리를 하며 툴툴거리던 귀여운 루이즈와는 다른
성숙하고 아리따운 처자. 갑자기 이곳 세계의 평균 결혼 연령이 궁금해진
치프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칭찬을 하였다.
"그 미소와 얼굴. 참 아름답다."
"어머."
치프의 칭찬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시에스타.
그런 시에스타의 얼굴을 바이져에 비춘 치프는 혹시 자신이 무례한 질문을
한 것은 아닌지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며.
"아아. 그, 나쁜 의도가 아니라...그냥 시에스타양과 결혼하는 사람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후훗 칭찬 고마워요."
"아아. 천만에....."
시에스타는 치프에게 고개를 숙인 뒤 자신에게 쌓인 빨랫감을 처리하려는 찰나.
치프가 해놓은 빨랫감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세상에! 빨래방망이로 어떻게 빨래를 두들기면 이렇게 되는거야?
시에스타의 경악하는 모습에 치프는 어리둥절하였다.
"왜 그러는가? 빨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비단 재질의 옷감은 부드러워서 그런 방망이로 치면 안돼요! 세상에!! 이걸 좀
보세요. 루이즈 양의 속옷들이 전부 구멍이 뚫렸잖아요!"
"미, 미안하다. 손빨래는 처음이라서."
UNSC에 있을 때의 빨래는 매우 간단했다. 전자동 세탁기에 담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중세 생활을 살고 있는 UNSC에서 만난 그런 전자동 기계가 없는 곳에서
사는 그는 손빨래의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택에 그의 결과물들은 아주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시에스타는 그 결과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제가 도와드릴께요."
"아."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바느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치프는
한숨을 내쉬며 시에스타를 조용히 따라갔다.
시에스타는 두사람이 앉기 좋은 바위를 하나 골라 빨랫감들을 옆에 조심스레 놓은
뒤. 치프가 남긴 처참한 결과물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골라내기 시작했다.
"비단 재질은 따로, 천재질은 따로, 그리고 떄가 잘 묻는 옷들은 말릴 때는
이런 식으로 말려야 해요."
"아아."
"그리고 요건 이렇게, 조건 조렇게."
치프는 시에스타의 빨래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어떻게 해야 완벽한 빨래가
되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시에스타를 도와 바느질 수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강화복 '묠니르'를 입은채 일을 하면 조금 불편하단 사실을 깨달아
그 옷을 벗기로 하였다.
"강화복을 좀 벗기로 하겠다. 이 갑옷 차림으론 일을 하기가 너무 불편해."
"네."
헬멧과 검은색 장갑을 훌훌 던진 치프는 시에스타가 넘겨주는 빨랫감들을 어설픈
솜씨로 말리거나, 빨았다. 시에스타가 설명해준 대로 일을 전부 처리한 치프는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의아한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시에스타는 치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자신을 돌아본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런가? 혹시 내가 빨래를 잘 못 한 것인가?"
"아, 아뇨!"
시에스타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볼을 새빨갛게 붉힌 채 손사래를 저었다.
'슬픈 얼굴이야.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으면 저런 얼굴이 되는걸까?'
시에스타는 의문을 담은 채 바느질을 하였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생채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 그리고 음울한
눈을 한 치프의 맨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
그런 시에스타의 의문을 알지 못하는 치프는 맑은 두 눈빛을 껌뻑이며
의아한 얼굴을 거둔 채 시에스타 옆으로 앉아
자신이 찢어버린 빨래들을 수선하는 것을 도왔다.
"저기."
"??"
치프씨는 어디서 왔나요? 조금 뜸을 들인 시에스타는 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다. 치프는 조용히 침묵을 지킨 채 자신의 신상명세를 공개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전쟁도 끝났을테고, 여기서 자신의 신상명세를 알고 있다
하여도 써먹을 방법이 없을테니 그냥 질문에 답을 해주기로 했다.
"에리다누스란 곳에서 왔다."
"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역시. 이 세계는 아직 우주세기에 들어서지는 못했는지 코버넌트에게도, 인류에게
잘 알려진 자신의 고향 식민지 행성을 알려주어도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멋진 곳인가요?"
".....멋지다라."
전쟁이 끝난 그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전쟁기간 동안에 코버넌트에 의해
아무것도 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전쟁이 끝난 후 그곳에 다시 사람들이 거주하며 새로운 인류의 식민지를
활기차게 세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느 쪽이든 치프는 자신의 고향행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하였다. 아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만 밝히기로 했다.
"이곳 처럼 푸른 하늘을 가진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군요."
"그렇지."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시에스타는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어 고맙다고 하였고,
치프는 빨래 수선을 해서 고맙다고 말 하였다.
하지만 그냥 헤어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치프는 묠니르 상갑판 속에 총탄을
숨기는 탄약고에서 탄약 대신 무언가를 대신 꺼냈다.
아름다운 보라빛 액체가 들어있는 조그만 유리약병. 향수였다.
"이것을 가져가라. 선물이다."
"어머. 이렇게 귀한 것을..괘, 괜찮아요."
"내가 살던 곳에선 귀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동료가 지니고 있던 것이지.
원래 이 부위는 이런 것을 집어넣는 곳이 아닌데. 특이하게 그 친구는 이것을
집어넣고 있었지."
왜일까? 치프는 어렸을 적 그와 함께 언덕에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지켜보던
자신보다 키가 더 큰 소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켈리라고 하는 자신의 소녀 동기였다.
"하지만 이건 치프씨의 친구분의...."
"그 친구는 지금 이 세상에 있지 않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켈리는 UNSC 공식 문서상에 행방불명되어 있었다.
물론 그 행방불명은 명목일뿐. 죽거나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퇴역처리에 관한 언급 따윈 없었으니 그녀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치프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채 시에스타를 바라보았다.
시에스타는 그가 슬픈 얼굴을 하자 똑같이 슬픈 얼굴을 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나 봐요?"
"어렸을 때 자주 밤하늘을 보던 친구다."
"이런 소중한 것.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친구도 네가 받는 것을 바랄 것이다. 영광으로 여길테지."
시에스타는 환하게 웃은 뒤 땅에 떨어진 장갑과 묠니르 헬멧을 치프에게
주었고 치프는 갈색 눈빛에 쓸쓸함을 담은 채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었다.
자신이나 켈리나 이제 스파르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그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스파르탄들은 전쟁을 위해 탄생한 전쟁병기에 불과하였다.
그것을 떠올린 치프는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아 저기. 치프씨!~"
"?"
저멀리 뛰어가던 시에스타는 바위 옆에 멍하니 걸터 앉아 생각에 잠긴
치프를 꺠웠다. 그는 두 손을 모아 고함을 치듯 크게 외쳤다.
"치프씨도 참 잘생겼어요. 여자들이 다 반하게 생겼는데요? 투구를 벗고 사세요!"
"......."
전에 코타나가 하던 말이군. 얼굴이 잘생겼는데 왜 항상 헬멧을 쓰고 있냐고.
그러고 보니 켈리와의 마지막 작전 수행 때도 켈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께요."
"....고맙다."
치프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메이드를 보며 짧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뒤 무료하고 조용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떼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
*
*
"치프.."
치프는 아직 학원 구조를 잘 알지 못하여 저 먼 탑이 기숙사. 그것도 루이즈의
방 창문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창문 너머로 분홍색
머리칼을 흩날리는 루이즈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런이런. 치프가 빨랫감 대신 여자를 낚았네요?]
코타나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루이즈는 볼멘 소리를 하며 툴툴 거렸다.
자아가 담긴 마법 물품 주제에 사람 속을 박박 긁으냐면서.
하지만 코타나는 자신은 마법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였다.
[그나저나 치프...저 소녀가 맘에 든 모양이네요.]
강화복 가슴 파츠 부분에 저런 것이 담겨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한 코타나는
계속 뭐라뭐라 구시렁거렸고 루이즈는 얼굴을 하얀 베게에 파묻은 뒤 멍하니
드러누워 있었다. 루이즈의 가슴속엔 불안감과 함께 의문심이 달려 있었다.
'왜....'
왜 나한테가 아니라 저 메이드한테 선물을?
'왜....'
루이즈는 의구심을 가슴 속 깊이 파묻었다. 루이즈는 치프가
다른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져 주먹으로 침대를 탕탕
치며 화를 냈다.
[후훗. 우리 아가씨께서 화가 나신 모양이네? 걱정말아요 루이즈. 치프는 원래
순진해서...]
"시끄러."
-퍽.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하마터면 내 칩이 떨어질 뻔했잖아요!]
푸른색의 아름다운 여성이 루이즈 앞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루이즈는 시끄럽다며 베게로 코타나의 홀로그램을 친 뒤 그대로 침대에
드러 누웠다.
'치프.'
들어오면 가만 안 둘꺼다! 여자의 치기 어린 분노는 코타나 대신 화를 매우
잘 풀 대상을 원하였고 때마침.
-철컥. 쿵.
"루이즈. 빨래는 다 빨았다. 약간 문제가 생겨서 시에스타양이 수선을..."
-퍽~
".?"
갑자기 날아온 베게에 치프는 얼굴을 들이 맞았다. 플라스마 탄환도 버텨내는
강화복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적잖이 당황한 치프.
그런 치프에게 루이즈는 버럭 성을 내질렀다. 치프는 왜 루이즈가 히스테리를
부리는지 알지 못하였다.
"왜 그러는가? 혹시 마법학원에서 오늘도 마법을 제대로 부리지 못했다고. 제로라고 누군가 불렀는가?"
"시끄러! 난 제로의 루이즈 따위가 아냐아아앗!! 당장 나가!! 가서 청소나 해!!!"
"......"
치프는 한숨을 내쉰채 코타나를 향해 도대체 얘가 왜 이러나며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고 코타나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채 '알아서 하세요'라는 식으로 치프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빗자루를 들고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가 방을 떠난 뒤 여전히 씩씩 거리며 분을 풀지 못한 루이즈는 다시 한번
주먹으로 침대를 두들긴 뒤.
"저런 가슴만 큰 평민 여자애따위가 뭐가 좋냐고!!"
[에휴~우리 아가씨 화가 단단히 나셨구만.]
"시끄러!!"
오늘 저녁은 없어! 치프!!
마자 치프가 생전 처음해보는 모래사장 에서 총탄 줍기 식의
황당한 지령들을 강요하였다. 항명은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말이다.
치프는 자신은 사역마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런 지령은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서포터이자 이 세계로 함께 넘어온 유일한 동료 AI 코타나의
설명에 그는 떠넘겨진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만 했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구원의 손길이 내려오기 전까진 여기 있어야 해요 치프.
그리고 여성의 부탁은 무엇이든지 들어주는게 남자의 도리에요. 알겠죠 치프?]
....같은 여성이라고 편을 드는 걸까?
코타나는 약간 감정이 든 웃음을 지으며 치프를 설득하였고 치프는 하는 수 없이
묠니르의 허리부분에 분홍 떙땡이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산더미만한 빨랫감
들을 어깨위에 올려놓은 채 빨래터로 가야만 했다.
결국 억지로 빨랫감들을 방망이로 탁탁 두드리고 손으로 조물조물 빠는
치프의 모습은 지나가던 구경꾼들의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푸하하. 루이즈의 사역마 좀 봐."
"하하하~갑옷차림에 앞치마라. 정말 보면 볼수록 가관인데."
"푸후훗. 배가...배가 아파와."
"......."
치프는 구경꾼 소년, 소녀들의 중얼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손을 하얀색
속옷으로 가져다 댔다. 하긴. 치프 본인이 생각해도 묠니르mk6 전투복 앞에
앞치마를 두르고 빨래를 하는 행위는 굉장히 코믹적으로 들렸다.
아마 생존한 스파르탄 동기들 중 하나가 자신을 보면 뭐라고 할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이런 조용한 시골마을[여기 기준으론 대도시지만]
에서 앞치마를 앞에 걸고 빨래나 하고 있다고 닦달할 것만 같았다.
치프는 죽은 동기들을 떠올리고 잠시 빨래를 멈춘 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렸을 때 자신보다 주먹 하나는 더 컸던 소녀 켈리와 함께 보아온 에리다누스
행성의 푸른 하늘과 비슷하였다.
'지금 나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코타나 말로는 전쟁은 헤일로 파괴 이후 전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고
하였다. 코타나 말대로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10여년 동안 동면에 든 이후로 이미 끝나고 수색대를 보내 자신을 찾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 치프의 귀에 발걸음이 들려왔다.
"푸훗. 저기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계신가요? 치프씨? 오늘도 그런 괴이한
갑옷차림을 하고서."
"빨래중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메이드 소녀 시에스타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려준 뒤
치프는 한숨을 내쉬며 오늘 아침의 일을 설명하였다.
시에스타는 치프의 땡떙이 앞치마와 빨랫감들, 그리고 바이져에 자신의 미소지은
얼굴을 담은 묠니르 차림의 치프를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푸후훗. 치프씨. 저기...웃으려는게 아니고 치프씨가...너무 귀여워서..."
"........."
귀엽다라. 치프는 전시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없었다.
이 곳 트리스테인 같이 평화로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듣는 귀엽다는 소리.
치프는 헬멧 너머로 보이는 시에스타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볼멘 소리를 하며 툴툴거리던 귀여운 루이즈와는 다른
성숙하고 아리따운 처자. 갑자기 이곳 세계의 평균 결혼 연령이 궁금해진
치프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칭찬을 하였다.
"그 미소와 얼굴. 참 아름답다."
"어머."
치프의 칭찬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시에스타.
그런 시에스타의 얼굴을 바이져에 비춘 치프는 혹시 자신이 무례한 질문을
한 것은 아닌지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며.
"아아. 그, 나쁜 의도가 아니라...그냥 시에스타양과 결혼하는 사람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후훗 칭찬 고마워요."
"아아. 천만에....."
시에스타는 치프에게 고개를 숙인 뒤 자신에게 쌓인 빨랫감을 처리하려는 찰나.
치프가 해놓은 빨랫감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세상에! 빨래방망이로 어떻게 빨래를 두들기면 이렇게 되는거야?
시에스타의 경악하는 모습에 치프는 어리둥절하였다.
"왜 그러는가? 빨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비단 재질의 옷감은 부드러워서 그런 방망이로 치면 안돼요! 세상에!! 이걸 좀
보세요. 루이즈 양의 속옷들이 전부 구멍이 뚫렸잖아요!"
"미, 미안하다. 손빨래는 처음이라서."
UNSC에 있을 때의 빨래는 매우 간단했다. 전자동 세탁기에 담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중세 생활을 살고 있는 UNSC에서 만난 그런 전자동 기계가 없는 곳에서
사는 그는 손빨래의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택에 그의 결과물들은 아주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시에스타는 그 결과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제가 도와드릴께요."
"아."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바느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치프는
한숨을 내쉬며 시에스타를 조용히 따라갔다.
시에스타는 두사람이 앉기 좋은 바위를 하나 골라 빨랫감들을 옆에 조심스레 놓은
뒤. 치프가 남긴 처참한 결과물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골라내기 시작했다.
"비단 재질은 따로, 천재질은 따로, 그리고 떄가 잘 묻는 옷들은 말릴 때는
이런 식으로 말려야 해요."
"아아."
"그리고 요건 이렇게, 조건 조렇게."
치프는 시에스타의 빨래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어떻게 해야 완벽한 빨래가
되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시에스타를 도와 바느질 수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강화복 '묠니르'를 입은채 일을 하면 조금 불편하단 사실을 깨달아
그 옷을 벗기로 하였다.
"강화복을 좀 벗기로 하겠다. 이 갑옷 차림으론 일을 하기가 너무 불편해."
"네."
헬멧과 검은색 장갑을 훌훌 던진 치프는 시에스타가 넘겨주는 빨랫감들을 어설픈
솜씨로 말리거나, 빨았다. 시에스타가 설명해준 대로 일을 전부 처리한 치프는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의아한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시에스타는 치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자신을 돌아본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런가? 혹시 내가 빨래를 잘 못 한 것인가?"
"아, 아뇨!"
시에스타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볼을 새빨갛게 붉힌 채 손사래를 저었다.
'슬픈 얼굴이야.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으면 저런 얼굴이 되는걸까?'
시에스타는 의문을 담은 채 바느질을 하였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생채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 그리고 음울한
눈을 한 치프의 맨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
그런 시에스타의 의문을 알지 못하는 치프는 맑은 두 눈빛을 껌뻑이며
의아한 얼굴을 거둔 채 시에스타 옆으로 앉아
자신이 찢어버린 빨래들을 수선하는 것을 도왔다.
"저기."
"??"
치프씨는 어디서 왔나요? 조금 뜸을 들인 시에스타는 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다. 치프는 조용히 침묵을 지킨 채 자신의 신상명세를 공개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전쟁도 끝났을테고, 여기서 자신의 신상명세를 알고 있다
하여도 써먹을 방법이 없을테니 그냥 질문에 답을 해주기로 했다.
"에리다누스란 곳에서 왔다."
"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역시. 이 세계는 아직 우주세기에 들어서지는 못했는지 코버넌트에게도, 인류에게
잘 알려진 자신의 고향 식민지 행성을 알려주어도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멋진 곳인가요?"
".....멋지다라."
전쟁이 끝난 그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전쟁기간 동안에 코버넌트에 의해
아무것도 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전쟁이 끝난 후 그곳에 다시 사람들이 거주하며 새로운 인류의 식민지를
활기차게 세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느 쪽이든 치프는 자신의 고향행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하였다. 아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만 밝히기로 했다.
"이곳 처럼 푸른 하늘을 가진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군요."
"그렇지."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시에스타는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어 고맙다고 하였고,
치프는 빨래 수선을 해서 고맙다고 말 하였다.
하지만 그냥 헤어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치프는 묠니르 상갑판 속에 총탄을
숨기는 탄약고에서 탄약 대신 무언가를 대신 꺼냈다.
아름다운 보라빛 액체가 들어있는 조그만 유리약병. 향수였다.
"이것을 가져가라. 선물이다."
"어머. 이렇게 귀한 것을..괘, 괜찮아요."
"내가 살던 곳에선 귀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동료가 지니고 있던 것이지.
원래 이 부위는 이런 것을 집어넣는 곳이 아닌데. 특이하게 그 친구는 이것을
집어넣고 있었지."
왜일까? 치프는 어렸을 적 그와 함께 언덕에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지켜보던
자신보다 키가 더 큰 소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켈리라고 하는 자신의 소녀 동기였다.
"하지만 이건 치프씨의 친구분의...."
"그 친구는 지금 이 세상에 있지 않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켈리는 UNSC 공식 문서상에 행방불명되어 있었다.
물론 그 행방불명은 명목일뿐. 죽거나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퇴역처리에 관한 언급 따윈 없었으니 그녀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치프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채 시에스타를 바라보았다.
시에스타는 그가 슬픈 얼굴을 하자 똑같이 슬픈 얼굴을 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나 봐요?"
"어렸을 때 자주 밤하늘을 보던 친구다."
"이런 소중한 것.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친구도 네가 받는 것을 바랄 것이다. 영광으로 여길테지."
시에스타는 환하게 웃은 뒤 땅에 떨어진 장갑과 묠니르 헬멧을 치프에게
주었고 치프는 갈색 눈빛에 쓸쓸함을 담은 채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었다.
자신이나 켈리나 이제 스파르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그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스파르탄들은 전쟁을 위해 탄생한 전쟁병기에 불과하였다.
그것을 떠올린 치프는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아 저기. 치프씨!~"
"?"
저멀리 뛰어가던 시에스타는 바위 옆에 멍하니 걸터 앉아 생각에 잠긴
치프를 꺠웠다. 그는 두 손을 모아 고함을 치듯 크게 외쳤다.
"치프씨도 참 잘생겼어요. 여자들이 다 반하게 생겼는데요? 투구를 벗고 사세요!"
"......."
전에 코타나가 하던 말이군. 얼굴이 잘생겼는데 왜 항상 헬멧을 쓰고 있냐고.
그러고 보니 켈리와의 마지막 작전 수행 때도 켈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께요."
"....고맙다."
치프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메이드를 보며 짧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뒤 무료하고 조용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떼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
*
*
"치프.."
치프는 아직 학원 구조를 잘 알지 못하여 저 먼 탑이 기숙사. 그것도 루이즈의
방 창문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창문 너머로 분홍색
머리칼을 흩날리는 루이즈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런이런. 치프가 빨랫감 대신 여자를 낚았네요?]
코타나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루이즈는 볼멘 소리를 하며 툴툴 거렸다.
자아가 담긴 마법 물품 주제에 사람 속을 박박 긁으냐면서.
하지만 코타나는 자신은 마법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였다.
[그나저나 치프...저 소녀가 맘에 든 모양이네요.]
강화복 가슴 파츠 부분에 저런 것이 담겨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한 코타나는
계속 뭐라뭐라 구시렁거렸고 루이즈는 얼굴을 하얀 베게에 파묻은 뒤 멍하니
드러누워 있었다. 루이즈의 가슴속엔 불안감과 함께 의문심이 달려 있었다.
'왜....'
왜 나한테가 아니라 저 메이드한테 선물을?
'왜....'
루이즈는 의구심을 가슴 속 깊이 파묻었다. 루이즈는 치프가
다른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져 주먹으로 침대를 탕탕
치며 화를 냈다.
[후훗. 우리 아가씨께서 화가 나신 모양이네? 걱정말아요 루이즈. 치프는 원래
순진해서...]
"시끄러."
-퍽.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하마터면 내 칩이 떨어질 뻔했잖아요!]
푸른색의 아름다운 여성이 루이즈 앞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루이즈는 시끄럽다며 베게로 코타나의 홀로그램을 친 뒤 그대로 침대에
드러 누웠다.
'치프.'
들어오면 가만 안 둘꺼다! 여자의 치기 어린 분노는 코타나 대신 화를 매우
잘 풀 대상을 원하였고 때마침.
-철컥. 쿵.
"루이즈. 빨래는 다 빨았다. 약간 문제가 생겨서 시에스타양이 수선을..."
-퍽~
".?"
갑자기 날아온 베게에 치프는 얼굴을 들이 맞았다. 플라스마 탄환도 버텨내는
강화복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적잖이 당황한 치프.
그런 치프에게 루이즈는 버럭 성을 내질렀다. 치프는 왜 루이즈가 히스테리를
부리는지 알지 못하였다.
"왜 그러는가? 혹시 마법학원에서 오늘도 마법을 제대로 부리지 못했다고. 제로라고 누군가 불렀는가?"
"시끄러! 난 제로의 루이즈 따위가 아냐아아앗!! 당장 나가!! 가서 청소나 해!!!"
"......"
치프는 한숨을 내쉰채 코타나를 향해 도대체 얘가 왜 이러나며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고 코타나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채 '알아서 하세요'라는 식으로 치프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빗자루를 들고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가 방을 떠난 뒤 여전히 씩씩 거리며 분을 풀지 못한 루이즈는 다시 한번
주먹으로 침대를 두들긴 뒤.
"저런 가슴만 큰 평민 여자애따위가 뭐가 좋냐고!!"
[에휴~우리 아가씨 화가 단단히 나셨구만.]
"시끄러!!"
오늘 저녁은 없어! 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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