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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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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1화 - 맹격! 로스트 넘버 코만도 -







가이버 포획 임무를 계속하겠다는 린드의 선언에 베르단디들은 크게 놀랐다. 그 말은 결국 케이를 죽이겠다
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이버에게서 컨트롤 메탈을 적출 한다는 것은 가이버의 죽음을 의미하
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반면 다른 왈큐레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린드는
명령을 어길 인물이 아니었다.

"린드! 어째서....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대체..!"

베르단디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였지만 린드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린드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울드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 생애의 벗이니 뭐니 전부가 다 거짓말이란 말인가. 벗이라면 절대로 그런 짓은
할 수가 없을 터였다. 주변에 있던 왈큐레들이 다시 추적을 종용하였다.

"린드! 그렇다면 지금 즉시 추적을..."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너희들은 모두 천계로 돌아가라."

린드의 말에 왈큐레들이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아홉 명이 달려들어도 힘겨운 가이버를 상대로 혼자 싸
우겠다는 것인가. '싸우는 날개'라고 까지 불리며 왈큐레들중 톱클래스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린드의 기
량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왈큐레들이 모두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
었다.

"확실히 천계의 명령은 가이버 유니트의 포획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두 다 함께 힘을 합쳐야..."

"그러나, 난 케이의 목숨을 뺏으라는 명령은 받은 적이 없다!"

그 말에 왈큐레들은 물론 베르단디들도 놀랐다. 두 말은 서로 모순이 되었다. 컨트롤 메탈을 노획하려면 그
남자 -케이-와 싸워야 하고 부득이하게 생명을 뺏을 수밖에 없다. 린드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난 여기 머물면서 케이의 생명을 지키면서도 컨트롤 메탈을 적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그건! 명령 위반입니다!"

"어디가?"

린드가 받은 명령은 가이버 유니트의 포획이었다. 그러나 식장자인 케이를 죽이라는 명령은 없었다. 즉 린
드는 하달된 명령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컨트롤 메탈만 가
져가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천계는 전투부의 특성상 그들에게는 높은 권한을 부여해서 현장에서 그들이 임
무수행을 위해 융통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었다. 즉, 싸우고 안 싸우고는 린드의 자
유였던 것이다. 린드의 대답에 왈큐레들은 할 말을 잃었다. 따지고 보면 반박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난 여기서 이들의 경호도 같이 수행할 것이다. 너희들은 즉시 돌아가라.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 말에 왈큐레들이 발끈했지만 이번 임무의 지휘권은 린드에게 있었으므로 그들은 군말 없이 돌아가기로
하였다. 크로노스라는 정체 불명의 적이 이들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숫자가 많은 편이 좋겠지만 린드는
뜻이 맞지 않은 자들은 아무리 많아봐야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렇다고 설득하는 건 불가능했으므
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왈큐레들이 돌아가기 위해 법술을 외우며 게이트를 열었다.

잠시 후 왈큐레들은 린드를 남겨두고 모두 천계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린드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
보는 베르단디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그녀들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깜짝 놀란 베
르단디가 린드를 말리기 위해 뛰어왔다.

"린드! 대체 왜 이러세요?"

"너희들에게 나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려는 거다."

베르단디가 일어서라고 말해도 린드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로 꼼짝도 안 했다. 그 상태로 린드는 계
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몰랐다고는 하나 난 케이를 죽일 뻔했다. 그리고 너희들에게도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사죄하는 뜻에서
난 너희들을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지켜낼 것을 맹세한다."

베르단디 뿐만이 아니라 울드나 스쿨드도 갑작스러운 린드의 행동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긍지 높은 천계의
여전사 왈큐레가 무릎을 꿇는 대상은 오직 주신(主神) 뿐이다. 그런 그녀가 고위 신이라곤 하지만 주신이
아닌 자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의 마음은 잘 알겠어요, 린드.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

"베르단디..."

"케이씨를 도와주세요. 케이씨는 지금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그
짐을 나눠지어야 해요. 그러니까 우릴 도와주세요."

베르단디의 미소, 그녀의 미소는 어째서 이렇게 나에게 용기를 주는 걸까. 린드는 굳게 결심하였다. 저 미소
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베르단디의 검이 되리라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울드와 스쿨드도 미소를 짖고 있었다. 특히 울드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린드에
게 가졌던 섭섭한 감정이 싹 가셨다. 천계는 이제 믿을 수 없게 됐지만 최소한 린드만큼은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 확실했다.

"자, 이제 케이를 찾아보자. 케이에게도 사과를 해야 하고...."

그 말에 다들 다시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케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베르단디는 눈을 감은 채 케이
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원래 보통 인간인 케이의 기를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
니었다. 그 때 스쿨드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아! 언니. 어쩌면...."

"왜 그러니? 짚이는 데라도 있니?"

"혹시 거기 갔을지도 몰라!"



******************************************




케이는 아까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크로노스, 천계, 마계까지 가이버를 노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도
저히 베르단디를 무사히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특히나 믿었던 천계마저 가이버를 노린다는 것은 큰 충격이
었다.

베르단디라면 아마도 끝까지 자신의 편에 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베르단디는 천계로부터 처벌을 받
을 것이다. 사유야 어쨌든 천계에 반기를 든 셈이 되니까. 면허취소? 아니 그 보다 더 큰 처벌? 어찌됐든
그것은 그녀에게서 여신이라는 날개를 꺾는 셈이 되었다. 이제까지 여신으로서 살아온 그녀에게 갑자기 모
든 힘을 다 뺏어버리고 인간처럼 살라고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케이는 자기 때문에 베르단디가
그런 처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스쿨드의 공간 더블러 소동 당시 베르단디는 면허 갱신을 하는 것을 깜빡 잊는 바람에 일주일정도 힘을 잃
은 적이 있었다. 단지 일주일 정도뿐이었지만 힘이 사라졌다는 것에 많이 괴로워하던 베르단디였다. 그리고
그 때 그녀는 케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역시 전 여신으로 남고 싶어요.'

그 때야 그냥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긴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말이었다. 만약 이런 상황
이 오면, 즉 힘을 잃는 것을 감수하고 케이와 함께 있는 것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여신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므로 비약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최소한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는 있는 말이었다.

케이는 결심을 굳혔다.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 말을 꼭 해
야 했다. 크로노스와 싸워 나가는 건 자기 혼자면 족했다. 케이의 눈에서 조용히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
기 시작했다.

"케이씨!!"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베르단디였다. 어떻게 여길 알았는지 베르단디가 빗자
루를 타고 날아왔다. 아니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울드, 스쿨드에 린드까지 같이 왔다. 그러나 린드를 제외
한 다른 왈큐레들은 보이질 않았다. 혹시 주변에 매복하고 있는 걸까? 케이는 서둘러 눈을 비비며 눈물을
닦았다.

"베르단디...."

"무사하셨군요! 다행이에요!"

베르단디가 달려오더니 케이를 꼭 끌어안았다. 베르단디는 케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안도하였다.

"케이씨, 린드가 같이 싸워준다고 하셨어요. 이제 괜찮아요."

"...."

"케이씨?"

케이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그 모습을 본 베르단디는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스러워 하였다. 케이는 간신
히 입을 열었다. 절대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말, 그 말을 지금 해야 했다. 케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베르단디...."

"네."

"상황은 알고 있겠지...? 이제 천계도 날 노리고 있어. 정확히는 가이버지만."

"네. 그렇지만 린드도 도와주신다고 하고..."

케이는 고개를 저었다. 린드까지 천계에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할 수는 없었다. 케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난 너희들이 천계에서 처벌을 받는 걸 원치 않아. 그건 너에게 여신이란 날개를 꺾는 거니까..."

"케이씨, 저는..."

"그러니까...베르단디. 이제......"

케이는 목이 매였다. 더 말을 이어나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해야 했다. 케이는 심호흡을 한번하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베르단디 역시 케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눈치챘다. 그녀의 눈동자가 크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우리 사이의....계약을..."

"......"

"이제 그...흡!!"

그 때 울드가 케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갑작스런 울드의 행동에 케이는 깜짝 놀랐다. 케이가 무슨 짓이
냐며 말하려 했지만 울드는 입을 막은 손을 치우지 않았다. 울드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기까지. 더 말하지 마."

"읍! 읍읍!!"

"너, 분명히 베르단디를 지켜주겠다고 말했었지? 그런데 지금 너의 이 행동은 대체 뭐야?"

"......"

"베르단디를 지켜 줄 자신이 없는 거야? 아니면 귀찮은 거야? 그래서 도망치려는 거야?"

"아냐!"

순간 케이는 억지로 울드의 손을 뿌리치고는 소리쳤다. 울드는 계속해서 케이를 다그쳤다.

"그럼 대체 이건 뭐야?"

"그..그건! 이대로는 베르단디가 너무 위험해 져서..."

"확실히, 천계로 돌아가면 베르단디는 안전해."

울드의 말에 베르단디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지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두 손은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울드는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저 애가 행복해 할 것 같애? 천만에 말씀. 내가 말했었지? 저 애는 너만 바라보고 있다
고. 그런 애가 너랑 떨어져서 홀로 지낸다면 베르단디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아."

"하..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남자라면! 온 세상이 적이 되더라도 너만은 지켜주겠다고 오기라도 부려야 하는 거 아냐?"

케이는 더 할말이 없었다. 어느새 잊고 있었다. 베르단디를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겠다고 맹세했으면서 어
느새 그걸 망각하고 그저 베르단디를 돌려보내면 그녀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만 집착했다. 그랬다간 평생
을 후회하며 슬퍼하면서 살 것이란 걸 알면서도... 정말로 울드의 말대로 난 그녀를 지킨다는 것이 힘겨워서
그랬던 걸까?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베르단디."

울드는 베르단디에게 바짝 다가섰다. 베르단디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없이 서 있었다. 울드는 그
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안았다.

"너도 그래.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고. 너, 케이가 이대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그냥 갈 셈이었어?"

"....."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베르단디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울음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 듯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케...케이씨. 저는 케이씨와....떨어지기...싫어요."

"베르단디..."

"그러니까...그러니까 제발 저더러 가라는 말은....흑.."

고개를 숙인 베르단디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케이는 더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케이가 베
르단디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내가 그만 너를...."

"케이씨!!"

베르단디는 케이의 품에서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또 울리고 말았구나. 지켜 주겠다고, 다시는
울리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도 결국 나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또 한번 상처를 주고 말았구나.... 케이는
자신의 경솔함이 부끄러웠다. 베르단디의 마음을 무시한 채 자기 편한 데로 생각했었다. 그것이 또 한번 이
렇게 베르단디를 괴롭게 하였다.

"절대로! 절대로 다신 그런 소리 안 할께. 베르단디, 쭉 내 곁에 있어 줘...."

"흐흑...네, 케이씨..."

베르단디는 하염없이 케이의 품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흘리는 눈물은 안도감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울드와 린드는 잘
됐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스쿨드만은 좀 복잡한 심정인 듯 해 보였다. 울드는 그런 스쿨드의 마
음을 알겠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번엔 폭탄 던지지 마."

"안 던져! 안 던진다고...."

스쿨드는 언니를 케이에게 뺏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좋아하는 언니의 행복을 비는 마음
도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언니에게 진정으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은 케이 뿐이라는 사실 역
시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 사실이 스쿨드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쿨드는 이내 미소를 지
었다. 역시 언니는 케이랑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




케이는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옷을 다 챙겨 입은 케이는 바이크를 꺼내기 위해 차고로 가
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나간 케이는 마당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봤다. 아침 수련중인 린드였다. 그
녀는 배틀액스를 휘두르며 수행에 몰두하였다. 케이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지나가려 하였다. 그 때
린드가 케이의 존재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 케이인가."

"린드, 좋은 아침이야."

그리고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어제 왈큐레들과의 전투 때문에 케이는 린드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베르단디가 말리지 않았다면 메가 스매셔로 모두 다 죽일 뻔했으니까 말이다. 케이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은 강한 적개심에 휩싸인 채로 마치 조아노이드와
싸울 때처럼 왈큐레들을 공격했던 것일까.

"외출은 위험하다. 지금은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해."

"응? 아, 오늘은 나가봐야 해. 얘기는 하고 와야 하니까...."

케이는 다시 차고로 가려 하였다.

"난 임무를 포기하겠다 한 적이 없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난 너한테서 컨트롤 메탈을 안전하게 적출 하
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미안해, 린드. 난 가이버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뭐?"

"지금의 내겐 유일한 힘이야. 베르단디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힘..."

가이버를 식장 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그러나 지금 케이는 가이버를 가지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베르단디의 위기 때마다 무력하기만 하던 자신에게 강한 힘을 줬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
금은 자신 때문에 베르단디까지 크로노스와의 싸움에 말려들게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더욱 가이
버의 힘이 필요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베르단디를 지켜줘야 할 때니까.

"그래서 난 가이버를 포기할 수 없어. 너에겐 임무가 있다는 걸 알지만....미안해."

"그런가.... 알았다. 그러면 크로노스를 쳐부순다. 그럼 그 때 가서는 가이버가 필요 없겠지. 그리고 그 가이
버 III 라는 사람역시 그때가 되면 가이버가 필요 없겠지."

"아..알고 있는 거야? 가이버 III를?"

"어제 스쿨드에게서 얘기를 들었다. 네 것이 안 된다면 그 사람 것이라도 가지고 간다."

거기까지 말한 린드는 다시 수행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케이는 수행을 하는 린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차고로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가이버 III, 그 사람은 어쩌다가 가이버가 된 것일까. 그리고 그는 지금 어디서 뭘 하
고 있을까. 만약 크로노스가 사라지면 그 때는 그가 과연 유니트를 순순히 내놓을까....



******************************************




케이는 출근해서 일하는 동안 내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크로노스의 습격이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막상 지로에게 그만둔다는 말을 하려니 왠지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 동안 같이 일하면서 정도 많
이 들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지만 그래도 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따라 수리 의뢰가 들어
오는 일이 많아서 솔직히 타이밍 잡기도 힘들었다. 케이는 퇴근할 때 꼭 말해야 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 뭐라고 말해야 지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케이는 그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일
하는 도중 자꾸 실수가 나왔고 지로에게서 핀잔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베르단디는 일하는 도중 가끔씩 절로 전화를 걸어 식구들의 안부를 확인하였다. 만약 적들이 쳐들어 온다해
도 린드도 있으니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터였지만 그래도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베르단디였
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봤던 룬 문자점의 점꽤가 '재앙'이 나왔던 것이다. 그 이후
로 베르단디는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실례합니다."

그 때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을 본 케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랍게도 도대체 여길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자기의 아버지, 케이마 씨가 온 것이었다!

"케...케이마씨! 여길 어떻게!!"

"표정이 왜 그러냐? 마치 괴물이라도 본 듯 하구나."

케이뿐만이 아니라 베르단디 역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시기가 너무 안 좋은 때에 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
다. 지금 케이와 함께 있으면 크로노스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케이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카노씨 부탁으로 100세트 한정 전통 과자 스페셜 세트를 사러 왔는데 판매일을 잘못 알았지 뭐냐. 오늘
인줄 알았는데 내일 오후더구나. 그래서 오늘밤 너네 집에 머물고 내일 사서 돌아가려고 이렇게 왔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북해도 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인가. 하긴 전에도 이런 일 때문에 한번
왔다 간 적이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과자 때문에 생업까지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뭐, 그것도 있지만 내 바이크 부품도 기왕 온 김에 사러왔지. 너도 알다시피 내 것이 좀 오래 됬잖냐. 부품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그런 건 통신판매를 이용하시면 되잖아요! 굳이 이런 데까지 오실 필요가..."

"부품 같은 건 자기가 직접 눈으로 상태를 보고 사와야 한다. 넌 엔지니어란 녀석이 그런 것도 모르냐."

케이마의 바이크는 이미 옛날에 단종된 모델인지라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부품들은 대부분 중고밖에 없었
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케이마는 자기 바이크의 부품만큼은 자기가 직접 눈으로 꼼꼼히 상태를 살핀 후 구
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부탁 받은 과자의 경우에는 통신판매가 되지 않는 품목이었다. (...)

"아무튼 오늘은 너희 집에서..."

"그...그건 좀 곤란해요! 요즘 집 주변이 좀 뒤숭숭해서..."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기에 케이는 되는 데로 거짓말을 만드는 수밖엔 없었다. 그러나 원래 케이는 거짓
말 같이 연기력이 필요한 일에는 극히 서툴었고 되는 데로 생각해낸 말에 설득력이 담겨있을리는 더더욱
없었다. 케이마는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는 식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케이는 어떻게 해서든 이대로 돌려
보내 보려고 몇 가지 거짓말을 더 지어냈지만 당연히 그것들이 설득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케이마는 단 한
마디로 케이의 말을 물리쳤다.

"오랜만에 왔는데 하룻밤 숙식도 허용하지 않는다니 매정해 졌구나."

"그...그게 아니라요!!"

"걱정마라, 오늘밤만 지내고 내일은 바짓단 붙잡고 말려도 돌아가마."

할 수 없이 케이는 그러시라고 승낙하고 말았다. 설마 오늘 크로노스가 처들어올까. 오늘밤 정도라면 괜찮
을 것이다. 아마도..... 




******************************************




"다녀오셨습니까, 도련님."

늦게 귀가한 아키토를 집사가 공손히 맞이하였다. 아키토는 요 며칠 계속해서 귀가가 늦었다. 맥스제약이
자폭, 소실된 덕에 사고대책본부가 구성돼서 거기 일만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크로노스
상부의 명령은 맥스제약 재건은 잠정 보류하라는 거였지만 일단 세간의 의심을 안 받으려면 이렇게 '사고'
를 수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라도 해야 했다. 오늘은 경찰에 출두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이렇게 귀가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저녁식사는 그냥 넘기고 샤워를 한 다음 쉬려고 맘을 먹고있던 아키토에게 집사가 아까부터 손님이 와서
기다리고 있으시다고 알려줬다. 아키토는 의아해 하였다. 지금 자기를 찾아올 사람이 딱히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집사말로는 한 몇 시간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자기를 기다리는 손님이라니. 어쨌든 아키토는
손님을 맞으러 응접실로 향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키토는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응접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그가 전혀 예상도 못하던 인물
이었다. 그가 마시고 있던 포도주 잔을 인사대신 들어 보였다.

"좀 늦었군. 아키토."

'규오!! 살아있었는가...!'

아키토를 기다리고 있던 건 놀랍게도 리헐트 규오였다. 일본지부가 폭파됬을때 헬기속에 갇힌 채로 폭사했
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아키토의 눈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는 이내 곧 평정을 찾았다. 그리고 태연
하게 규오 앞에 다가가서 인사를 하였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사령관님."

"아아, 그 가이버III녀석이 장난을 좀 쳤었지만 별거 아니었어."

헬기가 공중폭팔해서 추락했는데 그게 장난이었다고? 크로노스를 이끌어 가는 최고 간부 '12신장'의 한 명
이라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키토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한잔 더 하시겠습니까?"

"좋지, 향이 아주 좋더군. 이 포도주는 자네 취향인가?"

"예. 프랑스 브르고뉴(Bourgogne) 지방산 입니다."

아키토가 규오의 빈 잔에 포도주를 따라줬다. 규오는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잔을 기울였다.

"여긴 어쩐 일이신 지요."

"유적 기지에 들러서 증원병력을 받고 오는 길에 들렀다. 일본지부는 박살이 났으니 말이지."

"증원...이라 하심은?"

"로스트 넘버즈다."

아키토는 규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로스트 넘버즈, 조제실험 실패로 인해 제대로 된 조아노이드가 되지 못
한 실패작 '손종 실험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보통의 조아노이드들처럼 제대로 된 형식번호를
부여받지 못하고 그저 흥미 있는 실험동물 취급을 받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정규 조아노이드
에는 없는 생각지도 못한 특이한 능력을 가지게 된 자도 있었다. 규오는 그들 중에서도 특출한 능력을 가진
자들로 따로 편성한 손종실험체 부대, '로스트 넘버 코만도'를 증원 받은 것이다.

"노즈코프와 무매르제가 당했다."

"각하의 직속부하 말씀이군요. 그 둘, 하이퍼 조아노이드 잖습니까."

"내가 너무 가이버 I 을 얕잡아 봤다. 애송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여기 오기 전 규오는 가이버 I의 컨트롤 메탈을 회수하기 위해 자신의 남은 직속부하 둘을 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이로서 규오는 휘하의 직속부하 넷을 모두 가이버 I 에게 잃고 말았다. 직속부하를 다시
배정 받으려면 애리조나 본부에 가서 그 늙은이에게 다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판이었다. 물론 내주기야
하겠지만 잔소리를 좀 들을 것만 같았다. 일본에서 받아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이곳의 기술력은 영 아니었
다. 연구활동이야 활발하게 하고는 있었지만.

"다시 조아노이드 부대를 편성해서 가이버 I 을 잡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로스트 넘버즈도 왔고 하니...."

"아니, 그만 됐다."

규오는 고개를 저었다. 속이 타는 듯 규오는 남은 잔을 단숨에 비웠다. 아키토가 다시 빈잔에 술을 채웠다.

"지금같이 무작정 조아노이드를 투입해서는 이쪽의 손실이 너무 크다."

"확실히, 현재 가이버 I의 능력은 일반형 조아노이드 수준으로는 아무리 많이 투입한다 해도 상대가 불가능
합니다."

규오는 유니트 가이버의 능력에 전율하고 있었다.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았고 싸움 같은 거와는 전혀 인연
이 없던 삶을 살아오던 조그만 남자를 이쪽의 히든카드라 할 수 있는 하이퍼 조아노이드까지 격파해 버리
는 무시무시한 전사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과연 강림자의 유산이었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
시 손에 넣어야 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유니트 가이버라...후후후, 대단한 물건이다...."

아까부터 술을 마신 규오는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혼자서 웃던 규오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그 정비공녀석이다."

"모리사토 케이 말씀입니까."

"아키토, 네 의견을 말해봐라. 녀석은 왜 무모한 일 인줄 알면서도 우리에게 저항하는지!"

아키토는 잠시 고개를 숙인 체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아무래도...우리가 자신의 일상을 파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

"평소처럼 가족이나 친구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데 우리가 자꾸 공격을 하니 거기에 대한 반발심이 아
닐까 싶습니다. 생존에 대한 욕구도 있을 테고요."

아키토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를 얘기하였다. 사실 상대방이 공격을 해오는데 그냥 죽여줍쇼 하
는 식으로 체념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규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할 정도로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였다. 아니, 차
라리 본능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규오는 잔에 담긴 포도주를 다시 한번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케이에겐 아주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아키토, 가이버와 관계된 모든 인간을 확보해라. 이쪽에서도 증원을 보내줄 테니. 놈의 일상을 철저히 파괴
해 준다."






응접실을 나온 아키토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이제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착착 잘 진행된다고 생각했는
데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는 바람에 일이 꼬이고 말았다. 설마 그 상황에서 규오가 살아남을 줄은 예상
을 못했다. 게다가 로스트 넘버즈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혹까지 같이 끌고 오고 말았다.

케이의 주변인물을 납치하는 작전 자체는 아키토 역시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키토는 그 작전을 이용해
서 가이버 I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작전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즉 넌지시 정보를 흘려줘서 그의 환심을
산 후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그의 야망을 위해서는 가이버 I의 힘이 꼭 필요
했다. 그러나 규오라는 불청객이 있어서는 그 계획은 실행할 수 없었다. 아키토는 결심을 굳혔다.

'녀석을 없애버려야 한다!'



******************************************



-덜컹!

갑자기 응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소리에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규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거기
엔 놀랍게도 가이버 III 가 서 있었다. 경악한 규오는 취기가 싹 달아났다. 규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
다.

"각오해라, 리헐트 규오!"

가이버 III 가 규오에게 달려들었다. 규오는 피할 틈도 없이 바로 가이버 III 에게 양손을 붙잡혔다. 마치 힘
겨루기를 하는 듯한 자세 그대로 가이버 III 가 힘을 주기 시작했다. 가이버 III 는 이대로 규오를 갈가리 찢
어 버릴 기세였다. 규오는 엄청난 힘이 양팔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점점 규오의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규오가 다급하게 사념파를 방사하였다.

-"이 멍청한 놈들아! 내가 있는데도 가이버 III 의 침입을 허용하다니! 네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냐!!"

규오의 사념파를 받은 요원들, 규오가 '유적 기지'에서 증원 받았다는 로스트 넘버즈 멤버들은 경악하였다.
분명히 자신들은 철통같이 이 저택을 경비하고 있었는데 대체 어느새!

"사령관님! 다임은 이 저택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라고!!"

로스트 넘버즈 다임의 능력을 잘 알고 있던 규오는 경악하였다. 이 녀석이 대체 어떻게 다임의 경비망을 뚫
고 이 저택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그 때 그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 동안 아무도 이 저택에 출입
하지 않았다면 미리 들어와 있었다는 말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대체 놈은 어떻게 자신이 여기 올 줄 알고
있었을까? 여기엔 그 어디에도 얘기 안하고 그냥 즉흥적으로 온 것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크으윽!!"

규오가 양팔에 온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가이버 III 와 대등하게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힘을 못 견딘 응접실의 마루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가이버 III 는 경악하였다. 지금
이 남자는 가이버와 대등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로노스 '12신장'이란 놈들은 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
단 말인가!

팽팽한 힘겨루기의 와중에 규오는 모든 걸 다 알았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그는 가이버 III 를 매섭게 노려
보았다. 스스로를 '제우스'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아직 아버지인 크로노스에게 이빨을 들이대기에는 너무 어
린놈이었다.

-덜컹!

"총사령관님!!"

그 때 응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로스트 넘버즈 멤버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을 본 가이버 III 는 즉시 규
오에게서 떨어졌다. 규오 한 놈이라면 모를까 정확한 능력을 모르는 로스트 넘버즈 까지 가세해서는 자신에
게 승산이 없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야 했다. 가이버 III 가 손을 앞으로 뻗자 복부의 중력
제어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프레셔 캐논을 쏘려는 것이었다.

"규오! 언젠가 그 목을 받으러 다시 오겠다!!"

-파앙! 콰쾅!!

가이버 III 는 프레셔 캐논을 규오를 향해 발사하였고 규오는 그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빗나간 프레셔
캐논은 그대로 뒤편 응접실 벽을 파괴하였다. 공격을 피한 로스트 넘버즈 멤버 두명이 가이버 III 를 쫓아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곧 가이버 III 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도망치는 속도가 대단히
빠른 놈이었다.

"무슨 일인가!"

"아키토 님!"

그 때 2층에서 아키토가 놀란 표정으로 서둘러 내려왔다. 로스트 넘버즈는 그에게 가이버 III 가 나타났다고
보고하였고 그러자 아키토는 크게 놀란 표정이 되었다.

"사령관님, 즉시 추적을 계시하겠습니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니, 그냥 놔둬."

"네? 하지만...."

"지금은....그냥 설치게 놔 둬라. 조만간 녀석을 잡을 수 있으니까...!"





규오는 지금은 아키토의 집무실처럼 된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로스트 넘버즈 멤버
들도 함께였다. 로스트 넘버즈는 아까부터 규오에게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유적기지로 가셔야 한다고 진언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규오는 고개를 저었다. 한번 쓴맛을 봤으니 다음 번엔 작전을 변경해서 자신을 덮치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당장 놈이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 보다는 아까의 작전을 당장 실행하는 게 좋겠다."

"즉시 납치 부대를 조직하겠습니다."

아키토는 대상자들은 가이버 I 과 아주 가까운 인물, 그리고 직접 조아노이드를 목격한 자에 한정하였다. 안
면이 있다고 전부 납치하는 건 힘들 뿐더러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대상을 어느
정도 축소하였다. 아키토가 부대의 출동을 명령하려는 찰나 규오가 아키토를 제지하였다.

"잠깐, 놈의 거처에는 여신들이 있다."

"여신이요?"

"천계의 여신들, 보통 인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자들이 있다."

아키토는 여신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다. 규오는 아키토에게 여신들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아키토는 깜짝 놀랐다. 설마 현재 케이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들이 여신들이라
니. 처음 보고 어딘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설마 신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
다고 규오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성격도 아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그 때의 그 꼬맹이야 별거 아니었지만 나머지 둘은 혹 모른다. 일반 조아노이드 부대만으로는 벅찰 수도
있으니.... 그 절에는 너희들이 가거라."

규오는 뒤를 돌아보면서 로스트 넘버즈들에게 출동을 명령하였다. 명령을 받은 로스트 넘버즈 멤버 세 명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규오는 아키토에게 또 다시 명령을 내렸다.

"아키토, 넌 즉시 다른 부대를 조직해서 놈의 또 다른 일상을 파괴해라. 놈이 정신 못 차리도록 동시다발적
으로 일을 처리하는 거다."

"예.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아키토는 규오가 보지 못하게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계획이 단단히 틀어지고 있었다.




******************************************




로스트 넘버즈는 절에 도착하기 전에 아키토의 지시에 따라 두 패로 나뉘었다. 세 명중 한 명은 조아노이드
를 목격한 여자 -핫세를 말한다- 를 납치하러 가고 나머지 둘은 일단의 조아노이드 부대와 함께 가이버 I
의 본거지인 '타력혼간사'라는 조그만 절을 습격하기로 하였다. 일본지부가 소실되면서 많은 조아노이드 부
대원을 잃는 바람에 인원이 꽤 모자랐던 것이다.

"솜룸, 조심해."

"너무 그렇게 걱정 말라고, 앱톰. 간단한 임무야. 너희 둘이나 조심해."

로스트 넘버 코만도의 리더격이라 할 수 있는 앱톰은 이 조치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병력이 부족하다는
거야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솜룸만 단독 행동을 하다가 가이버 I 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
이었다. 솜룸은 전투보다는 정찰에 더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불안했다. 솔직히 가이버가 상대
라면 그들 세 명이 한꺼번에 덤빈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앱톰의 마음을 알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아키토는 솜룸에게 만약 가이버 I 과 접촉하면 임무를 포
기하고 전력으로 도망치라고 재차 강조하였다. 스피드 하나는 정말 자신이 있는 솜룸이었기에 명령에 군소
리 없이 따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아닌가. 게다가 여차하면 그냥 도망쳐도
상관없고. 어차피 목표가 사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원룸촌. 대규모의 병력은 너무 눈에 잘 띈다.
이곳만큼은 단독행동을 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솜룸은 일행과 헤어져서 납치대상이 살고 있다는 원룸촌 쪽
으로 향했다.

습격작전은 총 세군데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로스트 넘버즈 앱톰과 다임을 주축으로 한 부대는
절을 습격해서 그 곳에 있는 여신들을 납치해 오고, 솜룸은 단독으로 움직여서 핫세라고 하는 조아노이드를
목격한 여자애를 납치하며 아키토가 이끄는 부대는 가이버 I, 케이가 일을 다닌다는 훨윈드를 기습하기로
하였다. 만약 가이버 I 이 나타난다면 어느 쪽이라 해도 교전은 가급적 피하면서도 다른 팀들이 일을 끝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오래 가이버 I 을 붙잡아 둔다는 다소 모순된 계획을 세웠다. 다만 솜룸은 단독 행동
이므로 시간을 끌려 노력하지 말고 바로 도망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시간이 꽤 지난 후 먼저 앱톰과 다임의 팀이 작전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해왔다. 이어서 솜룸역시 목표가
사는 곳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아키토는 일단 현장에서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는
핸드폰을 꺼내서는 어딘 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리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네, 훨윈드입니다."

전화를 받은 것은 베르단디였다. 예상했던 대로 가게에는 아직 가이버 I과 그의 애인이 있었다. 아키토는 미
소를 지었다.



******************************************




"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이러는 건데!"

가게 안에서 지로가 큰 목소리로 케이를 다그쳤다. 케이는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로 말없이 서 있을 뿐이
었다. 베르단디 역시 표정이 대단히 어두웠다. 지로는 퇴근하기 직전 케이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말
을 들었기 때문에 저렇게 흥분하고 있었다.

결국 케이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전혀 내켜하지 않았지만 오늘부로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로는 케이의 예상보다 더 흥분하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지로만큼은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만두는 거였지만 그런 사정을 이야기 할 수는 없었기에 케이는 그저 다른 일이 있다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로는 이런 일을 적당히 넘어갈 인물이 아니었기에 저렇게 흥분하는 것
이었다. 지로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케이의 사직 의사가 너무 당혹스러웠다. 이제까지 케이랑 베르단디와
함께 셋이서 운영하던 가게인지라 당장 두 명이 빠져 나가버리면 사실상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었다. 게다
가 이제까지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를 떠나서 마치 친구처럼 즐겁게 일을 해 온 터라 케이에게 섭섭한 감
정도 느꼈다.

"저기....그러니까 이제 저희들은 더 이상 여기서 일할 수 없어요. 중대한 일이 생겨서..."

"글쎄, 그 중대한 일이 뭔데!"

베르단디는 지금이라도 솔직히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건 케이가 결사 반대하고 있었다. 사정을
알면 지로도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며 케이가 끝까지 비밀로 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까부터 베르단디
는 지로가 뭐라 해도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따르릉!

그 때 전화가 왔다. 영업시간은 끝났지만 베르단디가 일단 전화를 받았다.

"네, 훨윈드입니다."

베르단디가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지로는 계속해서 케이를 다그쳤고 케이는 어떻게 하면 지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지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적당한 대답을 만들어 와야 했다며 케이는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
다.

"케이씨! 큰일이에요!!"

그 때 갑자기 베르단디가 수화기를 든 체로 파랗게 질린 채 다급히 케이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본 케이와 지
로는 잠시 언쟁을 멈췄다. 도대체 무슨 전화길래 베르단디가 저러는 걸까? 지로는 이제까지 저렇게나 놀란
베르단디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크로노스가...크로노스가 핫세씨를 노리고 있데요!"

"뭐!!"

크게 놀란 케이는 서둘러 전화기 쪽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벌써 전화를 끊은 뒤였
다. 케이는 베르단디에게 누가 건 거냐고 물어봤지만 베르단디는 상대방이 이름도 안 밝히고 일방적으로 핫
세가 노림을 당하고 있다는 말만 했다고 하였다. 설마 이번에도 저번의 엔자임때처럼 크로노스의 함정일까?
그러나 어쨌든 이번엔 핫세가 위험하다는 건 틀림없는 듯 싶었다. 케이가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 버렸다.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잠깐! 너희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핫세가 어떻다고?"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 지로는 두 사람에게 설명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케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지
로에게 말했다.

"선배, 잠깐 밖으로 나가죠. 보여 드릴께 있어요."





세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케이는 두 사람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 정도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케이의 의도
를 눈치챈 베르단디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큰 소리로 외쳤
다!

"가이버어어!!!"

-퍼어엉!!

케이가 충격파를 동반하며 가이버로 변신하였다. 케이가 갑자기 저런 이상한 로봇같은 모습이 되자 그 모습
을 본 지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보여준다던 게 이런 거였나? 이게 무슨 특촬영화도 아니고 케이가 어째서
저런 모습이 된단 말인가? 지로는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베르단디..."

"네, 케이씨..."

"위험하니까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줘. 그리고 나머지는 지로 선배에게 잘 설명해 줬으면 해. 난 핫세
에게 가 볼께."

"부디 조심하세요...."

케이는 걱정 말라며 베르단디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가이버의 안면 마스크 때문에 베르단디에겐 그 모
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케이는 핫세가 사는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케이가
이상하게 변신하고 더군다나 하늘을 날아가기까지 하자 지로는 이제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꼈
다. 이 무슨 만화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그만둔다는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나?

"베르단디."

"네...."

"전부 다 설명해 줘. 하나도 빼놓지 말고 사실대로...!"




******************************************




울드와 스쿨드는 응접실에서 케이와 베르단디가 퇴근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냥 멍하게 기다리는
건 아니었고 이번에도 채널권 선택을 위한 승부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인원도 갑자기 방문한 케이
마 덕분에 네명이 갖춰졌기에 이들은 오랜만에 마작을 하기로 하였다. 케이마는 마작을 할 줄 아니 문제는
없었지만 (여자들 틈에 끼기 싫어하길레 울드가 여차하면 만지겠다고 협박(?)하다시피 해서 끌어들였다) 린
드는 전혀 할 줄 몰랐다. 아니, 근본적으로 그녀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삶은 오로지 전투, 아니면 수행이었으니까.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울드가 간단히 규칙을 가르쳐 주었다.

-삐이이이!!

그 때 응접실에 스쿨드가 갖다놓은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절 주변에 배치된 미니군들이 침입
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모두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다만 전혀 사정을 모르는 케이마 만은 그
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린드는 재빨리 베틀액스를 챙겨들고는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그 뒤를 따라 울드와
스쿨드 역시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으로 나가자 십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절 안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들의
앞을 시글과 미니군 부대가 막아서고 있었다. 흰색의 핼맷과 검은 타이즈를 입고 있는 모습, 스쿨드는 그
모습을 보고는 울드의 뒤로 숨었다. 크로노스의 조직원들이었다.

"저...저 사람들은 대체 누구야?"

"아저씨!! 위험하니까 스쿨드랑 같이 안에 있어요!"

울드는 뒤따라 나온 케이마에게 소리쳤다. 오늘 밤 정도라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놈들이 이렇게 빨
리 행동에 나설 줄은 몰랐다. 이제 케이마까지 크로노스의 마수에 노출되게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제
로라도 돌려보냈어야 했다고 울드가 혀를 찼다. 울드는 앞뒤볼것 없이 바로 공격 법술을 외웠다.

"전광 소환!!!"

-파지직!!

"끄아아아!!"

조직원들이 울드의 전격 공격을 맞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울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맞았으니 아마도 며칠간은 끙끙 앓을 것이었다. 생각 보단 별거 아닌 놈들이라며 울드가 코웃음을 쳤다. 그
러나 린드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저들의 기운이 여전히 팔팔하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크윽!!"

"이...이년이!"

그 순간 울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전격 공격에 맞은 조직원들이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분명히 제
대로 맞췄는데도 녀석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 해 보였다. 조직원들이 일제히 핼맷을 벗어 던졌다.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니다! 다들 변신해!!"

-투두둑!!

"크아악!! 카악!!!"

그 와 동시에 조직원들이 일제히 조아노이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마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사람이 저런 괴물로 변신하다니! 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
어서 실감이 가질 않았다. 설마, 케이가 어설픈 거짓말을 해가며 자기를 돌려보낼려고 노력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케이는 이런 놈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던 거란 말인가!

린드는 배틀액스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방금전 울드의 전격 공격은 자신이 보기에도 상당히 위력적인 공격
이었다. 그럼에도 녀석들이 바로 전투를 시작하려는 것을 보면 법술공격으로는 녀석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가 없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방법은 단 하나, 물리적인 타격을 주는 것. 즉 육박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
이다. 육박전을 할 능력이 없는 울드를 제외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울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
나 린드는 조아노이드에 대해선 완전하게 알지 못했다. 정확한 실력을 모르는 다수의 놈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것 때문에 린드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콰쾅!!

그 때 갑자기 스쿨드의 방문이 부서지면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울드와 스쿨드는 뒤를 돌아보았
다. 거기서 나온 것은 스쿨드의 비장의 카드, 대 크로노스용으로 파워업한 밤페이였다. 이전 몸집보다 훨씬
거대한 몸을 장착한 밤페이가 성큼성큼 마당으로 걸어나왔고 스쿨드는 그 뒤에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어때! 내 최고의 걸작, 맥스 파워 밤페이군이야!!"

처음 크로노스의 위협을 느꼈을 때부터 스쿨드가 개발에 몰두하던 비장의 무기가 지금 화려하게 등장하였
다. 그러나 스쿨드의 발명품들이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하는 린드는 솔직히 둔해 보이는 저것이 얼마나 싸
워줄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운이 났다. 1대 10 보다는 2대 10이 차라리 더 나으니
까. 밤페이와 린드가 동시에 조아노이드들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하아앗!!"

"삐삑!!"




******************************************



베르단디는 가게안에서 지로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꽤 긴 이야기인지라 우선은 케이가 가이
버란 것으로 변신하게 된 경위부터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크로노스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으로
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도 설명하였다.

"그래, 경찰에는 연락해 봤어?"

베르단디는 고개를 저었다. 크로노스란 조직은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
야쿠자 조직 수준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로는 크로노스란 조직의 규모를 모르고 있었고 때문에 베르단디
의 대답에 어처구니 없어했다.

"일단 위협을 당하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성적표 숨기기 같은 것도 아니고 이런 위험한 일을 마냥
숨기기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

"하지만 지로씨, 그들은 조아노이드라는 괴물들이라고 해요. 보통 경찰 분들만으로는...."

사실 베르단디 역시 조아노이드란걸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그녀가 직접 본 조아노이드는 그저께 레이스
경기장 근처 강가에서 봤던 이미 죽은 사체뿐. 물론 스쿨드가 밤페이에 기록돼 있던 조아노이드의 데이터
화일을 보여줬기에 모양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제대로 실감이 가질 않았다. 때문에 그녀
역시 지로에게 조아노이드란것이 뭔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도대체...이게 무슨 소리야. 조아노이드란건 또 뭐고..."

-똑똑.

그 때 가게문을 누군가가 노크하였다. 지로는 큰 소리로 오늘 영업 끝났다며 소리쳤다. 평소 같으면 직접
문을 열고 찾아온 손님에게 공손히 오늘 영업이 끝났습니다 하고 말하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밖에 있던 사람이 가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신경질이 난 지로가 고개를 돌리며 소
리를 치려 하였다.

"오늘 영업 끝났다는....! 아, 마..마키시마?"

그런데 찾아온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마키시마 아키토 였다.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일까. 그런데 그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이상한 핼맷을 쓰고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과 함께 들어왔다.
아키토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마키시마? 여긴 웬일이니? 게다가 저 사람들은...."

"선배. 죄송하지만 같이 가 주셔야 겠습니다."

그 때 베르단디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섰다. 베르단디는 아키토를 따라온 남자들의 옷을 보고
놀란 것이다. 스쿨드가 보여줬던 기록파일에 있던 사진과 같았다.

"마키시마씨! 저 사람들은 설마....크로노스!"

"뭐라고!"

베르단디의 말에 지로 역시 크게 놀랐다. 지금 케이와 베르단디를 위협하고 있다는 정체 불명의 조직원들이
바로 이놈들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째서 아키토가 녀석들과 함께 있는 걸까.

"가이버 I 을 부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괜히 쓸데없
는 저항은 마시죠. 베르단디씨."

"그...그렇다면 아까의 전화는!"

"제가 했습니다. 가이버 I, 케이군을 다른 데로 유인하기 위해."

그 말에 지로와 베르단디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키토 역시 크로노스의 조직원이었다! 베르단디가 지로를
지키기 위해 급히 공격 법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만 두시죠. 이미 당신 자매 분들의 신병은 저희 손에 있습니다."

"그..그럴 수가!"

"얌전히 저희랑 동행하시면 그들은 무사합니다. 그러나 허튼 짓을 하면 그들의 목숨은 없습니다."

결국 베르단디는 법술을 외우는 것을 중단하였다. 아키토는 옆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정중히 모셔라."




******************************************




-촤악!

"크아악!!"

린드는 일곱마리째의 조아노이드를 베어 넘기면서 이들의 강인함에 혀를 내둘렀다. 처음 일격을 먹일 때 있
는 힘껏 내리쳤는데도 배틀액스는 조아노이드의 피부에 박히기만 할 뿐 더 깊게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린드는 그녀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스피드를 최대한 살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적들을 교란하다
가 틈이 보이면 머리같은 급소를 노리는 식으로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마리를 베어 넘기면서
슬슬 체력의 한계가 오는 게 느껴졌다. 이제까지 이런 무지막지한 녀석들을 상대로 케이가 혼자서 싸워왔다
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퍼억!!

"꾸에엑!"

린드와는 달리 힘으로 밀어붙이는 전투를 하고 있던 밤페이는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었다. 강력한 파워를
바탕으로 밤페이는 강철의 주먹을 조아노이드에게 날리고 있었고 그 주먹에 맞은 조아노이드들은 형편없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파워업한 밤페이라 할 지라도 혼자서 여러 마리의 조아노이드들을 상대
할 수는 없었기에 몇 번의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글이 특유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조아노이드들
을 교란시키는 방법으로 밤페이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시글에겐 지금의 밤페이와는 달리 조아노이드를 상
대로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아무 것도 없었지만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총동원해서 밤페이를 서포
트 해주고 있었다. 평소에는 밤페이가 싫다며 피해 다닌다지만 지금 시글과 밤페이는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
고 있었다.

그런데 조아노이드가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 절 안으로 들어왔던 조아노이드 열마리는
이미 해치웠지만 밖에서 끊임없이 조아노이드 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는 건 위
험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

"스쿨드! 케이에게 전화 걸어! 여기 적들이 쳐들어 왔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말이야!!"

한참 법술 공격을 하면서 린드를 후방 지원하던 울드가 스쿨드에게 소리쳤다. 울드 역시 이대로는 위험하다
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린드와 마찬가지로 여길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
저히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지금이라도 가이버인 케이가 온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가 있었다.

"아앙!! 전화가 먹통이야!!!"

전화를 하려던 스쿨드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미리 이곳의 전화선을 끊어 놓은 것 같았다. 울
드가 가볍게 욕지거리를 내 뱉으며 다시 법술 공격을 시도하였다.

"파쇄 뇌광!!"

-파지직!!

"크아악!"

울드의 전격 공격은 이번에도 상대 조아노이드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번개에 맞은 놈은 비명을 질렀
지만 그 뿐이었다. 울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놈들에겐 법술이 잘 안 통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드는
법술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최소한 놈들을 움찔거리게는 할 수 있으니 부족하나마 린드를 후방지원 할 수
는 있었다. 그러나 울드 역시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한심하군."

절 입구에서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던 앱톰과 다임이 혀를 찼다. 아무리 여신들 이라지만
조아노이드 수십마리가 고작 여자 몇 명과 로봇 한대(이들의 눈엔 시글이 로봇처럼 보이진 않았다)에 쩔쩔
매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평소에 자신들을 실패작이라며 멸시하던 정규 조아노이드들이 고전하는 꼴을 보
고 있던 두 사람은 그들을 실컷 비웃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저들이 미워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사적인 감정은 감정이고 임무는 임무였다. 앱
톰은 다임을 바라보았다.

"다임, 네 실력을 보여주는 게 좋겠어."

"후후...맡겨 두라고."






"타앗!"

린드의 매서운 공격에 또 한마리의 조아노이드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조아노이드들이 몇번이나
린드를 포위해서 붙잡으려 했지만 린드는 치고 빠지는 전술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공격을 한 이후엔
무조건 그 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는 린드를 그들은 잡지 못했다.
 
-슈우욱!

"아앗!"

그 때 갑자기 린드의 발을 뭔가가 붙잡았다. 깜짝 놀란 린드가 발을 내려다보자 그녀의 다리를 진흙 같은
것이 감싸고 있었다. 그 진흙은 점점 린드의 몸을 감싸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린드의 발을 묶었다. 이윽고 린드는 머리를 제외한 온 몸이 진흙에 둘러
싸였다.

"이...이게 뭐야!"

"꺄악!!"

비명 소리에 린드가 고개를 돌리자 다른 사람들 역시 린드처럼 진흙에 둘러싸여 꼼짝 못하고 있었다. 시글
과 밤페이 역시 진흙으로 인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후후, 어떠냐. 대지와 융합해서 아군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다임의 능력이다!"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왼쪽 얼굴에 세로로 커다란 흉터를 가진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린드는 저 남자가
이들의 지휘관일 것으로 짐작하였다. 전신을 꽉 붙잡힌 린드는 그저 노려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
다.

"더 이상 쓸데없는 저항은 안하는게 좋아, 안 그러면.... 다임!!"

남자가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진흙이 조이는 압력이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에 린드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울드와 스쿨드, 케이마도 진흙이 조이는 힘을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비명도 제대로 지르
지 못하고 있었다.

-빠지직!

그 때 진흙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시글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방어력도 상당히 올라간 밤페이와는 달리 시
글은 이전 그대로의 능력이었기에 이 진흙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시글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응? 이거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나? 어쩐지 사람 치곤 좀 이상한 공격들을 한다 싶었는데..."

왼쪽 뺨에 흉터가 있는 남자, 앱톰이 기능이 정지된 시글의 머리칼을 잡아 올렸다. 잠시 시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앱톰은 피식 웃으면서 시글의 머리를 잡아 뽑았다.

-콰직!

시글을 무참히 부숴버린 앱톰은 시글의 머리를 멀리 던져버렸다. 그 순간 시글이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본 밤페이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콰앙!!

밤페이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진흙을 걷어내었다. 그리고는 앱톰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또다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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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크오!! 저 미군같은 놈들!!! 드디어 본격적인 공세를 펼치는 군요..[역시 생각한 대로..]

님의 열혈을 본받아 저도 주말에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그런데 역시 님의 설명체는 참 보기 좋습니다..저도 저렇게 다듬을 수 있음 좋을텐데...

앞으로 답변 남기실때 글의  설명체라든지 그렇것에 대해서 답변을 좀....주시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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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설명체라.....-ㅅ-;;; 글쎄요. 전 다른 분들보다 잘 쓴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서 뭐라 설명드리기는 좀.....;;;;; 흔히들 이럴때 하는 답변이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겁니다만 전 요 근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요. orz 굳이 답변드린다면 그저 되는데로 각 장면을 어떻게해서든 연결시키려다 보니 저리 됬다는 것?

솔직히 제 글, 좀 길죠. (...) 다음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서도 가끔 너무 길다는 소리 듣습니다. 이래저래 묘사가 많다보니.... 그래서 요즘은 거기 올릴때 한편을 반토막 내서 올리고 있지요. -_-;;; 솔직히 이 팬픽은 극본체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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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건 그렇고, 이거 베이더님이랑 저랑만 서로 답글 주고 받고만 있으니...;;; 이거 참 안습이군요. ㅠ.ㅠ 역시나 다른 분들에겐 제 팬픽이 너무 길고 재미 없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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